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약속 있는 첫 계명 (엡 6:1-3)

  • 잡초 잡초
  • 232
  • 0

첨부 1


약속 있는 첫 계명 (엡 6:1-3)


엄마, 어메, 어머니, 수없이 많은 날, 헤아릴 수 없이 불러보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자기를 낳아 준 생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사진이 없었던 옛날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생전의 모습을 후손에게 알려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디오가 있어서 언제든지 부모님의 생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지금도 제가 후회스러운 것은 그 많은 영상 시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의 생전의 모습을 담아 두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활동이 다양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후손들의 기억 속에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한가 봅니다.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Gheorghiu)는 한국을 가리켜 '효도의 나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속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고령화시대가 가속화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 열 가지입니다. 그 중에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규범을 말씀하신 종적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과의 규범을 말씀하신 횡적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인간에 대한 첫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적 계명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비판이나 연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계명입니다. 

Ⅰ.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6장 2절에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기 위한 모든 책임 있는 이행을 총칭한다고 했습니다. 

원래 공경이란 히브리 말의 『 카베트 』로 인체 중에 있는 간(肝)이라는 말입니다. 공경이란 단어가 『 카베트 』로 된 이유는 부모를 간처럼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체 중에 간이 가장 무겁다고 해서 무겁기 때문에 불편하다든지 간수하기에 부담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인체의 내장 중에 간이 소중한 것을 알거든 부모도 간처럼 소중하게 생각해야 마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모든 존경과 사랑을 다해야 합니다. 

잠언 23장 25절에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어머니 주일을 주장한 안나쟈비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를 공경하시오, 바로 당신의 부모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육신의 모친에게 효도하셨고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습니다(요 19:25-27). 
부모는 자식들의 형통을 위하여 희생적인 삶을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에게는 신앙의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 디모데에게는 신앙의 어머니 유니게가 있었습니다. 

히포의 감독 성 오렐리어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에게는 아들이 잘 되기만을 위하여 한평생 동안 기도의 삶을 살았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그 명성만으로도 자랑스러운 당대의 교부 크리소스톰에게는 신앙의 어머니 안투사(Anthusa)가 있었습니다. 
영국을 성령으로 불 지른 죤 웨슬레에게는 어머니 수잔나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위대한 신앙의 아버지들도 많이 있습니다. 꼭 들추어 내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가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1) 부모님을 구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에 『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고 했습니다. 

2) 부모님을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에 『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죽일지니라 』고 했습니다. 

3) 부모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 30장 17절에 『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고 했습니다. 
날짐승 중에 효조는 까마귀라고 합니다. 불효한 압살롬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1-33절에 『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 』고 했습니다.

불효한 함도 형제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9장 24-25절에 『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백발 앞에서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고 했습니다. 

4) 부모를 즐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잠언 23장 25절에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효(孝)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효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든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종교와 기독교의 효가 상이한 점입니다. 

Ⅱ.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6장 1절에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이라는 말은 주님의 뜻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의 순종을 말함입니다. 이렇게 신약 성경에서는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미흡한 것을 신약에 와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맹목적인 효행이 너무 많습니다. 예컨대 자식된 자가 부모 앞에서 몸이 가려워도 긁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식된 자가 부모 살았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식된 자가 매우 좋은 아내를 얻었다고 해도 부모가 그 여자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내어 보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비록 자기에게 좋지 못한 아내라도 부모가 좋게 여기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머리에 머리털이며 살을 상하지 않게 함이 효도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부모 중심적인 맹목적인 효에 대한 가치관은 부모에게도 무익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의 바르지 못한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까지 만족시켜 줄 의무는 없습니다. 

유교에서도 자식이 부모의 잘못에 대하여 충고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컨대 부모가 잘못을 했을 경우에는 자식은 기운을 낮추고 얼굴을 즐겁게 하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간(懇)하라고 했습니다. 간해도 듣지 아니하면 더욱 공경하여 그의 마음을 얻도록 하여 다시 간(懇)하라고 했습니다. 세 번 간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울면서 따라다니며 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반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모 공경에 대하여 마음에 와 닿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박윤선 박사는 말하기를 '무엇이 부모의 허물인지 그것을 밝힐 만한 완전한 진리가 유교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의와 불의를 분별하는 진리 체계는 오직 성경뿐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거역하면서까지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려고 하는 자는 마치 과일을 따먹기 위하여 과일 나무를 송두리째 베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순종해야 마땅합니다. 

전통적인 우리의 의식구조는 하나님을 중심한 효도가 아니라 부모만을 중심한 효행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모 또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부모가 섭섭하게 생각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 지식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부모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최고의 온유와 사랑으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Ⅲ.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한 자들의 복이 있습니다. 

1) 잘되는 복입니다. 
본문 6장 3절에 『 이는 네가 잘 되고… 』라고 했습니다. 
'may go well with you', 틀림없이 결과가 좋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잘된다는 말은 'make succeeds like of', 잘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All's well', 즉 '만사가 형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효성이 지극했던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시부모를 잘 섬긴 룻은 그리스도의 족보에 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러한 축복을 받은 것은 효자였기 때문입니다. 

2) 복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 『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고 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그 삶이 복되지 못하면 그 삶 자체가 저주스러울 것입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의 형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기음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복이 되어주신데 대한 감은(感恩) 행위입니다. 오늘날 물질적인 축복이 전부인양 기복신앙에 깊이 빠져 있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물질적 궁핍이나 역경까지도 도구로 사용 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히 12:5-13). 

3) 땅에서 장수하는 축복입니다. 
본문 6장 3절에 『 …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 그와 그의 자손들의 형통입니다. '장수'는 역시 출애굽기 20장 12절에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한 말씀에서 인용된 말입니다. 시편 91편 16절에는 『 내가 장수하므로 저를 만족케 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축복이 육신의 생명의 장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 축복들 중에 하나일 뿐이고 오히려 내세의 축복에 더 큰 소망을 가지도록 하십니다. 인간 중심의 효행은 불완전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하나님 중심의 주 안에서 효행은 모든 것을 온전케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안함에서 변을 당한 병사들의 어머니의 애절한 통곡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기막힌 모정의 울부짖음을 보는 순간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울었을 것입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의 죽음 앞에 통곡하며 울지 못했습니다. 천국 가는 어머니가 자식의 눈물마저 가져가지는 않았는데도 천국 가셨다는 안도감이 통곡하지 못하게 했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죽음 앞에 통곡하지 못한 것은 불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더 많이 사랑하고 섬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어머니보다 먼저 죽었다면 비록 목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저의 죽음 앞에 어머니는 저처럼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식음을 거둔 채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했을 것입니다. 이 못난 아들의 이름을 어머니의 가슴에 묻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사셨을 것입니다.

교회 설립 220주년에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의 기도는 이 교회에 아직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효는 각 종교의 경전에서 저마다 자신 있게 자랑하는 보편적인 메뉴입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에서만이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따라서 타종교의 부모공경의 계율에 기독교의 효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부모보다 더 위대한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에 『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최우선 추구 하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네 부모를 주안에서 공경하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에 『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네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첫째 계명이란 것을 기억합시다.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