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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 6:9-13, 눅 11:1-4)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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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 6:9-13, 눅 11:1-4)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기도의 가장 좋은 모범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외식하는 기도,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본 받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기도의 모본입니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제자의 요청에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모본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 모델이지 이 기도문 글자 그대로 주문 외우듯 암송하라고 주신 뜻은 아닙니다. 이 짧은 기도문 속에는 기도의 중요한 요소들이 분명하게 담겨져 있으니 이 기도문을 모델 삼아 올바른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도록 도와줍니다. 주기도문을 주의 깊게 읽어보시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이 기도는 내용에 따라 여섯 가지 혹은 일곱 가지 간구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크게는 두 부분, 하나님께 대한 간구와 사람에게 대한 간구로 구분합니다.   

그 첫번째 하나님께 대한 내용 세가지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하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아침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그 하나님 말고 다른 어떤 신에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다고 하셨으니 땅에 있는 육신의 아버지와 대조되는 하늘 아버지십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좌소, 즉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로 상징되고 땅은 사람의 거처라는 대조법입니다.   

마가복음 16:19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 하늘로 올져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할 때 하나님이 계시는 그 하늘입니다.  

역대하 6장 솔로몬의 성전 봉헌기도를 참고하면,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6:18)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건물에 제한적으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광대하신 하나님을 용납하지 못하는데 어찌 사람이 지은 성전에 갇혀 계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솔로몬은 ‘백성들이 이 전에서’ 혹은 ‘이 전을 향하여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하며 기도제목들을 열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고 하여 문자적으로 오직 하늘에만 계신 분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 가운데 충만하신 분,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가장 높고 높으신 분이라는 상징적인 표현법입니다.     

시인이며 노래하는 사람이었던 다윗은 시편 18편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시18:7-9).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세계 주요 공항들이 발에 묶여 혼란이 발생하였을 때 어떤 사람이 우스개 소리로 하나님의 콧김 한번에 온 세상이 마비되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콧김을 한 번 발하시니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공항들이 올 스톱 될 정도였습니다.  비행기는 승객들을 가장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우리 시대에 최고 편리한 교통수단입니다.   그러나 최첨단 기기를 장착한 제트 비행기가 화산재를 만나면 엔진이 망가져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항공기 운항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그때 들은 말에 의하면 화산재로 하늘이 닫힌 주간 런던 히드로 공항 활주로가 역사상 가장 조용한 기간을 지냈다고 합니다.   유럽의 하늘은 고요한데 지상과 해상에서는 발이 묶인 여행객들 수송문제로 대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부활절 휴가를 마치고 귀가하려는 승객들이 급한 마음에 각 항공사 웹사이트를 동시에 방문하여 접속률 폭증으로 customer service가 한동안 마비되었습니다.  공항마다 발이 묶인 승객들이 발을 동동 굴렀고 오갈 데 없어 지친 승객들은 졸지에 영화 터미네이터 주인공이 되어 공항 대합실에 머물며 하늘이 열리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랜트카 회사들은 자동차를 찾는 손님들에게 비싼 웃돈을 받아가며 순식간에 예약을 마감하였습니다.  유로 스타와 페리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려는 승객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입석 기차표까지 금방 동이나고 페리 회사들은 예상에 없던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문명의 이기를 한 순간에 무력화시키고 문명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자연의 대단한 위력입니다.  

항공기 운항 중지 조처가 내려진 주간 독일에서 열린 유럽선교대회에 참석했다가 제 날짜에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저는 화산재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집에 돌아갈 수 없어 겪어야만 했던 불편한 일들이 있었지만 이번 일이 인명이 손상되는 사고는 아니었기 다행이지 만일 전쟁이나 테러, 대지진이라도 일어났다면 그 혼란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였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항공기편이 계속 지연되고 취소되면서 상황이 불투명하게 되자 사람들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마음이 조급해져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흥분하고 남을 배려하는 여유가 부족한 모습도 드러납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 주님 다시 오실 때 도적같이 홀연히 임하신다고 하셨으니 평소에 준비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 그날에 놀라고 당황할 것은 이런 일과 비교할 바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일에 능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그날을 예정하시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세상에 빠져있던 사람들에게 그날은 두려움과 울부짖음이 있는 탄식의 날이지만 그날을 기다리며 주 안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영광의 주님을 눈으로 뵙는 은혜의 날이 될 것입니다.   높으신 하늘 아버지를 의식하며 그 아버지의 자녀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땅에 있는 아버지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하늘 아버지는 모든 일에 능하십니다.   나를 낳고 기르신 아버지는 어쩌면 많는 점에서 부족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아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나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술주정꾼일 수 있고,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가장의 책임을 못하는 무능하고 가련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사랑과 자비와 능력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혹시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사랑도 다정한 말도 도움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하늘 아버지가 계시니 그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으니 어찌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감히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이렇게 부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당신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라 부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아바’란 말은 어린이가 아빠를 부르는 친근한 아람어 호칭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영적인 아버지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아바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기 어려운 이름이니 아버지이시지만 우리와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고 감히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는 너무 높고 거룩한 분이라는 생각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경건한 믿음이라는 전통 신앙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 아버지이시며 언제라도 우리를 만나주시는 다정다감한 아버지로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파격적인 행동이 정통 유대인들에게는 대단히 건방지고 무례하게 보였습니다.   감히 갈릴리 나사렛 시골 목수 출신 청년이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무시하고 지엄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거침없이 불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더 큰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남들이 볼 때 좀 모자라 보여도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식입니다.   다른 사람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못된 죄인일지라도 부모는 용서합니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떠나 방황하다가 쫄딱 망하여 돌아와도 달려가 끌어 안고 얼굴을 부비며 맞아줍니다.   잘 났든 못 났든 자식은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는 자식이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니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이런 분이십니다.   도무지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지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자식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며 품어 안으시는 사랑이십니다.   지금도 하늘 아버지께서는 집을 떠난 자식이 돌아오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양자로 받아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이 되게 하십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지금은 땅에 계시지 않아 아버지를 더 이상 부를 수 없을 때 언제라도 하늘 아버지를 부를 수 있음이 우리의 특권입니다.   든든한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는 자부심으로 신앙생활하며 하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들이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 합니다.   마음처럼 능력이 따르지 못함이 문제이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음은 아닙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일까보냐 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있어야 할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며 가장 적절한 순간에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입니다.  영어의 children하면 보통 어린아이들이라는 느낌으로 이해됩니다.  말 그대로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예수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너희가 어린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를 절대적으로 사모하고 바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3.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우리가, 우리의, 우리를’이라고 기도합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어떤 권사님이 대표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을 부를 때 언제나‘내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그 기도를 듣고 있노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마치 그분의 아버지가 주는 것을 얻어먹는 의붓자식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열렬히 내 아버지를 외치는 분이셨습니다.   내 아버지라는 호칭은 개인기도 시간에는 괜찮지만 대표기도 할 때는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 아버지여 한 것처럼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맺어진 가족이며 대표기도는 가족 전체를 위한 공동기도이기 때문입니다.
    

4.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부른 다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하라 하십니다.    우리 기도의 첫 관심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목표는 나의 바램을 하나님께 전달하려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첫째 목적입니다.   기도는 그 대상과 목적이 예배와 동일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예배를 드리십니까? 나의 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하였습니다(창12:7). 내 소원을 아뢰려고 기도하고 제단을 쌓는 줄 알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예배와 기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나의 필요를 알려드리고 청구하느라 온 정성과 시간을 쏟아붓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십시오.   나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무엇을 달라고 구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며 살고 있습니까? 그것이 기도의 바른 순서이며 기도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하늘 아버지께 대한 당연한 예의입니다. 아쉬울 때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하고 찾아뵙는 불효자식처럼 어쩌다 급할 때만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것도 제 욕심을 먼저 꺼내놓고 자기 소원 이루기 위해 많은 말을 쉴틈 없이 쏟아붓는다면 어찌 정상적인 부자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그것을 구하는데 온 신경을 쓰지 말라 그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정의를 구하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내용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가 있었는데 평판이 너무 안 좋아 동료들에게   ‘알렉산더 저 녀석, 사고뭉치, 골통...’  이런 욕을 먹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소문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대왕의 귀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마침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를 만났을 때  ‘알렉산더, 너는 오늘부터 네 이름을 바꾸든지 네 이름에 어울리게 살아라’ 명령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 가문의 명예를 위하여 힘쓰는 사람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의식하고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 입어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의 한자 표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불신자들로부터 개독교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듣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살던가 기독교인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 혹은 그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 아래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름의 영광을 힘 입어 사는 우리는 그 이름에 걸맞는 교회와 성도로 살고 있습니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잊지맙시다(레 11:45).  사람들은 저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도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을 빛내며 하늘 아버지의 아들과 딸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자녀들이 아버지께 무엇을 구할 때 기뻐하시며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있어야 할 필요한 것을 즐거이 허락하십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3계명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을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하셨습니다.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앞세워 그 거룩하신 이름을 모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함부로 약속하고 장담하는 것은 그 이름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위기 19:20) 하셨습니다.  다급할 때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거짓을 감출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맹세하는 것, 장난삼아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범죄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높고 거룩하신 전능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시는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그 누구든지 아버지를 향하여 돌아오는 사람은 차별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환영하시는 아버지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는 이런 좋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나의 욕심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우리의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성도의 삶이 우선되어야 함을 또한 잊지 맙시다.   이런 기도가 진정 하나님께 인정이 되고 우리에게 응답의 기쁨이 됩니다. 한 주간 내내 하늘 아버지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복된 자녀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빛내는 사랑스런 자녀의 삶을 힘 있게 살아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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