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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제 5계명 (부모 공경) (신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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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계명 (부모 공경) (신 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제 5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고해 보겠습니다. 

엡 6:1절에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옳다'(디카이온)는 단어의 뜻은 '당연하다'는 뜻을 넘어서 '의롭다'는 뜻입니다. "부모 공경이 자식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다"는 뜻을 넘어서 "부모 공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의로운 것, 옳은 것, 바른 것이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 1902~1994)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대해 순종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 좋은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 됩니다. 대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자녀치고 마음씨 나쁜 사람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이 효를 실천하는데 완전하지 못하고 자신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면 우리는 겸허하게 말씀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부모 공경을 생각하면 늘 마음에 아픔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을 이미 세상을 떠나보내어 공경하고 싶어도 공경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과거에 자기가 부모에게 한 일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안 들어야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먼저 우리의 마음 정리부터 합시다. 제가 부모 공경에 대해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니까 벌써  굳어 있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얼굴을 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이 되어 따라합시다.

“하나님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이 시간 치료해 주시고, 제가 몰랐던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고, 부족해서 순종하지 못한 것 있으면 순종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순복하는 자세와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오늘 귀한 말씀에 은혜를 받고, 진리를 믿음으로 행하여 우리의 생활과 습관까지 변화를 해서 행복한 가정을 세우고 효를 실천하는 복 된 가정으로 세울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1. 제 5 계명은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 주신 계명입니다. 

성경에는 ‘율법’에 대한 각각 다른 형태의 이름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모세의 법'과 '예수님의 법'이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법'이라고 부를 때는 사용되는 ‘십계명’은 율법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 해당하는 도덕률을 일컬어서 '하나님의 법'이라고 하는데,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 규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낳으면 자녀를 이렇게 키우겠다.' 라는 부모님의 목표와 계획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들어 이 세상에 두신 하나님 역시  '피조물인 인간을 이렇게 가르치고 싶다'라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십계명은 바로 이 뜻을 표현하는 법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십계명을 주실 때 시내 산에서 모든 백성이 들을 수 있는 큰 우뢰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이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호렙산에 40주야를 금식한 모세에게 두 돌 판에다 이 언약의 법을 친필로 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구약 지성소의 언약궤에다 넣어서 철저하게 보관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친필로 써서 그것을 언약궤에 보관하게 하기까지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법에 구약의 다른 그 어떤 율법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가장 중요한 비중을 두고 계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십계명은 가장 중요한 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된 십계명은 예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모든 사람의 본성에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이 법을 주실 때 돌 판에다 새겨 주신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든 사람들의 양심에도 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폐지될 수 없는 법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아예  폐기해 버리셨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있던 도덕적인 인식이 다 없어졌다고 해 봅시다. 이 세상은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고, 정글 법칙만 통하는 그야말로 잔혹한 현실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디는 율법을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는데, 바울 같은 사람도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지만 그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모세의 법'은 주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구약의 율법들을 주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법, 정결 결례의 법, 유대 전통의 법 등을 말합니다. 

히10:28절에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우리 시대와는 별 관계가 없는 당시 유대인 공동체를 위한 법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법'은 성자의 법, 곧 은혜의 법, 믿음의 법, 속죄의 법입니다.

성부의 법인 율법, 공의의 법(롬 3:27-28)을 통하여 나의 영적 상태를 보고 “아 나는 죄인이구나!” 심각하게 깨달을 때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해 성자의 법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모든 사람의 죄용서가 아니고 제한 속죄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법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는 주님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모든 신앙 인물의 공통점은 강하게 성부 하나님의 법에 걸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성적 범죄에서, 성 어거스틴은 어머니 젖꼭지 물었던 죄까지도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행 2:36-38절을 보면 ‘베드로가 말씀을 증거 할 때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성부의 법이 임한 상태에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하였는데 그 순간에 성자 예수님의 법이 임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법’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재해석하고 적용한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그대로 받아서 순종하셨으며, 그 계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완성하신 그 계명 똑같이 행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받아서 우리에게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예수의 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대표적으로 십계명 중 예수님은 제 5계명을 모범적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는 제 5계명을 순종하기위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예수님은 10대 후반인지 20대 초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젊은 나이에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부양하는 가장의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33년의 전 생애 중 30세가 되기까지의 오랜 세월 동안 그  힘든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전 생애의 10분의 9는 제 5계명에 순종하는 생애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은 십자가 위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도 어머니 걱정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혼자 남겨 두고 가는 것이 너무 걱정스러워서  다소 생활의 여유가 있는  그의 제자 요한에게 자기 대신 그 어머니를 부양해 달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요19:26-7). 예수님은 제 5계명을 그만큼 철저하게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만들어진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법' 아래 놓여 있으며,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예수님의 법'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십계명을, 특히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시대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변하는  법이 절대 아닙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세계를 초월해서 영구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실천할 의무가 있습니다. 

수 천 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속력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 현대인에게도 동일한 구속력이 있는 하나님의 법인 것을 잊지 않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부모공경은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예수님의 법인 것입니다. 제5계명은?
  
2. 하나님께서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본문 신명기 5장  16절을 보십시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은 이 명령에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으셨습니다. 무조건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이  명령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 가장 엄중한 벌을  내리시겠노라 선언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5, 17절을 보십시오.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불효자는 ‘돌로 쳐 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제 3계명과 제5계명을 어긴 사람에게 내려지는 바로 그 벌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레위기 24장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을 함부로 모욕하는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훼방하고 거역한 죄나 하나님 자신을 훼방한 죄를 똑같이 다루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볼 때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을 부담스러운 명령으로만 알면 안 됩니다. 제 5계명에는 또 다른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5장 16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는 무조건적이고도 엄중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절대  거기에서 그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1989년 아르메니아의 대지진 때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서남아시아 대카프카스산맥 남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지진 직후, 한 아버지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향해서 뛰어갔습니다. 도착해 보니 기가 막히게도 학교건물은 빈대떡처럼 납작하게 무너져 있었습니다. 넋을 잃고 서있는 아버지의 귀에 자신의 아들에게 늘 했던 약속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무슨 일이 있든지 네가 이 아버지를 필요로 할 때는 내가 반드시 그 자리에 갈 것이다. 너의 곁에는 언제든지 내가 있어 줄게!'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눈앞의 현실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약속을 어기고 돌아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교실이 건물 뒤편 오른쪽임을 기억했습니다. 그 자리에 달려간 아버지는 그 지점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찾으러 온 ‘다른 부모들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고, 또 그 자리에 온 ‘경찰관과 소방관도 중단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약속을 되 뇌이며 파고 또 팠습니다. 정말 필사의 노력이었습니다. 잠시 쉰 것 외에는 38시간을 계속해서 파 내려가다 큰 돌 하나를 옮겼을 때 아버지는 그곳에서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알만드!' 그러자 아들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버지예요? 저 여기 있어요.'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아들의 고귀한 말이 들려왔습니다. '아버지! 제가 여기 있는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만약 우리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아버지는 반드시 나를 찾아와 구해주실 거라고요' 

우리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그 이름 "아버지"의 아름다운 헌신의 사례이며,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또 하나의 사건입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스물여섯 살의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네 살 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습니다. 모녀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뿐입니다.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 ‘스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 아기의 입에 물렸습니다. 이들 모녀는 매몰된 지 14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는데 어머니 스잔나의 손가락 열 개는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답니다. 이 모습이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바로 이런 분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희생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에에 보답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맙고 귀한 부모님에게 순종하여 공경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실 숨이 막힐 정도로 급하고 바쁜 핵가족 현대 사회에서 나이 든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저도 팔십이 넘기까지 사신 어머니를 모셨기 때문에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 조간신문에는 충격적인 기사 한 토막이 실려 있었습니다. ‘경남에 있는 어떤 가정에 70대 초반 정도의 어머니 두 분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기사입니다. 치매 현상이 있던 어머니인데 자녀들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에 뛰어내리고 만 것입니다. 아무리 치매에 걸렸다 해도 노인들에게는 눈치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자기를 얼마나 불편해 할까?'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따금 자녀들이 그런 내색을 할 때면 모른 척 하고 어쨌든 참아보려 애썼지만 급기야는 마음속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내가 죽자. 내가 죽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길이다.' 하고는 뛰어내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누가 나이 드신 부모님을 제대로 잘 공경한다고 큰소리 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공경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남겨 두지 않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하면 좋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 해도 괜찮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물론 연세 드신 어머니 아버지를 공경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효를 다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 5계명을 ‘인간의 도리’와 ‘준엄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축복이 따른다’는 점에서 반드시 부모공경은 실천해야 합니다. 

3. 성경에서 예언한 말세의 징조는 ‘부모 경시 풍조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고통 하는 때, 말세의  징조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거역한다"는 말은 "인륜의 정마저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낳고 키워 준 고마운 정마저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벌써 우리 주변에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두려워 떨면서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 중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핑계로 부모 공경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드려야 할 재정적 지원을 하나님에게 드렸기 때문에 자기 부모님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통을 따랐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고르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행위를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어미나 아비를 우습게 여기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너희는 부모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하고 말하면서, 진정으로 부모에게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이 바로 너희 인간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7:10-13)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걱정을 끼치게 하지 않으려고 “하기 싫은 말, 보여주기 싫은 모습”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폐 끼칠까봐 ‘아프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며, ‘외롭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며, ‘귀찮게 할까봐 먹고 싶다고 말하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장자에게만 부모를 모시는 책임을 미루지 말고, 부득이 장자나 다른 형제가 모시게 되면 또 다른 형제들은 부모 모시는 형제를 위로해주고,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서로가 대 주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장자만 모셔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선진국처럼 양로원  제도가 제자리 매김을 하기까지는  아직도 세월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들고 연약하여 의지할 데 없는 부모를 양로원으로 내몬다는 것은 천인공노할 죄입니다.

말년에 부모를 슬프게 하면 안 됩니다. 말년에 있는 부모를 슬프게 하고 구박하고 마음으로 괴롭게 하면 그 죄 값이 전부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오랜 세월 동안 부모의 은덕을 입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훈 님의 <어머니> 라는 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 키 작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머리로 모든 짐이고 다니셨기에 
몸 야윈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먹을 만한 것은 자식에게 다 주고 입맛 없다하시며 허리띠 졸라 매셨기에 
병드신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리 아플 때 주님! 이 아픔 내게 주고 내 건강 아이에게 주십시오 기도하셨기에 
정신이 없으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식구들 몫 다 챙기시느라 자신 몫 잃고 살으셨기에 
서둘러 이 세상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평생 짐 지고 사셨기에 행여 우리에게 짐이 되실까 봐 

이 사랑의 빚을 깨닫지도 못하게 사랑만 주고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 공경하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옛날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이 말씀 그대로 장수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잘 공경한 룻처럼 하나님께서 굉장한 축복들을 주신 사례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잘 공경하면 나중에 우리 자식으로부터 틀림없이 그와 같은 공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를 경시하는 풍조가 날로 팽배하는 요즈음과 같은 때에 이것만큼 큰 축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핑계거리들을 내세우지만  그것에 미혹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니까" 하고 따라가야지  "세상이 이러니까" 하고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이 이러니까" 하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손에 성경을 들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닙니다. 손에  성경을 들고 있으면서 "세상이 이러니까"하고 좇아가는 사람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부모님을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하여 공경해야 마땅한 줄 믿습니다. 그러면 약속 있는 첫 계명인 5계명을

4. 어떤 자세를 가지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에는 적어도 섬김에 있어서 세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먼저

1) 부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공경의 최우선은 감사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한테 이중적으로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빚입니다. 부모가 없었으면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생명은 부모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이가 60, 70이 된다 해도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90, 100세가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지고 있는 또 한 가지 빚은 양육 받은 빚입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미성년 기에 수십 년 동안 희생으로 돌보고 먹이고 가르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까지 적어도 20년 이상 부모의 은덕을 입어야 가능합니다. 동물 가운데서 인간처럼 오랫동안 부모 밑에서 보호를 받는 동물은 없다고 합니다.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부모의 은덕을 입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공경하라"는 말에는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공경은 순종에서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을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임종소원'을 말했을 때 수백 km가 넘는 먼 곳,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까지 가서 장사 지냈습니다. 이것이 순종의 자세이며, 효도입니다. 

당시 왜 야곱이 이런 유언을 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한 유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말씀을 당장에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식한 말도 다 경륜이 있으신 말입니다. 요즘처럼 세대 차를 크게 느끼는 세상에서는 구시대 사람처럼 비취는 연로하신 부모에게 더 이상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기 쉽습니다.  부모님의 말을 체면상 들어주기는 하지만 자기에게 어떤 도움이 될 만한 말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의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심지어 우리가 이런 입장에 있을 때에라도 부모를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매우 흥미로운 데이터를  하나 본 적이 있습니다. 펜실바니아 주립대학에서 가르치는 ‘워너 샤이’ 박사가 30년 동안 연구를  한 결과 보고입니다. 30년 동안 4천명을 대상으로  해서 연구한 결과이나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 연구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나이와 인지능력의 변화의 상관관계였습니다. 쉽게 말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지능이나 감각 따위가 어떻게 변하느냐 하는 것을 연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내 놓은 결론은 참 놀랄만한 것입니다. 특별한 질병이 있어서 신체가 약해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75세까지 인지능력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75세까지는 머리가 둔해진다든지 말이 어눌해진다든지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75세를 넘어간 사람이라 해도 현저하게 저하되기 시작하는 것들이라고는 기억력이나 정보처리 능력, 언어감각, 공간감각과 같은 것들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75세가 넘어가도 저하되지 않고 오히려 더 증가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 지식을 이용하여  어떤 사건을 놓고 판단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지혜는  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  발전할 수도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데이터를 보면서 '야, 성경  말씀이 얼마나 진리냐?' 하고 다시 한 번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습니다. 그것이 욥기 12장 12절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과학적으로 이 말씀이 증명이 된 것입니다. 4천명을 대상으로 30년 동안 연구한 결과라면 증명이 된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나이 드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컴맹’이고 '인터넷'이라는 말을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구시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첨단의 지식을 가지고 있든, 부모님의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사리판단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든 간에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나리 유괴 사건’은 1997년 8월 30일 박초롱초롱빛나리(여성, 당시 8세)가 임신 중인 여성 ‘전현주’에게 납치되어 살해된 사건으로 전현주는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현재 복역중에 있습니다.

박나리 양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전현주는 아버지가 "너, 그 남자하고 결혼하면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것이 아무리 사랑의 문제여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도  인생 경험을 오래 한 부모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반대할  때는 한번쯤 진지하게 고려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현주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을 하는 남편과 결혼 뒤, 친정으로부터의 재정 지원 없이 살면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못해 사채와 신용카드 빚을 만들었고, 집이 차압당하기 까지 했습니다. 당시 경찰 조사에서는 470만원의 빚이 있다고 했으나, 검찰 조사 결과 3천만원의 빚이 있고 2천만원은 급히 갚아야 하는 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현주는 1997년 8월 30일 오후 3시경, 서울 잠원동 한신 8차아파트 부근 뉴코아문화센터에서 영어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초등학교 2학년생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인했습니다. 이 후에 8월 30일 오후 6시, 31일 오후 3시 52분, 밤 9시 3분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명동과 남산 부근의 공중전화에서 ‘박초롱초롱빛나리’의 부모에게 2천만원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고, 전화 뒤 명동 커피숍에 있다가 경찰의 검색에 걸린 전현주는 위기의식을 느껴 박양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부모의 권유와 반대에도 자기 마음대로 결혼하더니 그  결과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까? 임신부가 돼서 그와 같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신세대만 똑똑한 것 아닙니다. 구세대도 똑똑합니다. 따라서 자식이라면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공경은?
  
3) ‘부양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됨이란 은혜를 알고 살때 가능합니다. 사람이 받은 은혜를 깨달으면 그것 때문에 사는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사람으로 태어나 받은 최고의 은혜가 있다고 하면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부모님은 내게 물려준 유산이 많지 않다고 해도, 그분이 내게 가르쳐 준 교육이 높고, 깊지 못하다고 해도, 그분들을 세상에 내세워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나의 부모가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게 생명을 주셨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나의 부모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고, 나를 양육해 주셨다면 그리고 내게 하나님을 믿도록 가르쳐 주셨다면 이 중에 한가지라도 해당된다면 우리 부모님은 공경 받고 사랑 받고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인생은 누구나 세월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모가 늙어 자립할 능력이 없어지고 육신마저 병이 들면 자식은 그 부모를  극진히 부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주범이 되어 있습니다.

장수 인구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젊은 사람들은 갈수록 여유가 없어집니다. 결혼하면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 외에는 그 누구도 뚫고 들어갈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아무리 집에 80평, 100평이라도 남편이나 아내를 위한 공간이나 자녀들을 위한 공간은 있어도 나이 든 부모를 모실만한 공간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집이 크고 넓어도 모실만한 공간이 한 군데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할 수 없어 나이 든 부모를 모시게  되면 마치 이빨 사이에 끼인 무엇처럼 언제든지 불편해하고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 사회요, 요즈음 젊은이들의 모습입니다.  

4) 공경하려면 부모님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부모님은 다 들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들어드릴 차례입니다. 하루에 10분만이라도 대화를 해 주어야 합니다.
  
하버드대 가족학 교수인 에드워드 와그너는 '한국의 가족 제도야말로 21세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우리의 가족제도에서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장차 우리 눈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5) 부모를 공경하려면 부양하되 채워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는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수없이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우리가 채워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나이가 들면 약해지고 필요한 것이 많아집니다. 그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효도입니다. 언제나 부모님의 주머니에 여분의 돈이 남아있도록 넉넉하게 용돈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듯이 또 다른 십일조를 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리면 좋겠습니다.

따라합시다. “감정으로 순종하려 하지 말고 의지로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아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이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죄와 버금가는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며, 불효할 때 하나님은 저주를 약속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신 27:16, 잠 30:17, 출 21:15-17) 주님께 모범을 보여 주셨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첫 계명이며, 말세에 세상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구별되었으니 부모를 공경하되 감사와 순종의 자세를 가지고

부모님이 적적하시지 않도록 대화해 드리시고 부족한 것들을 부모님들의 필요를 채워 부양하는 효를 다하는 복 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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