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천국에서 큰 자가 됩시다

  • 잡초 잡초
  • 263
  • 0

첨부 1


“천국에서의 큰 자가 됩시다.”


지난 해부터 어린이주일을 렘넌트주일로 명칭을 바꾸어 기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나이가 어린 아이라는 뜻이 강하지만 렘넌트에는 그 안에 시대적인 비전이 담겨있습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 6:13)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의 참된 소망이 그루터기 즉 렘넌트에게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3장의 흑암 현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낼 렘넌트를 위해 우리가 인생의 전부를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이 중요합니다. “부모는 활을 당기는 사수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수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화살이 예리하고 성능이 좋다하더라도 잘못된 곳을 맞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영적인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자녀들은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비상할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적 길잡이 원칙을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모든 성도 여러분에게 렘넌트의 사실적인 발판이 되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가치기준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1)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한 데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가 가장 부각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답변도 베드로가 했고 변화산에서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주로 예수님과 대화한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예수님과 주도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던 제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지금 베드로가 가장 큰 것처럼 보이는데 천국에서 그렇습니까?”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이 참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상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중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다음의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며 행복한 삶을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이를 방해하는 사단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다 빼앗기고 멸망 길로 가고 있는 인간을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 사단,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하여 창세기 3장의 모든 저주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시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의 과거·현재·미래 모든 죗값을 갚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시는 영적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누가 주도권을 가질 것이냐를 놓고 자리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의 삶에 걸친 문제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3장의 문제도 결국 피조물 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가 되어보려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생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 거할 때 참 행복, 참 자유, 참 기쁨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주도권을 인간이 갖겠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인생의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이러한 철없는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천국의 가치를 가르치시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앞에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 기준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삶이 하나님의 가치 기준에 부합하는 삶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겸손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교만하면 절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시대적인 렘넌트로 양육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바로 말씀 앞에 겸손할 수 있는 영적 자세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하나님 말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가치 기준을 심어 주는 것이 최고의 양육입니다. 

한 교육학자는 마 7:9~10 말씀을 인용하여 “요즘 부모들은 떡을 달라는 아이에게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 아이에게 뱀을 주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사랑을 달라는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켜 주고, 같이 놀아달라는 아이에게 돈을 주어 그걸로 뭘 사먹고 놀라고 하며, 뛰어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각종 학원으로 보내고, 함께 밥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식당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문을 두드리는 아이에게는 독서실 문만 두드리면 된다고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정도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상 풍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언약 전달에 실패하는 것은 모든 것에 실패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언약을 놓친 성공과 출세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렘넌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축복을 사실적으로 체험하며 영적 정상에 설 수 있도록 언약 전달에 성공하는 가정을 만들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의 모델링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5~7)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한 영혼의 소중함과 가치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한 영혼이라도 실족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 18:12~14 말씀을 통해서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를 들어 한 영혼이라도 실족케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밝히고 계십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믿음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절대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의 믿음이 성장하게 되어야지 믿음을 잃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의 자녀를 상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로서 자녀들의 믿음의 통로가 되어야지 실족케 하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믿음의 모델링입니다. 자녀들이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믿음의 모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자녀에게 성경 읽으라는 말을 하는 대신 여러분이 먼저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라는 말을 하는 대신 먼저 여러분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예배 잘 드리라는 말을 하는 대신 여러분이 먼저 예배를 통해 최고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을 보이면 그러한 영적인 흐름이 가정 안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현장 사역 속에서 축복을 사역화 할 필요가 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서로를 축복하여 주는 것을 실제 삶 속에 적용하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왜 내 남편은 변하지 않는가?”, “내 아내는 왜 저럴까?”, “내 자녀는 왜 변화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던 분이라면 한번 스스로를 진단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평소에 얼마나 상대방을 향해 축복의 말, 축복의 기도를 해 보았습니까? 남편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아내가 남편을 축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변하지 않는 까닭도 부모가 자녀를 축복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축복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가장 존귀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놓치지 마시고 서로를 향해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하여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는 믿음의 모델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판소리를 보면 겉으로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중요해 보이지만, 흥을 돋우는 고수의 북장단이 제대로 되어야 비로소 명창의 소리가 빛을 발할 수 있게 됩니다. 

렘넌트들이 전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러한 영적 고수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우리가 렘넌트 문화센터, RUTC 등을 세우고자 헌신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겉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더라도 영적 고수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으시고 참된 헌신의 이유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렘넌트를 세우는 데에 참된 가슴을 가지고 헌신의 모델이 되어 시대적 응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