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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올바른 신앙자세 (느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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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신앙자세 (느 3:1-12)


텔레비전을 보니까 필리핀에서 우리나라로 시집온 제니 가르시아라 라는 한 부인의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전신마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저렇게 생겼는데 어떻게 회복이 되어서 보람을 찾을 수 있겠느냐우리나라로 시집올 때는 큰 기대를 가지고 시집을 왔을 것인데 남편이 전혀 욺직이지도 못하는 전신마비가 되었으니 이제 다 끝났지 않았겠느냐 말하며 동네 사람들도 다 안타까와 하고 또 시집 부모님들도 안타까와서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또 주의 사람들도 이야기를 했지만 그 사람은 절대 나는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한번 맺은 인연을 조건이 바뀝었다고 내가 다시 돌아가면 안 되지요.

우리 남편을 내가 평생을 거들고 제가 힘들어도 아내의 역할을 다 하겠습니다 라고 옆에서 3년을 돌보았습니다. 그랬는데 남편이 갑자기 깨아난 것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게 되어서 제니 가르시아 필리핀 부인과 시부모들과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사람이 필리핀 제니 가르시아 부인이었습니다. 정말로 암담한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의 그 위치를 다하려고 남편을 사랑하고 또 아내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고 자기의 모든 좋은 조건들을 다 뒤로하고 아내로서 3년 동안 간호만 하고 있었던 그 부인에게 큰 축복이 찾아 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올바른 아내라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면 감사하고 또 힘들고 좀 어려우면 감사를 못하는 우리의 삶을 가만히 볼 때 그것은 올바른 신앙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던 저렇게 하셨던 또 어떤 좋은 조건을 주셨던 어떤 나쁜 조건을 주셨던 하나님이라는 그 사실을 우리 안에서 인정을 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올바른 신앙자세가 될 것이고 또 그기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루 하루의 모든 신앙자세가 좋은 조건과 형편을 따라가면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지 못하고 나중에는 결국 잘못된 신앙자세로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 되어도 변함없이 올바른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느헤미야 3장은 성벽을 재건하는 내용인데요 이 성벽에는 모두 문이 10개가 있습니다.

첫 번째에 위로 북쪽에 있는 양문으로 시작해서 그 다음에는 어문 그 다음에는 옛문 그 다음에는 골짜기문 그 다음에는 분문 그 다음에는 샘문 그 다음에는 수문 다음에는 마문 그 다음에는 동문 그 다음에는 함밉갓문 이렇게 10개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 10개의 문을 통해서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데 바로 이 성벽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양문으로 시작해서 함밉갓문으로 끝나는데 이것이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는데 꼭 필요한 것을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양문은 바로 우리 주님이 어린 양으로 희생의 재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문은 갈릴리 지방에서 고기를 잡아오면 그 문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베드로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을 했듯이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고 또 그 다음은 옛문입니다. 옛문은 옛날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골짜기문은 고난과 시험 속에서도 겸손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샘문은 성령 충만하기를 말하는 것이고 
다음에 분문은 영적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수문은 하나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문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동문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말하며 
마지막으로 함밉갓문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늘 본문은 양문과 어문과 옛문을 누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만들었는가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높은 사람들은 만들지 않고 낮은 사람들은 만들고 또 어떤 사람은 여기뿐만 아니라 또 다른데서도 또 성벽을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있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일을 해야할 만한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일할 조건이 못된 사람이 일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으로 오시고 앞으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까지 그 문을 통과할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알고 올바른 신앙생활의 가치관을 가지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부분에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날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되는데 그러면 어떤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되는지 먼저 1절부터 보겠습니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어떠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첫 번째는 주님이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것을 기억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지금 여기에 보면 1절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양문은 어린양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양문을 건축을 해서 성별을 하고 그 다음에 문짝을 달았다. 문짝을 달았다는 것은 들어올 것은 들어오고 들어오지 말아야 될 것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문짝을 다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 것이나 받아들이고 아무거나 들랑날랑 하게 만들면 안되는 것입니다. 들어올 것은 들어오게 하고 못 들어올 것은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이 문짝을 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습니다.
여기는 누가 했느냐 하면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했는데 양을 그곳으로 끌고 들어 와서 성전에 와서 잡아서 그것을 드리기 때문에 거기서 대제사장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집행하는 사람이 대제사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되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으로 오신 것을 우리가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 나 같은 것을 위해서 그 분이 대신 희생당하신 것을 내가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신앙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되어야지만 내가 신앙의 올바른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받고 누리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무엇인가를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형 쪽으로 신앙으로 흘려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외형으로 신앙생활을 해 보았던들 그것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 같은 것에게 나 같은 것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희생하셨다고 하는 것을 내 안에서 이해하고 깨달아야 그것이 신앙의 올바른 자세을 갖는데 첫 번째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양문부터 시작을 하는가를 우리는 이해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것이 가장 바로 중요하기 때문이 이렇게 시작을 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것을 기억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5절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해서 죽으신 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희생하신 것을 기억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은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는 공회원이였습니다. 그리나 주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어느 누구도 시체를 주라고 요구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손해 날 것과 큰 피해를 입을 것도 감수를 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체를 받아서 자기가 죽으면 들어갈 묘실 새 무덤에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주님이 죽으신 것은 곧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지고 어느 누구고 하지 못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3절입니다.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어떠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두 번째는 영적인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3절에 보면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어문은 북쪽에 있는 문인데 갈릴리 쪽에서 고기를 잡으면 그 어문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생선문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싣고 오면 그 어문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 문을 어문이라고 했는데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들보를 얻었는데 건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문이라고 하는 것은 고기를 잡아 드려오는 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했느냐 하면 하스나아 그 사람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보를 얻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다. 문짝을 달고 들어올 것과 들어오지 말아야 될 것을 구별하고 자물쇠와 빗장이라는 이야기는 혹이라도 들어 올 가 싶어 빗장을 질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들보를 얻고 문짝을 달고 빗장을 지르고 자물쇠까지 잠근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므레못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므레못은 제사장인데 이 므레못이라는 사람은 21절에 보면 또 다른 곳에서 성벽 재건의 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이 사람은 열심인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11절에 보면 핫숩이라고 하는 사람이 또 있는데 23절에 보면 핫숩이 또 다른데 성벽 재건의 일을 하고 있어요. 얼마나 이 사람들은 칭찬을 받아야 됩니까?
영적인 것을 얻으려고 노력한 사람이 바로 이 므레못이예요.
우리도 바로 이런 므레못 핫숩 같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것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고 육적인 것이 우리 안에 들어오려고 하면은 문짝을 달아서 빗장을 질려야 됩니다.

그런데 문도 열어 놓고 빗장도 질러놓지 않으면 무엇이 들어오기가 쉽습니까? 
세상 것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육적인 것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마귀적인 것이 들어오기가 쉽습니다.
그러면은 내 가슴 안에 차지하고 그것들이 왕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마귀의 종노릇하는 것이고 세상의 종노릇하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 종노릇하는 것이고 욕심에 종노릇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다른 것들이 들어오려고 하면은 문을 닫아 버리고 빗장을 달고 자물쇠까지 잠가서 못 들어오게 해야 되는데 우리는 육적인 것을 더 얻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요한복은 6장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고 예수님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는다고 영적인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라고 이렇게 우리 주님이 말씀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육적인 것이나 세상적인 것이나 마귀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삭개오 라고 하는 사람은 세리장이였습니다.
이 사람은 세리장이어서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키가 조그만해서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는데 예수님을 만나려고 뽕나무에 올라간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얻을 것을 다 얻었지만 이 사람의 속에서 영적인 것이 갈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니까 관심이 많아서 뽕나무에 올라가니까 예수님에게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뽕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겠다고 주님이 말씀을 합니다.

이 삭개오가 누구입니까? 잃어버린 자입니다. 물질에 잃어 버린 자가 삭개오입니다.
삭개오 물질을 많이 얻어도 항상 안이 비어있어 무엇인가 허전하였던 것 같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려고 뽕나무에 올라가서 삭개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네와 네 집에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그런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삭개오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주님을 만나려고 영적인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6절입니다.

“옛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어떠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세 번째는 과거를 버리고 선한 길로 걸어가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6절에 보면 옛문이라고 있습니다. 옛문은 모퉁이문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면 과거의 잘못은 다 버리고 올바른 길로 걸어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 것은 다 버려 버리고 옛날의 잘못한 것들은 다 버리고 이제 새롭게 바꿔져서 하나님이 원하는 길로 걸어가라고 하는 그 문이 옛문입니다. 이런 문을 세 번째 말씀 드리고 있는데 이런 문이 전부 10개나 있습니다. 그래서 요야다와 므술람이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여기도 똑같이 들보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세울 때 말씀의 들보를 얻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문짝을 달았습니다. 
문짝은 들어오고 못 들어오게 한 것을 막으려고 허락한 것만 들어오고 들어오지 말아야 할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또 문짝을 달고 여기에도 똑같이 자물쇠를 달고 빗장을 갖추었다고 그랬습니다.
얼마나 이 문이 중요한 것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이 문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 문을 재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7절에 보면 기브온 사람 믈리댜 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또 야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유력한 지도자들로서 또 자기의 관할 구역을 중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이 중수했다. 이 금장색은 금세공업자를 말합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입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도 했고 그 다음 향품 장사 하냐냐도 중수했다.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중수했다는 것입니다.
향품 장사도 신분이 낮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분이 낮은 사람도 이렇게 했는데 5절에 보면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그랬습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일을 하지 않고 신분이 높은 사람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하며 옛문을 재건하는데 여러 사람들이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무너졌다고 하면 이렇게 재건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과정이 없는 좋은 결론은 절대 있지 못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세 번째가 옛문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추어서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려고 하면 옛날 것은 버리지 못하면 그 사람은 절대로 올바른 신앙 자세를 갖지 못합니다. 옛것을 빨리 버리고 많이 버리고 다 버리는 사람 그래서 이제는 선한 길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지실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되지 마옵시고 그 잔을 받겠다고 주님이 이야기를 하듯이 우리가 혹시라도 나의 옛것이 잘못되어 있다면 다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선한 길로 걸어가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올바른 자세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어떤 지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세상에 지위가 높다고요. 세상에 돈이 많다고요. 세상에 어떤 명예를 갖고 있다고요. 아닙니다. 이것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 지금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곱절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해야 되는데 안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신분이 낮아서 안 해도 될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신분이 높든 낮든 과거의 다 잘못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어가야 될 선한 길을 걸어가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부터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과거의 옛사람을 다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라고 이것이 올바른 신앙자세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난 과거는 다 뒤로 해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길로 걸어가는 믿음의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은 빌레몬의 종이였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의 집에서 무엇인가를 훔쳐서 도망을 갔는데 감옥에서 바울과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의 말씀을 들으면서 오네시모가 변화되기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 오네시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옛날에는 못 쓸 사람이였고 필요가 없는 사람이였지만 이제는 변화가 되어서 오네시모가 자기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바울이 복음 전하는 사역에 동참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라고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바로 이 빌레몬서입니다.

오네시모가 과거를 다 벗어 버리고 선한 길로 걸어가는 사람 이였듯이 우리도 마찬가지 과거의 잘못된 것 다 벗어 버리고 오네시모와 같이 선한 길로 걸어가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하고 올바른 신앙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옛것을 내려 놓느냐 얼마나 옛것을 다 버리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신앙이 성장을 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내 것을 다 버렸고 내 것을 놓은 사람은 신앙이 쭉쭉 자랍니다.
그러나 내 것을 놓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가 자기를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차지를 못하기 때문에 신앙이 자라질 않습니다.
그래서 나를 못 버리면 항상 불평이 있고 원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버리면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와 신앙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버리고 선한 길을 걸어가는 올바른 신앙 자세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어떠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첫 번째는 주님이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것을 기억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세 번째는 과거를 버리고 선한 길로 걸어가는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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