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효자 예수 (요 19:25-27)

  • 잡초 잡초
  • 350
  • 0

첨부 1


효자 예수 (요 19:25-27) 


어느 개구쟁이의 이야기입니다. 장난이 아주 심한 아이인데, 날이면 날마다 말썽을 부립니다. 화가 난 엄마가 야단칩니다. “내가 너 때문에 속이 썩는다. 정말이지, 내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그러자 개구쟁이가 씩 웃으며 이렇게 대꾸합니다. “아하, 이제 알겠다. 할머니가 왜 늙으셨나 했더니 엄마가 속을 많이 썩여서 그랬구나~”   

우스갯소리 같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자식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화를 내고 효도하지 않는다고 불만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부터 불효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입니다. 죄의 본성 상 배은망덕하기 쉽고, 효도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치사랑’은 못해도 ‘내리사랑’은 할 줄 안다는 사실입니다. 철부지 같아도 자식을 낳으면 부성애와 모성애로 자식을 사랑하고 돌봅니다. 요즘 젊은 엄마 아빠들을 보면, 자식 사랑이 옛날 어른들 못지않습니다. 만일 자식을 사랑하는 본성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상상에 불과하지만, 혹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신세대 엄마가 아이 젖을 주다가 하루 8시간 근무라며 밤에는 어아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든지, 주말에는 주5일 근무제라며 아이를 내팽개치고 밖에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난리가 날 겁니다. 내리사랑이라도 있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매년 어버이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것 때문에 늘 송구스런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다시 한번 상고하면서 우리 모두 불효자가 아니라 효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부모님도 기쁘시게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신인’(神人 God-Man)이라 부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굳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되어야 인간의 죄값을 대신해서 피를 흘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를 앞서 인도하는 모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모습으로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인간의 길’과 ‘성도의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발자취만 따라가면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은 효도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모델이 되십니다. 효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효자 중의 효자이십니다. 평생 그렇게 사시다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은 하늘의 아버지와 땅의 부모님에게 아드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두 방향으로 효도하셨습니다. 이를 구별해서 대효와 소효로 설명해 봅니다.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대효’(大孝), 땅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소효’(小孝)를 하신 겁니다. 소효라는 말을 썼지만, 결코 부모님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향한 것과 구별하기 위해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가의 자녀들이고, 육신으로는 부모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대효와 소효를 실천하신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하나님에 대해 부모님에 대해 효도를 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떻게 대효와 소효의 본을 보이셨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1]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 대효(大孝)

① 순종 :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늘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늘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셨습니다. 요5:19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5:19 “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무엇이든지 하나님 아버지와 의논하며 그 뜻대로 행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모습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십자가입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장면을 기억하시죠.(막14:32~42)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인성을 갖고 계셨으므로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를 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구합니다. 막14:36 “ ...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 ‘잔’은 십자가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 잔을 피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고, 마침내 순종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신 겁니다. 

② 충성 : 

예수님은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짧은 33년의 생애였지만, 마지막 운명하면서 모든 사명을 완수하셨음을 선언하십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는 말은 값을 완전히 지불(完拂 Pay Off)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기만 하면, 값없이 은혜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 앞에 효자이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로 당연히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효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가 한이 없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이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 뿐인가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고난과 역경을 당하면 불평할 때도 있지만, 사실은 다 주셨습니다. 고난조차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해서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8:32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요 한없는 은혜입니다. 

이렇게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몰라보면 정말로 큰 불효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이 가장 큰 불효인 겁니다. 사1:2~3 보면,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2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짐승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몰라보고 불신앙 가운데 있으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그야말로 무지 중의 무지요, 불효 중의 불효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해야 마땅할까요?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더 나아가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면 됩니다. 롬8:14~15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the Spirit of sonship)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내 맘대로 살아가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이 내 마음속에 임하시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른다면 당연히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죠. 

바울은 고전15:10에 자신이 사명에 그토록 충성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충성을 다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충성할 수 있는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크고도 놀라운데,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불순종하고 불충하면서 배은망덕 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아무쪼록 하늘의 아버지 앞에 순종과 충성으로 대효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2] 부모님에 대하여 : 소효(小孝) 

① 공경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리아나 그 남편 요셉에게 구세주이십니다. 그럼에도 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깍듯이 모시고 공경하셨습니다. 요셉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낮고 천한 목수였습니다. 요셉은 피도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시골뜨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를 육신의 부모님으로 공경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두 부분으로 나누면 사생애(私生涯)와 공생애(公生涯)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생애는 30세 이전 평범한 모습으로 보내신 기간입니다. 성경에 거의 언급이 안 되어 있는데, 그 중에 12세 때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눅2:41~51) 명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성전으로 갑니다. 가는 길 오는 길이 멀죠. 오랜 만에 마난 친척들끼리 어울립니다.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오갑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소년 예수가 어디 있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보이질 않습니다. 깜짝 놀란 부모가 되짚어 가보았더니 소년 예수가 성전 마당에서 랍비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한참 찾았다고 말하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눅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소년 예수는 어려서부터 하늘의 아버지를 늘 의식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육신의 부모님도 공경하고 순종했습니다. 눅2: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 비록 한 구절이지만,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지상 생애 내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효자가 없죠. 

② 봉양 :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말이 있죠.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남자가 바로 요셉이다! 왜 그럴까요? 그가 비록 일찍 죽었지만, 예수님의 품에 안겨 운명했습니다. 그 영혼이 얼마나 평안히 천국에 들어갔을까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에 떠난 후 예수님은 요즘 말로 소년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동생들을 보살폈습니다. 요셉에게 배운 목수 일을 하면서 그들을 부양한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구세주이지만 한 가정에서 아들로서 최선을 다하신 겁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더욱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세 번째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운명하는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그 경황 중에 모친 마리아를 살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그 현장에 끝까지 따라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녔건만, 그 순간에는 소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슬이 시퍼렇던 로마 당국과 유대 당국자들에게 반역자나 이단자로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이모(살로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사랑하시는 제자(요한) 등 몇 명만 함께 한 겁니다. 십자가 상에서 그들을 내려다보신 예수님은 아마 만감이 교차되셨을 겁니다. 특히 모친 마리아를 보시고 어떤 심정이셨을까! 마리아에 대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을 겁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고 얼마나 두려워 하셨을까? 해산하자 마자 헤롯왕의 핍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갈 때는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30세 되던 해 집을 떠나 내가 광야로 나갈 때는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핍박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는 얼마나 가슴이 졸이셨을까? 이제는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되니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듯 아프실까? 

마리아가 겪은 고통은 일찍이 아기 예수가 성전에 갔을 때 시므온이 예언한 바 있습니다.(눅2:25~35) 눅2:34~35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마치 칼로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정말 그랬던 겁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가면, ‘피에타’(Pietà)라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피에타는 이태리어로 비탄 혹은 슬픔이란 뜻인데,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린 후 끌어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해 놓은 겁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연한지! 

이와 같이 예수님 때문에 평생 고통을 겪어온 마리아! 예수님은 이제 그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합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시겠지만 곧 승천하셔야 합니다. 인류 구원의 대업을 위해 하는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26절~27절.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사도 요한)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여기서 ‘여자여!’ 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불손한 게 아닙니다. 헬라어로 ‘귀나이’(guvnai)인데, 여자에 대한 극존칭입니다. 우리 말에 일치하는 말이 없어서 직역한 것이지 결코 불손한 말이 아닙니다. 

이런 표현을 쓴 이유는 이제부터는 새로운 관계가 된다는 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육신의 어머니와 아들의 ‘사적 관계’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와 그 백성이라는 ‘공적 관계’가 되는 겁니다. 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는 지시는 겁니다. 동시에 육신의 어머니이기에 마리아의 여생을 걱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자 요한을 아들로 의지하며 살라고 당부한 겁니다. “어머니! 이제는 그가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를 의지하고 사십시오.” 이어서 요한을 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무슨 뜻입니까? “요한아, 이제 네가 나를 대신하여 어머니로 모셔 드려라. 부탁이다.” 그 후 요한은 마리아를 친 어머니처럼 모셨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중에는 에베소까지 모시고 가서 봉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 두 가지 있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으로 봉양하는 겁니다. 부모님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두고 십자가를 지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류 구원의 목적도 있지만, 마리아의 구원을 위해서도 그러신 겁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봉양은 이겁니다. 때때로 부모님의 영혼 구원을 위해 목사에게 심방을 요청하고 복음 제시를 부탁해 오는 분들을 봅니다.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그런 경우는 열일을 제치고 달려갑니다.

금년에도 여러 건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복음을 제시하면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죠. 연로하신 분의 경우나 병상에 있는 분의 경우는 직접 세례를 베풀기도 합니다.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마치고 나면 얼굴이 환해지십니다. 마치고 나면 자녀들에게 제가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효도하셨습니다!” 혹시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부모님 게십니까? 꼭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육신적으로 잘 해드리는 것이죠. 그런 생각을 해봐요. 저부터도 자식에게 하는 것 10분지 1만 해도 부모님에게 정말 잘 할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마음 쓰는 것, 물질적인 것, 말 한 마디 하는 것 모두 자녀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면서 부모님에게는 얼마나 하는가? 생각해보면 죄송할 뿐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반성하고 부모님께 잘 해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감사한 게 있습니다. 효도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당연한데도,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센티브를 주시는 것이죠. 신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효도는 부자 되고 장수하는 비결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려고, 건강 장수하려고 기를 쓰는데, 이런 비결 두고 뭣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말을 빌려 타고 급히 의사를 모시러 갑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그는 가난을 원망했고, 빨리 의사를 모시고 오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그때 그가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자 되게 해 주세요. 빨리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게 해 주세요! 그래서 어머니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돕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후일 자동차 산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겁니다. 효도하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효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아무쪼록 효자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대효, 부모님 앞에 소효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복을 누리고, 우리 자손들도 뒤따라 효자가 됨으로 자자손손 번성하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