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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아이와 같이 (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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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이 (마 18:1-4)


어느 교육전문가는 말하기를“18세기는 민중의 발견이요, 19세기는 여자의 발견이요, 20세기의 위대한 발견은 어린아이에 대한 발견이다.”라고 했습니다. 영국 시인 윌리암 워드워즈는(William Words Worth)는“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고, 소파 방정환 선생은“어린이를 낮게 보지 말고 높게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1세기에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어린아이를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한 오늘 이 시간에는“어린아이와 같이 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문에 3절에 심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면 신앙생활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본향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어린아이로 돌아가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이는 어른에게 간단히 무시당할 존재가 아니라 어른들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스승의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 어린아이들의 모든 것을 배우고 본받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이지만 어린이에게 꼭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다시 찾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 20절 말씀에“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배워야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에“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나라”고 하셨습니다.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사람 차별이 없습니다. 부잣집 아이나 가난한집 아이, 지위가 높은 집 아이나 낮은 집 아이, 교양이 있는 집 아이나 없는 집 아이, 전혀 구별 없이 한데 어울려 뛰어 놉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원리, 때 묻지 않은 참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점차 자라가면서 사람을 차별하게 됩니다. 즉 교만이 싹트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아파트 평수를 따라 친구 삼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것이 노골화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지식인은 지식이 없는 사람을,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차별하게 됩니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굽실거리지만, 힘없고 약은 사람에게는 군립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은혜를 내리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은 오염되지 않은 참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결과에 대해 잠언 18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귀하게 들어 쓰시다가도 교만해지면 그 사람을 버리십니다. 역대하 26장 16절~21절 말씀에 유대의 왕이었던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월권행위를 하다가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을 받아 처참한 꼴이 된 경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웃시야)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종드는 제사장까지 무시하며 월권행위를 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로 문둥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교만은 영적 문둥병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교만한 자는 지옥에서 큰 자요, 겸손한 자는 천국에서 큰 자라.”했습니다. 마귀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한 천사가 저주받아 세상으로 내어 쫓긴 것이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청평댐에서 견지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 근처에서 목회하는 목사님과 함께 낚시를 갔는데 그곳의 목사님이 말하기를 “여기 낚시 하러 온 사람들 중에는 돈 많은 부자도 오고, 장군 같은 계급 높은 사람도 오고, 큰 회사 사장이나 회장들도 오기 때문에 허름한 옷차림에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이라고 해서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돈이 있어도 있는 체 말고. 계급이 높아도 높은 체 말고, 공부 많이 하고 학위가 있어도 아는 체하면 안 됩니다.” 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장군이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낚시를 하는데, 그 옆에 별 두 개를 단 장군이 벙거지를 쓰고 그 옆에 있는 배 곁에 바짝 갖다 댔습니다. 그분은 계급이 더 높은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점잖게 좀 떼어 대라고 부탁을 했지만 들은 척도 않았습니다. 계속 떼라고 하니까 그 장군이 화를 내면서 ‘야, 이 새끼야. 네가 뭔데 남보고 떼라 말랴 해.’ 라고 했습니다. 꾹 참고 있다가 낚시를 마치고 나온 4성 장군이 자기의 신분을 밝히면서 그 무례한 2성 장군의 뺨을 치면서 ‘차렷! 쉬어!’ 하면서 기압을 주는데 알고 봤더니, 그 사단장 보다 훨씬 계급이 높은 4성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3장 7절에는 솔로몬 왕의 겸손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가리켜“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다윗 왕에 의해 국토가 크게 확장되었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당대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을 두려워했습니다. 다윗 왕에게는 여러 명의 왕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토록 큰 나라의 왕위를 계승시키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왕자를 세웠겠습니까? 아닙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그의 나이가 40세였습니다. 그는 남다른 통찰력을 지녔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자기를 낮추어 작은 아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겸손한 솔로몬을 사랑하셔서 남다른 은혜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미국 독립 당시 정치가, 사상가,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이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청년 때, 이웃에 사는 어느 노인 댁을 방문한 후 집을 나설 때의 일입니다. 그 집에는 천정보다 낮은 들보가 하나 있었습니다. 노인은 프랭클린이 머리를 부딪힐까봐 주의를 주었습니다. “머리를 숙이세요.”그러나 그 들보를 미처 보지 못한 프랭클린은 저분이 왜 저러시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말하기를“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만큼 부딪치는 일이 적을 걸세.”라고 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말을 평생 동안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귀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겸손을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 

2. 어린아이 같이 진실한 마음을 자기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0절에“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죄악이 무엇입니까? 거짓에 미혹된 후 나타나는 언행이 죄악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거짓에 미혹된 것이 죄악의 근본입니다. 죄악의 밑바닥엔 반드시 거짓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씀은 거짓에는 어린아이가 되어 진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거짓이 없습니다. 

어느 교회 성도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걱정이 된 목사님이 그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집에 계십니까?”하고 대문을 드렸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사람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대답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그 댁의 어린아이가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는 말이“엄마가 없다고 하래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거짓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맑고 깨끗하겠습니까? 눈만 뜨면 신문과 텔레비전에 톱뉴스로 등장하는 끝없는 부정과 부패의 현실을 보십시오. 거짓이 가득한 우리의 사회상을 풍자한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정치인: 나 한 푼도 안 받았어요.
국회의원: 당선되면 주민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교장선생님: 조회시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간단히.
에프터서비스 기사: 이렇게 복잡하게 망가진 건 처음봐요.
간호사: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파요.
친구: 이 이야기는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아파트 신규분양 광고: 지하철 걸어서 5분 거리.

하나님은 거짓을 탄식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도서 7:29)고 하셨습니다. 

반면 시편 84편 11절 말씀에는“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자의 하나님이시며,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진실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3. 어린아이는 어머니 품을 사모합니다. 

시편 131편 2절에“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의 마음을,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의지하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언제나 엄마의 품을 찾는 것이 특징입니다. 무서울 때에도 가장 먼저 엄마를 찾아 품에 안깁니다. 어린아이는 슬플 때에도 엄마의 품을 찾습니다. 추워도 엄마를 찾습니다. 배가 교과도 엄마를 찾습니다. 이처럼 어린아이는 어떤 경우라도 엄마의 품을 찾고, 엄마의 품이면 모든 것을 잊고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어린아이의 안식처는 오직 어머니의 품속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성인에게는 어머니의 품이 모든 것의 안식처가 될 수 없습니다. 고난 많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세상 그 어디에도 안식처는 없습니다. 우리의 안식처는 오직 하나님의 품속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인자하신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내게 와서 너의 모든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다 아뢰라고 하셨습니다.“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우리는 두려울 때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슬플 때에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괴로울 때에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답답하고 힘들 때에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시편 27편 10절에 말씀하시기를“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진실한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본래의 모습이며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이러한 성품으로 살아갈 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의 품을 찾는 어린아이와 같이 언제나 하나님의 품을 찾아 기쁠 때는 감사하고, 힘들 때는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참된 인식이 하나님의 품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두 팔을 벌리시고 우리를 부르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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