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부주일] 관계의 회복, 순종 (엡 5:22-28)

  • 잡초 잡초
  • 515
  • 0

첨부 1


‘관계의 회복, 순종’ .com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5;22-28)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히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부부의 날’은 1995년 5월 21일 세계최초로 우리나라 경남 창원에서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기념일 제정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제정 목적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부의 날’은 핵가족시대의 가정의 핵심인 부부가 화목해야만 청소년문제·고령화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법정기념일입니다. 아직 공휴일은 아니지요. 2003년 12월 18일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제출한 '부부의 날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청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결의되면서 2007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고, 날짜는 해마다 5월 21일인데요, 5월 21일에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부부의 날’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부부(夫婦)’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이미 부부가 되신지 20~30년이 지난 경험자분들께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부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말씀을 전하는 저도 ‘성경적인 부부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지를 못합니다. 저도 進行中 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 세상이 말하고, 사회가 말하는 夫婦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종교가 말하는 夫婦의 모습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부의 모습’을 발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고, 또 우리의 가정이 성경이 말씀하는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을 회복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질 브리스코라는 미국 여자 분이 쓴 ‘There is a Snake in My Garden’(내 정원에 뱀이 한 마리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원에 뱀이 한 마리 있다는 것인데...여기서 ‘정원’이란 가정, 삶, 우리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내 가정을, 내 삶을, 그리고 내 관계를 파괴시키는 뱀 한 마리가 내 정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책입니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에덴동산에, 행복하고 문제없는 부부 아담과 하와 그리고 뱀이 한 마리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결혼생활을 하게 하셨는데..그 아름다운 곳에서 그 가정을 깨뜨리고, 문제를 일으켜 범죄로 이끌고, 부부관계를 파괴시키는 뱀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여기 계시는 예비부부, 또 기혼 부부님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첫 번째 사실은, 이 책의 제목대로, 또 창세기 기록대로 우리의 정원에 뱀이 한 마리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보신분이 있나요? 집에서 청소하다 보면 잘 보이지 않는 그늘진 구석에 뱀 한 마리가 꼬물 꼬물 기어다니는 것을 보신 분이 여기 계신가요?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뱀도 같이 있습니다. 연약한 죄인인 우리를 충동시켜서 어찌하든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게 하고, 부부사이를 금이 가게 하는 뱀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는 사람은 조심을 하고, 아는 사람은 뱀을 잡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 알았었지만 잊어버린 분들도 많이 있지요.  

성도여러분, 내가 모른다고, 내가 잊었다고,  있는 뱀이.. 없는 뱀이 되지 않습니다.  한자 사자성어를 보면 ‘이장폐천(以掌閉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입니다.    손바닥으로 어떻게 하늘을 가리겠습니까?   하늘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눈을 가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손으로 눈을 가려 하늘이 안 보인다고 하늘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아니다 아니다’ 한다고, 있는 뱀이 없는 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에 연약한 죄인인 우리를 충동시켜서 어찌하든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게 하고, 어찌하든지 부부사이를 금이 가게 하는 뱀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뱀이 어떻게 우리를 범죄하게 하고, 어떻게 우리 관계를 갈라놓을까요?  (요13;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했습니다. 마귀는 유다의 마음에 무엇을 넣어주었나요? ‘생각을,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그 ‘생각’을 유다는 받아들였습니다. ‘아 좋은 생각이다’ 합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대로 행동을 하여, 스승인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깁니다.  

이렇게 마귀는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도 무엇을 넣어줍니다. 무엇을요? ‘생각’을 넣어줍니다. 사납고 폭력적인 생각, 음란하고 더러운 생각, 비겁하고 속이는 생각, 거짓말을 옳다고 변명하는 생각, 부모에게 불효하는 생각,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생각,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음란한 생각,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무시하는 생각, 저런 사람을 부모로 만나서, 저런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서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쓰윽 밀어 넣어줍니다.  

성도여러분,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면 이 생각은  본래 누구의 생각입니까?  예, 마귀의 것입니다. 유다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면 유다는 본래 스승인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이 있었나요, 없었나요? 본래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유다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마귀가 넣어준 생각을 자기의 생각인줄로 알고 그 생각대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즉 유다는 뱀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이 유다의 첫 번째 잘못입니다. 

‘There is a Snake in My Garden’(내 정원에 뱀이 한 마리 있다)는 것을 유다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준비가 된 사람에게 오는 시험은 시험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유다는 생각으로 자기를 유혹하는 뱀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유다의 두 번째 잘못은, 그 생각을 물리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 올랐을 때 ‘이건 아니야’ 하면 끝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야, 제자가 스승을 팔다니 이건 말도 안 되’하면 그냥 끝입니다. 마귀는 다른 사람을, 다른 방법을 고르겠지요. 그런데 유다는 그 생각을 ‘괜찮네, 좋은 생각이네’ 하고 받아들여버립니다. 

성도여러분, 생각은 마귀가 넣어주었지만 행동은 누가 하나요?  유다가 하지요. 그러니 유다가 벌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대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보는 것을 생각하고, 듣는 대로 생각합니다. 보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은 것을 생각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좋은 것을 많이 보아야 합니다. 좋은 말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특히 예비부부여러분,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좋은 책, 행복한 부부이야기가 쓰여져 있는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이혼이야기, 배신이야기, 버리는 남자와 버림받은 여자이야기 그런 것이 재미있지요? 그러면 그 재미있는 삶을 직접 살아보면 어떻겠습니까? 이혼의 주인공, 배신의 주인공이 되면 훨씬 더 재미있을까요?  재미 하나도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행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 대로 생각하고, 들은 대로 생각합니다. Input한 대로 Output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려서 보고, 가려서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② ‘내 생각이 과연 옳은가?’하는 것을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잘 싸웁니다. 어떨 때는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교회일도 그렇습니다. 만나면 다투니... 같이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싸움 핑계로 일 안해 버리든지, 혼자 일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여러분, 내 생각이 항상 옳습니까? 내가 항상 진리인가요? 다른 사람의 생각이 항상 틀렸나요?  우리는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음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싸우고 다투나요? 문제는 고집입니다. 나한데 맞추어야 한다는 고집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부부간에 싸울까요? 나한데 안 맞춰주니까 싸웁니다. 나 중심이 아니니까 화가 납니다. 만약에 우리가 내 중심이 아니라 ‘바른 생각’중심이 되려고 노력을 한다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죄와 싸움이 줄어들겠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내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생각한다면 우리 가정은 천국이 되고, 이 세상은 죄와 악이 다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이 과연 옳은가?’하는 것을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단지 내 고집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옳은 생각,  성경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마귀가 준 생각을 굴복시키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할 두 번째 사실은, 뱀의 목적이 관계를 깨트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뱀이 하는 일은 관계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한 일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도록, 즉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어기고 먹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죽음’이 찾아옵니다. ‘죽음’이란 다른 말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입니다. 

그런데 부부관계도 같이 깨어집니다. (11,12절)“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범죄한 아담은 회개하지 않고 자기 아내 탓이라고, 하나님이 주신 아내 하와 때문 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범죄가 하나님만이 아니라 부부사이의 관계도 깨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부부관계를 깨트리려고 한  뱀의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어떤 방법으로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행복한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었나요?  ‘말言’입니다. 교묘한 말, 유혹하는 말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였고,  말言로 사이좋은 부부사이를 금이 가게 했습니다. 말言로 가정을 파괴시켰습니다.   

성도여러분, 그래서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질문을 한 가지 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말言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내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들,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는 말은 아닌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가족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은혜가 될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내 정원 안에 있는 그 뱀, 사탄이 제일 기뻐하는 말이라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사탄이 ‘옳지 잘한다. 옳지 잘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서 잘도 하는구나’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입술에서 독이 나올 때마다 뱀이 기뻐합니다. 내 가정이 파괴될 때마다,  내 자녀들이 삐뚤어 질 때마다 사탄이 기뻐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탄이 기뻐하는 말을 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합니다. 종종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말이 사탄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성도여러분, 사탄이 하는 말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와에게 살짝 와서 “하나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던가?”라고 말을 하지 않습니까?  사실 다 먹지 말라고 하시진 않았거든요. 하나님께서 딱 하나만 안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먹어도 괜찮은데 단 하나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탄은 바로 그것, 다 허락되었지만... 딱 하나 허락되지 않은 것을 건드리는 말을 합니다. 즉 다 허락된 것을 감사하는 말이 아니라, 딱 한 가지 허락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의 말을 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찬찬히 생각해보면 참 좋은 아내입니다. 나름 괞찮은 남편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이 살기 힘든 사회에서 없는 능력에 그래도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압니다. 그런데 그 괞찮은 모습들은  눈에 안 들어오고 한 두가지 결점만을 꼬집어서 불화를 일으킵니다. 그것만을 가지고 ‘속상하다 속상하다’ 합니다.  에덴동산에서나 지금이나 이 하나를 불평하는 것이 사탄의 말입니다.  
 
그러면 성도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깨어졌습니다. 이미 금이 갔습니다. 냉냉한 관계가 몇 달을 계속됩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해야 금이 간 나의 가정이 회복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알아야할 세 번째 사실은, 말씀대로 순종하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유다가 마귀가 준   생각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을 무시해서 선악과를 먹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거역해서 죽었듯이 이제는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가 삽니다.  사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엡5장 22절~23절 말씀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아내들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남편들에게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 아내들에게 먼저 이야기했을까요?  가정의 행복은 아내들의 영향이 크고, 아내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때로 남편보다 지혜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편들도 아내의 말을 잘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내가 먼저 교회에 나오고 남편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가정의 남편은 언젠가 교회에 나옵니다. 나이 들어서도 안 나오면 밥도 못 얻어먹으니까 결국 나옵니다. 아내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남편은 교회 나오는데 아내가 안 나오는 가정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가정의 아내가 나오기 참 쉽지 않습니다. 남편 혼자 나오다가 마는 집들도 많습니다. 아내는 끝까지 안 나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내의 영향력이 더 큰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바로 서면 가정이 바로 섭니다. 남자들은 단순합니다. 아내가   조금만 양보하고, 아내가 조금만 지혜롭고, 아내가 조금만 더 남편을 배려해 주면 남편들도 곧 아내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갈 곳이 그 곳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들에게 먼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여러분,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마치 교회가 신랑 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부관계의 영적원리입니다. 아내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순종하라. 남편에게 복종하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듯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종은 

① 남편의 지배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듯이, 하나님이 (부족한..찌질한..)남편을 가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마지막 결정권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남편에게 의논을 하는 것입니다. “여보! 내 생각에는 이런데 이거 사면 좀 어떨까? 당신이 사라고 하면 사고, 말라면 안 살 거야.” 이렇게 남편에게 최종 결정권을 드리는 것이 순종의 의미입니다.  또한 복종이란 

②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말을 잘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데 아내가 “아, 당신 말 들을 것도 없어. 시끄러워.” 그 남편은 어디 가서 기를 펼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도 자기 이야기만 실컷 하고 남의 이야기는 잘 안 듣는 사람, 남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됐고, 난 바빠, 가야해.” 이런 사람은 바보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받을 수가 없습니다. 훌륭한 리더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혜가 없는 아내들은 남편이 무슨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당신 이거 틀린 거야.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시는데 그거 아니라고 하더라.” 합니다. 그럼 남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좋으면 네 가서 목사하고 살아라.”라고 합니다. 남편도 바보 아니지요. 왜 자기가 틀린 줄 모릅니까?   단지 권위를 인정받고 싶은데.. 아내가 목사의 권위를 남편의 권위위에 두니...가서 목사하고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 말은 무조건 맞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성경적입니다.   또한 복종이라는 것은  

③남편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자리에 앉더라도 상석은 남편자리입니다. “얘들아! 거기는 아빠 자리니까 거기는 앉지 마.” 식사를 해도 “아빠 오시면 식사하자. 좀 기다리자.” 맛있는 먹을 것이 있어도 “야! 아빠 오시면 같이 먹자. 너희들 좀 참아라.” 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먹고 싶은 것을 참게 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훈련입니다.  미국 아이들이 먹는 사탕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30초만 이거 안 먹고 참고 있으면 하나를 더 줄게.” 

그런데 그것을 못 참고 먹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하나를 더 받으려고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의 20년 후를 보니까 참은 아이들이 다 훌륭하게 되었답니다. 먹고 싶지만 아빠 기다리려고 참는 아이들은 참을성이 길러집니다. 그 아이들이 리더가 되고 성공적이 인물이 됩니다.   성경은 아내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며, 남편을 가정의 최고의 자리에 세워주라고 합니다. 왜요? 그래야 행복한 가정이 되고, 그래야 아내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아내만이 남편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여러분, 여러분이 아니면 세상 누구도 내 남편을 세워주지 않습니다. 오직 아내만이 남편을 세울 수 있습니다. 조~옴 세워주세요.  

잠언 12;4절에 보니까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라고 합니다. 어진 아내가 남편 머리의 면류관입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아내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내 여러분! 여러분이 남편을 믿어주시면 남편들은 불가능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아내의 격려, 아내의 믿음, 아내의 기도, 그것이 남편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남편을 쥐고 흔드는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 남편들에게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5;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대우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처럼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 자기의 몸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라.』 

지금 이렇게 아내를 사랑하시는 남편 있으신가요? 죄송하지만, 읽는 내가 은혜가 안 되고 기가 막힙니다. 그냥 내가 순종하는 아내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성경적인 남편이 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런데...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남편여러분,  성경은 아내들이 연약하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합니다. 실제로 아내들은 연약합니다. 중년 여성들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우울증을 한 번씩 경험한답니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받은 상처, 남편에게 받은 상처, 자식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40~50대가 되면 우울증이 생깁니다. 소화가 안 되고, 잠이 안 오고, 의욕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지고,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됩니다. 자꾸 죽고 싶은 맘이 생깁니다. 삶의 의욕도 없습니다.   남편들은 이런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 두 시간 정도는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쇼핑도 같이 하고, 식사도 같이 하고, 대화도 같이 해야 합니다. 아내와만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겁니다. 아내의 아픔을, 아내의 고통을, 아내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분이 훌륭한 남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에 보니까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아내에게 힘자랑하는 남편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약한 여인인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고 그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남자 분들이 자기 좀 아프면 견딜 수 없다고 약 사오라고 난리를 치면서, 아내가 아프면 약 사먹지 왜 그리 아파하느냐고 말만 합니다. 아내의 손목을 끌고 병원에 가시는 그런 남편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는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편이 불완전하듯이 아내들도 실수할 수 있고 허물이 많습니다. 그러면 남편의 넓은 사랑이 그 아내의 허물까지도 다 덮어주는 것입니다. 아내를 격려해 주고, 아내를 칭찬해주십시다. 그것이 훌륭한 남편입니다.  아내의 부족함은 남편이 채워주고, 남편의 부족함은 아내가  채워줘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아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에 부흥 강사로 유명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을 기념하는 도서관이 있는데 2년 전 타계한 부인 ‘루스 그래함’의 묘가 그 옆에 있습니다. 그 부인의 묘비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답니다. “공사 끝, 오랫동안 참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길을 지나가다 보면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푯말을 종종 보게 됩니다. ‘루스 그래함’이 표지판을 보고서 그때 유언을 했답니다. ‘내가 죽으면 내 묘비에 이렇게 써 달라’고. 그래서 그녀의 묘비에  “공사 끝, 오랫동안 참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기록을 하게 되었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공사 중입니다. 공사 중이니 아직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가 부부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 공사가 끝날 때는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우리가 은혜로 주님 앞에 설 때 그 모든 공사가 다 끝나고 우리는 영화로운 몸을 입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공사 중입니다.   남편도 지금 공사 중이고,  아내도 지금 공사 중입니다. 그래서 불완전 합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치고 박기도 하고, 서로 삐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말씀대로 순종을 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고집이 기준이 되면 낙원을 또 잃어버립니다. 더 불행해집니다. 관계가 깨어집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깨어진 관계를 말씀에 순종함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아직 공사 중인 우리는 성경대로 살려고 하면서 온전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기억하면서, 마귀가 넣어준 생각을 따라 스승인 예수님을 판 유다를 생각하면서, 이제 우리는 자기 생각을 뒤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복종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 행복이 말씀을 순종하는 것 안에 있습니다. 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5;15-17)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