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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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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들으라 (신 6:4-9)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가 대단해서 교육열이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자녀교육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목적과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고, 방향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이라고 하면 많은 지식만 넣어주면 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닌데, 덮어놓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경쟁하는 수학경시대회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1등을 많이 합니다. 미국에 가서도 졸업할 때 대통령상을 받는 학생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집을 나설 때 한국의 부모들은 “얘야, 누구한테도 지면 안 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부모들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고 하고, 미국의 부모들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항상 도움과 유익을 주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환영받고, 그 사람만 있으면 분위기도 좋아집니다.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남에게 관심이 없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쳐서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배척을 받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남에게 도움을 주고 유익을 주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에서는 학생들을 선발할 때 이 학생의 고등학교 점수가 얼마인가로 선발하지 않고, 이 학생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를 보고 뽑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입생을 모집하면 어떤 학생은 382점, 어떤 학생은 150점, 이렇게 성적 차이가 커서 1학년 때는 고등학교와 비슷하게 기초부터 공부를 시킨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 지식과 성적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지만, 미래에 그 학생이 세계와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봉사하고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외웠느냐, 얼마나 똑똑한가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하버드 대학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할렘 가에서 살아가는 어떤 여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은 부모가 이혼하고 재혼하여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너무 가난해서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일도 많고, 학교에 가지 못해 가로등 밑에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버드 대학에 들어오고 싶어 지원했다고 합니다. 학교 성적은 엉망이지만 하버드에서는 이 학생을 신입생으로 받아주었습니다. 그것은 이 학생이 이런 가정환경에서, 이런 어려움과 가난을 이겨내는 것을 보니 세계를 향해서 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세기의 정치가요 위인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인기 절정일 때의 일입니다. 한 신문사에서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그를 가르친 선생님들을 조사해서 『위인을 만든 스승』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습니다. 처칠은 이 기사를 직접 읽고 나서 이런 메모를 신문사에 보냈다고 합니다. ‘귀 신문사의 조사에 치하를 보냅니다. 그러나 나의 가장 중요한 스승 한 분을 빠뜨렸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많은 선생을 만났고 많은 교수로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들은 나에게 지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에게 사람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선생들은 자기 나름의 뜻이 있어서 교육을 하지만 어머니만은 진정으로 사랑으로 가르치신 최선의 교육자이십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됨’을 가르쳐주신 어머니가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 경찰국이 ‘못된 자녀를 만드는 10가지 비결’을 내놓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① 아주 어려서부터 자녀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어라. 그러면 그 아이는 온 세상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자랄 것이다. 

② 자녀가 나쁜 말을 할 때면 그냥 웃어넘겨라. 그러면 자기가 재치 있는 아이인 줄 알고 더욱 악한 말을 하게 될 것이다. 

③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떠한 교육이나 훈련을 시키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 그러면 고상함은 사라지고 동물적 본능만 강렬하게 나타날 것이다. 

④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고 그냥 두라. 그러면 자동차를 훔치고 교도소에 갇혀서 사회의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⑤ 자녀가 정돈하지 않는 이불, 옷, 신발 등을 정리해 주어라. 그러면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⑥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책, 그림 등 어떤 것이든 마음대로 보게 하라. 그러면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⑦ 자녀들 앞에서 자주 싸워라. 그러면 다음에 그들의 가정이 깨져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⑧ 용돈은 달라고 하는 대로 얼마든지 주어라. 그러면 살아가는 동안 쉽게 부패하고 타락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⑨ 먹고 싶다는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다는 것도 다 마시게 하라. 그리고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다 해주어라. 그러면 한 번만 거절을 당해도 곧 낙심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⑩ 자녀가 교사나 경찰, 성직자의 의견과 대립할 때는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 주어라. 그러면 건전한 사회가 모두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우리 한국의 부모 중에는 이와 같이 교육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말 안 듣는 아이를 때렸다고, 학부모가 선생님을 때립니다. 그런 자식이 사람 노릇을 잘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무조건 공부만 잘 시키면 성공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그것이 실패의 원인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자녀교육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녀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만 잘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도 아이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지 않고, 교회는 대학 들어간 다음에 가도 되니까 일류 대학만 가라고 하면서 학원에 보내 놓고 이 자리에 오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사람 노릇 잘하고, 하나님을 잘 믿을 것 같습니까? 이런 부모는 자식을 멸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자기 노력으로 성공하고 축복받는다고 하면 성공 못 하고 축복 못 받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집안 식구들과 의사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습니다. 이때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열심히 가르쳐 주셨기에 서울대학 졸업반이 되었습니다. 다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들이 힘겹게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강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을 때 아버지가 건져 주셨지요? 

그리고 4년 전 서울 대학 게시판에 제 이름이 붙었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저를 얼싸안고 기뻐해 주셨고요. 모든 것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버지는 왜 저에게 죽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왜 한 번도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라 말하고 그 아들이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저 일류 학교에만 가면 되는 줄 알고, 자녀를 그렇게 키우다 보니, 예수 믿는 부모라고 하면서도 자녀에게 한 번도 예수님에 대해서 얘기해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녀가 믿음 없이 살다가 갑자기 죽음을 당하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부모가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되겠습니까? 자기 자식을 지옥에 보낸 부모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 복음을 우리의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의무입니다. 

자녀교육에 가장 성공하고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은 미국 전 인구의 3%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대학교수 중의 3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 중의 24%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뛰어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고 암송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평생 유일하신 하나님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정이 가장 중요한 신앙교육의 장소이고, 부모가 가장 훌륭한 신앙교육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녀들을 교육할 때 제일 먼저 교육하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시작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들으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쉐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쉐마 교육’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대문 밖에도 써 붙이고, 문설주와 기둥에도 써 붙이고, 이것을 읽고 외우게 한다고 합니다. 특히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는 이것을 읽고 외울 뿐만 아니라 이 글이 쓰여 있는 기둥에 입을 맞춘다고 합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누웠을 때는 저녁이고, 일어날 때는 아침입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암송을 한다고 합니다. 

이 쉐마의 내용을 보면 크게 셋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5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정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 그 믿음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5절 말씀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들어와도 복 받고 나가도 복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바치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쉐마의 내용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되면 곧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절에는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으려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잠언 7장 1~3절에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날마다 실천에 옮기고, 남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게 될 것입니다. 

쉐마의 내용 세 번째는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였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남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특별히 자기 자녀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고, 그래서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890년도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성질이 아주 급했고, 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후에 그 아이는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해서 군대에 들어갔고, 그 뒤 정치 활동을 하다가 1933년 44세의 나이에 독일의 절대 독재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으며, 자신도 56세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1890년 같은 해에, 미국 텍사스 주 데니슨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는 신앙이 신실해서 아버지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주었고, 가족이 모두 교회에서 적극적인 봉사를 했습니다. 이 아이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이 아이가 성장해서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합니다. 그의 이름은 아이젠하워로, 후에 미국 연합군 사령관이 됩니다.

1944년 6월 6일, 히틀러와 아이젠하워 두 명의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만났습니다. 11개월에 걸쳐 싸운 결과 히틀러는 지하 반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반면 아이젠하워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62세에 대통령이 되어 78세까지 살다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똑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두 사람의 길이 왜 이렇게 다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가정인가’의 문제입니다. 한 가정에는 하나남의 말씀이 있었지만, 한 가정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지만, 한 사람은 말씀 없는 가정에서 제멋대로 자랐습니다. 그것이 두 사람의 길을 이렇게 다르게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나고 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제부터라도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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