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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 (삼상 2: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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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중히 여기리라 (삼상 2:27-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사무엘상 2:30)

우리의 시대는 남북 간의 문제와 국제문제, 또는 경제문제와 함께 정치문제, 그리고 각종 사회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성의 문제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봅니다. 그런데 이 인간성의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가정은 인간성과 도덕과 종교,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을 세우게 하는 산실입니다. 가정의 문제와 인간성의 문제는 별개가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가 곧 인간성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문제는 가정이 무너져 잘못된 인간성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정문제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 ‘나단 액커맨’이란 사람은 자기는 일생동안 가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적인 문제를 연구해온 터요 심리적 요법의 선구자이지만 오늘날의 가정문제가 너무나 암담하기에 속수무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훌륭하고 위대하며 가치 있는 인간성을 만들어내는 소중한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존중해 주시는 가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은 무너져버리고 망한 한 가정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엘리’라는 제사장의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 후 사사시대 후기 지도자의 가정으로서 존경받아야 할 가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장의 일을 위임받은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가정입니다. 그럼에도 이 가정은 무너지고 망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가정의 실패의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시는 가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만들어지는 곳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2:12)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엘리의 두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린 제물 중 제사장의 가족에 돌아갈 분량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탐욕에 따라 자기의 몫으로 탈취해 갔습니다. 기름을 제단에서 태우고 제물을 가져가야 하는데도 기름을 태우기 전에 제물을 챙김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규정을 무시했습니다. 더구나, 이 일의 부당함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폭력으로 협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음란한 행위를 행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의 가정에서 자랐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같이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의 규정도 함부로 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성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데에 습성화 된 것입니다. 엘리 가정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세워주는 가정이 되지 못했습니다.
  
구세군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캐서린 부스’(Catherine)는 슬하에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일꾼들로 성장했습니다. 캐서린 여사가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의 눈에 위대하게 비친 이유는 남편을 위한 내조도 있었지만, 여덟 명의 자녀 모두를 훌륭하게 키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캐서린 여사는 그녀의 자녀양육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악마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을 배우기 전에 좋은 습관을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생각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생각을 가르치고, 악마가 나쁜 지혜를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고, 악마가 사단의 거짓과 위선과 악을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마음속에 악마의 역사와 죄악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와 능력을 먼저 배우고 갖추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34:9-10)
  
가정은 신앙을 바로 세워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정을 존중해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나누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2:29)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엘리 제사장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잘못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부부의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바른 사랑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사랑은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리적인 사랑(biological love)입니다. 생리적인 작용에 의한 사랑입니다. 남녀의 성적인 사랑입니다. 본능과 종족번식의 혈연에 따른 사랑입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성애입니다. 동물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데 이와 같은 사랑입니다.  
  
둘째는, 인도주의적인 사랑(humanistic love)입니다. 인간적이고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사랑입니다. 자녀들을 애완동물 다루듯 하지 않고 인간적이며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아내나 남편을 생리적 기능보다는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회적인 사랑(socialogical love)입니다. 사회적 꿈을 두는 사랑입니다. 자식을 사랑할 때에 가문을 이어갈 자이며 사회의 꿈의 대상이 되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부사이에서는 성공의 조건에 합당하기에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부모가 가문과 재산을 물려주었기에 그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넷째는, 자기중심적인 사랑(self-centered love)입니다. 자기 사랑의 대용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성취욕의 대리용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의 모든 사랑들은 온전치 못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들이 온전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사랑이 있습니다.  
  
영적인 사랑(spiritual love)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는 데서 오는 사랑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시기에 아버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지니라”(요일4:21)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제를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는 데서 나타나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창조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고전13:6)으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가치관에 두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 안에는 경책하는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엘리는 가정은 이 영적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엘리는 자녀 사랑을 생리적이고 사회적인 사랑으로만 이끌었습니다. 귀여워하고 좋아하고 예뻐만 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사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직위만 물려주면 되는 사회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악에 방치해온 잘못된 사랑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아들들을 악하고 패역한 자로 만드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사랑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영적 사랑을 가지고 참된 사랑을 세워가는 가정을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고 존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정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가정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1-4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23)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엡 5:25)
  
이 모든 말씀은 가정에서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교훈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 도다󰡓(삼상2:23-24)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의 가정은 공경과 순종하는 의무와 책임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엘리가 아들들을 하나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데서 무너지지 않는 가정이 됩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자녀는 부모에 대해서 부부는 서로에 대해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데서 가정은 무너지지 않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의무와 책임을 잃어버린 가정은 이미 가정의 가치와 질서가 무너진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성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있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돌보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후 그 제자는 자기 집에 마리아를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어머니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의무와 책임이 있는 가정에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정 만들기’ 중에 있는 글을 읽어드립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의자와 책상과 소파가 아니라 그 소파에 앉은 어머니의 미소입니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푸른 잔디와 화초가 아니라 그 잔디에서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동차나 식구가 드나드는 장소가 아니라 사랑을 주려고 그 문턱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설레이는 모습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부엌과 꽃이 있는 식탁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으로 터질 듯한 엄마의 모습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고 깨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애정의 속삭임과 이해의 만남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바다와 같이 넓은 아빠의 사랑과 땅처럼 다 품어내는 엄마의 사랑 있는 곳, 거기는 비난보다는 용서가 주장보다는 이해와 관용이 우선되며 항상 웃음이 있는 동산이 가정입니다./ 가정이란 아기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노래가 들리는 곳,/ 가정이란 따뜻한 심장과 행복한 눈동자가 마주치는 곳,/ 가정이란 서로의 성실함과 우정과 도움이 만나는 곳........... ⌋
  
이 글은 의무와 책임이 있는 가정의 행복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괴로움과 슬픔에 가득 찬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 평안과 하나님의 응답을 기원할 만큼 사랑과 긍휼이 풍성한 사람입니다. 사사 시대의 혼란기에 제사장과 사사로 선택될 만큼 신실한 믿음을 갖춘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무엘에게 시기하지 않고 사무엘을 지도자의 그릇으로 인정한 큰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실패자가 됐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가정에게서 제사장의 영광의 자리를 거두셨습니다. 엘리 가정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엘리는 이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며느리는 아이를 낳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30절 하/ 새번역)
  
가정의 역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존중히 여기시는 즐겁고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가정은 인간성과 도덕과 종교,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을 세우게 하는 산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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