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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즐겁게 해 드려야 할 부모 (잠 23: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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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즐겁게 해 드려야 할 부모 (잠 23:15-26)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9.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20.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근본에 무엇에 기초를 두고 서 있어야 합니까? 항간에 할아버지들이 젊은이들이 자리를 안내주면 소리를 지르고 자리 내놓으라고 그랬다는 얘기가 간혹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민주주의도덕에 기초는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습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는 것이 민주주의도덕 기초입니다만 이것만 가지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인간의 윤리를 위해 동시에 예('禮)'가 있어야 하는데 위의 경우 ‘예의’ 라는 것은 강요하거나 상대방이 요구해서 성립되는 진정한 예의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리 안내준 젊은이들을 두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남을 망각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입니다. '인간'이라고 할 가치도 없습니다. 인간(人間)이란 한문이 알려주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데 남은 없고 나만 있으면 인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진해서 예('禮)를 수행하는 것이 진정한 '예'이고 도덕인 셈입니다.

즉, 남도 숭고하게 하고 나도 숭고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도덕입니다.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예의와 범절이 있는 사상 중 으뜸인 ‘충효사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황폐해진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 국가에 충성,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예의를 아는 인간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나, 자신보다 처지가 곤란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돕고자 노력하는 것은 누구에게 배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본성 적으로 선(善)을 향한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문제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양심과 예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보다 겸손하고 교양 있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윤리와 도덕에 기초를 둔 인간의 도리를 행해야 마땅한데 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서 오늘은 효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공자는 소학에서 ‘효는 인격의 중심’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랜 세월을 유교의 지배 아래 있던 우리 사회에서 효는 한 개인의 인격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 사람들은 비록 자기는 효와 거리가 멀게 살면서도 다른 사람이 불효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저절로 비판을 하게 되고, 자기가 효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부끄러워합니다.

자기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도 누군가 효도해 타의 귀감이 되는 것을 볼 때는 기뻐하고, 자랑하고 싶어 하고, 부러워합니다. 이것이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심성이요, 문화입니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계명도 지켜야 하지만 무엇보다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인 효도에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대부분의 은혜를 부모님을 통하여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를 고통 가운데 나셨으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나를 기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약속을 하셨으니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느껴보지만 부모노릇 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자식 노릇 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다 알면서도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늘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야 하지만 아울러 부모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드릴까를 생각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항상 기쁨을 선물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며 즐겁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1. 지혜([智慧/知慧]롭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15절 말씀,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지혜”란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지혜롭게 행동하면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대견스럽게 보입니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23절 말씀 봅시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이 말씀을 보면 “진리를 사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사라”고 했습니다. “사라”는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돈 주고라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판다는 것은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팔아버린다면 비 진리의 지배를 받게 되고 지혜를 팔아버린다면 우둔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24절 말씀도 봅시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지혜로운 자식과 의인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으로 인해 영광을 받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식 때문에 치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지혜로운 자식을 낳는 부모는 그로 인하여 즐거움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10:1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이런 지혜로운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도시 처녀가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다를 좋아하던 옆집 아주머니가 그 집 시어머니에게 와서 이렇게 귀 뜸을 해주었습니다. 

“요즘 도시 아가씨들은 위아래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대요. 시어머니가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우습게 안답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잘 휘어잡으세요. 알았죠?”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아침이면 신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에서 많이 배운 며느리에게 지고 싶지가 않아서 궁리 끝에 신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조용히 보는 것이 아니라 신문을 들고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고, 나쁜 놈들. 이런 놈들이 많으니 세상이 이 꼴이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며느리는 자기 시어머니의 지식에 감탄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 이상하다. 우리 어머니는 까막눈이신데?” 시어머니는 문맹이라 글자를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기선을 잡으려고 며느리 앞에서 유식한 체를 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시어머니가 또 다시 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다가가서 슬쩍 물었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무슨 기사가 나왔습니까?” 그 때도 시어머니가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글쎄 이놈들이 대낮에 몽둥이를 들고 행패를 부리고 있지 않나? 백주 대낮에 이런 죽일 놈들 봤나?”

시어머니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하자 며느리가 궁금해서 그 기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야구선수가 방망이를 들고 서 있는 사진이 실린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모르는 시어머니는 그 야구선수를 깡패로 알고 욕을 했던 것입니다.

며느리가 얼마나 웃음이 나왔겠습니까? 그런데 이 며느리가 훌륭한 여자였습니다. 웃음을 꾹 참았습니다. 시어머니를 비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서 시어머니보다 더 화를 내면서 장단을 맞췄습니다. 

“이런 못된 것들 같으니라고. 이런 깡패들이 있어서 이 사회가 어지러운 거예요”남들이 보면 배꼽을 잡을 일이지만 얼마나 훌륭한 며느리입니까? 얼마나 지혜로운 며느리입니까? 

룻기 1:16절 말씀에 보면,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굽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 해답을 잠언 9:10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잠언3:14-15절에 보면,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했고,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양자택일의 심각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효를 버리고, 서구와 같이 가정 붕괴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효를 지킴으로써, 무너져 가는 가정을 일으켜 세워 인류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 대답은 분명합니다. 효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효를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홍수가 나서 범람하고 있는데, 둑을 쌓아 막겠다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현대과학의 발달과 기능 중심의 사회가 빠르게 모든 권위주의를 해체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위기에 처한 효를 지켜낼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효는 윤리나 도덕적 차원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효를 ‘신앙적인 차원으로 지켜가야 합니다. ’효를 신앙적인 차원으로 지킨다는 말은 첫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믿고,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18절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 되도다” 따라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4:6절에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하나님을 잘 경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자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정직[正直-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자식이 정직하면 부모의 마음이 기쁩니다. 우리 집 가훈 중의 하나가 ‘정직하게 살아라’입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우선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도 정직한 성도를 좋아하십니다. 

카네기가 13세때 스코틀랜드에 살던 그의 어머니는 기회의 땅 미국으로 이민을 오라는 숙모의 편지를 받고 미국행을 결심합니다. 재산을 다 팔았지만 20프랑의 돈이 부족하여 어머니는 친구인 핸더슨 부인에게 가서 사실을 말했습니다.

언제 갚을지는 모르지만 꼭 갚을게. 빌려줄 수 있겠니? 어머니의 친구는 빌려주었고 카네기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는 미국에서 삯바느질과 파출부일을 하여 돈을 모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밖에서 돌아온 아들 카네기의 손을 잡고 기뻐하면서 애야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다. 아마 내 생애에 최고로 기쁜 날인 것 같다.

엄마! 뭐가 그리 기뻐요? 

핸더슨 부인에게 빌린 20프랑을 오늘에야 다 갚았다. 너는 앞으로 핸더슨 부인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라. 그때 카네기는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정직한 분이시고 어머니는 감사를 아시는 분이시구나! 정직과 감사 이 두가지가 카네기의 성공비결이었다고 합니다.

역대상 29:17절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이 말씀은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하여 헌금을 하고서 백성들도 자원하여 헌금한 것을 두고 감사의 기도내용입니다. 다윗은 정직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즐겁게 드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정직해야 합니다. 십일조도 정직하게 드려야 합니다. 정직하지 못할 때는 십일조라고 쓰기 보다는 작정헌금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헌금을 드리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에 찔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할 때도 부모님이 보실 때 우리가 얼마나 정직한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위선한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를 다 아십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무고하신지요? 집안도 평안 하지요? 자꾸 돈을 부쳐달라고 편지를 써서 죄송합니다. 또 100만원을 부탁하는 제 마음은 참으로 부끄럽고 아프기까지 합니다. 고향을 향해 무릎 꿇어 용서를 빕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난 다음에 생각이 나서 덧붙여 쓰는 글을 ‘추신’이라고 합니다. 

추신 : 편지를 보내놓고, 너무 마음에 걸려 우체부를 쫓아갔습니다. 편지를 빼앗아 태우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정말 다시 회수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어 우체부를 놓쳐 버렸습니다. 제 불찰을 용서 하십시오.

이 편지를 받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답장 편지를 썼습니다. “아들아. 너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나 보다. 네 편지를 못 받았다. 그러니 잘 지내라.” 

신명기 6:18-19절 말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우리는 일상생활 할 때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부모님도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3. 일락(逸樂, 편안히 놀기를 즐김. 또는 쾌락을 즐겨 멋대로 놂)을 멀리해야 합니다. 

본문 20-21절 말씀,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성경은 또한 부모에게 대하여 불량한 자녀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 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고 책망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까지 방탕한 삶을 사는 자는 큰 불효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런 자식이 있으면 장로들에게 맡겨서라도 올바르게 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술에 잠긴 자로서 방탕하다고 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자녀들이 두려워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실한 삶을 살아야 효도가 됩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량자로 교회 안에서 악한 일을 저지르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에 나가 비참하게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올빼미를 매우 혐오하는 동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이 새는 부엉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몸길이 38cm, 날개길이 35cm, 꽁지길이  22-26cm 정도의 체형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굴은 둥글고  눈가에는 털이 방사형으로 나 있는데 등과 배는 회백색  바탕에 갈색의 세로 반점이 무수하고 다리에도 털이 밀집해 있습니다. 이 녀석들, 낮엔  태산도 보지 못하나 밤에는 사람이 물체를 분별할 수 있는 빛의 100분의 1만 되어도 능히 한 오라기의 실낱까지 놓치지 않고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눈이 밝습니다. 즉 밝은 면으론 장님인데 어둠 즉 부정적인 세계에서는 세상 그 누구도 추종하지 못할  만큼 눈이 밝고, 큰 것은 못 보는 대신 작은  것은 신기하게도 잘 보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이러한 올빼미를 증오한 까닭이 있습니다. 올빼미는 어려선 제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는데  일단 장성하면 그 어미를 잡아먹는 불효하는 새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새를 보기만 하면 모조리 잡아 죽였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그 사체를 모든 사람 앞에 전시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도 부모에게 못된 죄를 범한 사람은 죽여서 머리를 만인 앞에 전시하는 형을 집행하였는데 이를 효수, 즉 "올빼미 머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경 잠언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 30:17) 

‘불효하는 자는 짐승에게조차도 조롱 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1:6절에 보면 장로를 세울 때에는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장로님이거나 항존직일 경우 자녀들은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방탕한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적어도 효도를 하는 자녀가 되려면 부모님의 신앙에 걸림이 되거나 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4. 부모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본문 22절 말씀,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부모님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부모님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가 ‘대화가 안된다’고 피잔 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특히 요즘 자녀들이 어머니를 아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그래도 어느 정도 듣는데 어머니의 말씀을 오히려 무시하거나 아주 업신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김치를 담아서 가지고 아들 집에 갔습니다. 아파트 문이 열려 있기에 조용히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아들 무릎에 누워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기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물론 당신이지.”
“다음은?”
“우리 아이들”
“세 번째는?”
“장인, 장모님”
“네 번째는?”
“우리 집 강아지”
그러다가 시어머니가 마지막 다섯 번째로 겨우 턱걸이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김치를 경비실에 맡겨 두고 이런 메모를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1번아 잘 먹어라. 5번이 두고 간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아들 집에 다니러 갔다가 며칠 묵는 동안에 집안의 상황을 살펴보니 구성원 중에 순위가 있더랍니다. 그 집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손자이고, 두 번째는 며느리고, 세 번째가 가장인 아들, 네 번째는 애완용 개, 다섯 번째는 식모이고, 자신은 마지막 여섯 번째인 것을 느끼셨답니다. 그래서 가장인 아들에게 집을 떠나가면서

“3등 애비야, 잘 있거라. 6등은 간다” 하면서 집을 나오셨답니다.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부모님이 몇 번째 입니까? 에베소서6:1-3절 말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골로새서 3:20절 말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부모님을 즐겁게 기쁘게 해드리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습니다. 이유를 달지 마세요.

‘어머님, 모르면 가만 계세요.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 이런 말은 해서는 안 되는 아주 못된 말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이미 자식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일생을 바치시고 살과 뼈를 깎아서라도 자식을 위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주셨듯이, 우리 부모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자식들 차례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위해서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자기들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섬기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드려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5.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여기서 의인이란 지혜와 명철과 교훈과 정직함으로 올바르게 사는 사람의 삶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부모님의 마음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기쁘시게 합니다. 

시편5:12절 말씀,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시편34:15절에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고 하셨고, 

17절 말씀에 보면,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고 하셨습니다. 

의롭게 사는 자는 부모를 즐겁게 합니다. 하나님도 의롭게 사는 자를 기뻐하셔서 의인의 간구를 친히 들으십니다. 

요즘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인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 중의 하나가 결혼 잘하는 것과 이혼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화 받는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괜찮다. 너희들은 별이 없제. 아이들은 잘 있나. 공부 열심히 하나. 우리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라’여기서 잘 지내는 것이 무엇입니까? 

때를 따라 해야 할 일을 하며, 때를 따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제때 하는 것입니다.

6. 우리의 마음이 부모님에게 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보면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을 어버이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께 가 있어야 하듯이, 부모님에게도 마음이 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키울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시며 기르셨는데 우리는 부모님이 진자리에 누우셨는지, 마른자리에 누우셨는지, 또는 차가운 자리, 더운 자리인지를 골라 누우시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항상 나의 마음에 부모님의 마음에 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부모님이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나를 평가할 때 ‘그는 늘 마음을 쓰고 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는 우리가 안중에도 없다’고 하시거나, ‘생일 때만 신경 쓰고 평소에는 관심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됩니다. 

한 나이든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화하였습니다. “네 가문을 망치고 싶지 않지만 네 엄마와 헤어지기로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너에게 이런 말하는 것조차 속상하구나. 그래서 네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말해다오” 라고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 아들은 황급하게 여동생에게 전화하여 부모의 이혼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 여동생은 소리치면서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게”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딸은 즉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며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아버지 절대 이혼은 안 돼요. 내가 거기에 갈 때까지 절대 갈라서서는 안돼요. 내가 거기에 갈 때까지 절대 갈라서서는 안 돼요. 내일 오빠도 오라고 할 거예요. 그때까지 절대 헤어져서는 안 돼요” 

그 노인은 전화를 끊고 부인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됐어. 이번 명절에는 애들이 올꺼야! 그것도 자기들이 경비를 지불하고 그런데 다음 명절에는 뭐라고 하지?” 

오늘 끝으로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누가 썼는지 잘 모르면서도 전해 내려오는 효도를 권하는 내용의 “권효가” 가 있습니다. 

父生母育 恩高如天 (부생모육 은고여천) 부생모육 그은혜는 하늘같이 높건만은 
靑春夫婦 不孝父母 (청춘부부 불효부모) 청춘남녀 많은데도 효자효부 없는지라.

女息出嫁 厭媤父母 (여식출가 염시부모) 출가하는 새아씨는 시부모를 싫어하고 
子息婚後 急忙分家 (자식혼후 급망분가) 결혼하는 아들네는 살림나기 바쁘도다. 

其子作亂 自喜作笑 (기자작란 자희작소) 제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父母訓戒 不聽外面 (부모훈계 불청외면)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싫어 외면하고

其子喧聲 傾聽好樂 (기자훤성 경청호락) 시끄러운 아이소리 듣기좋아 즐겨하며
父母再言 厭聽無關 (부모재언 염청무관) 부모님의 두말하면 잔소리라 관심없다. 

子女汚便 以手自執 (자녀오변 이수자집) 자녀들의 오줌똥은 손으로도 주무르나 
父母流唾 思濊不近 (부모유타 사예불근) 부모님의 흘린침은 더럽다고 멀리하고

持來菓子 與子之手 (지래과자 여자지수) 과자봉지 들고와서 아이손에 쥐어주고 
爲親賈肉 全無一斤 (위친가육 전무일근) 부모위해 고기한근 사올줄을 모르도다.

愛犬病臥 急走病院 (애견병와 급주병원) 개 병들어 쓰러지면 가축병원 달려가나 
老親發病 子謂老患 (노친발병 자위노환) 늙은부모 쓰러지면 노환이라 생각하네.

父母養子 一養十子 (부모양자 일양십자) 열자식을 키운부모 한결같이 키웠건만 
子厭父母 十子一厭 (자염부모 십자일염) 열자식은 한부모를 하나같이 싫어하네.

爲子用錢 不惜天金 (위자용전 불석천금) 자식위해 쓰는돈은 한도없이 쓰건만은 
爲親用錢 只惜一分 (위친용전 지석일분)부모위해 쓰는돈은 한푼조차 아까우네. 
與子出外 外食多頻 (여자출외 외식다빈) 자식들은 데리고는 외식함도 자주하나 
侍親一出 外食至難 (시친일출 외식지난) 늙은부모 모시고는 외식한번 힘들구나.

生前不孝 死後何孝 (생전불효 사후하효) 살아생전 불효하고 죽고나면 효심날까 
以禮訃告 接受賻儀 (이례부고 접수부의) 예문갖춰 부고내고 조문받고 부조받네.

汝身所重 思親思德 (여신소중 사친사덕) 그대몸이 소중커든 부모은덕 생각하고 
郞君所重 尊媤父母 (낭군소중 존시부모) 서방님이 소중커든 시부모를 존중하라.

死後不悔 生前盡孝 (사후불회 생전진효) 가신후에 후회말고 살아생전 효도하면 
天授貴福 子女孝親 (천수귀복 자녀효친) 하늘에서 복을 받고 자녀들이 효도 하네.

하나님을 가까이 함도 복이 되지만 부모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항상 기쁘시게 해 드리는 효성스런 자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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