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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주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청년 (전 11:9, 요일 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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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청년 (전 11:9, 요일 2:12-14)


우리 시대의 문화란 젊어 보이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젊게 보이는 것은 삶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닌데 젊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지나친 투자를 합니다. 사후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이상일지 모릅니다. 젊음이란 불확실한 미래를 지연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비타민 보조제, 다이어트 프로그램, 운동기구 등 젊음의 환상을 지켜주는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젊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늙어서 이미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젊은이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젊고 젊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젊음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입니다. 그 자체가 건강입니다. 그 자체 용납입니다. 용납이라는 말은 젊었기 때문에 저금 미흡해도, 실수해도 양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청년기는 인생의 특권을 누리는 기간입니다. 
  
맥아더장군은 “청년이란 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 상태이다. 붉은 뺨이나 입술이 아니라 굳센 의지, 상상, 감정, 생명력에 달렸다. 청년은 용기로 비겁을 이기며 모험으로 앞일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이란 나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청년이 아닌 청년이 많습니다. 나이가 많은 청년도 있고, 나이가 젊은 청년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참 괴로운 세대입니다. ‘NEET족’이란 말을 아십니까?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란 뜻입니다. 청년무직자를 일컫는 말로 결혼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취직도 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의욕을 가지지 않는 세대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PC방에서 나오지 않고, 대인관계나 사회활동을 피하고, 도박이나 음주나 마약 등 일반적 단순한 일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사회는 NEET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일절’을 아십니까? 31세까지 취업하지 못하면 절망이라는 말입니다. ‘청백전’은 아십니까? 청년백수 전성시대라는 말입니다. ‘행인’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잔심부름하는 행정 인턴을 말합니다. 이런 말들이 우리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는 자체가 참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런 사회의 현상을 거슬러 가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명의 젊은이들 택하여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상대로 진리를 깨우치려고 하였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청년들에게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란 글을 써서 젊은이들을 깨우치려고 애썼습니다. 덴마크의 국부 그룬트비목사님은 젊은이들에게 나라 사랑, 땅 사랑, 하나님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도산 안창호선생은 ‘대한 청년제군의 외침’이란 글을 통하여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청년이 국가의 미래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스스로가 미래의 주역으로 자신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우리교회와 국가의 미래임을 자처해야 합니다. 이런 청년이 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청년들이 이런 비전과 꿈이 있기를 바라십니다. 

  첫째, 청년들이 강해야 기쁘시게 합니다. 

요한일서 2:14에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라고 합니다. 청년들이 강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그 해답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해야 강해질 수 있습니다.  
  
‘강하고’라는 말은 헬라어로 ‘이스퀴로이’입니다. 육체의 강함보다는 영적인 강건함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6:10에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는 말씀이 이런 뜻입니다. 영적으로 강건해야 영적 존재인 마귀의 대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강한 사람, 강한 국가, 강한 군대를 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강해지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해야 강해지는지 그 비결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강해집니다. “노루가 통솔하는 사자의 군대보다 사자가 통솔하는 노루의 군대가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사람이 가장 강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군대가 되어야 강한 군대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대장이 되셔야 강합니다. 
  
찬송가에 “나의 영혼 싸울 때 나의 영혼 싸울 때 주 나의 대장 되시사 나를 인도하소서”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대니 앞장서신 주를 따라 갑시다”라는 찬송의 가사도 있습니다. 찬송의 힘은 엄청납니다. 두렵고 무력할 때 찬송하면 힘이 생깁니다. 찬송은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이십니다.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을 반석, 요새, 바위, 산성 등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어떤 말도 하나님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사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뢰가 쏴도 파선되지 않는 든든한 배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웹스터 사전에는 보혜사를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이 여러 가지 설명의 공통점은 ‘보혜사’가 ‘인격체’라는 사실입니다. 보혜사는 상담자, 조언자, 위로자, 중재자, 조력자, 대변자, 지지자, 친구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지도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도자는 나를 도우셔서 강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강하게 하십니까? 오늘 성경은 그 해답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강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강해보이지만 약합니다. 잠시 동안은 강할 수 있지만 영속적으로 강할 수는 없습니다. 
  
마틴 루터는 ‘돈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다. 여자는 좀 더 강하다. 그러나 진리는 가장 강하다’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가 보름스국회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관은 그의 생각을 바꾸라고 했지만 루터는 “나는 다르게 할 수 없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보름스국회에서 자신의 소견을 밝힌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지은 찬송의 가사에는 “원수마귀 모두 쫓겨 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 형제들아 찬송 찬송합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루터는 강한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점점 약해져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백수시대가 되어서 그런지 힘이 빠진 모습들입니다. 일전에 텔레비전에 어느 대학생이 나와서 학교에서도 취업 문제를 가장 많이 얘기한다고 합니다. 심각한 현실적 과제가 취업인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가 청년들의 취업을 도와주고, 청년들의 쳐진 어깨를 받쳐줄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은 위기로부터 힘이 성장합니다. 힘이란 고대 게르만어로 ‘kraft’란 능숙함이나 완성이나 기술이나 수공을 의미합니다. 힘이란 단어는 근육을 팽팽하게 하다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힘이란 성숙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시편 31:24에는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 청년들이 말씀으로 강하고 담대해지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고, 이겨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40일간 금식하신 다음에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실 때에 말씀으로 그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은 곧 말씀이십니다. 
  
히브리서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강합니다. 이 말씀으로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부정적이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되십시오. 

  
둘째, 청년들이 흉악한 자를 이겨야 기쁘시게 합니다. 

2:14 하반절에는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합니다. 상반절에 말씀하신 대로 청년들이 그 강한 힘으로 무엇을 합니까? 흉악한 자를 이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흉악한 자가 누구입니까? 흉악한 자는 마귀입니다. 귀신입니다. 여러분은 귀신 들려 예쁜 사람을 봤습니까? 마귀에 붙잡혀 착한 사람을 봤습니까? 
  
사탄은 마귀의 우두머리입니다. 사탄이나 마귀는 그 본성이 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다 타락한 존재입니다. 사탄이나 마귀는 선이 0%입니다. 선이 전혀 없습니다. 선이 조금도 없는 사탄이 아무리 선하고 싶어도 선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흉악한 일만 하는 것이 사탄의 본성입니다. 
  
흉악한 절대 악을 이기려면 절대 선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 선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흉악한 자를 이기는 것은 하나님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흉악한 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흉악한 자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5:22에는 가나안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소리칩니다. 귀신이 얼마나 딸을 괴롭혔기에 흉악하다고 했겠습니까? 흉악하게 귀신 들린 딸이 고침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힘 외에 어떤 것도 흉악한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일전 어느 신문에 보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 50명 중 1명이 개명 신청을 해다고 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0년에서 2009년까지 개명 신청서를 낸 인원은 84만4615명입니다. 이 중에 73만 277명인 86.4%가 허가를 받아 개명했습니다. 개명신청의 이유는 놀림을 당하거나 이름으로 성별분간이 어려운 경우 그리고 최근에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이름과 같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흉악범과 이름이 같다는 것들입니다. 
  
‘호순’은 동물원에 가보면 ‘호돌’이 여자 친구 아닙니까? 대개 호랑이 암컷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주는데 참 귀엽고 나쁠 것도 없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흉악범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름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이름이 나쁜 것이 아니라 흉악범이 된 것이 이름을 나쁘게 하였습니다. 
  
보통 범죄인과 흉악범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인간의 상식과 최소한의 기본 윤리를 벗어난 범인을 흉악범이라고 합니다.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한 범인들에게 흉악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흉악한 자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그 속에 흉악한 영 때문에 흉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악한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흉악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조나단 글로버의 ‘인류: 20세기의 도덕사’를 읽어보면 20세기의 역사는 현대악의 역사입니다. 현대 인류의 역사는 흉악한 일들, 도저히 인간의 기본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흉악한 일들이 우리의 주변 이야기로 변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철저하고 신명나게 악을 저지른다”고 했습니다. 종교라는 탈을 쓰고 흉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전쟁이나 종교적 만행 등 흉악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의 청년들은 이런 주변 이야기로 변한 흉악한 죄를 이겨야 합니다. 흉악한 자를 이겨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시편 71:4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흉악한 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믿음의 청년들이 흉악한 자를 이긴다고 하지만 인간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므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시편 119:9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깨끗하게 됩니다.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얼마 전 유명 비보이들이 정신질환을 핑계로 병역면제를 받으려다 발각되었습니다. 그들은 군대에 다녀오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환청을 듣는다”는 핑계로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병역을 면제받으려고 한 자체가 정신질환이 맞아요. 
  
어느 병무청 신체검사장에 젊은이들이 팬티만 입고 신체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온 몸에 태극기를 칭칭 감고 머리에 태극 띠를 한 청년이 군의관에게 “당장 군대 보내줘요. 나 아주 건강해요. 신체검사도 필요 없어요. 총도 필요 없어요. 맨 손으로 적들을 다 때려잡을 수 있어요”하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군의관이 “자네 미쳤구먼”했습니다. 그 청년은 큰 소리로 “바로 그 말을 서류에 적어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미치는 것보다 군대 가서 병역 의무를 다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이것이 젊은이다운 일입니다. 
  
젊음을 당당히 지키세요. 나이가 들면 군대도 보내지 않습니다. 향토예비군, 민방위도 오라고 하지 않아 보세요. 이제 별로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공부는 인생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국가를 위한 의무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이 모두가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도록 하십시오.  
  
전도서 12:1에는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곤고한 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는 날’이라고 어느 학자가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앵앵거리는 모기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지만 청년은 밤새 모기에게 뜯기면서도 안 깨고 잘 잡니다. 아침 참새소리에도 잠을 깨지만 청년은 새벽닭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니다. 한 밤중 윗집 발자국 소리에도 잠이 못 들지만 청년은 집 앞 포클레인 소리에도 잠을 잡니다. 
  
그런데 이 젊음도 잠깐입니다. 시편 90:10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합니다. 날아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습니다. 시간을 붙잡을 생각은 아예 말고 그때그때마다 시간을 잘 활용하세요. 그리고 목표를 향하여 부지런히 나아가세요. 
  
우리 모든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과 육이 강한 청년이 되세요. 그리하여 세상의 흉악한 자를 이기는 청년이 되세요. 이런 청년들의 아름다움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모든 청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청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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