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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당한 일과 복음의 진보 (빌 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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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당한 일과 복음의 진보 (빌 1:12-21)

 
내 용 

지금 로마에 가시면 관광 명소 가운데 한 군데가 세 분수 성당이라는 교회 건물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울 사도가 순교 당하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앞의 그림을 보면 참혹합니다. 순교라는 것이 목을 치거나 해서 죽이는데 바울 사도의 순교 당하는 그림은 묶어놓고 무릎을 꿇게 하고 뒤에서 목을 친 게 아니라 앞에서 머리를 잡아당기고 도끼로 쳤습니다. 그러니까 이 머리가 쓸려나가서 세 번 튀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튈 때마다 물줄기가 분수처럼 마른 땅에서 별안간 뻗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 자리에 기념 예배당을 짓고 세 분수 성당이라고 지었습니다. 

로마에 갔다 오신 분은 보셨을 겁니다. 빌립보 성경을 옥중서신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옥중에서 감옥에 있는 사람이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래서 이 빌립보서를 다른 말로 희락의 복음, 기쁨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기뻐하고 만족할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세요. 내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입니다. 내가 무엇을 꼭 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 기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서도 왜 기뻐하느냐 하면 자기의 소원이 로마에 와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 로마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서 전도하다가 2년 동안 빌립보 감옥에 꼼짝 없이 갇혔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답답한지 ‘내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빨리 가서 복음을 한 사람이라도 전해야 될 내가 감옥에 들어앉아서 2년이라는 긴 세월을 하루가 급한 사람이 앉아있으니….’ 속이 터질 것 같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감옥 속에 있지 않았으면 죽었습니다. 왜? 밖에는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우글우글 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내가 밥도 먹지 않겠다고 결사대를 조직하고 나선 사람이 40명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를 하나님께서 가둬두고 생명을 유지하도록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는데 감옥에 들어앉아있으니까 마음이 급하잖아요? 그런데 바울 사도의 머리에 깜짝하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지금 자기는 로마에 가고 싶은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로마가 땅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땅 끝 로마까지 빨리 가야 되는데 감옥에 갇힌 사람이 갈 길이 없잖아요? 그래서 길이 당장 열리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는데 그게 뭐냐? “나는 로마 시민권자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내가 이 감옥에 갇혀있는 이 잘못에 대한 재판을 로마에 가서 받겠다.”라고 상소를 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 감옥에서 절대 거절을 못합니다. 거절했다가는 자기들이 큰일 납니다. 왜? “로마시민권자가 상소를 했는데 왜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느냐? 너희들이 뭔데?”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꼼짝없이 이 바울의 상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국제간에 한국의 시민권자는 외국에 가서 죄를 지었을지라도 자신이 “나는 한국에 가서 재판을 받겠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 이쪽으로 이송을 해서 그 죄에 대한 재판을 여기서 할 수 있고 또 여기에 있는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죄를 지었지만 “내 본국에 가서 재판을 받겠다.” 라고 상소하면 서로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국제법의 체결이 있습니다. 그 당시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온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로마 시민권자이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가는 길이 열렸잖아요? 

이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몇 번 잘 사용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은 후에 “이제 죄 값을 받았으니 나가라.”라고 사도행전 16장 37절에 바울이 큰 소리를 칩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매 맞을 죄가 없는데 공중 앞에서 우리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보내느냐? 안 된다.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우리를 감옥에 넣은 사람 데리고 와라.” 큰 소리를 쳤잖아요? 그럴 때 사람들이 어떻게 됩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왜? “이 사람이 로마 시민권자야.” 당시는 로마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앞으로 로마에 대해서 절대적 공로가 있을 만한 인재들을 자기 편 만들기 위해서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바울이 산헤드린 공의회의 제일 젊은 멤버이기 때문에 로마의 식민지 하에서 바울에게 로마 시민권을 준 겁니다. “너는 앞으로 로마를 위해서 일하라.” 그래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때린 사람들이 벌벌 떱니다. 그래서 막 사정했습니다. “제발 우리가 잘못했으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아 주시오.” 이유는 로마 시민권자라는 말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거절을 못합니다. 

지금도 “나는 로마 시민권자이므로 나에 대한 이 재판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로마에 가서 받겠다.” 절대 거절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호송되잖아요? 그 배에 276명이 탔다고 사도행전에 나와 있지요? 그래서 로마로 갑니다. 죄수를 호송하는 배이기 때문에 군인들이 함께 감시원으로 탔습니다. 아구사도대 백부장 율리오라는 대장이 지휘관으로 그 배에 타고 군사들을 데리고 276명이 지금 배를 타고 가이사랴 거기에서 로마로 지금 호송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이 기쁜 겁니다. 자기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를 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진작 그 머리를 쓰지 아니했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세계 중심지 로마를 복음으로 점령하면 복음은 세계로 확산된다는 그 힘을 믿고 그것을 또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로마로 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그가 감옥에 갇힌 고난의 역사가 없었다면 그를 로마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절대 없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2년이라고 하는 시간을 고민고민 하다가 얻어낸 생각이 아주 딱 들어맞아서 로마로 가는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동안은 바울이 거기서 나오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바울을 죽이려는 사람이 아주 우글우글하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옥에다 넣어두신 겁니다. 생명의 위협을 면하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지혜스러우셔서 내가 지금 고난당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나의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오늘 성경 말씀에 그렇게 말했는데 여기서 “나의 당한 일”이란 고난입니다. 죄 없이 죄수가 되고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고 그 다음에 죄수의 이름으로 로마까지 호송되는 이런 내가 당한 이 아주 어려운 고난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보! 복음이 빨리 전하여지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고 이렇게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가는 길을 한번 생각해 보면 바울은 로마로 취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관광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재판을 받기 위해서 감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죄수로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 기뻐서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 기쁠 것이 하나도 없는 죄수가 슬픈 일만 있는데 무엇이 기쁘다는 것인가? 바울은 자기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들도 기쁨이 내가 무엇을 원했느냐에 따라서 기쁨이 커지고 작아집니다. 바울의 삶의 목적이 오늘 말씀 20절에 나타나 있잖아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기뻐하는 겁니다. 그는 삶의 목적이 복음 전파였습니다. 복음 전파만 이루어진다면 그의 생애는 성공이요 그것이 막혀버리면 실패라고 자기가 자기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업 성공이라든가 권세나 명예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인생 실패자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 자기 삶의 목표가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감옥에 가도 괜찮고 혼자 살아도 좋고 아무렇지도 않게 어쨌든 나를 통해서 복음이 빨리 로마에 전하여 진다면 그것이 내 삶의 목표이다. 그게 지금 이루어졌다.” 이러며 기뻐하는 겁니다. 여러분, 성공하는 것을 다 원하실 겁니다. 

무엇이 성공입니까? 내가 무엇을 목표로 했기에 실패했다고 말하고 성공했다고 말합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성공’하면 돈에만 자꾸 결부를 시키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내 인생의 목표는 이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기뻐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돈에다 둔 사람은 돈 많이 버는데 성취감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잖아요? ‘돈은 나와 상관없고 나는 이 목표를 향하여!’ 그런데 바울은 지금 그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그 일만 자신에게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최대의 성공 인생이라고 믿는데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니까 너무 기쁜 겁니다. 

바울은 몇 가지 생각이 있죠? ‘나는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유대인이 볼 때 로마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을 성취시켜 주셨다. 나는 이 일을 위해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복음 전도는 나의 팔자이다.” 이렇게 말한 겁니다. 정해진 팔자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성서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 바울은 “내가 만약 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복음 선교 중지는 하나님의 저주 초대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정하고 살았기 때문에 지금 자기가 당하는 이 많은 고난을 성취로 지금 생각하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나의 당한 일이” 이렇게 말했는데 일을 당했다고 하는 것은 고난을 의미하는 겁니다. 여러분, 좋은 일이 있을 때 “내가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쓰는 것은 고난이 있을 때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당했지만 나의 당한 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고서 지금 아주 기뻐서 뛸 듯한 기분으로 지금 로마를 향해서 가는데 가다가 일을 또 당했습니다. 

지금 276명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합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 즉, 태풍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 로마를 향해서 한시바삐 가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광풍을 만나니까 배가 광풍에 밀려서 로마로 가지 못하고 밀레도 섬이라고 하는 조그만 섬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아주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바울이 지금 타고 가는 배를 왜 광풍을 만나게 하고 배를 몰라서 밀레도 섬이라고 하는 토인들만 살고 있는 그곳에 정박을 시켜 버렸는가? 거기 보면 다 죽을 거 같으니까 배에 있는 물건도 다 내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이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이제 우리는 배에서 다 죽는다.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 물건까지 다 내어버렸죠? 그런데 햇볕도 보이지 않죠? 그래서 276명이 다 좌절하고 바다에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말을 하죠?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로마에 가야 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가 주셨도다.” 그래서 바울이 그 환상의 말을 듣고 나가서 275명에게 큰 소리로 말하지요? “여러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도 안 죽습니다. 절대 안심하십시오.” 사실 그 배는 바울이 탔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 때문에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로마로 순탄하게 가서 빨리 복음을 전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태풍을 불게 하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서 밀레도 섬에 도착하게 하셨는가?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죽지 아니할 테니 그런 줄 아십시오.” 했는데 죽었다면 바울의 선교는 끝입니다. “저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말이 거짓말이다.” 그런데 한 명도 안 죽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미리 예언하고 그 사실이, 생명과 관계된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을 때는 거기 275명은 바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죠? “아니, 이 사람이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모두가 신기한 생각을 할 거 아닙니까? 

바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밀레도 섬에 무사히 상륙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275명의 모든 사람들은 특별히 군인들이 이 바울 사도라고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대체 누군데 사람이 죽고 살 것을 미리 알고 이야기해 주지? 이것은 하나님이나 하실 수 있는 일 아니냐?” 그래서 그때부터 바울은 아주 이상한 존재로, 권위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잖아요? 275명이 꼼짝 못하고 바울이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들으시오.” 하니까 안 들으면 죽을 거 같은 겁니다. 다 듣습니다. 이러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밀레도 섬에 토인들이 살고 있는데 추우니까 사람들이 나무를 모아서 몸을 녹이려고 불을 피웠는데 그 나뭇단 속에 들어있던 독사뱀 한 마리가 뜨거우니까 별안간 용솟음치듯 뛰쳐나와서 그 276명 가운데서 왜 바울의 손을 물었는지, 하나님이 바울의 손을 물으라고 하셨는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뱀이 어떤 뱀인지 토인들이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후 때문에 그런 뱀은 없는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려도 독은 있지만 금방 사람이 30분 안에 죽는다든지 그런 뱀은 없는 거 같습니다. 사막 속의 뱀들은 얼마나 무서운 독뱀들이 많은지 물리면 한 시간 안에 현장에서 사람이 죽습니다. 그래서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집의 구조를 뱀에게 물리지 아니하는 구조를 가지고 살고 또 뱀의 피해를 피할 수 있는 짐승을 데리고 삽니다. 인도네시아에 가보면 뱀이 무척 많은데 집이 다 원두막 같습니다. 

그래서 밑에는 다 공간입니다. 사다리 놓고 올라가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누구네 집이나 돼지를 몇 마리씩 방목합니다. 그래서 1층에는 돼지가 살고 2층에는 사람이 삽니다. 돼지들이 뱀을 그렇게 잘 잡아먹습니다. 뱀이 무수하게 많은데 뱀이 사람 냄새 맡고 슬슬 기어오면 돼지들이 달려들어서 뱀을 잡아서 씹어 먹습니다. 얼마나 잘 먹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뱀 피해를 막기 위한 집 구조와 돼지를 키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 뱀이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뱀이 뛰쳐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28장 4절에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아! 이 사람이 진짜 죄인이다. 그래서 하늘이 이 사람을 못 살게 하는 거야. 죽을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 알았는데 태연하게 뱀을 집어서 굴속에다 던지고 멀쩡하게 산단 말입니다.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바울은 이 뱀과 광풍 때문에 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275명과 토인들에게 사람이 아닌 존재의 자리에 있게 되니까 어떤 효과가 있겠습니까? 이 로마로 들어가는 275명은 벌써 다 전도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다른 것은 관심도 없고 이 바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들을 하기 시작하는데 율리오 대장이 바울이라는 죄수를 자기 상부 기관에게 보고를 하면서 지나간 역사를 이야기 하니까 온통 그 소문이 날 거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실패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면 모든 고난의 삶이 선교적 의미로 변화하는 의미로 나타나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믿고 선교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래서 죄수가 되어서 감옥에 이제 갇혀야 되는데 이 감옥에 갇히는 것도 아주 하나님의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시위대 아래 갇혔다고 했습니다. 시위대는 뭐냐? 임금님이 사는 데입니다. 

임금님 군 바로 옆에 시위대가 있는데 15,000명이 아주 특공대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사는 데입니다. 왜 그러느냐? 임금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전 사령부같이 왕궁 옆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러니까 감옥도 많이 있을 거 아닙니까? 거기에 갇히기 위해서 그 시위대 안 감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율리오 대장이 지나오면서 광풍 만났을 때 죽지 않는다고 예언한 바울의 이야기, 뱀 물린 이야기 다 알고 있잖아요? 다 이야기 했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온 시위대 안에 자기의 하고자 하는 일이 전파되었습니다. 

시위대 안의 권력자들이 바울 사도를 만나기 위해서 날마다 몰려드는 겁니다. 그러면 얼마나 전도하기 좋습니까? 이 사람도 권력자이기 때문에 온 시위대 왕을 보호하기 위한 특전 사령부의 대장으로부터 부하에 이르기까지 온 시위대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 지금 바울이 그런 결론을 내린 겁니다. 유라굴로 광풍도 독사뱀에 물린 것도 바울 자신은 심적 권위가 생기는가 하면 그 모두를 구원하는 선교 역사가 배 안에서부터 이루어져서 마침내 로마에 들어가서 복음이 시위대에서부터 전하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에 가서 아주 자기가 원했던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국에 관광가시면 옛날에 임금들이 바깥에 나가면 위험하니까 죽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임금님 사는 왕궁 마을이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바깥에 나가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런 왕궁 마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시장에서부터 물건에서부터 없는 것이 없습니다. 특정한 테두리 안에서 “너희들은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 바깥에 나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있다.” 극장도 있고 별게 다 있습니다. 

“바깥에 괜히 잘못 드나들면 죽을 수 있으니 이 안에서 넉넉히 충족하고 이 안에서 다 살아라.” 그런 왕궁 마을이 중국에 있잖아요? 이 로마의 시위대가 그런 곳입니다. 그런 데에 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그 높은 사람들한테 임금님을 보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니까 그 소문이 온통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 가서 바울은 아주 자기 소원을 다 이루어진 기쁨을 지금 노래하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만약 바울이 죄수가 아닌 평민으로서 자신의 외교적 능력을 발휘해서 로마 시위대와 접촉을 시도했다고 합시다. 바울을 누가 만나줄 겁니까? 아무도 만나줄 사람이 없습니다. “너 대체 누군데 여기 와서 얼쩡거리느냐?” 안 만나 줍니다. 죄수가 되어서 호송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시위대 안에 가서 시위대 사람들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겁니다. 또, 큰 심적 권위를 가지고 들어갔잖아요? 

율리오 대장이 가서 보고했잖아요? “이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잘못 건드리지 마라.” 그러니까 마음 놓고 전도를 해서 지금 시위대 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수없이 생겨지는 결과가 왔습니다. 바울은 변호사도 채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는 이스라엘에서 로마까지 가는 뱃삯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아주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그 코스를 따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나의 당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진보를 가져왔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로마가 주후 313년에 결국은 기독교 진리에 굴복해서 그토록 핍박하던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큰 역할을 한 것이 뭐냐? “로마는 권력층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 바울이 시위대 안에서 전도를 했기 때문에 권력층이 예수를 믿고 나니까 그 줄을 타고 복음이 전파가 되어서 네로의 박해 속에서도 네로의 삼촌과 친척들은 이미 기독교인이 되어 있어서 네로에게 “당신 절대로 기독교 박해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역사적 기록이 다 나와 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는 그의 어머니와 딸들이 기독교인이 되어서 왕궁 복음화에 절대적 공헌자가 된 역사도 있습니다. 주후 313년에 로마에는 기독교인이 어떤 사람은 7퍼센트, 어떤 사람은 11퍼센트라는 통계를 내는데 7퍼센트가 가장 정확합니다. 로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7퍼센트 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기독교 국교 선언이 가능합니까? 권력층이 예수 믿었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예수를 믿어 놓으니까 기독교를 선언해 버린 겁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선언해 버리니까 그때부터 이 기독교의 복음은 로마가 점령하고 있는 세계 모든 곳으로, 이 로마는 또 길을 잘 닦아놓았잖아요? 세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길을 잘 닦아놓았잖아요? 그 잘 닦인 로마 제국의 길을 통해서 복음의 확산이 온 세상에 확 퍼지게 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럽이 다 복음화 된 겁니다. 그래서 유럽이 기독교 국가, 즉 서구 사회가 된 겁니다. 그 사람들이 이민 가서 세운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입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봤지만 바울의 발걸음이 아시아로 향할 뻔 했잖아요? 그런데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는 뭘 해야 됩니까?” “유럽으로! 마게도냐 빌립보로!” 그래서 빌립보라는 첫 교회를 만들면서부터 유럽의 복음화가 되었는데 결정적으로 로마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유럽이 기독교 국가 즉, 서구 사회라는 문화를 이 세상에 만들었는데 서구 사회는 뭡니까? 잘 사는 사회 아닙니까? 

다 서구의 문명을 배우려고 하고 그것을 따라가려고 애를 쓰잖아요? 아시아는 바울의 발걸음이 그때 유럽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복음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복음의 역사가 240년 밖에 안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 유럽은 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240년입니다. 복음이 먼저 들어왔다면 우리나라가 서구 사회가 되었을 텐데 이렇게 된 것입니다. 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조금 앞서갔는가? 복음이 먼저 들어와서입니다. 사실 일본이 예수 믿는 퍼센트가 한국보다 아주 뒤떨어졌지만 복음은 먼저 들어왔고 순교자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더 많습니다. 

세계에서 아마 순교 많이 당한 나라가 일본입니다. 일본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예수 믿는다고 하면 다 죽여라.” 그래서 일본이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확산이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로마에 가서 “나를 통해서 땅 끝인 이 로마가 복음화가 되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내 생애에 그렇게 목표했던 것이 이제 나를 통해서 성취되니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노라. 

내가 원했던 것이 다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저는 개인적으로 땅 끝이 하나 있습니다. 온 세계 다니다가 거기 가면 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입니다. 그곳에 가서 복음을 한번 전하고 죽어야 되는데 능라도 체육관 잘 지어놨다는데 거기서 복음화 전도대회 설교를 한번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나도 죄수로 가야 되나? 나의 소원입니다. 바울과 같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정말 ‘나는 다 이루었다.’ 하고 죽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온 세계를 지금 다니고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 계획에는 하나님의 관심과 인도가 세밀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은 바울과 이렇게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똑같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와 똑같은 역사를 진행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애에 신앙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아니한 모든 일에 대해서 나의 편견적이고 주관적인 괴로움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편에서 나 자신을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그러한 고난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잘 믿었겠습니까? 뭐든지 그때마다 내가 가는 길을 이렇게 막으시고 이렇게 인도하시고 새로운 길을 여시고 또 잘못 가면 또 막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결과적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2010년 4월 28일 날 수요예배 나와서 앉아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를 가있는지도 알 수 없잖아요? 어디 가서 뭘 하는지도 알 수 없잖아요? 하나님께서 다 인도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해주셔서 세계 선교에 바울 못지아니한 세계 선교를 위해서 우리를 쓰시고 계시니 얼마나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우주적 계획과 섭리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우리가 영적 관찰을 통해서 볼 수 있을 때 내 삶의 기쁨과 은혜가 있어서 바울과 같이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이렇게 우리가 찬양하면서 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쇠사슬에 묶여서 죄수의 몸으로 배에 실려 로마에 가면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서 침몰 위기, 독사뱀에 독침을 받아야 되었던 이 모든 일이 바울은 지금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다. 그 모든 일이 합쳐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것이다.” 얼마나 좋은 신앙입니까? 우리 모두 그런 신앙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지금도 바울 사도의 간 길을 일평생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들도 그렇게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광풍과 같은 시절도 있었고 독사뱀에게 물렸던 괴로움도 있었지만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있는 것은 그러한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지나온 때보다 남은 생애 더 크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아버지의 사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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