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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믿음의 가정 엿보기 (창 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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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가정 엿보기 (창 28:1-5)
 

5월은 계절의 여왕, 꽃의 계절이라고 부릅니다.  5월에 대표적인 꽃은 장미입니다.  그래서 14일은 '로즈 데이'(Rose day)라고 부릅니다.  장미(薔薇)는 여성의 심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즈 데이'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놓친 연인에게 프러포즈하는 좋은 기회라고 합니다.

5월의 꽃을 의미하는 '메이플라워(Mayflower)' 하면 무엇보다도 '메이플라워호'를 생각나게 합니다.  1620년 9월16일 영국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향한 메이플라워호는 102명을 태우고 모진 고난의 항해 끝에 같은 해 11월21일 신대륙에 도착합니다.  이 배에 올랐던 사람들은 당시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장장 5,440Km나 되는 긴 죽음의 항해를 시도합니다.  처음 출발한 사람은 102명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도중에 44명이나 죽었고 나머지 58명만이 도착합니다.  그러나 극심한 추위와 질병, 굶주림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추운 겨울동안 움막에서 추위를 피하다 봄이 왔을 때 잡초로 우거진 땅을 손이 부르트도록 개간하여 농사하여 그 해 가을에 수확을 얻었고, 추수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을 토대로 오늘날 위대한 미국역사의 초석을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넌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메이플라워'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신앙과 믿음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은 5월에 꽃과 장미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보다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믿음을 살피며 보냅니다.  특히 아름다운 가정을 살펴봅니다.  계속해서 믿음의 가정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엿보기 원합니다.

첫째는 축복의 생활화입니다.  

본문도 역시 이삭의 가정을 통해 주시는 교훈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여 모친상을 당한 이후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삭부부는 마침내 아이를 낳습니다.  쌍둥이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에서와 야곱이 그의 가정에 소중한 선물로 태어납니다.  먼저 태어난 에서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야곱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녀들이 다 같지가 않습니다.  열이면 열 모두 틀립니다.  심지어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쌍둥이도 같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자녀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성격이나 성향이나 기질과 은사에 따라 양육하고 돌봐야 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이들 자녀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가정에 어려움이 왔습니다.  동생 야곱이 형을 속여 아버지의 복을 빼앗은 것입니다.  에서는 분노를 칼을 갈았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고, 그 전에라도 큰 일이 생길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집에 보내기로 작정합니다.  본문은 바로 야곱이 고향을 떠나기 직전 아버지 이삭과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장면합니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돋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1절에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라고 문을 엽니다.  그리고 3-4절에 이렇게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의 믿음과 신앙을 엿보면서 발견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녀와 주변 사람을 축복하는 모습입니다.  이삭의 기록에서 어쩌면 축복을 빼면 남는 게 없을 만큼 그는 많은 축복을 합니다.  이미 야곱에게 길게 축복하고, 에서에게도 축복합니다.  그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본문에서 또 축복합니다.  축복하는 장면은 이삭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서도 발견하고, 이삭의 아들 야곱도 똑같이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축복의 모습입니다.  

족장들이 이처럼 자녀와 사람을 축복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축복의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축복의 권세를 알았고, 축복의 능력을 받았으며, 축복의 위대함을 체험했습니다.  부모의 축복이 자기에게 임했고, 또 자기의 축복이 자녀에게 임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신앙은 한마디로 축복하는 신앙입니다.  그 믿음과 신앙으로 이삭은 입을 열면 축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한 모든 내용대로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가 축복한대로 장래에 야곱은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6:27)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한대로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축복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면 축복이 임합니다.  저주하면 저주가 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축복한대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자녀들에게 축복해야 합니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다시 축복의 필요성을 믿고 자녀와 사람들을 축복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에 보면 축복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가사의 내용입니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는 너의 영혼/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너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이 노래를 마음으로, 영으로 부르며 자녀와 사람들을 축복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축복한 축복의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자녀를 향한 기대감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이삭은 먼 길을 떠나는 야곱에게 1-2절에서 이렇게 당부하며 권면합니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앞으로 결혼을 하되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여인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당부이면서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이고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27장 46절에서 리브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지금 부모는 먼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자녀의 장래와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의 야곱을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리지만 앞으로 어른이 되는 때에 일입니다.  지금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약삭빠른 모습을 보이지만 먼 장래에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고 민족과 신앙의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될 자녀를 보는 것입니다.  먼 장래를 생각하며 이렇게 권면하며 축복하며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에 평생 간직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아들이 성숙할 때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자녀보다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달라질 모습입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아들 야곱에 대한 그런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고 마침내 부모보다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바로 그 먼 장래를 생각하며 지금 기대감으로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기대감'을 갖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특히 지금 현재의 모습이 여러 상황으로 볼 때 좋지 않고, 부족해 보일 때에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기대감이 믿음이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하실 능력을 보면서 사는 것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은 현재만 머물지 않습니다.  믿음은 과거에 매이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장래를 보는 것입니다.  장래의 무한한 가능성과 기대감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현재를 보고 실망하거나 안주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놀랍게 달라지고 변할 꿈과 소망과 기대감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부족해 보이고, 연약하고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일입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역사를 이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지금 모습만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아닐 것 같은 것이 나중에 됩니다.  그런 기대감으로 자녀를 대하고,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자라는 아이가 앞으로 가문을 물론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세계와 열방을 향해, 특히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아이가 되는 기대감을 가지십시오.  기대감이 있을 때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  기대감이 있을 때 더 바르게 대하게 됩니다.  기대감이 있을 때 소망이 우리 가정을 이끌어 갑니다.  자녀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대한 기대감을 갖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달라지고 좋아질 것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어려운 환경과 여건에 있을 때 더욱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어려움이 끝이 아닙니다.  아무리 추락해도 날개가 있다면 다시 날아갑니다.  밑바닥을 치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입니다.  날마다 좋아지고,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좋아질 것을 믿고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런 믿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기대감을 가지십시오.  기대감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사람들을 보고, 기대감으로 환경을 극복해 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본문은 짧은 말씀인데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나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물론 야곱이 나오고, 아브라함도 언급되어 있고, 또한 브두엘과 라반이란 이름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가족으로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이삭을 중심으로 보면, 이삭과 리브가는 부부사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버지입니다.  야곱은 아들입니다.  브두엘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부친이고, 라반은 오라비입니다.  모두가 혈연관계인 사람들이고,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2절에 외조부 브두엘, 외삼촌 라반이라고 소개합니다.  

특히 5절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여기에서 성경은 야곱이 머물던 밧단아람과 라반을 소개하면서 그는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이 가족관계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유기적 관계, 유기적공동체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유기적'이란 말은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떼어 낼 수 없는, 또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가족공동체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가족은 뗄 수 없는 관계,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것을 먼저 깊이 인식하고 알아야 가정을 더욱 섬기고 온전하게 세워 갈 수 있습니다.  가족은 뗄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떨어지지 않고, 부모와 자녀를 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떨어트리려고 해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운명적 관계라고 말하고, 우리는 이것을 필연적 관계라고 말합니다.

가족은 떨어지지 않는데 우리는 마치 떨어지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평생 안볼 것처럼 말하고, 원수처럼 미워합니다.  가족은 안본다고 안보는 것입니다.  멀리한다고 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때론 너무 야속하고 속상해도 결코 원수가 아닙니다.  그래서 가족은 애초부터 태도를 바꾸어 접근해야 합니다.  뗄 수가 없다면 가까이해야 하고, 못 볼 사람이 아니면 더 사랑하고 품고 이해해야 합니다.  가정의 회복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상처받고 깨어지는 모든 가정에 유기적 관계, 뗄 수 없는 관계임을 확인한다면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이런 삶의 근본과 신앙의 본질을 붙잡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유기적 관계는 가족만이 아닙니다.  바로 교회공동체가 그런 것입니다.  교회는 유기적 관계로 맺어진 불가분의 관계, 뗄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가족 같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필연 속에 만났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곳에 머물러 믿음생활을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2:19)  여기 주목할 말은  ‘하나님의 권속’ 이란 말입니다.  권속이란 가족, 식구를 의미합니다.  

원래 이 말은 유대인이 택함 받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임을 자랑삼아 사용하던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십자가의 은혜로 말마임아 육체적인 혈통을 뛰어넘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공통점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이 가족이 됩니다.  예수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받고 교회에 다니면 우리는 가족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불가분의 관계, 유기적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가족이 뗄 수 없듯이 하나님의 가족도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가정의 달에 우리 가정만이 아니라 교회가족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지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지체를 돌보아야 합니다.  여리고 약한 지체를 온전히 세워야 합니다.  부족한 지체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세대와 자녀를 마음껏 축복하고 기도하며 섬겨야 합니다.

축복의 생활화, 자녀를 향한 기대감, 그리고 유기적인 관계가 바로 믿음의 가정을 통해 배우는 교훈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가족과 교회공동체를 향한 신실한 섬김을 다짐하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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