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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고지를 점령하자 (잠 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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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고지를 점령하자 (잠 4:20-24)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되는 ‘가고파’를 지은 이는 노산 이은상 선생입니다. 
노산의 시 중에 ‘고지가 바로 저긴데’가 있습니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 역사의 능선을 타고 /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 고지가 / 바로 저긴데 /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 부둥켜 안고 /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 새는 날 / 피 속에 웃는 모습 /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노산에서 고지는 이 겨레가 가야할 곳입니다. 노산의 고지는 이 겨레가 활짝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 낙조보다도 더 쓸쓸한 조국아 / 긴 긴 밤 가얏고 소리마냥 / 가슴을 파고드는 네 이름아 / 새 봄날 도리화(桃李花)같이 /활짝 한 번 피어 주렴. 

여러분의 고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에서 달려가 마침내 이르러야 할 고지는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멈출 수 없는 고지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시간 우리가 마침내 이르러야 할 영적 고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영적고지는 무엇입니까?

I. 영적고지는 마음입니다.

라이트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암에 걸려 살 수 있는 날이 며칠 안 남았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의 장액인 크레비오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그것을 받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사정했고, 그의 주치의였던 필립 웨스트는 그렇게 해주기로 동의했지요.
   
라이트 씨에게 크레비오젠을 주사하고 나서 며칠 후, 의사는 라이트씨가 죽음에서 벗어나 간호사들과 농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양이 ‘마치 뜨거운 가스레인지 위에 있던 눈 덩이처럼’ 녹아버렸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 뒤 라이트 씨는 말의 장액은 가짜라는 의학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암이 재발했지요. 하지만 의사는 ‘이전보다 두 배나 강력한 새로운 버전’의 크레비오젠이 있다며 그것을 주사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냥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종양은 정말 녹았습니다. 라이트씨는 다시 두 달 동안 건강하게 살았지요. 하지만 크레비오젠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명확한 기사를 읽고 나서 이틀 후,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몸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정말로 몸이 좋아지는 효과를 플라시보 효과라고 합니다. 반대로  몸이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로 몸이 나빠지게 되는 효과를 노시보 효과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이 ‘마음’에 따라 그대로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믿는 사람들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이 영의 통로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마음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잠언4:20-24 말씀에서 20절과 21절입니다.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잠언 기자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을 권고합니다. 더 나아가 지혜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야 할 것을 명령합니다. 마음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할 수 있는 곳입니다.
   
1. 마음은 말씀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의 영으로 영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는 영으로 영의 세계를 받아들입니다. 육은 육에 대응하고 영은 영에 대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으로 받은 것을 깨닫는 곳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으로 느낀 것만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느낀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온 천지가 물이라도 바가지로 길어 올린 것만큼만 마실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으로 느낀 것만이 자신이 아는 영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는 마음으로 제한됩니다. 그러나 마음은 영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마음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말씀합니까?
23절 말씀입니다.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은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마음은 지켜야 할 생명의 근원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唯心論)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다고(=唯神論)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활동하는 마당이  바로 마음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 등등이 활동하는 마당도 바로 마음입니다(마 15:19). 사람의 마음을 찍는 사진기가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게 찍히겠습니까?
   
어느 마을의 시장에 사람의 마음을 찍는 사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유명한 정치가를 찍었더니 돈 다발이 찍혔습니다. 돈 많은 사장님을 찍었더니 술과 여자가 찍혀 나왔습니다. 어떤 남자는 늑대가 찍혀 나오고 ,어떤 여자는 여우가 찍혀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장에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무시무시한 흉기가 찍혀 나올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나이가 카메라 앞을 지나갔습니다.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이 찍혔습니다. 사나이는  미역 한 꾸러미를 들고 시장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막 태어날 자기의 아기와 아내를 위하여 미역을 사러 시장에 왔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마음이 전쟁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고민하는 일이 있더라도 언제나 뒷정리가 잘 되어야 합니다. 드러나는 마음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까?
24절 말씀입니다.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남을 속이는 말은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합니다. 남을 해치는 소리는 입술에 올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고스라니 드러나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반대로 드러난 말이 마음을 조종하기도 합니다. 
   
3. 마음은 드러나지 않은 언어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귀로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마음이 고스라니 담겨있습니다. 결코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말은 더러운 마음에서 나옵니다. 더러운 말이 더러운 마음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영의 세계와 싸울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이외에는 싸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여러분의 영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악한 영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그 영에 십자가의 보혈이 흐르는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을 점령해야 할 고지로 알아야 합니다. 악한 영이 자신의 마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선한 말을 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영적 고지로 알고 점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영적고지 점령은 무엇입니까?


II. 영적고지 점령은 이김입니다.

영적고지 점령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갖는 것은 삶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믿음의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승리의 근거가 있습니다. 영적고지 점령은 생각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해 있을 때 얻게 되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마가복음 10:46-52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라는 동네로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원은 사람들에 의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48절 말씀입니다.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님을 향하여 자비를 구하는 바디매오에게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로 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 승리를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영적고지를 점령하려는 사람은 승리를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승리를 믿고 달려가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실패할 것을 믿는 사람은 실패합니다. 바디매오처럼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것을 믿고 계속 기도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역시 좌절하지 말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승리를 향하여 외쳐야 합니다.

바디매오의 절규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겉옷을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소원은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2절 말씀입니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부르짖음을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것을 바라보고 간구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2. 믿음을 가지고 달려가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신념입니다. 내가 하면 된다는 것은 적극적 사고방식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신념이나 적극적 사고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한 사람도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예비신자의 영혼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음으로 달려갑니다.
   
우리는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긴다고 믿음으로 선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열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보며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영적고지 점령은 무엇입니까?


III. 영적고지 점령은 부흥의 시작입니다.

영적고지가 점령되어 그 마음에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을 영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성이 풍성해 지는 것을 부흥이라고 합니다. 영적고지인 마음이 믿음으로 점령되어 가는 것에서 부흥이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갔습니까?

사도행전 20:22-24 말씀 중에서 22절 말씀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는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르면서도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동안 살아온 삶은 어떤 삶이었습니까?
23절 말씀입니다.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투옥과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령님께서 그에게 일러주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영적고지 점령이 부흥의 시작이 되는 이유는 영적고지 점령으로
   
1.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영적 고지를 점령함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믿음으로 점령되지 않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성령님의 역사가 제한됩니다. 더러운 말을 하면 성령님이 일하시지 않습니다. 영적 고지인 마음을 점령하여 믿음의 말로 채우면 성령님께서 일하십니다. 비로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영에 십자가가 세워졌음에도 마음이 점령되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탄식하십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고지가 점령되어야 예수님이 일하시는 부흥이 시작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영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영성은 어떻게 드러납니까?
사도행전 20:24 말씀입니다.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비록 고난이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영적고지 점령이 부흥의 시작이 되는 이유는 영적고지 점령으로
   
2. 사명을 위하여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영성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불신의 삶을 거부하여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부흥을 갈망하는 영성은 반드시 영적고지를 점령하여야만 이루어 질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고지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말씀을 담는 그릇입니다. 마음은 지켜야 할 생명의 근원입니다. 마음은 드러나지 않은 언어입니다.

영적고지 점령은 이김입니다. 승리를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달려가야 합니다.
영적고지 점령은 부흥의 시작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위하여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믿음의 말을 선포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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