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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의 원리 (골 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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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의 원리 (골 3:18-21)

    
최근에 한 통신회사가 핸드폰 사용을 주제로 공모한 글 중에서 1등을 한 손 현숙이라는 분의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습니다. 내용이 참 감동적이어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제목은 ‘하늘나라 네 시어머니가 문자를 안 받아’입니다.
    
‘내게는 핸드폰 두 대가 있다. 한 대는 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나라에 계신 시어머님 것이다. 내가 시부모님께 핸드폰을 사드린 건 2년 전. 두 분의 결혼기념일에 커플 핸드폰을 사드렸다. 문자기능을 알려 드리자 두 분은 며칠 동안 끙끙대시더니 서로 문자도 나누시게 되었다. 그러던 올 3월 시어머님이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셔서 유품 가운데 핸드폰을 내가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날 무렵. 아버님이 아파트 경비 일을 보시러 나가신 후 띵 동하고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어머님 것이었다, 

"여보! 오늘 ‘야간 조’니까 저녁 어멈이랑 맛있게 드시구려" 순간 난 너무 놀랐다. 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치매증상이 오신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날 밤 또 문자가 날아왔다. "여보! 날 추운데 이불 덮고 잘 자구려. 사랑하오." 남편과 나는 그 문자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남편은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아버님은 그 후 "김 여사 비 오는데 우산 가지고 마중 가려는데 몇 시에 갈까요? 아니지. 내가 미친 것 같소. 보고 싶네" 라는 문자를 끝으로 한동안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셨다. 
   
얼마 후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어미야! 오늘 월급날인데 필요한 거 있니? 있으면 문자 보내거라.” 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네. 아버님. 동태 2마리만 사오세요" 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날 저녁 우리 식구는 아버님이 사 오신 동태로 매운탕을 끊인 후 소주 한 잔과 함께 아버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아직도 네 시어미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그냥 네 어머니랑 했던 대로 문자를 보낸 거란다. 답장이 안 오더라. 그제야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모두들 내가 이상해진 것 같아 내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던 것도 안다. 미안하다." 
   
그날 이후 아버님은 다시 어머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지 않으신다. 하지만 요즘은 내게 문자를 보내신다. 지금 나도 아버님께 문자를 보낸다. "아버님! 빨래하려고 하는데 아버님 속옷은 어디다 숨겨 두셨어요?"‘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고 애틋한 마음을 가진 것인지... 부부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잊지 못해하는 남편이나... 그러한 아버지를 걱정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위로해 드리고...  이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말벗이 되어 주려하는 아들과 며느리나...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가정은 비록 넉넉하지는 못해도 참 행복할 거라는 짐작을 하고도 남게 합니다. 

생각해보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은 이렇게 쉬운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살아가는 주거환경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새롭게 지어진 주택이나 아파트를 가보면 우리가 전에는 상상하지 못하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이렇게 주변의 환경이 더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더 많은 만족이나 행복을 누려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쟎아요’라는 말이 있었는데... 가정에서의 행복은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부분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렇듯 가정에서 행복을 경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도 행복한 가정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은 마치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삶이 점점 더 분주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가족들이 하루에 얼굴 한 번 제대로 볼 수가 없는 형편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성장하고 삶을 마칠 때까지 그의 삶은 가정을 떠나서는 잘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가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는 마치 항구에 정박하지를 못하고 파도에 따라 흔들리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배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예전보다 넉넉해지고 살기도 좋아졌지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바로 가정이 흔들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여자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재작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아직 진급과정이 끝나지 않아서... 시험을 치르고 논문을 심사하는 중에 작년에도 보았고... 올해도 만난 선교사입니다. 나이가 이제 40대 중반인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만났을 때에는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조심스레 물었더니 ‘자기는 예수님과 결혼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결혼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람이 가장 무섭습니다. 마치 북한 동포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올해 만나서... 그 생각이 나서 다시 물었더니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남편감을 찾고 있었습니다. 좀 좋은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에게는 가짜 신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진짜 신랑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동안만 함께 할 임시 신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제가 한방 먹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시집가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가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그 선교사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가꾸어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들은 물론 세상에 나가서도 열심히... 빛과 소금의 본분을 다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을 행복하게 가꾸어 가는 것.. 이것도 우리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교훈과 권면의 성격이 강한 바울의 편지입니다. 3장 1절에 보면 이렇게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이것은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의 명제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이 대목은 우리가 누군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통해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이다... 과거의 죄안과 허물과 못된 본성을 가진 나는 다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지음 받은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것을 일깨워 주는 뜻이 있습니다. 사는 모습이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달라진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듯 위엣 것을 찾는 달라진 삶의 모습이 자기의 내면이나... 구체적인 생활 습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터에서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모습이 가정생활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바로 그 대목인 것이지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바울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하자면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을 행복하게 가꾸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임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가 우리 집을 좀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가정을 생각하면서 이런 막연한 기대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믿음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가정이 더 행복하게 되는 일이 힘써야 하겠다... 다른 가족들보다도 앞장서야 하겠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생활에 대한 그의 권면에 대해서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시부모도 모시지 않고... 자식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가 권하는 말씀 속에서 내가 가정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오늘의 말씀 가운데서 가정 내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가정은 창세기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자랄 대로 자란 남녀가 만나서 한 몸을 이루며 사는 곳... 그들이 부모의 곁을 떠나서 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곳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게 되고... 그래서 가정을 이루는 기초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입니다. 바울은 가정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어떤 것을 말하지 않고 이 기초적인 관계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남편과 아내.. 또는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또는 자녀와 부모... 이 관계만 확고하고 분명하다면... 가정은 진정 행복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월급이 얼마나 되고... 외모가 어떻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하여 참 민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해결되어야만 가정이 행복할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깨닫게 됩니다. 

흔히들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부인이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서 당황하게 되고... 다급하게 남편을 찾으니까 남편이 대뜸 묻는다는 것이 ‘차는 어때?’ 그 부인이 남편에 대한 온갖 정이 다 떨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부인보다도 차가 걱정되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 괜찮아? 차야 그까짓거 공장에 들어가서 고치면 되지... 다시 사면되지...’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더라도...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가족들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가질 때가 얼마나 많은 것인가요?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일본에서 활약하는 이승엽 선수가 며칠 홈런도 치고 좋은 성적을 내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다 공감하는 이야기이지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단지 프로 선수의 세계뿐 아니라 학교나 직장이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는 이러한 살벌한 현실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결과가 좋아야만... 나타나는 실적이 좋아야만 잘 사닌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정에서도 가족들의 관계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바울은 가정을 말하면서 다른 어떤 것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남편이니 그에게 복종하라...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아내이니 그를 사랑하라...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학... 좋은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니... 그를 존중해 주어라...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부모님이기에 그분을 공경하라... 이렇게 말하지를 않습니다. 단지 내 남편이기에... 내 아내이기에...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아이들이기에... 적어도 가정은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을 열고나서면 가족들이 직면한 현실... 그곳은 그의 능력... 그가 이룬 실적... 이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지만... 우리의 가정은 적어도 그가 내 가족이기에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곳이라고 하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우리들에게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가정의 행복이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읽는 것처럼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저마다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원론적이고 별 새로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권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를 염두에 두고 말씀을 생각해본다면 여기에는 당시에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남편의 아내에 대한 도리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남편들에게 권합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요즘 우리들에게는 별 새로울 것이 없는 부분이지만,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당시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권면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는 여성들의 권익을 생각할 수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복음서에도 보면 당시의 사람들은 이혼장만 써주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가르친 법이라는 것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내인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 남편이 이혼장을 쓸 수 있을까? 그 중에 하나가 아내가 남편의 명예를 더럽힌 경우인데... 그것 가운데는 아내가 밥을 하다가 잘못해서 좀 태워도 남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남편이 이혼장을 써주고 이혼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면서 남편도 아내를 위하여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인 것이지요. 
   
자녀들에 대한 권면 가운데서도 우리는 이런 측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면서... 부모들이 예수에게 자기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가 제자들에게 야단을 맞은 까닭은 어린이를 경시하는 당시의 풍조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라’고 권한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도 자녀들에 대하여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말씀인 것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사도 바울의 권면을 읽어본다면, 행복한 가정은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수고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부모로서 또는 자녀로서 저마다 할 몫이 있고 그것을 잘 이행할 때에 행복한 가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를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효성이 지극한 인물의 대표로서 우리는 룻을 이야기합니다. 모압에 사는 이방 여인으로서 당시 흉년을 피해서 그곳으로 이주한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당합니다. 그녀는 그런 슬픔을 잘 이기고 홀로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보살피기 위해서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베들레헴까지 따라가는... 그리고 그 곳에서도 시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를 좋게 본 보아스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고 위대한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지요. 사람들은 여기서 룻이 보여주는 시어미니를 향한 효성만을 이야기하지만, 룻기에서는 나오미 또한 자기의 며느리를 얼마나 아끼고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있는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이방인 며느리인 룻이 어머니를 위하여 정성을 다할 만한 매력과 넓은 마음을 가진 여성인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렇듯 가정의 행복이 어느 한 사람만의 힘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현실 가운데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 바울은 가족들 간에 서로를 대하는 법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해야하고,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 똑같은 가족이지만... 가족들이 서로를 대하는 데 있어서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각자가 가진 개성이나 특징들... 이런 것들이 존중되어야한다는 것으로 우리는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바울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합니다. ‘아니 복종이라니... 요즘 같은 남녀평등의 시대에...’ 이렇게도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복종하라... 영어성경을 보니 'give way'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길을 열어주다...’ 이런 뜻이겠지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다... 무릎 꿇다’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종합해보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남편을 높여주라... 남편의 기를 살려주라...’ 요즘처럼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사느라고 가뜩이나 위축된 남편이 어깨를 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아내들의 몫인 것을 우리는 여기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남편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여성의 권익이 무시를 당하는 사회에서 아내를 사랑해주고 인격적으로도 존중받는 느낌이 들도록 소중히 여겨주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님에게 순종해야한다고 권하고 있고... 우리가 이렇게 부모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신 다는 것이지요. 또한 부모들 특히 아버지 된 사람은 자기의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권면의 말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녀나... 이렇게 한 가족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하나같이 상처 입기 쉬운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저마다에게는 세상을 살면서 얻은 상처와 갈등과 삶의 고민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가장으로서 삶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과 집이 있습니다. 아내에게는 여성이라는 구조적인 장벽이 있고.. 이제 나이가 많으신 부모님들은 점 점 뒷전으로 물러나야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성장하며...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겪는 아픔과 고통이 큰 것입니까?
    
행복한 가정이란 이렇듯 가족들이 겪는 아픔이나 고통을 다 포용하고 끌어안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 그래서 내가 적어도 가정에서 만큼은 존중받는 느낌을 가지도록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들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족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했던 여러 가지 말들을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가정에서 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 결과를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을 하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가정에서 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그가 내 가족이기에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준다면... 그곳이 참다운 가정이며... 이렇게 가족들이 나누는 사랑 속에서 혹시라도 실패하고 상처를 입었다가도 다시금 세상을 향해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실 때에 마지막으로 만드신 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더불어 살게 하신 가정이라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될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떼어놓지 않으셨습니다. 살다가 서로 다투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가정을 통해서 그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하시는 뜻이 여기에는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남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가정이 바로 이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의 미래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좋은 가정을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가족들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가운데 천국과도 같은 가정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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