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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혜사이신 성령 (요 14:16-18,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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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이신 성령 (요 14:16-18, 25-26)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만큼 만남이란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출산 후 어린아이를 처음 교회로 데려나왔을 때 목사에게로 데려오는 것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목사는 영혼의 인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때 목사는 이렇게 기도한다. 

‘이 아이의 평생에 좋은 만남이 있게 하옵소서.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배우자, 좋은 목자를 만나게 하소서!’

좋은 목자와 좋은 스승을 만나면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 학교 앞에 프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000 교수님 감사합니다.’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스승이라면 그분은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여러분의 오늘이 있기까지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준 스승을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스승이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늘 여러분에게 정말 좋은 스승을 소개하고자 한다. 만일 오늘 설교 말씀을 듣고 그분을 나의 인생에 스승으로 모신다면 그 인생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은 누구신가? 오늘 말씀의 제목인 ‘보혜사이신 성령’이시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保惠師)란 단어의 의미는 말 그대로,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이란 뜻이다. 종합적으로 표현한다면 ‘돕는 자’(helper), 곧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도록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이란 뜻이다. 

그런데 16절의 말씀을 보면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기존해 계신 보혜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누구인가? 지금 말씀하고 계신 예수님이 보혜사이시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이제 제자들과 이별해야 하는 시각이 닥아오고 있었다. 제자들은 그 이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기에 불안해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의 보혜사가 되어 주셨다.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제자들과 헤어져야만 하셨다. 그래서 바로 그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다른 보혜사’를 약속하셨던 것이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러니까 예수님을 대신할 보혜사, 곧 성령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대신하여 오실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어떤 분이시며 또한 어떤 역할을 하실 것인가? 

일반적으로 성령님에 대하여 많은 오해가 있음을 보게 된다. 성령하면, 방언, 예언, 신유 아니면 불같은 뜨거움, 활동적인 봉사등을 연상하게 된다. 물론 이런 이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성령의 존재나 사역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성령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하여 좀 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다. 

1.진리의 영이시다.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영’이란 말의 의미는, ‘진리를 전달하는 영’ 또는 ‘진리를 밝히는 영’이란 뜻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성경 진리는 교훈집은 될 수 있어도 생명을 살리는 진리는 될 수가 없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구원에 이를 수도 없다. 

그래서 16절에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요3장, 니고데모는 바리새인+관원+유대인의 선생이었으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없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인도자시오,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영이시다. 신자들의 위대한 스승 보혜사이시다. 

2.우리와 함께 하시며 내주하시는 분이시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본문 16-17절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삼중적으로 내주하심을 알 수 있다.
1)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16절하)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이에 오가는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며, 당신을 영원히 지켜 줄 께.. .”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겁 없이 마구 해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KBS 방송문화연구소에서 최근 기혼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당신은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배우자와 결혼하겠습니까?’ 남자는 47%, 여자는 72%가 ‘아니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의 약속은 영원하지 못하다. 

그러나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 성도가 인간적인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중단되지 않을 것임에 대한 보증이다. “영원”이란 단어는 인간이 함부로 쓸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신적성품을 나타내는 언어이다.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2)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17절하)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세상 길로 나가려 하면 붙잡으시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시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훈련시키시며 영적인 성숙함에 이르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3)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 안에 깊은 상처와 죄스러운 부분까지도 계속적으로 치료하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쳐서 쓰러지고 낙심할 때 우리의 속사정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주시는 위로자요 치료자이시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결코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신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3.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

요 14:25-26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찬송가 453장, 
성령이 스승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

행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안디옥 교회 선교사 세우는 일.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 1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2)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사람의 기억력 24시간이 지나면 80% 이상 잊어버린다.
예)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의 기억력 - 성령의 생각나게 하시는 감동의 역사.

눅24장,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슬픈 기색.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 

실패의 원인 -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둔감하거나 성령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진리를 떠난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고.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진리만 고집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 가르쳐 주세요, 성령님 생각나게 해 주세요.’ 성령님을 우리의 스승으로 삼을 때 우리는 험한 세상 가운데서 표류하지 않고 영원한 포구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혜사 성령을 우리의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가?

1)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인식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성령님의 충만을 사모함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3)거룩한 삶을 위한 결단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의 스승으로 모셔들이기 바란다. 그분은 결코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그분을 스승으로 모실 때 나의 삶이 열리며 영광스럽고 복된 인생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오늘 특별히 교사 주일을 맞아 교사 여러분들에게 권면한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지식만 전하는 교사가 아니라 아비와 같은 어미와 같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교사가 되길 바란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입으로만 전하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으로 전하면 우리 어린 심령들의 마음이 변화될 것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아무 것도 씌어지지 않은 백지에 무엇을 그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노인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이미 잔뜩 씌어진 종이에 여백을 찾아서 써넣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훗날 여러분의 제자들이 여러분을 기억하고 감사할 것이다. 교회도 여러분의 섬김에 적극 지원하며 기도할 것이다. 

부모님들에게 권면한다.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의존하기 전에 먼저 부모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먼저 자녀들의 영혼을 위하여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되길 바란다. 일주일 단 한 번만이라도 자녀들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읽기 바란다. 

예)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스잔나 여사, 19명의 자녀를 양육한 교사였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자녀들과 일대일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의 위대한 교사가 되신 보혜사 성령,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위대한 교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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