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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부모와 자녀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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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엡 6:1-4)

    
설교내용   
    
얼마 전 수요일 날 예배드리러 온 분들의 연령을 채크해 보았습니다. 40대 이전보다 이후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현상은 우리 교회뿐 아니라 대부분 한국교회가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 많아지고 노인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 가서 더러 시간이 있으면 일부러 탑골공원에 가 봅니다. 그곳에 가면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주 중앙 공원에도 가보라는 분이 있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전부다 노인입니다. 서성거리는 노인, 술을 드시는 분,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있는 분, 주변 분들과 대화를 하는 분, 음식을 드시는 분, 차 파는 아줌마와 뭔가 속삭이는 분, 공원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긴 시간, 한 곳만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분, 인생을 배웁니다. 5년 뒤 또는 10년 뒤 나를 봅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 갈 곳이 없는 사람들, 누가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 노인의 문제가 한국사회에 심각한 문제입니다. 

출산율이 점점 줄어들어 세계에서 어린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나라 그래서 다음세대가 줄어들고 있는 나라, 젊은이 한사람이 노인 부양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과거에는 여러 형제가 서로 협력하여 부모를 모셨는데 이제는 혼자 부모를 모셔야 하는 힘겨운 시대가 왔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커집니다. 가치관도 달라졌습니다.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은 구시대의 생각이고 일부 전통에 찌든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요즈음에는 자식 신세를 지겠다는 부모도 별로 없고 부모를 모셔야 겠다. 는 젊은이도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면 서구처럼 일찍 암치 자식들이 독립을 해 나가느냐? 그건 아니예요, 자식은 부모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까지는 노인이 되어도 받기를 원하지요. 부모도 마찬가지고요. 자기 힘이 닿을 때까지는 자식의 끈을 놓지 않고 반찬이라도 싸다 줘야 직성이 풀리지요. 자식은 부모가 끝가지 도움 주지 않아서 섭섭하고 부모는 자식이 나 몰라라 한데서 섭섭하지요. 

요즈음에는 신 고려장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습니다. 언젠가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니 해외에 자식을 믿고 따라갔다가 버려진 노인들이 많습니다. 자식들에게 재산 다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돼 한국으로 돌아온 노인들이 한 둘이 아니랍니다. 어떤 경우는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미국으로 여행을 가서 그곳에 버립니다. 여권도 자식이 가져가 버리고, 말도 통하지 않고, 기억력이 약한 노인들은 그곳에서 미아와 같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이러한 노인들을 모아 돌보는 목회를 합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자식들이 고속버스 터미널, 시외버스 터미널, 기차역전 대합실, 잠실의 롯데월드, 유원지 등에 나이 든 부모를 모셔다놓고, 부모님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자기들만 돌아가 버린다고 합니다. 또 최근에는 불황의 여파로 몸이 아픈 부모를 병원에 맡긴 뒤 병원비를 내지 못해, 자식들이 부모를 버리고 달아나는 '현대판 고려장'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 병원에서는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 주소지를 찾아가면 우편물만 쌓여 있을 뿐 가족을 찾을 수 없데요. 왜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저 출산이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자식이 많은 것이 복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수치라고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부가 어려운 시대에 인구가 늘어나니까?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더니 하나만 낳기 운동을 하고 그래서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보건소에서 나와 정관수술을 하면 훈련을 면제시켜주고 인구 억제정책을 썼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둘만 낳자 해서 요즈음 대부분의 가정에 자식이 둘입니다. 그러더니 둘도 많다 하니까? 하나만 낳자 해서 하나만 두는 가정이 많아지더니 자식 없는 것이 상팔자다 해서 홀로 가정이 점점 늘어납니다. 

가정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감옥이라는 생각 때문에 결혼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20대 출산율이 아주 희귀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노인 인구의 증가입니다. 잘 살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다보니 수명이 길어져서 노인인구가 감당하기 어려울정도로 늘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노인문제를 감당하기가 힘이 드는 시대가 왔습니다. 

두 번째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맘몬니즘의 가치관을 가지고삽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돈과 연결이 됩니다. 누가 올림픽에서 우승을 했다 그러면 바로 이어지는 것이 돈입니다. 돈을 얼마나 받느냐는 것입니다. 심지어 방송에서 조차 노골적으로 돈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에 쪄들어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돈이 모이는 곳이라면 기를 씁니다. 그러나 돈이 모이지 않는 곳에는 아무리 그 일이 가치가 있어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자식의 문제도 돈입니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낳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소중함은 없습니다. 그 생명이 얼마나 고귀하고 또 얼마나 세상에서 귀한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이 귀한 것은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출세해서 귀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하루 세끼 먹기 힘들다 해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이 귀합니다. 그런데 돈입니다. 

공부를 시키는 이유도 이다음에 돈을 많이 모아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옛 어른들은 사람 되라고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공부는못해도 좋으니 사람 좀 만들어 주세요.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소리를 하는 부모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부모는 천연기념물에 들어갑니다. 

세 번째는 부모들의 과잉보호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자식밖에 모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 하다가도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제가 구세대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부모들의 지나친 관심 과보호가 낳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자기밖에 모르는 자식을 만들었습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모릅니다. 오직 자기 하나 밖에 모릅니다. 부모도 모르고, 어른도 모르고, 이웃도 모르고, 도덕과 예절은 벌써 물 건너갔습니다. 요즈음은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합니다. 

저 어려서는 젊은이들이 어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어른들을 존경하고 높이는 예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입니다. 어른들이 고개를 들고 젊은이들을 쳐다보았다 가는 뭘 봐 하면서 욕을 얻어먹든지 잘못 걸리면 두들겨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곳은 되도록 피해 다닙니다. 

몇 년전 방송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아들이 80대의 연로한 부모님께 관광을 시켜드리겠다고 필리핀으로 모시고 가 자신의 집에서 한 달여 동안 극진히 모시면서, 한국에 있는 전 재산을 정리해 필리핀에서 함께 살 것을 제안했습니다. 노부부는 아들의 말만 믿고 한국에 들어와서 전 재산을 정리한 후 아들에게 맡겼는데, 필리핀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아들이 변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필리핀에서 부모님을 내쫒아 낸 것입니다. 머나먼 타지에서 오갈 데 없이 빈털터리 신세가 돼버린 이들 노부부는 현지 교민들의 도움으로 거처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자식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충격으로 수개월 동안 눈물을 흘리며 근근이 살았습니다. 

방송국 제작진이 그 아들을 만났지만 그 아들은 '법대로 하라'며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노부부는 방송 제작진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오랫동안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교민들에게 인사를 한 후, 마지막으로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들 자동차가 주차된 것으로 보아 아들이 집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여 집 앞 대문에서 "네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려고 한다"고 말했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어서 결국 할아버지는 아들을 뒤로 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와 자녀 이렇게 달라진 것은 부모 된 우리들의 책임이 큽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못 된 자식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부모를 버려야 겠다. 하고 계획을 세운 자식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의 재산을 빼앗고 부모를 두들겨 패야겠다. 한 자식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렸을 때를 기억해 보세요. 넌 누구랑 살래 엄마하고 아빠하고 그 소리 안들은 부모 없을 거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지요. 어렸을 때 엄마 제일 사랑해 아빠 제일 사랑해 아이들은 그랬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지금 나쁜 자식으로 만든 것이 누구입니까? 사회입니까? 학교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인성교육은 가정입니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지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바르게 세우는 사람은 선생님이나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 아이의 부모입니다. 부모보다 더 위대한 교육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모두 파출부 아주머니나 학원선생님에게 맡깁니다. 그 아이들이 도덕의 기준을 어디에서 배우겠습니까? 부모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교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바꿉니다. 돈을 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젊은 엄마들 잘 들어요. 여러분에게도 곧 닥치는 일입니다. 나는 아니겠지 할런지 모르나 내가 지금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나 돌아보세요, 내가 70이 되고 80이 될 때 내 아이가 나를 모시고 살까? 나를 버리지 않을까? 자식 의지 하지 않으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나요? 누구는 자식 의지 하고 싶어서 하나요, 어쩔 수 없을 때가옵니다. 속에서 자존심이 부글부글 끓어도 자식신세 안지면 안 되는 때가옵니다. 어떻게 할 건데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믿음의 가정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학교에서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교회학교에서 안 됩니다. 부모가 해야 합니다. 부모가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희브리 사람들이 자녀를 교육하는데 양보하지 않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쉐마’교육입니다. 신명기 6장 4절의 말씀이 신앙교육의 기초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철저하게 자녀교육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합니다. 우리는 결혼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들은 결혼식보다 성인식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13살까지 토라교육을 모두 마치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겠다는 의식을 치루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이 또 하나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철저합니다. 모든 일을 다 접고 안식일을 지킵니다. 가족이 다 지킵니다. 자식이 그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문제는 뭐인가요. 바쁜 일이 있으면 부모가 먼저 교회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엄마 나 볼일 있는데 오늘교회 못나가 하면 그것을 절대로 안돼 하는 부모가 몇이나 될는지 모릅니다. 대부분은 알았어. 갔다 와 하지요. 저는 여러분이 교회중심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교회에 최근에 등록한 교우가 있습니다. 이 분은 식당을 하는 분인데 믿으려면 제대로 믿자 해서 주일날 문을 닫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론 손해 많이 나겠지요. 그러나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을 집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100배로 갚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안식일을 귀하게 여길줄 아는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이 또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은 성전의 특징입니다. 고전 3:16절에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거하십니다.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예수님이 거하십니다. 그래서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청결합니다. 성전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곳에 가지를 않습니다. 더러운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깨끗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월요일마다 교회를 깨끗이 청소하는 우리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머문 자리는 자기가 치워야 합니다. 자기가 지나간 자리는 깨끗해야 합니다.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예다움을 이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기자리를 잘 정리 합니다. 보기가 좋습니다. 그러나 더러 더러 길가에 커피 먹은 잔을 버리고 이것저것 지저분한 것들이 버려져 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의 부모가 어떤 분이었는가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만사가 청결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희브리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야 흠 없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고 거룩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로 또 한 가지 중요한 교육방법은 ‘식탁교육’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성경을 교육합니다. 잠언을 보면 ‘내 아들아’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는 다윗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아버지로부터 온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식탁에서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의 말씀대로 저는 여러분에게서 자란 자녀들이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의 부모님 때문에 행복했고 하나님을 발견했다. 나는 나의 부모님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되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심어주십시오. 예수님을 심어주십시오. 절대로 여러분의 자녀가 망하지 않고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요동할지라도 하나님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7대 대통령 안드류 잭슨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순종한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날마다 성경을 읽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잭슨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백화점 왕 와나메이커 역시 부모님의 교훈을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사랑을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분이 어머니였고, 나에게 기도를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분도 어머니였으며, 내 영혼에 밝은 등불을 켜 주신 분도 어머니였고, 행복을 가르쳐 주신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부모가 기도를 가르쳤고 성경 말씀을 들려주었고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불량품으로 만들지 마세요.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빚어져야 하는데 부모들의 극성으로 부속이 정품이 아닌 불량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성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한데 하나님보시기에 불량품입니다. 세상에 불량품 인생이 많은 것은 부모들의 책임이 큽니다. 자녀를 잘 키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기도로 눈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명품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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