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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입은 대로 (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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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랑바네레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경영하는 병원에서 보조간호사로 궂은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마리안 프레밍거(Marian Preminger)라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1913년 헝가리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돈 많고 타고난 미모를 갖추었으며 악기 연주 등 못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비엔나에서 무대 배우로 있을 때 의사와 결혼했고 미국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영화감독 오토 프레밍거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치와 방탕 때문에 이 두 번의 결혼을 모두 실패했다. 1948년 그녀가 파리에 살고 있을 때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잠깐 돌아와 어느 시골교회에서 오르간 독주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래서 작은 시골교회를 찾아가서 슈바이처 박사의 오르간 연주를 듣고 마리안은 자신의 허망한 생활을 뉘우치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랑바레네 병원의 간호사로 자원해서 무식하고 가난한 흑인 병자들을 위해서 일하게 되었다. 빨래나 부엌일은 손도 대지 않던 귀족의 딸이 늙어서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20여 년 동안 이 병원에서 일했던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나를 파멸에서 건져 주셨으니 나도 그 사랑의 복음을 환자에게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평생을 바쳤던 것이다. 

은퇴한 그녀는 뉴욕에서 살다가 197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뉴욕 타임스는 그녀를 위해 이런 조사를 실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돕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돕지 않는 사람이다. 마리안 프레밍거는 인생의 전반기는 돕지 않는 사람에 속했다가 인생의 후반기는 돕는 사람에 속해서 영광된 그리스도인으로 개선하였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에 속해 있는가? 돕는 사람인가, 돕지 않는 사람인가?

오늘 말씀은 처음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그리고 열흘 째 되던 날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 그리고 그때에 그곳에 모여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을 중심으로 처음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그들은 즉시 전도하기 시작했고 특히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날에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 이렇게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과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그들이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별이 없고 가난해서 고통당하는 사람은 없게 될 것이다. 과연 이런 모습의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우리가 보기에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사랑의 공동체 생활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다가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고 그 결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이미 한 곳에 모여 있었고 한 마음으로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성령을 받았다. 그래서 완전히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즉 성령 충만의 결과로 사랑의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이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순서를 보면 그들은 사도들로부터 말씀을 배웠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고 그리고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서로 교제하는 것의 앞과 뒤에 말씀과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사도들에게서 말씀을 배우고 오로지 기도에 힘쓴 결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사람은 당연히 서로 나누고 섬기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를 열심히 한 결과는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그들이 이런 사랑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이 복음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지키고 있다.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묵상하는 절기이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나도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결심하고 그런 믿음을 세우는 절기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신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사랑의 증거이다. 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놓으며 산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사순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의 삶을 살기로 결심해야 한다.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이런 사랑의 공동체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래서 우리의 삶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처럼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기 바란다. 

그들은 청지기 신앙을 가졌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그들은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즉 서로의 모든 소유를 네 것 내 것 없이 공동으로 사용한 것이다. 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왜 그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는가? 그것은 내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도로 돌려드려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청지기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청지기 신앙이 무엇인가? 청지기는 어떤 사람인가? 청지기란 주인의 신임을 받아서 주인의 모든 재산과 소유를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는 모든 재산을 맡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인의 뜻대로, 주인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주인은 그가 주인의 뜻대로 주인을 위해 잘 관리하고 사용하리라고 믿고 모든 것을 맡겼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이다.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혜와 은사를 맡겨 주셨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나의 생명, 재산, 건강, 시간, 재능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나의 모든 것을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내게 그것을 맡겨주신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맡기신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용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나의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한다. 셋째는, 하나님의 회수권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도로 회수하실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달라시면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당연히 이 청지기 신앙을 가지게 된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자연히 이 청지기 신앙을 가지게 된다. 나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청지기 즉 관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발 앞에 내려놓으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고 바르게 사용하라.

그들은 사랑의 마음을 가졌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는데 “마음을 같이 했다”고 했다. 또 집에서도 떡을 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즉 다른 성도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부족을 내 것으로 채워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음부터 사랑으로 가득 찼다. 

내게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어도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는 법이다. 내게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에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고 그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 하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는가? 죄를 지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심판하시고 멸망의 지옥으로 보내셔도 그만 아닌가? 그런다고 누가 틀렸다고 항의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았다. 아니 그러실 수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자식이라도 부모는 그를 버릴 수 없고 끝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끝까지 사랑하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들의 생명을 주셨던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에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선한 부담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그의 어려움과 부족함에 대해 부담을 가지는 것이다. 부담감이란 곧 책임감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부족함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가족 중에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아까워하지 않고 큰 액수의 돈을 선뜻 주어 도와주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또는 자식이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갑작스레 큰일을 당해서 어려울 때 부모가 자신이 가진 것을 선뜻 내어주는 것을 보았다. 힘들게 번 돈인데 내가 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깝지 않은가? 그런데 왜 아까워하지 않고 다 내어주는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의 부담감을 가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족과 필요에 대해서 부담을 가지고 책임을 느끼는 것이 사랑이다.

성 프랜시스가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났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마침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거지의 손을 잡고 “형제여, 미안하오. 마침 내게 가진 것이 전혀 없구려”라고 했다. 그러나 그 거지는 “아닙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서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을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나를 형제라고 불러준 적이 없습니다. 또 아무도 나의 이 더러운 손을 잡아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의 손을 잡아주었고 나를 형제라고 불러주었습니다. 많은 돈을 받은 것보다 가장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랑은 말이나 행동 이전에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9백만 원 전세를 사는 할머니가 평생 모은 돈 천 만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할머니는 죽기 전에 좋은 일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가진 것이 많아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사랑할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나누고 섬길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나누고 섬길 줄 모른다.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랑을 본 받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나누고 섬기는 
사랑의 삶을 살자.

그들은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했다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그들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에 대해서 부담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질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 사랑을 실천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부담감을 가지고 책임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말로 그들을 위로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사랑은 감정과 말을 넘어서는 행동이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듯이 행함 없는 사랑도 죽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요한일서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진정한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사랑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럴 때 사랑이 이루어지고 전해진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집과 밭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장 소중한 외아들의 생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셨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셨고 하나 뿐인 생명을 주셨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나의 모든 것을 내놓아 사랑을 실천하자.

처음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실천한 결과가 무엇인가? 첫째,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았다.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사랑을 실천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을 존경했고 또 칭찬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 때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가 부흥했다. “47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전도는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사람을 우리에게 붙여주시고 우리 교회에 보내주셔야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 때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는 믿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 받을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게 해주시는 것이다. 

미국의 대부호 록커펠러는 한 때 미국 석유업의 95%를 지배한 대실업가였다.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청년시절부터 야심에 차 있었다. 그의 목표는 “나를 위하여 그리고 돈을 위하여”였다. 그는 빈손으로 출발해서 20대에 자립했고 30대에 오하이오 석유회사 설립, 40대에 철도회사와 기업을 합쳐 일약 미국을 쥐고 흔드는 대부호로 등장했다. 그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노동자나 회사원들이나 거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정 없이 착취했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돈 때문에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람은 많았으나 마음속은 그에 대해 증오로 가득 찬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그가 나이 50이 넘게 되지 심한 노이로제에 걸렸다. 식욕이 없고 소화도 안 되고 불면증까지 겹쳐서 밤이면 심한 악목으로 고통을 당했다. 의사는 그가 병으로 55세 이상 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인생을 헛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기도를 하고 오랜 만에 깊이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이 가진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 시카고 대학을 위시한 많은 교육기관을 설립했고 뉴욕의 리버사이드교회를 시작으로 수많은 교회를 세웠다. 그가 여러 자선사업기관에 기부한 돈은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그는 인생을 어떻게 올바로 사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의사의 말보다 40년이 많은 95세까지 살았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삶이 섬김의 삶으로 변한다.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했고 이 청년은 모든 계명을 다 지켰는데 무엇이 부족한가고 물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태복음 19:21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내가 가진 것을 내놓아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지 못하면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자는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내 것을 나누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진 것이 넉넉하지 못해도 내가 먹을 것을 조금 덜 먹고 내가 쓸 것을 조금 덜 쓰고라도 적은 것이라도 나누고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누고 섬긴 것이 아니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가진 것을 내놓아 나누고 섬긴 것이다. 성령 충만했기에, 말씀을 배우고 기도에 힘썼기에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사랑의 실천은 은혜를 받은 대로 하는 것이다. 이 사순절에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모든 사람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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