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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효의 기독교 (마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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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 기독교 (마 15:4)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한국인의 도덕과 윤리는,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학생이 스승을 폭행하고, 사병이 직속상관을 사살하는 현실을 낳게 되었다. 직장에서는 노동자가, 사장을 폭행한다. 윤리가 뒤집혀, 거꾸로 가는 세상이 되었다. 

자식들이 늙으신 부모님을 학대함으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부끄럽게도 한국은 학대 수준이 세계 최고이다. 동서양에서 전통적인 효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어떻게든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동양에서는 줄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오히려 늘고 있다. 

또 한국은 미혼 여성들이, 효자 배우자를 싫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혼여성 중에 61%가, 자기 배우자로 '지극한 효자'는 싫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효자가 아닌 사람을 원한다는 말이다. 효자는 기본적으로 인성교육이 잘 된 사람들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인간관계의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젊은 여성들이, 인성교육이 잘 된 배우자를 기피하고, 잘못된 남편 감을 선호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인성이 잘못된 사람들끼리 결혼해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통계는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1위를 만들었고, 최저 출산율 세계 1위에도 영향을 주고있다. 

왜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가? 부모가 마땅히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을 가르치기 않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아이에게 가르칠 것은, 바로 효도교육이다. 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가치이며 모든 행위의 근본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기 위해, 인성교육을 강조해 왔다. 

그 인성교육의 핵심이 효였다. 효는 한국인의 윤리와 도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양학문에 밀려, 효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실천하지 못했다. 한국 기독교도 믿음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의 기본인 제5계명, 효를 잘 가르치지 못했다. 

현대 교회들은 아이들 교육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다. 그런데 열매가 별로 없다. 왜 기독교 가정에서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많은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부모가 자녀를 제자로 만들지 못했고, 효를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1. 그러면 효란 무엇인가? 

동아국어사전은 효를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고, 효도는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이다. 동양에서는 한자로 그 뜻을 풀이한다. 효(孝)라는 글자는, 늙을 노(老)와, 아들 자(子)의 합성어이다. 
그 형태가, 아들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양이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섬기는 모습을, 효의 어원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효자는 부모님을 잘 섬기는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 말할 때 그렇다. 더 넓게 말하면, 가정 공동체에서, 가족 관계의 위계질서를 따라, 서로 공경하고 사랑함을 말한다. 

더 넓히면 부모와 웃어른들을 공경하고, 자신의 조상들을 존중하고,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말한다. 효의 원리는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 최초의 인간관계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데서 시작된다(창1:26). 
본문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다. 그러나 원문에는 부모(    ,        )가 아니라, 아버지(  ,      )와 어머니(  ,      )다. 유대인은 산을 '하림(    )'이라 하고, 부모를 '호림(    )'이라고 하고, 교사는 '모림(    )'이라 한다. 

그래서 유대인은 부모하고 교사는, 산과 같기에, 보통 사람들보다도 높이, 우뚝 솟아 있다고 생각한다. 호림은 하라(  , 잉태하다, 아기를 배다, 아기를 갖다.)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아버지는(아브,  ) 조상으로 이어진다. 복수형 '아버지들'(아보트,    )이 되면 조상으로 이어진다. 
아브라함은 모든 아버지의 대표다. 아브라함부터 올라가면, 아담, 더 올라가면 창조주 하나님까지 올라간다(눅3:38). 따라서 아버지의 공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경과 경외로 이어진다. 반면 어머니가 자녀를 낳고, 또 낳으면 형제요, 친척이요, 민족이 된다. 

따라서 효가 바로 서지 못하면, 민족의 번성과 평화도, 힘들어진다. 그만큼 효가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효는, 유교에 뿌리를 두기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부적합한 것들이 많이 있다. 조상을 우상처럼 숭배하여, 제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점이 그렇다. 

그러면 기독교의 효는, 한국의 전통적인 효와 무엇이 다른가? 동양의 효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윤리만 있지만, 기독교의 효에는, 영혼구원과 윤리가 함께 있다. 성경의 대표적인 효자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영적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하고 공경하셨다. 
또 육신의 아버지를 공경했다. 목수 일을 도와서 일하셨고,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어머니의 노후 대책을 제자 요한에게 맡기시는, 타고난 효자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2가지 측면의 부모, 즉 영적인 하나님 아버지와, 육적인 부모, 요셉과 마리아를 모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효의 순서는, 하나님 공경에서 시작하여, 부모님 공경, 그리고 이웃사랑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나님 공경, 부모님 공경, 그리고 이웃도 사랑해야 한다. 성경의 효는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신5:16)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예수님도 제5계명을 근거로 본문을 말씀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유대인들은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죽음이 따르는, 엄청난 형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효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님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며,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는 일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부모님을 공경하되, 주님을 벗어나면 죄가 되기에, 주님 안에서 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공경의 대상이, 단지 부모님에게만 한정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웃어른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그들을 공경해야 한다. 부모, 조부모, 형제 자매, 장인 장모, 친척들이 모두 다 포함된다. 그런데 공경의 의미는, 예절을 넘어, 그들을 섬기고, 필요를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렇게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하였다. 그래서 유대인은 친족의 단결력이, 대단히 강하다. 자기 민족의 단결력 역시 대단하다. 물론 옛날 한국인도 혈통적 단결력이 대단했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이 무너지고 있기에, 너무나 안타깝다. 

2. 그러면 누구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성경에는 효의 대상은 2가지 측면이 있다. 
(1) 혈통적 측면 (2) 영혼의 스승의 측면이다. 이는 동양에서도 비슷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이 없을 때, 일반 계시인, 인간의 양심의 법을 통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먼저 동양의 효의 대상은,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한 몸으로(君師父一體) 생각했다. 동양에서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제일의 공경 대상이며, 순종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훈과 지도를 받기 위해서다. 이것이 충효사상으로 확대되었다. 국가에 대한 충은, 가정에서 지키는 효의 확대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모두, 인간의 인성 교육을 위한 수직 문화만을 가르쳤다. 그들은 현대의 전문직 학문은 가르치지 않았다. 가르쳐 주더라도, 수직 문화적인 인성교육이 잘된 사람인지 시험해 보고 가르쳐 주었다. 스승에 대한 권위는 대단했다. 그래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가르쳤다. 

성경이 가르치는 효의 대상은, 군사부일체의 처음 대상인 임금 대신, 하나님을 대치시키면 된다. 즉 하나님과 아버지와 스승은, 한 몸이다(神父師一體)가 된다. 따라서 성경에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랍비(선생)가, 가장 큰 존경의 대상이며, 순종의 대상이다. 영원한 생명, 구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랍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섬기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버지라는 단어를 정의할 때 "아이를 낳은 사람이 아니고, 키우고 교육하는 자"를 말한다. 이는 혈통의 부모보다, 교육에 충실한 부모를, 더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대교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녀를 낳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신앙을 전수했다면, 아버지는 랍비보다 더욱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교육을 하지 못해서, 랍비가 그 교육을 대신했다면, 랍비가 더 존경받는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쳐 준, 영적 스승도 아버지라고 불렀다. 즉 영적 아버지라는 뜻이다. (왕하2:12)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딤전1:2) 디모데는 스승 바울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처럼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육의 혈통보다 영의 혈통을 더 중시했다. 

이러한 관계를 서양문화에서는, 잘 이해할 수 없다. 서양의 인간관계 문화는, 민주주의에 기초한 수평적인 인간관계다. 모든 인간의 가치는, 법 앞에서 평등하다. 그래서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행복 추구권 및 인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동양의 인간관계 문화는, 수직적인 인간관계다. 
왕과 신하,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모두 위아래가 분명한 수직관계다. 가정에서도 개인보다, 가정과 가문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의견을 더 존중한다. 그래서 서양인의 사고 구조는 수평적이지만, 동양인의 사고 구조는 수직적이다. 

서양에서는 윗사람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존댓말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 스승, 대통령에게도, 당신(You)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가 높으신 분이기에, 함자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형과 누나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대인관계에서도 미국은 개인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만, 우리는 이름대신, 상대방의 직함을 부른다. 사장님, 교수님, 박사님, ○○○ 아버님으로 부른다. 우리의 문화가,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듯이, 성경의 문화도 동일하다. 어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의 스승이라고 부른다. 또 동양에서는 나이 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세가 많은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자기가 존경받을 행동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약자로 분류되어, 보호의 대상이 된다. 

결혼도 서양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 개인이 결혼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가족과 가족끼리의 혼인이다. 그래서 결혼 당사자들이, 양가 부모님의 승낙을 받음이 중요하다. 그러면 동양과 서양 중, 어느 것이 더,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관계의 원리에 더 가까울까? 동양의 수직적 인간관계이다. 

그래서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왕국의 개념이다.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면, 오류가 없고, 공의와 사랑이 균형 있게 나타난다. 

가정은 성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가정이라는 성전에서, 제사장은 아버지다. 제사장인 아버지는 4가지 역할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교사라는 의미다. (잠4:1-2)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 

이 '선한 도리'는 바로 성경말씀을 뜻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상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성경의 사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신본주의 사상이다. 유대인들은 선한 사상을 율법의 도리라고 한다. 인간이 지켜야 할 핵심 율법이, 바로 십계명이다. 

3. 효를 강조하는 기독교
 
십계명은 두개의 돌판에 새겨졌다. 십계명이 수직적인 면과, 수평적인 면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면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해야 할, 대신관계에 관한 4가지 계명들이다. 

수평적인 면은, 인간들 사이에 지켜야 할, 대인관계에 관한 4가지 계명들이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2가지로 말씀하셨다(마22:37-40). (1)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과 (2)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사람에 대한 윤리적 계명이다. 

먼저는 하나님, 나중은 사람관계다. 십계명(출20장)에서,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4계명만 긍정적이다. 5-10계명은 인간관계를 말하는데, 그 중에 5계명만 긍정적인 계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계명이다. 

그 이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철저히 지킨다면, '하지 말라'는 나머지 계명들은 자연히 안 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이 첫 돌 판의 마지막 계명으로, 5계명을 주신 이유는,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모공경'을 하신 명령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출21: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하였다. 

신명기에는 불효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신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그래서 예수님도,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여기서 비방한다는 말은 카콜로게오(        )로, 카코스(무가치한, 유해한, 나쁜) + 로게오(말하다)의 합성어다. 

따라서 부모님을 나쁘게 말하거나, 무가치한 존재로 만든다면, 죽이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계명은,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계명이고, 사람과의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은 이 두 계명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레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왜 하나님께서, 4계명과 5계명을 바꿔서 말씀하셨는가?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말씀을 받게 되고,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의 효는, 육신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도, 아버지라고 부른다. 육신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는, 신성이나 능력에는 차이가 있지만, 아버지라는 점에서 동질성이 있다. 

사역에 있어서는, 육신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같다. 히브리어로 아버지를 아브(  )라고 하고, 아람어로는 아바(  )라고 한다. 여기에는 4가지 뜻이 있다. (1) 공급자 (2) 보호자 (3) 인도자 (4) 교육(훈계)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공급자요, 사탄의 위험에서 보호하시는 보호자요,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인도자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교육하시는 교육자이시다. 

유교는 효를 매우 강조한다. 그런데 유교에서는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치는가? 2가지다. (1) 보본(報本) : 생명을 주신 부모님에게 보답하고,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2) 보은(報恩) : 지금 살아 있기까지,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 "부모가 아니면 네가 이 세상에 어떻게 나왔겠니?"하며, 부모의 은덕을 알라면, 요즘 아이들은 "누가 날 낳으라고 했어요? 왜 나를 낳아, 매일 공부에 시달리게 해요, 나를 낳아주려면 똑똑하고, 예쁘게 좀 낳지, 왜 키가 작고, 뚱뚱하게 낳았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소중하고, 본질적으로, 생명의 공급자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 귀한 생명을,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 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신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왜 부모를 경홀히 않으면, 죽이라고 하는가? 자기를 낳으신 부모를 모욕하고 업신여기면, 부모를 통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모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은 권위를 주셨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경제력이 없어도, 부모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부모를 거역하면, 천륜과 인륜을, 동시에 거역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유교보다, 더 적극적이고 깊다. 자녀가 어른들을 업신여기는 이유는, 진화론이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자신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믿는데, 어떻게 짐승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이 부모를 창조하신 목적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소원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와 함께 천국 확장을 하는 일이므로, 순종할 때, 천국확장이 이루어진다. 

유대인들은 순종을 잘 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도 순종했다. 번제 사건은 아브라함만 시험한 것이 아니라, 이삭의 순종도 시험한 큰 사건이다. (창50:24-25) 요셉은 죽으면서, 너희가 이곳을 나갈 때,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고 하라고 했다. 

유대인은 약400년 동안 유해를 보관하고, 40년 간 광야에서 유랑할 때도, 그 관을 매번 짊어지고 다녔다. 마침내 여호수아가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 지낸다(수24:32). 요즘 자녀들에게 이러한 일을 시키면,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이처럼 기독교는 효의 종교임을 기억하고, 효도하는 자가 되자. 

효를 행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2가지를 주신다. (엡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유대인의 축복은, 부모님께 순종하는데 있다. 오늘 우리도 부모님께 순종하므로, 우리가 원하는 잘되고 장수하는 복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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