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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의 힘 (잠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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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 (잠 15:1-4)
   

노란 나비와 흰나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노란 나비에게는 참 좋은 일만 일어나고 흰 나비에게는 늘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란 나비는 늘 기뻐했고 흰 나비는 늘 우울했습니다. 하루는 어려운 나비들을 많이 도운 호랑나비가 훌륭한 봉사 정신을 가졌다고 인정받아 나비들을 대표해서 표창장과 상금을 받았습니다. 노란 나비는 그렇게 훌륭한 나비가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흰나비는 자신보다 못한 것 같은 호랑나비가 상을 받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며칠 간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나비들은 모두 집에 갇혀 지내며 햇빛이 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 비가 그치고 나비들은 모두 밖으로 몰려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나비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흰나비는 ‘습기가 너무 차서 벽이 다 썩고 퀴퀴해서 못살겠어. 웬 비가 그리도 많이 내린담’ 하고 불평스럽게 말했습니다. 노란 나비는 ‘그래도 이번 비에 비설거지도 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꽃들 좀 봐, 키가 껑충 날씬하게 커졌잖아’ 하고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김인경 씨가 쓴 ‘지치고 힘들 때 읽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비오는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좋을 일도 될 수 있고 나쁜 일도 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 중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주변 사람과 사건을 평가하는 말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늘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항상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는 우리 인간은 하루에 5만에서 6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 많은 생각 중에 7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25%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잘 관리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며 누구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은 오래 할 수 있지만 긍정적인 말은 오래 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비난하면서는 밤을 샐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서는 밤을 샐 수가 없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려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하고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면 삶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의 결과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 있습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13장에 나오는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12명의 정탐꾼을 선출해서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게 했습니다.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보고했습니다. 12명 중에 10명은 정탐한 땅에 대해 악평했습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인들인데 자신들은 그들에게 비교하면 메뚜기와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부정적인 말은 회중들에게 대단히 커다란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그 반응이 민수기 14장 1절-5절에 나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모두를 절망하게 만들었고, 원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회중들만 낙심하게 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조차도 낙심하게 했습니다. 지도자들 조차도 힘과 의욕을 잃게 했습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절망하는 회중들을 향해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온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거주민들이 거인들이지만 그들은 우리의 밥이 될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회중들 중에 어느 누구도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10절에 보면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했다’고 말합니다. 

부정적인 말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부정적인 말을 한 10명의 정탐꾼과 그 말에 함께 부정적인 말을 이어갔던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말은 단순한 말로 끝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결과를 낳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말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 말을 듣고 함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조차도 고통과 절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줍니다.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유고의 작은 시골 마을 천주교 성단에서 신부가 미사를 집례할 때에 수종드는 아이가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가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집례하는 신부가 그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다시는 제단에 나타나지 말아라’ 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 아이가 켜서 공산주의자가 되어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 된 무신론자 티토입니다. 비슷한 일이 다른 성당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신부가 미사를 집례하였는데 수종드는 아이가 또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를 엎질렀습니다. 그 신부는 당황해 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커서 훌륭한 신부가 되겠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커서 정말로 유명한 신부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유명한 책을 쓴 홀톤 쉰 신부입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말이 씨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말하는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장면을 보면 말의 힘과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의 말씀이 반복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그래도 되니라. 물고기와 풀과 씨를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의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물고기와 짐승, 하늘을 나는 새를 말씀을 명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나무들, 짐승을, 새를 만드실 때 하나님의 마음에 이미지를 그리시며 말씀으로 그 형상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미지를 그리며 말씀하시니 그 이미지가 그대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생각하시는 바를 말씀하시니, 마음에 품으신 뜻을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마음에 담고 있는 뜻,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을 말로 표현할 때 결국 그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대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의 힘입니다.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이라도 찾아보면 그 안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닷물이 썩지 않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 수 있는 것은 바닷물에 포함된 3%도 채 되지 않는 소금 성분 때문입니다. 사람은 16세까지 자신에 관해 17만 3천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듣는 반면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대로 방치해 두면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말을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의 행복은 부정적인 마음과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을 하며 사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노 안에는 대단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드러운 말은 그 대단한 에너지보다 더 크다는 말입니다. 

어떤 여자 분이 남편한테 맞아 눈이 시퍼래져서 교회에 왔더랍니다. 목사님을 만나서 남편 욕을 한참 하더니만 ‘목사님, 이혼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그 때 목사님이 ‘한마디만 물어 봅시다. 남편이 치기 전에 당신은 뭐라고 했습니까?’ 물었더니 ‘아이구, 그래도 사내라고 자존심은 있어서….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네가 해 준 것이 뭐야? 때려 봐, 때려 봐! 죽여! 그랬지요.’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구먼. 죽이라고 했는데 몇 대 때리고 말았으니.’ 

‘과격한 말은 분노를 격동시키느니라’ 바로 이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잘못 된 말은 매를 법니다. 무식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폭력적인 언사 또한 힘의 폭력 못지않은 폭력입니다. 과격한 말은 분노를 만들어 내지만 유순한 말은 도리어 분노를 쉬게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 라고 말합니다. 즉 온순한 말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힘입니다. 사람들은 먹는 음식을 통해서 영향분을 공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음식을 통해서 영향분을 공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상처와 아픔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들려주는 말에 있습니다. 말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는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지구상에서 매일 밤 배고픈 채로 잠드는 사람이 30억입니다. 그러나 40억의 인구가 칭찬과 인정과 부드러운 말을 갈망하며 잠에 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자녀들이 밤에 밥 안 먹고 자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우리의 자녀들이 따뜻한 말 한 마디 못 듣고 자는 것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한 끼의 밥 보다도 아이들을 따뜻한 부모의 격려의 말 한 마디를 더 갈망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수고했습니다. 힘들었지요. 사랑합니다. 힘 내세요’ 라는 말은 남편과 아내의 마음에 쌓여 있는 스트레스와 아픔을 씻어주는 최고의 영양제입니다. 어떤 좋은 음식과 영양제와도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줄잡아 2만 5천 내지 3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말을 쏟아 놓는지 모릅니다. 말을 하고 나면 말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말이 사라지지 않고 남습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 남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은 오래 갑니다. 그리고 말은 무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해인 시인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우리가 내 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목회를 위해 서울로 올라올 때 마음의 나무에 달아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서전도사, 너는 목회를 잘 할 거야’라는 말씀입니다. 힘들 때마다 ‘서전도사, 너는 목회를 잘할 거야’라는 말씀을 생명의 언어입니다. 그 말이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고 목회에 힘을 더하는 생명의 언어입니다. 우리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나무에 달린 생명의 언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는 한 주간도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사회에서 이웃들에게, 교회에서 믿음의 식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생명의 말을 사용하며 사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수고했습니다. 좋습니다. 사랑합니다.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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