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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믿음의 가정 엿보기(1) (창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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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가정 엿보기(1) (창 21:1-8)

 
가정의 소중함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 삶에 너무도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가정이 평온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불안하면 어떤 부귀와 성공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 삶의 출발을 가정으로 고정시켰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가정이 중심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구원의 역사도, 위대한 업적도, 심지어 민족의 이야기도 모두 가정으로 시작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5월에 성경이 이처럼 중요하게 강조하는 가정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특히 믿음의 가정을 보기 원합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보기 원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믿음의 가정 엿보기'라고 정했습니다.  '엿보다'는 말은 얼핏 훔쳐본다는 부정적인 의미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엿보다는 말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을 알아내려고 살피다, 무엇을 이루고자 온 마음을 쏟아서 집중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런 심정으로 엿보기 원합니다.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그 가정을 통해 우리도 행복한 가정을 위해 온 마음으로 집중하며 배우기 원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가정을 많이 소개합니다.  그 가운데 창세기에 많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후반에는 4명의 위대한 족장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지만 모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이들 가운데 '이삭'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삭은 4명의 족장가운데 가장 짧은 기록을 갖고 있지만, 조용하면서도 신실한 삶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이삭과 주변 인물을 둘러싼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의 가정을 엿보기 원합니다.  오늘은 이삭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본문을 통해 자녀로서의 이삭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든 자녀가 다 소중하지만 이삭은 참 소중한 자녀였습니다.  본문을 통해 자녀인 이삭을 통해 가르치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부모의 기쁨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삭의 출생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땅에 왔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축복의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같이 많은 자녀와 후손으로 번성하도록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후손은 고사하고 자녀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이젠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모든 끝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 초조했고, 사라는 자기가 힘드니까 몸종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자고 제안합니다.  이 일로 집안에 어려움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이 지나가고 드디어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삭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우선적으로 주목할 말씀은 6절입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삭의 이름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사라가 아브라함과 천사의 이야기를 뒤에서 듣고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습니다.  물론 처음에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00세에 어떻게 아이를 낳느냐고 생각하며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은 아이를 낳으면 '이삭'이라고 지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지 못함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여 진정한 웃음을 주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본문에 와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사라의 말은 이제 진정한 웃음이 왔다는 표현입니다.  이전의 웃음과는 전혀 다른 참된 기쁨을 말합니다.  모든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의 기쁨인데, 100세에 아이를 낳았으니 얼마나 더 기뻤겠습니까?  이렇게 이삭은 부모의 기쁨, 이름 뜻 그대로 웃음으로 아브라함의 가정에 태어난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중에 한사람이 있다면 야곱의 부인 '레아'라고 생각합니다.  레아는 야곱의 아내이면서도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마음이 레아의 동생 라헬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라면 레아는 야곱의 부인이 되지 않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라반에 의해 결혼을 시켰습니다.  레아의 기구한 운명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녀의 사랑이나 결혼이나 장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레아는 야곱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의 아들들이 결국 이스라엘 역사를 주도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면서 이름을 짓는 과정을 보면 얼마나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는지를 압니다.  처음 아들 둘을 낳을 때까지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셋째아들을 낳고, 아들 세 명을 낳았으니 이제 남편이 나와 연합하고,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그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레위는 연합, 사랑 그런 뜻을 갖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야곱이 사랑을 주지 않습니다.  이제 레아는 거의 포기할 지경이 이릅니다.  그 뒤에 레아의 삶은 이제 남편보다 하나님께, 그리고 남편보다 자녀에게로 향합니다.  그래서 넷째 아들의 이름을 '유다'로 짓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유다는 '찬양'이란 의미입니다.  또한 몸종을 통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아셀'이라고 짓습니다.  아셀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이젠 남편이 아닌 오직 자녀로 인한 기쁨을 갖고 살겠다며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레아라는 여인은 누구보다 자녀의 기쁨이 너무도 컸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더욱 그러했습니다. 
 
모든 부모에게 자녀는 한마디로 기쁨입니다.  너무도 큰 기쁨입니다.  지금 부모의 사랑 안에 함께 하는 모든 자녀가 부모의 기쁨입니다.  특히 지치고 힘든 인생길에 더욱 큰 기쁨입니다.  요즘같이 고달픈 세상에는 자녀의 모습, 자녀와의 대화, 자녀와 함께 하는 것이 큰 위로요 힘이 됩니다.  이런 기쁨을 누리고, 그 기쁨으로 힘을 얻으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건강한 성장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삭이 태어나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2절에 이삭의 출생을 알려주고, 4절에서는 이삭이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7절에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라고 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감동을 알려줍니다.  무엇보다도 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여기에서 주목할 말은 '아이가 자라매'입니다.  아이가 자랍니다.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그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나는 것을 보고 부모는 너무도 감사하여 큰 잔치를 베풉니다.  백일잔치, 돌잔치, 생일잔치를 하면서 때마다 일마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를 축복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이삭은 자랐습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났습니다.  족장들의 자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아프거나 부모의 근심이나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럭무럭 잘 자라납니다.  이것이 자녀인 이삭의 모습입니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입니다.  모든 부모가 그토록 기도하고 바라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가 아플 때입니다.  아이의 고통을 보면 차라리 부모가 대신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의 딸아이는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하루가 멀게 병원을 다녔습니다.  코피도 자주 나와 잠을 설칠 때가 많았습니다.  병원에 자꾸 가니까 의사가 아주 귀찮아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약할 수도 있지만,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유학생시절에 아이가 자랄만한 좋은 환경을 주지 못한 것이 요인이었습니다.  아이가 밤새도록 아파하는 것을 보면 공부고 뭐고 다 접고 싶었습니다.  딸은 몸도 약했지만 치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치과치료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영국에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치료하기 위해 마취를 합니다.  원하지 않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몸도 약한 아이가 3번이나 마취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이가 견디질 못했습니다.  깨어난 아이가 먹지 않습니다.  집에 오는데 아이가 힘이 없고, 아무 말도 없더니 갑자기 구역질을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를 가슴에 안고 건강하게만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한두 번씩은 경험한 일이고, 지금도 아이로 인해 고통 받는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자녀를 보면서 여러 꿈과 비전을 생각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자라는 것보다 귀한 일이 없습니다.  옛날에 그런 광고가 있었습니다.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이것이 자녀를 향한 부모의 간절한 소망일 것입니다.  내가 약하더라도 아이만큼은 건강한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건강한 성장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더욱 기도하고,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한순간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정성으로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2:40)  여기 강하다는 말은 곧 건강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라면서 건강하게 자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예수님처럼 자라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처럼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양육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특히 이삭의 태어나는 과정을 보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삭은 태어날 수 없는 자녀였습니다.  은혜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출생입니다. 100세에 어떻게 아이를 낳습니까?  이삭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끝나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는 때에 자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을 강력하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대하면서 이것을 늘 기억하여 살아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1절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여기에 먼저 모든 것의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습니다.  여기 '돌보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시고, 간섭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십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 역사,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자녀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하나님의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삭의 이런 기적적인 출생을 통해 우리는 자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이고, 또한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  여기 기업, 상급은 곧 은혜라는 말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의 은혜요, 태를 여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고, 또한 자녀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우리 마음대로, 부모의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소중한 아이로 알고 인격적으로 대하고, 노엽게 하지 말고, 강압적으로 대하지 말고, 귀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현대사회에 여러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그중에 점점 아동학대가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로 모르지만 세계 곳곳에서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도 아동학대문제가 아주 심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보통 아동학대하면 흔히 부모가 자녀에게 심각한 수준의 신체손상을 입힌 신체학대의 경우만 학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위험하고 불결한 환경에 방치하거나, 식사를 제공하지 않거나, 아파도 치료해 주지 않거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 한 채 집안에 가두어두는 것, 즉 아동방임 역시도 아동학대에 속합니다.  

또한 심한 욕설을 하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정신적, 언어적 위협을 가하는 정서학대, 자녀를 버리는 유기행위, 어른의 성적인 만족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학대가 모두 아동학대에 포함됩니다.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 부모가 정상적이지 않아 피해가 아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아이를 낳는 것으로 부모가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양육하고, 키우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부모의 의식에서부터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님을 믿음으로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부모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로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무엇보다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헨리 나우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손님이다. 그들은 자기네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 들어와서 잠시 머물다가, 적당한 때에 자기들 공간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떠나간다.  부모들이 '우리 아들, 우리 딸'이라고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녀는 나그네들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알고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들 각자에게 주는 사랑이다."

부모의 기쁨, 건강한 성장,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바로 이것이 자녀로서의 이삭을 보면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에 주신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녀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고, 바르게 양육하기를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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