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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하나님 나라와 어린이 나라 (막 1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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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어린이 나라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지키는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 시대에 꿈과 희망을 안고 자라나는 이 땅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어린이는 미래 사회의 주역입니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이 흠과 티가 없고, 맑고 바르게, 그리고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소파 방정환선생은 색동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어린이를 높이고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주려고 힘을 썼습니다.   색동회에서는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이 시작되었습니다.  

1927년부터 5월의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계속하였으나 1939년 일제의 억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46년 다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린이날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일 년 365일이 다 어린이날이라고 할 정도로 어린이 천국이 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다 왕자와 공주가 되었습니다. 

어린이주일이 되면 설교하는 목사는 사실 고민에 빠집니다.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부모님에게 설교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린 아이를 기르시는 부모님은 거의 없고, 손자를 돌보아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시니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고 설교해야 하는 것입니까?  유, 초등부 어린이를 가지신 부모님들이 많아야 좋은 교회인데,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를 등록하고 다니시는 어른들과 청년, 중고등부 청소년, 그리고 교회학교 유아, 유치, 유년, 초등, 소년부 모든 교인들의 연령을 놓고 비교해보았습니다.  

우리교회의 등록되고, 교회학교에 다니는 모든 교인이 1,016명입니다. 

0-5세 : 27명   6-10세: 82명  11-15세 : 88명  16-20세 : 76명 21-25세 : 68명   26-30세 : 65명   31-35세 : 70명  36-40세 : 59명41-45세 : 59명   46-50세 : 64명   51-55세 : 64명  56-60세 : 62명  61-65세 : 63명    66-70세 : 41명   71-75세  : 42명  76-80세 : 40명 81-85세 : 29명   86세 이상 : 16명이었습니다.   이런 숫자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 때문에 그래프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완만한 삼각형 형태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50대-60대가 두텁고, 10세 -20세까지가 20%가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0-5까지의 분포가 3%도 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저출산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한 20년간은 당분간 좋은 교회가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다음 세대는 정말 이 교회를 유지하고 지켜줄 젊은이들이 고갈될 것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동리마다 공차고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동리를 북치면서 한 바퀴 돌면 수십 명 어린이들이 따라와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안에서 컴퓨터하고, 게임기 가지고 놀고, 학교에서 학원으로 과외 선생을 만나야 하기에 동리에 나와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땅에 미래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있기에 어린이주일을 소중히 알고 보내야겠습니다.   어린이날과 어린이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어떻게 자식을 키우며, 자식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것인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10대의 두 아이가 그리스의 장터를 배회하고 있는 한 지혜로운 철학자를 골려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한 소년이 손에 작은 새를 쥐고 노인이 볼 수 없도록 뒤로 감췄습니다. 그는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아테네의 현인이시여, 내 손에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 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말해보시겠습니까?”  노인이 만일에 “죽었다”고 말하면 손을 펴고 새가 날아가게 하여 노인의 잘못을 증명해보일 것입니다.  

한편 노인이 “살았다”고 말한다면 그 소년은 그 새를 꽉 쥐어 죽은 새를 보여줄 것이었습니다.  군중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결을 보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노인은 소년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는 알지 못하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소.    그 생명은 당신의 손에 달렸소” 라고 했답니다.   얼마나 무서운 책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 시대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살고 죽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에 달려 있고, 가정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일찍부터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고 보니, 나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쁜 것을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를 지도하여 주었던 많은 주일학교의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릴 뿐입니다.  여름 성경학교가 되면 땀 흘리면서 수고하셨던 선생님들, 아동부, 중고등부 담당전도사님들도 정말 귀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다 좋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정말 좋은 분들만 있었습니다.  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선생님들이 아주 많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로서 행동주의 이론을 제창한 B. F 스키너박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체벌은 사회의 원대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목적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데 그다지 이롭지 못한 방식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훈육하고 말로 나무라고, 때로는 체벌하는 그런 교육은 전근대적이고 ‘그다지 이롭지 못하다’는 말은 잘못된 교육방법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책망하지 말고, 격려하고 칭찬만하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체벌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인생을 오래 살고 죽을 때가 되어서 수정하였습니다.  사람이 진정 사람이 되려면 적당한 책망과 질책이 따라야 한다고 자기의 교육방법론을 수정하였습니다.    그저 칭찬해주고, 매를 들지 말라고 하였던 자기의 교육이론이 사람을 망쳤다고 잘못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가 나이를 먹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른 살을 먹은 아이, 마흔 살을 먹은 아이, 예순 살을 먹은 아이, 조금은 어색한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나이를 먹은 것뿐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을 갑니다.  어렸을 때에 형성된 인격이 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어릴 때에 엄하게 길러야 합니다. 

잠언1: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잠9:10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은 파종의 시기입니다. 사랑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승리하기 원하면, 어린 아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어린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버지도 엄하고 엄마도 엄하지 말고, 한분은 엄하고 다른 한 분은 달래고 격려하여야 합니다. 둘 다 엄하면 안 됩니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1천5백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세계 제2차대전 때에 600만 명이 죽지 않았으면 현재 약 2000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현재 60억의 세계 인구에서 0.3%도 안 되는 유대인인데, 유대인은 노벨상 수상자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이원설 박사가 쓰신 "아침을 준비하는 자는 늘 깨어 있다"는 책에는 "유대인은 왜 머리가 좋은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이원설박사님이 이스라엘 대사와 이야기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대사가 말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두뇌가 뛰어난 백성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결코 누설할 수 없는 국가적인 극비사항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박사는 이스라엘 대사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중에 유대인들이 좋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면서 그 뜻을 바로 알기 위하여 수없이 토론하는데, 우수한 민족이 된 가장 큰 이유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데 있었다고 생각되었다고 합니다. 암기하는 것과, 각자 깊이 연구하는 것, 자유 토론하는 것이 사람을 성장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율법교육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책을 읽음으로 인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슬기를 터득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어려서부터 명작을 읽어야 고귀한 인격의 사람이 되고 위대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화집도 많이 읽게 하고 위인전기도 많이 읽게 하여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의 글을 보니 “유태인은 미국의 주인”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유태인들이 미국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붙인 말입니다.  

유명한 랍비의 글을 보았는데, 그가 탈무드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하여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네는 왜 이 학교에 들어오려고 하는가?”  “저는 공부 잘하는 이 학교가 좋습니다. 그래서 입학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시험관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만일 자네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 좋겠네,  학교란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는 시험관에게 반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학교란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그러자 시험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은 훌륭한 인간 앞에 앉기 위해서라네. 그것은 살아 있는 본보기로서 배워야 하네. 학생은 훌륭한 랍비나 스승을 지켜보므로 배우는 것이라네.”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인간, 훌륭한 랍비나 스승을 만나야 사람이 달라집니다.    다만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배우고, 인격을 배우고, 가치관과 인생관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 앞에서 좋은 스승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부모이십니까?  유치원 선생님들은 어린 아이가 사용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의 부모님의 교육수준과 사는 행동양식을 파악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말투나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의 부모님을 만나보지 않아도 대략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부모 사이가 아주 좋은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가 되어 이야기합니다.  “여보, 어서 와 식사하세요.”  “아이구 맛이 참 좋아요.”,    “여보 피곤하시죠.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 “아니 괜찮아요. 당신이 더 피곤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합니다.   

집안이 엉망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이 문 열어, 어서 문 열어”, “아니 못 살아, 나 못 살아, 또 술이야”  심지어는 아이들이 부부싸움 하는 것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부모는 어린이 교육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선생이라는 사실입니다.   좋은 모습을 보이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성수주일, 헌금생활, 교회봉사, 목사님과 장로님을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은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참으로 복 받은 부모가 나옵니다.   그는 다윗 왕 시대에 살았던 오벧에돔이라는 레위인입니다.   그는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아버지가 하나님의 언약궤, 그 법궤를 자기 집에 3개월을 모시고 있었는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하는지, 제사장이 받아야 하는 복은 레위 사람인 오벧에돔이 다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상급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하는 믿음의 결과였고, 열매였으며 상급이었습니다.  

오벧에돔의 자식들은 “다 능력이 있었고, 그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었고, 자기 족속을 다스리는 자요, 용사들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여 이렇게 한 집안이 다 잘되는 것입니까?   부모 된 이들이 잘하고 잘 못하는 것이 자식을 좋은 자식이 되게 하고, 못되게 하기도 합니다.  

시인 타고르(R. Tagore)는 “어린이는 신이 아직도 인간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품고 탄생한다.”는 의미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땅에 자라나는 어린이를 보면 희망이 솟아오르고 미래의 꿈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교육, 교회를 출석하면서 교회 뜰 안에서 자라게 해야 합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라고 설교해야 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만져주시고 축복해주시기를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말을 듣고,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을 따라 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와서 조용히 있으면 좋지만, 어디 그렇게 조용히 있지 않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꾸짖었습니다.  멀리 가서 놀라고 했든지, 조용히 하지 않으면 혼내준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주님이 그런 제자들을 보시면서 진노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10:14-15)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그들의 머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사실 부형들은 혹시라도 예수님이 자기 아이들을 만져 주실까 하고 데려왔는데,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머리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고, 어린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당시에 어린 아이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너무나 노엽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주시면서 아비들에게 권면하셨습니다. 엡6:4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습니다.  

잠언22:6절의 말씀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말씀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가르침을 수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 시절입니다.  그 때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잘 배우려고 하고 가르침을 가슴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우리 시대에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을 주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인격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여 다음세대가 더 복된 시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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