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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로 와서 마셔라 (요 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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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와서 마셔라 (요 7:37-39)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는, 총을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겨서 자살했다. 그는 남들보다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생의 허무를 느꼈기에 자살했다. 그렇다면 왜 인생에 허무함을 느낄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없이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뻥 뚫린 가슴을 가지고 있다. 이 뻥 뚫린 가슴을 채우기 위해, 어떤 사람은 이성으로 밥으로, 술로, 돈으로, 쾌락으로, 참선과, 종교의식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오직 하나님만 채울 수 있다. 헤밍웨이는 갈증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교회를 다녀도 마음이 허전하고, 광야에 외로운 한 마리 낙타처럼, 고독함을 느낌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는, 과학은 발전하는데, 정신은 반대로 점점 후퇴하고 있다. 불안을 느낀 영혼들은, 점쟁이를 찾는다. 또한 술, 도박, 마약을 찾게 된다. 이는 우리 영혼에 깊은 목마름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런 꼴이 된 이유는, 교회의 책임이라고 한다. 

우리가 참된 예배의 능력을 잃어버린 결과,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형식적으로 예배한 결과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도 우리와 똑같이, 예배의 생명력을 잃어버렸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그때 보헤미야에서 시작된, 모라비아 교회 역사를 보면, 성령이 교회에 강력하게 임하셨다.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 차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죽어서 천국에 올라간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그 후 100년 동안, 이런 기쁨은 모라비아 교회가 지닌, 특징이 되었다. 

그들은 기쁨을 얻기 위해, 세상의 이런저런 방법들을 동원하여, 노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기쁨은, 내부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기쁨이 그 곳에서 마치 샘물처럼 솟아나게 된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구약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1.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 했는데, 이 명절은 (2) 초막절(    )을 말한다. 초막절은 유대인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음을, 기념하는 절기다. 

초막절은 1년 중 마지막 절기다. 가을에 지키는 절기다. 장막절, 수장절이라도 한다. 유대력으로는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지키는 절기다. 8일째는 "큰 날"로 지켰다. 이 날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는 날이므로, 대회라고 한다(레23:36, 39).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가서, 초막(장막)을 치고, 7일 동안 있게된다. 부모님과 함께 초막을 짓고, 1주일 동안 초막에서 먹고 자는 경험은, 현대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초막은 누워서 지붕을 볼 때, 최소한 3개 이상의 별이 보이도록 지어야 한다. 

8일째가 되는 명절 마지막 날에는, 제사장은 성전 뜰에서, 독특한 행사를 한다. 
(1) 단비를 구한다. 초막절을 지키다 8일이 되면, 제사장을 선두로 해서 금주전자를 들고, 성전에서 실로암 못으로 가서, 거기서 물을 채운다. 그때 수많은 순례자들과 나팔 연주자들이, 뒤를 따라간다. 

나팔과 심벌의 요란한 소리…, 사람들은 감격하여 흥분해 있기에, 주님은 목소리를 높여 말씀했다. 제사장은 '실로암 못'에서 금주전자에 물을 담아, 수문을 지나 다시 성전으로 들어와, 성전 번제단 위에, 물과 포도주와 함께 붓는 헌주식, 곧 관제 의식을 행하며, 비가 오기를 간구한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헌주식을 행할 때, 백성들은 (사12:2-3) 노래를 부르면서 성전으로 온다. (힌네 엘 예수아티 엡타흐 브로 에프하드, 키 아지 브지므라트 야흐 아도나이 바예히 리 리수아)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라. 그러므로 내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2) 번제단 남쪽에 버드나무 가지를 세우고, 기도문을 낭송하는데, 이 버드나무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모짜'라는 마을의 시냇가에서 꺾어 온 것들을 사용했다. 매일 모짜에서 꺾어 온 새로운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했다. 버드나무를 세워놓고, 순례자들은 (시118:25)의 기도문을 낭송한다. 

( 나 아도나이 호쉬아 나, 아나 아도나이 하쯜리하 나 )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바로 '구원하소서'가 호시아 나, 호산나이다. 

매일 제단 남쪽에 세워진, 버드나무 가리키는 별칭이 호산나다. 물이 없어 절규하는 버드나무를 호산나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물의 근원인 시냇가에서 꺾여져 나와, 번제단 옆에서, 말라 비틀어져 가는 버드나무를 보면서, 구원을 갈구하는 '호산나'의 외침을 들었다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는 (      아르몬)인데,    (아람, 교활하다, 허물을 벗다)는 말에서 나왔다. 버드나무는 인간을 상징한다. 그래서 뱀처럼 교활하여 허물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인생을 말한다. 버드나무처럼,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 이스라엘 광야다. 

그래서 실로암 연못에서 떠온 생수를 제단 위에 붓고, 말라 비틀어져 가는 버드나무가지 주위를 평소에는 한번씩 돌지만, 마지막 날에는 7번씩 돌면서, 다음 해의 풍년을 구했다. 원래 성전 제사장 뜰은, 제사장 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이날만큼은 모든 이스라엘 순례자들에게 개방되었다.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왔다. 실로암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요9:7).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분이다. 그래서 (요9장)에, 소경에게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셨다. 실로암에서 눈을 씻은 맹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성령을 이미 받았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님은 선물을 주신다. 그 선물을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다. 이 생수의 강을 성령이라고 말씀한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피곤하고, 짜증이 나는가? 문제는 간단하다.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생수의 강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강줄기만 남아 있고, 물이 다 말라서, 강바닥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 충만으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2.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은 (출17: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말씀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악한 행동이요, 곧 저주와 죽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쳐서, 죽이시는 대신, 한 바위를 치게 하셨다. 그리고 그 바위 위에 서서 계신 주님이 대신 맞으시고, 모두를 살리는 생수가 반석에서 흘러나왔다. 광야의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온 물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나님은 불신앙으로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대신에, 한 바위를 치셨는데, 이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심판을 말한다. 

광야에서 사람들은 물이 없어, 갈증을 느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서, 반석을 치게 하시고, 그 반석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와, 강이 되었다. 이 물은 광야 40년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녔다. 요한 복음을 보면, 구약의 내용과 예수님과 연결시키는 부분이 많다. 

(요1:29)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유월절의 어린양'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다. 군병들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으로 찔렀다. 

(요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거기서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 예수님의 물과 피가,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였다. (요1:51)절에 보면, 야곱이 자기의 형님의 낯을 피해서, 외삼촌댁으로 가다가, 밤에 잠을 자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보였다. 

이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요1:51)를 보면, 이 사닥다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놋뱀을 본 자마다 산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본 자마다 살리라 말씀하셨다. 

광야에서 높이 들린 놋뱀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준다. (6장에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5,000명을 먹이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또 빵을 얻으려고 찾아왔다. 

그때 예수님은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이것을 보면 광야에서 주신 만나가,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참 생명을 주실 것을 미리 내다보고 하신 말씀이다. 

이와 같이 (요7:37-39)에 나오는 말씀도, 광야의 반석에서 물이 터진 사건과 그리스도가 연결되어 있다. (겔47장)을 보면, 이상한 말씀이 나온다. 에스겔 시대에는, 이미 보이는 성전이 다 무너졌다. 보이는 이스라엘 나라는 허물어지고, 다 망해 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다. 하나님 나라가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성전이 회복될 것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에스겔이 자세히 보니까, 성전 동편에 돌 틈바구니 속에서, (돌로 성전을 지었으니까) 물이 나오고 있었다. 

(겔47: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성전에서 나온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 

(요2장)을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구한다. 그때 예수님은 (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21)을 보면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성전이라고 했다.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살리는 물이 흘러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본문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다는 말은, 오순절 역사가 일어나기 전이었다는 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고, 높임 받게 된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을 올바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행2:32-33)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오시며, 그리스도가 높아지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높이 달려, 살을 찢고, 피 흘리고,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을 남김없이, 다 쏟아 부으시고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이렇게 완성하신 구원을, 이제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심령 속에 적용시켜주신다.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다(36). 

"나는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구제 불능의 인간이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성령이 그 심령에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십자가와 부활을 근거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삶에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이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이다. 생명수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를 씻고, 성령의 강물이 흘러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군중 

그런데 초막절 행사를 하러 온 사람들은, 초막절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초막절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충분히 알려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지금 이들이 무엇 때문에, 초막절 행사를 하러 왔는가? 종교적인 갈증 때문에 올라왔다. 행사의 주인공이 되신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행사를 통해, 환희와 흥분, 감격 속에서 있으면서도, 그 행사의 주인공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았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모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심령에 만족이 없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도, 찬송할 때도, 얘들을 가르칠 때도, 설교를 들을 때에도, 우리의 시야는 언제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을 바라볼 때, 생수의 강물이 흘러 넘친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만족함이 있다. 갈증이 해결된다. 허전한 마음이 충만해진다. 그러나 초막절 행사에 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해서, 수군거림이 많았다(12). 예수님을 좋은 분으로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무리를 미혹하는 자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12). 

(15) '배우지 못한 자'라고 말고, (20)은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 (41, 52)에는 갈릴리 출신 시골뜨기라고 했다. 초막절 행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초막절 행사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이렇게 몰라보았다. 성령의 역사가 없기에, 주님을 알지 못했고, 주님을 높일 수 없었다. 

초막절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행사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답답하신다. 그래서 (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갈증'을 느끼며 살고 있다. 왜 비행청소년들이 일어나는가? 헤밍웨이처럼 자살하는 자들이 왜 생기는가? 목말라하기 때문이다. 도박으로, 섹스로, 마약으로, 물질로, 지위로, 종교의식으로…, 이러한 것으로는, 절대 충족되지 않는다.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물이 펑펑 터져 나온, 생수의 근원 되신,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우리의 심령의 깊은 갈증은, 해갈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목마를 때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갈증을 풀려고 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란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자. 찬양하자. 그러면 생수의 강물이 흘러 넘치는 것을 체험하기 바란다. (요8장)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는 무리를 행해, (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다. 

당장 돌로 쳐죽일 것처럼 자들이, 하나씩 돌을 놓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떠나갔다(9). 왜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나? 초막절 마지막 날,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다음날 붙잡혔을 때,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찬양했기에,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알게 된다. 오순절은 성령은,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 주님을 알고 구원받도록 만든 사건이다. 

결론이다. 오늘은 성령이 이 땅에 강림하신 오순절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게 된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속주요, 심판주요, 절대자이시다. 이 실체는 오직 성령 안에서, 거듭난 복된 성도들만이 알 수 있다. 

주님은 이 땅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성령은 이 일을 우리가 깨닫고, 믿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성령이 임하시면, 주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알고 높이게 된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목마른 영혼이 된다. 영적으로 눈 먼 소경이 되어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성령이 역사하면, 선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게 된다. 예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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