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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우리의 희망둥이 - 자녀들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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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희망둥이 - 자녀들 (신 6:4-9)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날 노래’ 아십니까? “(1절)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2절)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오늘만이라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어린이날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습니다. 특별히 5/5일 우리는 전 가족이 한강 고수부지에 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주 안에서 화목하고 섬기며 사랑하는가를 함께 나누는 현장이기 때문에 한 분도 빠짐없이 나아오기를 바랍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 우리교회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어린이날이 우리 한국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살던 당시의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의 지배 아래 모든 사람들이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참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어린이란 부모에게 예속되어 아무런 권리나 주장도 펼 수 없었고 민족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 넣어주고,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하였습니다. 

아이들, 이름만 불러도 설레이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오랜 시간 진통 끝에 아이를 난 한 성도의 병원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이난 기쁨 때문에 그 간의 고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 잊어버리고, 연실 아이를 보며 싱글 벙글 합니다. 비단 이 가정뿐이겠습니까? 각 가정마다 아이들을 선물로 받으면 기쁨이 집 안을 진동시킵니다. 

그 아이들이 방바닥을 기고 걸음마를 시작하면 웃음이 저절로 넘쳐납니다. 몇 살이 안 되어 글자라도 읽고 그림이라도 어설프게 그리면 집안에 천재가 났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합니다. 사람은 아이일 때가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악이 무언지도 모르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일도 없으며 품에 안길 뿐이니 이때처럼 귀여울 때가 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소년기와 청년기로 들어가며 성장하고 나면 얘기는 아주 달라집니다. 

어릴 때 그토록 사랑스럽던 자식이 뿔난 소처럼 치어 받으며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사회에 반항하고 이런 저런 문제들을 일으키는데 어느 부모의 표현처럼 “이럴 줄 알았으면 무자식이 상팔자일 뻔했다” 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비로소 인간 이란 존재가 자식이든 배우자든 남자든 여자든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사람을 함부로 보았다가는 큰 낭패를 겪는 법입니다. 며느리가 들어온 후 달라지는 아들을 보며 쓰러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들이 수없이 많으며 딸이 결혼한 후 명절이나 휴가에 시집으로 곧장 달려가는 장면 앞에 망연자실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정도이면 다행인 것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주관이 생기는 것이고 자의가 강해지는 것은 성장의 한 측면인 것이니 탓할 제목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들이 도박에 빠져들어 자기 돈 뿐 아니라 회사 돈까지 손을 대고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 앞에 부모는 혼절을 하듯이 주저앉습니다. 오, 자식이여! 그토록 순종 잘하고 부모 마음에 쏙 들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완전히 변해버린 것을 보고 절망하는 아버지의 얘기도 들려옵니다. 

어느 날 캠퍼스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이 아버지가 기절을 할 듯이 놀랐는데 거의 여인이 되어 여자 옷, 여자 화장, 여자 행동을 하며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동성연애에 빠진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이 부모의 절망과 흐느낌을 보았습니다. 오, 인간이여! 그렇게 귀엽고 착하기만 하던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별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부모에게 통보하기를 지금 임신 6개월이 되었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힐 마음이 없으니 그런 줄 알라고 차분하게 말하는데 엄마는 결국 실신하여 쓰러져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내게서 난 아이가 맞습니까?! 이런 아우성들이 우리 주변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정말 자식은 받는 대상이 아니라 키워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의 자녀 정말 어떻게 키워야할까, 여기에 있는 부모들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본문 신6:4-9절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자녀 교육의 놀라운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이 말씀을 유대인들은 “쉐마“ 라고 부릅니다. ”전통“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가정에는 집집마다 “쉐마”라는 상자를 보관합니다. 이 상자는 가죽으로 만든 상자인데 그 상자 속에 양피지로 만든 두루마리에 하나님의 교훈을 기록해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루마리를 아침저녁으로 꺼내 읽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백성들을 소집해 놓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읽어주었던 말씀입니다.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영원히 자녀들을 가르치는 말씀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때 하나의 전통으로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말씀을 전통, 쉐마라고 부르며 유대인들은 후손들을 가르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영리하고 지혜로운 나라가 어느 나라인 줄 아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유대인은 전 세계에 흩어진 사람 다 합쳐봐야 불과 1,500만 명밖에 안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현재 세계인구의 0.2% 밖에 안 됩니다. 그럼에도 이 민족은 지금까지 역사상 가장 많은 창조적 인생을 탄생시켰고 그 소수 인구가지고 지금도 세계 역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쓴 사람, 공산주의 제창자, 미대륙 발견자, 원자폭탄 발견자, 자본주의 제창자가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가 미국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이 70-80%의 미국의 경제권을 가지고 있고 세계 노벨상의 3/1의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그리고 지금도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뭐,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 교육 때문입니다. 여기 이 신명기 6:4-9절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세 가지 강조점이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시 중동사회가 다신론이요, 범신론이요 자연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저들의 문화에 빠져들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부모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좋은 신앙인이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본 그대로 믿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만한 교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부모를 가졌다면 그는 부자다”라고 했습니다. 

풀러 신학교에서 가족 사회학을 가르치는 잭 볼스(Jack O. Balswick)교수라는 분이 계신대 이분은 오늘날의 모든 가정을 세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전통적인 가정, 2)현대적인 가정, 그리고 3)성경적인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유형의 가정은 누가 가정의 주인인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의 주인은 부모님이나 남편 등의 가부장적인 권위라고 할수 있다면 현대적인 가정에는 주인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지만 반면에 통제와 학대가 있습니다. 반면 현대적인 가정에는 자유가 있습니다만 무질서와 혼란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적인 가정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가 다스리는 가정의 특성은 질서와 자유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 

2. 부모가 두 번째 할 일은 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6-7절을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신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가르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모님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가르칩니다. 회당에서 동네 어른들이 가르칩니다. 정부가 나서서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이 쉐마교육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쉐마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의 행동을 명하는 동사들을 보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이를 교육학에서는 각인 교육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자식농사를 짓는 비결이 남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현대 가문의 정주영 회장은 모든 자식들을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교육하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자식이 귀할수록 혹독하게 길렀습니다. 삼성그룹을 이룬 이병철회장은 기록하는 메모습관을 길러주었고, “말 잘하는 것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재벌 중에 LG가문은 아주 특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 사귄 사람과는 헤어지지 말고, 헤어진다면 적이 되지 말라.” 그런데 한화가문은 “단맛 쓴맛 다 겪어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말하는 대로 되고, 교육하는 대로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좋은 가문을 만들려고 힘쓰면 좋은 가문이 되는 법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좋은 가문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다 잘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잘 가르쳐야합니다. 좋은 습관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배움이란 지겨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요, 꿀처럼 달콤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선생님과 학생이 기성세대와 다음세대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함께 놀아주고 있습니다. 체벌 대신에 반성의 시간을 주고, 밤마다 책을 읽어주고 함께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역사를 가르치고 동참하게 하므로 강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유태인의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이 아니라, 암기법과 질문과 토론 일색의 교육방법에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무엇을 배웠니?”라는 말 대신에 “오늘 무엇을 질문했니?”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차조심 하라”고 하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하지 말고, “오늘 선생님에게 질문해야 해, 모르면 물어봐”라고 해야 합니다. 

세 번째 부모가 할 일은 실천하는 일입니다. 8-9절을 보면 가르치는 일 뿐만 아니라 “너는 이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교육에서 가장 큰 맹점이 말만 앞서고 실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거역하는 것도 언제나 부모들이 말만 앞서고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혼자 앉아서 육아백과사전을 펼쳐 놓고 읽고 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깜짝 놀라 왜 그 책을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부모님들이 나를 교육원리를 따라서 양육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읽고 있다고 대답하더라고 합니다. 오늘 아이들이 이렇게 징그러울 정도로 영악하고 무섭습니다. 부모의 신앙생활을 아이들은 보고 있습니다. 한 1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글로 우리에게 감동을 던져주었습니다. 환경미화원인 아버지와 작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어느 날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온 아들을 보고는 의심이 들어 어떻게 된 것인지 다그쳐 물었습니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아들은 며칠 만에야, 버스 정류장에서 남의 손지갑을 훔친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내 아들이 남의 돈을 훔쳤다니..”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환경이 어렵다고 잘못된 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며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경찰서로 데려가 자수하게 했습니다.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아들의 범죄사실이 한 가지 더 밝혀졌고 결국 아들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일로 마음 아파하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판이 있던 날 법정에서 어머니는 울먹이며 판사에게 말하기를 “남편의 뜻대로 이 아들이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엄한 벌을 내려주세요” 해서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아들은 법정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정말 잘못했습니다.” 드디어 판결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판사는 “처벌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꽝,꽝,꽝!!” 뜻밖의 판결에 어리둥절해하는 당사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판사는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의 인생을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재능과 은사를 개발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신 그 인생을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떠나보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못다 이룬 인생을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내가 만난 예수를 자녀들에게 평생을 전하고 가르쳐야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세우고 그들의 삶 속에 예수의 향기를 가지고 살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야 할 그들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어느 날 미련 없이 떠나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떠남의 날을 생각하며 오늘 당신의 자녀들을 위한 최선의 준비가 무엇인가를 기도하십시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샌디 워너(Sandy Warner)라는 기독교 동화 작가의 독수리 이야기에서 부모 독수리가 아기 독수리와 작별하는 순간의 묘사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부모 독수리는 자녀 독수리가 부모의 품을 떠날 때가 가까웠다고 느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자녀 독수리를 비상시키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아기 독수리 곁을 나르며 이렇게 말한다. ?넌 이제 혼자 나를 수 있어, 다음에 우리는 네가 나르는 그 멋진 모습을 저 높은 곳에서 지켜 볼 것이야. 아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보내는 특별한 소리와 함께 네 비상 도움을 요청하는 날개 짓을 하면 되는 거야. 아빠 엄마는 언제라도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 하지만 너는 곧 너의 아기 독수리를 키우기 위해 우리를 당분간 잊어 버려도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지. 다만 먼 후일 언젠가 우리가 보고 싶으면 넌 저 광야의 골짜기로 내려오면 돼. 거기서 넌 너의 늙은 아빠 엄마 독수리를 다시 볼수 있을 거야. 아빠 엄마는 늙으면 더 이상 이 높은 곳에서 살수 없거든. 하지만 그때에도 아빠 엄마 독수리는 너를 알아보고 저 골짜기에서도 너의 멋진 비상을 응원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을거야? 

그리고 이 말과 함께 마침내 부모 독수리는 그동안의 익숙했던 자신들의 둥우리를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기 독수리를 사정없이 밖으로 밀쳐 낸다. 더 먼 곳으로 더 멀리 비상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다시 부모 독수리는 허공을 가르는 큰 소리로 외친다. “그것 봐! 넌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우리보다 더 멋지게 나는 거야!”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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