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최고의 효도 (잠 23:22-26)

  • 잡초 잡초
  • 346
  • 0

첨부 1


최고의 효도 (잠 23:22-26)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최요섭 목사님이 쓴 ‘어머니는 누구인가’ 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는 백과사전이다 아이들의 질문에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해가 지면 밤은 어디에 가 있는지, 제트기가 어떻게 날아가는지, 한국의 수출품이 무엇인지, 고양이 새끼 어디서 나왔는지 척척 대답한다. 어머니는 인류 수리공이다. 자전거 체인에 말려든 한쪽 바지가랑이를 찢지 않고 꺼낸다. 셀로판테이프와 머리핀만 가지고 대부분의 고장은 다 수리한다. 

어머니는 배관공이다. 목욕탕에 물이 안 내려가는 곳에 휴지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안 보고도 안다. 어머니는 간호원이다. 새의 날개가 부러진 것을 치료할 줄 알고, 흔들리는 이를 아프지 않게 빼낼 줄 알며, 한밤중에도 아픈 귀를 고칠 줄 수 있다. 어머니는 위대한 탐정이다. 행방불명된 내 양말짝을 용케도 찾아낸다. 가위나 회전등이 없어지면 범인이 자백하기 훨씬 전에 이미 찾아낸다. 어머니는 피곤할 줄 모르는 재봉사다. 각종 배지를 달고 청바지에 붙일 괴상한 장식을 고안해 낸다. 

날마다 잃어버린 단추를 달아 놓는다. 어머니는 최선의 교육자이다. 대부분 좋은 것은 엄마의 무릎에서 배웠고, 대부분 나뿐 것은 적어도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웠다. 엄마의 교수법은 아주 우수해서 무릎교실에서는 한 명도 낙제하는 일이 없다. 엄마의 교육만큼 오래 가는 것이 없다. 아기의 침대에서 시작한 것이 무덤까지 간다. 엄마는 애인이다. 모든 인간의 첫사랑은 엄마이다. 처음 주택은 엄마의 가슴이다. 처음 침대는 엄마의 팔이다. 

엄마의 무릎에서 처음 기도를 배워 그것이 인간의 처음 예배당이 된다. 어머니는 고향이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그 마음은 어머니께로 돌아간다. 외로워도 슬퍼도 그 마음은 어머니를 찾는다. 아버지를 찾으며 우는 아이는 어딘가 잘못됐다. 고향이 주는 그리움과 평화와 안심이 모두 어머니에게 있다. 어머니는 아이의 하나님이다. 아이가 이 우주 속에서 어머니만큼 믿는 대상은 없다. 어머니만큼 의지하는 대상도 없다. 어머니만 곁에 있으면 모든 것(아빠까지 포함해서)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눈에 안보여도 어디 있는지 알고, 말을 안 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어머니는 눈치 면에서 천재이다. 

어머니는 관상가이다. 아이의 얼굴에 실수와 성공, 걱정과 희망을 모두 읽는다. 어머니는 십자가에 달린 순교자이다. 어머니의 인내는 치약의 튜브 같다. 다 쓴 것 같아도 짜면 아직 남아 있다. 어머니는 희생이란 것을 생각조차 안하고 희생한다. 아픔을 기쁘게 받아드린다.> 어머니, 또한 부모님은 이렇게 귀한 분입니다. 어머니는 생명과 같은 분이며 태양과 같은 분이시고, 우리의 고향이며 희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 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어머니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만 가는 이 세상은 그 엄마라는 말조차 가슴에서 밀어내고 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귀한 어머니라는 칭호는 이미 타락 되었다.” 한 10대 여중생이 국내의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만들었다는 일명 ‘엄마 안티 카페’를 소개하는 글인데, “자식을 상처 입혀 괴롭히는 부모가 부모인가. 우린 너희의 노예가 아니야” “탄생시킨 생명을 행복하게 키워나가야 하는 어머니란 존재들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는가?” 라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있다고 합니다. 

지난 2007년 생성된 이 카페에는 약 1백 명이 가입해 있었으며, 이들은 욕설은 기본이고, 어머니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어머니를 넘어 가족 전체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글들을 이곳 게시판에 올렸다는 것입니다. 한 언론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주지 않아 이 카페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과, 회원들 대부분은 미성년자로 “엄마가 컴퓨터 끄고 공부하라고 한다.”라는 등의 불만을 담은 글들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2008년 4월 12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에서는 ‘동방예의지국의 해외 고려장’을 방송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73세 된 최모씨 부부는 자식들과 행복한 여생을 보내려 2004년 캐나다에 왔지만, 철제 깡통을 주우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한인교회에서 제공한 쪽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산다. 게다가 현재 딸을 상대로 8천만 원 반환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8천만 원은 최씨 부부의 전 재산이었다. 

프로그램은 “노인 학대 문제 관계자들에 의하면, 해외로 이민을 가면서 늙은 부모를 초청하겠다는 말로 부모의 재산만 챙기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면서 “현대판 해외 고려장은 경제력이 다할 때 부모로서의 존재가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물질 만능주의와, 효에 대한 감시 기능이 적은 이민사회에서 발생하는 패륜”이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제작진은 “해외 고려장은 자식을 믿어온 노인들에게는 신체적 학대보다 더 큰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최악의 노인 학대”라며 “해외에서라도 자식과 함께 생활하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 부모의 재산을 빼앗고 해외에 방치하는 해외 고려장의 실태를 취재, 고발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가하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들의 발길이 줄어든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정재기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의 <한국 가족. 친족 간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 양상: 국제간 비교> 논문에 따르면, 한국만이 부모의 소득이 높아야 자녀들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노인들이 돈이 있어야 손자 녀석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병환이 나서 대소변을 방에서 요강에다 해결을 합니다. 며느리도 바쁘고 힘들어하고 아이들도 냄새가 난다고 할머니 곁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낸 것이 변을 보고 나면 아이들을 불러서 요강을 비우는 아이에게 동전을 쥐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요강을 비우려고 경쟁을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요강을 가지고 와서 할머니 빨리 오줌을 누라고 재촉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노인들이 돈이 있어야 자식들에게도 효도를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말세의 징조 가운데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는데, 이러한 말세지말에 본문이 가르쳐 주는 부모 공경의 교훈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Ⅰ.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라고 했습니다.

22절에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라고 했습니다. 청종이라는 말은 ‘듣는다, 따른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부모의 존재와 삶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청종의 본은 예수님이 보여주셨습니다. 눅 2:51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부모와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성경 안에는 부모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으므로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그랬습니다. 압살롬은 아비의 말에 청종하지 않고 도리어 아버지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가 결국 그가 자랑하는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2. 부모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22절은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경히 여긴다는 말은 ‘가볍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힘이 약해집니다. 곧 지식의 힘, 육체의 힘, 경제 능력을 잃어갑니다. 그런데 부모가 힘을 잃게 되자 자식들이 부모를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귀찮게 여깁니다.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구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공경’은 히브리어로 ‘캅베드’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은 본래 ‘무겁다’라는 뜻으로 ‘간장’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사람의 내장 중에서 간이 제일 무겁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라 함은 부모의 무게를 인정하고 존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 아들들의 예가 좋은 예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농사하여 만든 포도주에 만취하여 벌거벗은 몸으로 자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고자 하였지만, 함은 그것을 드러내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그는 부모를 경히 여긴 것입니다. 늙으신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장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부모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구세대라 해서 무시할 존재가 아닙니다. 부모는 무지하고 무력하다고 해서 절대로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입니다. 

3. 부모를 기쁘고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경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 소극적인 차원이라면,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은 부모 공경의 적극적인 차원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5월에는 자녀들에게 주는 비싼 선물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께 드릴 값나가는 선물은 별로 안 팔린다고 합니다. 어떻게 부모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갤럽 조사에 의하면 자녀들이 어떻게 하여 주는 것이 제일 좋으냐? 하는 물음에, 다수의 부모들이 대답하기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다음은 가나안농군학교의 효도 십계명입니다. 1)신앙생활을 하시도록 해드린다. 2)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드린다. 3)말할 때는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4)궁금증을 풀어드린다. 5)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용돈을 정기적으로 드린다. 6)향토적인 음식을 해드린다. 7)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린다. 8)일거리를 찾아드린다. 9)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드린다. 10)등을 긁어드리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린다. 부모님의 몸을 만지게 됨으로써 부모와 자식 간에 믿음이 돈독해지고 나아가 고부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세상에서 부모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부모가 생존해 계실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두고두고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습니다. 옛말에 “자식이 철들기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살아계실 때 해드려야 합니다. 다음은 생전에 효도를 놓친 어느 아들의 회한의 글입니다. <살아생전 어머니께서 유난히도 좋아하시던 것이 있었다. 바로 잘 익은 홍시였다. 어머니는 유독 홍시를 좋아하셨다.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한 자리에서 몇 개씩을 드시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는 내가 사드리는 홍시를 좋아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어머니께 홍시를 공급하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3남 4녀 형제 중에 아무도 내 영역을 침범하지 못했다. 해마다 가을 되어 신문 한 귀퉁이에 붉은 감이 매달린 사진이라도 실릴 즈음이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뜨곤 했다. 그리고 그 해 첫 번째 홍시를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첫 눈을 만난 것만큼 부푼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밤늦게 귀가하는 내게 어머니께서 “오늘 따라 어째 홍시가 먹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뜸 “참, 그러고 보니까 요즘 홍시를 사 드리지 못했네요. 내일 꼭 사 드릴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로 귀가가 계속 늦어지면서 며칠이 지났고, 어머니께 홍시를 사 드리겠다고 했던 약속을 깜박 잊고 말았다. 그 날도 늦게 귀가하는 길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려 받아 보니 아내였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점심까지 맛있게 드시고 해거름에 밖에 나가셨다가 쓰러져 다른 사람에게 업혀 들어오셨는데, 돌아가실 것 같다는 얘기였다. 총알같이 달려 집에 도착했으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아들의 귀가조차 기다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는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체온이 식어가는 어머니의 몸을 끌어안는 순간이었다. 내 머리를 천동번개처럼 내리치는 것이 있었다. ‘홍시!’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홍시를 정작 돌아가시기 전에는 챙겨 드리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두고두고 여한으로 남는다. 이제 홍시를 맛있게 드시던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안 계신다. 그래도 가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터질 듯 잘 익은 홍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잘 익은 홍시를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고,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공경해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한 자녀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대 최고의 효도 선물은, 불신 부모로 하여금 예수를 믿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금년 봄 부흥 집회를 인도하셨던 고훈 목사님의 글입니다. <효상이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직장에 나가 생활을 책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우리교회 고등부 모범생이다. 아버지가 간경변증을 선고받고 입원했다. 아버지가 살 길은 간 이식 수술을 받는 것뿐이었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간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고등학교 일학년인 효상이는 정밀검사 결과 모든 의학적 기증조건이 100% 일치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수술대위에 올랐다. “주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모릅니다. 그토록 전도했으나 아버지 영혼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드린 이 간 한쪽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아버지 영혼을 구원해주십시오.” 수술결과는 좋았고 아버지 영혼도 구원받았다. 세상에는 부모 간을 녹이는 자식이 많다. 효상이처럼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간을 바치는 자식도 있다.> 

신자의 관심은 금생에만 있지 않고 영원한 내생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내생을 믿습니다. 신자는 영생을 얻고 불신자는 영벌에 이르게 됨을 믿습니다. 이것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힘써야 합니다. 부모님이 구원받기를 원하며 기도하고, 믿음의 본을 보여 드리고, 종종 강권하기도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앙 중에 있어서 영원히 멸망에 이르게 될 부모님이 계시면, 견딜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전도하여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으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금생에서도, 또 영원한 내생에서도 복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만약에 이 일을 힘쓰지 아니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남을 것입니다.

아무리 살아생전에 섬기기를 잘한다 한들, 인생 나그네 길에서 모두 백년 미만에 끝나는 것이니, 허무한 존재일 뿐입니다. 만일 우리의 부모님이 그토록 허무한 인생으로 끝나 버리고 구원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그러므로 부모님을 생전에 예수 믿게 한 자녀는, 사실 최상 최고의 효도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극한 정성을 다하고 노년에 편히 모신다 한들, 부모님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경홀히 여기는 효도는, 참된 효도가 아닌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서 진수성찬으로 대접하고, 값진 옷으로 입혀 드리고, 잔치로 즐겁게 해 드렸다 해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여 영원한 멸망을 받은 부모가 되었다면, 이 어찌 효도이며 하나님이 명하시는 효도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의 효도를 주안에서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시는 부모님이 계십니까? 부모님의 영혼이 귀중하기에 눈물 뿌려 기도하고, 전도하여 참 효도를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그 고마우신 부모님의 영혼이 멸망하게 된다면 이게 될 말입니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라면, 불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 눈물 없이는 이 날을 지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어린이 주일로 지키면서 “자녀를 예수님께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빌어먹게 하려면 재산을 남겨주고,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신앙과 신념을 넣어 주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이 뭐냐? 그건 신앙입니다. 또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신념인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할 수 있는 신념인 것입니다. 

오늘은 또한 어버이 주일로 “최고의 효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코끼리는 늙어 죽음이 임박하면 다른 코끼리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빠져나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쓸쓸하게 죽는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 노인들 중에 이러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적잖게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공경하기는커녕, 부모를 홀대하고, 무시하며, 심지어는 부모를 폭행하고 살해까지도 주저치 않은 이 패역하고 배은망덕한 시대에, 우리 교회 성도들은 위로 하나님 잘 섬기고, 아래로 부모님 잘 공경하며, 믿지 않은 부모님은 반드시 주님께 인도하여서 한 자녀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상 최고 최대의 효도를 해 드리는, 지극한 효자 효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