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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어린이 (삼상 2:26, 골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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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어린이


오래 전 ‘타임’이란 잡지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인물은 엘리자베스 1세라고 합니다. 20세기 최고의 도구는 나사못이고, 최고의 패션은 지퍼입니다. 그러나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어린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18세기를 민중의 재발견 시대라고 하고, 19세기를 여성의 재발견 시대라고 하고, 20세기를 어린이의 재발견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21세기를 문화의 재발견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 시대에 어린이의 인격과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린이날 어린이들에게 주는 선물의 공식이 있습니다. 남자는 총, 여자는 인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공식이 깨졌습니다. 형제들이 없기 때문에 혼자 노는 장난감이 인기가 있습니다. 총이나 칼 보다 요술봉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싸울 형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장 소품 세트도 이제는 필수기 되었습니다. 남녀의 구분도 사라져서 남자 아이가 십자수를 놓고, 여자 아이가 총 놀이도 합니다. 
  
옛날 어린이와 요즘 어린이를 비교한 글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린이대공원에 갔다가 자장면을 먹으면 최고의 날입니다. 요즘에는 먹는 것보다 게임기나 현찰을 요구합니다. 옛날에는 숨바꼭질, 땅따먹기, 고무줄 등이 어린이의 놀이였지만 요즘에는 스타크레프트, 디아블로2 등을 합니다. 어린이의 생활과 사고의 변화는 말할 수 없이 빠르게 진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린이를 좋아하신 이유는 어린이는 경이감과 열정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는 성경이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다”라고 하시며 어린이를 칭찬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며 어린이를 높이셨습니다. 어린이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딱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린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좋은 습관은 평생을 좌우합니다. 저도 어릴 때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행동을 만듭니다.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인격을 만듭니다. 사람은 어릴 때에 좋은 습관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평생을 사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인삼은 ‘6년근’일 때 캐는 것이 가장 좋은데 산삼은 언제 캐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정답은 보는 즉시 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왠지는 여러분이 아시겠지요? 아이들에게 좋은 것은 즉시 깨우쳐 알게 하고, 나쁜 것은 즉시 뿌리 뽑아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 평생을 가게 하는 생활습관은 보는 즉시 바꾸고, 깨닫는 즉시 없애고,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행동은 미루지 말고 바르게 고쳐주어야 합니다.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하지 말고 즉시 고쳐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아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 어린이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어린이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어린이가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인 어린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건강하고 지혜로운 어린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 기쁘시게 합니다. 

사무엘상서 2:26에는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합니다. 사무엘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모형이며 그림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누가복음 2:52과 흡사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전인 성장과 천인 총애를 받았습니다. 지혜와 키가 같이 자라야 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이 둘이 다 필요합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과 비교가 됩니다.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멸시 받은 자입니다. 이런 엘리의 아들들에 비해 사무엘은 사랑받고 칭찬받는 아이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멸시받고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그 부모의 잘못된 교육 때문입니다. 넷째는 제사장의 가정으로서 무책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율법과 계명은 사람을 무섭게 하고, 사람을 죽이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을 죽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필요하지만 사람을 문자적이고 인정적이 아니게 만듭니다. 옛날 장군인 어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전투에 갔다가 오랜 만에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랜 동안 가족을 보지 못하고 더구나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난 아버지는 아들을 보는 기쁨에 젖어 있었습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칼을 찬 아버지가 반가워 “아들아” 하고 달려갔지만 정작 아들은 아버지를 보더니 기절할 듯이 놀라면서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갑옷과 투구를 벗고 칼을 내려놓자 그제야 아들은 “아빠”하며 웃음을 지으며 아빠에게 달려왔습니다. 율법은 의롭게 하지만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은총이나 사랑은 비로소 사람을 자유하게 하고, 웃게 하고, 밝게 합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많이 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감을 가지고, 인정이 있으며, 온유하여지고, 자유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야단만 치면 질투하고, 책망하고, 비판하는 능력만 커지게 됩니다. 
  
사람은 모두가 은총이 필요합니다. 어누 누구나 예외 없이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은총 없이 구원도 없습니다. 은총 없이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은총을 받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이 은총이 필요합니다. 특히 어린이에게 이런 은총이 있어야 건강하고 예쁘게 자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공짜가 아니라 우리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어린이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착한 아이가 많이 있습니다. 착한 아이가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모든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착하지 않은 자녀보가 착한 자녀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지만 그래도 착한 아이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천안함 희생자들을 보세요.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많지도 않은 월급을 쪼개어 적금을 든 아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동생들을 위해 입대한 형도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을 떠나고 나니 한 결 같이 착한 아들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착한 아이가 은총을 더 많이 받습니다. 
  
예수님의 착한 유아시절을 보세요. 얼마나 착한지 이런 찬송가 가사도 있습니다. “저 육축 소리에 아기 잠 깨나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그 귀한 예수를 나 사랑하니 새날이 밝도록 함께 하소서”. 예수님은 얼마나 순한 아기였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에 참 착한 아기였습니다. 
  
빌립보서 4:8에는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만한 하고, 은총 받을만한 아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 다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사랑을 많이 베풉니다. 오래 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사람을 베풀 줄도 모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하면 도망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베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 사랑을 베풀 줄도 압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주께서 이 자라에 함께 계심을 아노라”고 찬송합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아이들이 주의 은총을 받은 자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아이들이 주의 은총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길 바랍니다. 

  
둘째, 부모에게 순종해야 기쁘시게 합니다. 

골로새서 3:20에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순종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순종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파쿠에테’인데 강력한 명령입니다. 이 말은 선택사항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순종이란 말 자체가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아내들에게도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였는데 이때 사용했던 용어인 ‘휘포탓세스데’라는 말에 비해 위의 말은 강제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사항입니다. 
  
에베소서 6:1에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합니다. 왜 순종해야 합니까? 옳은 일이니까 순종해야 합니다. 옳은 일은 의로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의로운 일이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입니다. 순종이란 우리의 충동적 의지를 굽히는 것입니다. 
  
구약은 더 엄격합니다. 신명기 21장에는 자녀가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으면 잡아다가 장로에게 데려가서 어머니가 “내 아들은 순종 않고 방탕하다”라고 외치고 성읍 사람들은 돌로 치라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돌에 맞아 죽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로마서 1:30에는 이교도를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부모에게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불순종이나 거역하는 일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나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범위를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라고 합니다. 순종의 범위는 모든 일입니다. 모든 일에 순종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절대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은 순종하고 어떤 일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순종을 선별하지 말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건 엄마가 몰라서 그래’, ‘아빠, 요즘은 안 그래’. 부모를 옛날 사람, 무식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배워도 나이 들지 않고는 배우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경륜입니다. 
  
자녀의 순종은 부모의 기쁨입니다. 불순종은 슬픔입니다. 하나님께도 그렇고 부모에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습니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좋은 옷을 사오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차를 사드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모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마태복음 3:17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기쁨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51에는 “예수께서 함께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산 30년의 세월이 ‘순종하며 사셨다’는 두 단어로 요약된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항상 긍정적 말을 하십시오. “네가 내 기쁨이다”, “내 아들, 내 딸 되어주어 고맙다”,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이런 좋은 말들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자식은 무엇입니까? 시편 127:3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라고 합니다. 야곱이 20년 만에 형 에서를 만납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물어봅니다.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그 때 야곱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정말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자식입니다. 늘 그렇게 고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녀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낳지 말아야 할 걸 실수로 낳았다”, “너는 아들 아니라 원수다”, “자식이 애물단지다” 그리고 심지어 “나가서 죽으라”고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이런 말은 순종을 잘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입니다. 
  
스바냐 3:17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입니다. 우리 자녀가 우리의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가 태어날 때부터, 처음부터 예쁜 존재입디까? 태어나자마자 예쁘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예뻐하고 사랑해주니까 예쁜 존재로 변한 것입니다. 우리 자녀가 사랑해야 예뻐집니다. 
  
부모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성경에는 순종하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라고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합니다. 
둘째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6:1에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합니다. 
셋째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3:1에는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넷째는 추종자가 지도자, 특히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3:17에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합니다. 
다섯째는 종이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3:22에는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순종하라는 말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이 가장 강하고 가장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순종입니다. 

  결론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는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웜우드야,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의가 가장 큰 위협에 처할 때는 한 인간이 우리의 원수의 뜻을 행할 의욕이 없는 중에도 의지를 보이며, 그의 흔적이 다 사라져 보이는데도 우주를 올려다보며, 그에게 왜 자기를 버렸는지 따지면서도 여전히 순종할 때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순종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가장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자녀들, 순종하는 마음은 절대 잃지 마세요.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이것이 복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 모든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부모님께 기쁨이 되는 귀한 자녀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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