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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우리 자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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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엡 6:4)


<못된 자녀를 만드는 10가지 비결>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 경찰국이 '못된 자녀를 만드는 10가지 비결'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첫째, "아주 어려서부터 자녀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어라. 그러면 그 아이는 온 세상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자랄 것이다." 

둘째, "자녀가 나쁜 말을 할 때면 그냥 웃어 넘겨라. 그러면 자기가 재치 있는 아이인 줄 알고 더욱 악한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셋째,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떠한 교육이나 훈련을 시키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어라. 그러면 고상함은 사라지고 동물적 본능만 강렬하게 나타날 것이다."

넷째,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고 그냥 두라. 그러면 자동차를 훔치고 교도소에 갇혀서 사회의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다섯째, "자녀가 정돈하지 않는 이불, 옷, 신발 등을 정리해 주어라. 그러면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섯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책, 그림 등 어떤 것이든 마음대로 보게 하라. 그러면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일곱째, "자녀들 앞에서 자주 싸워라. 그러면 다음에 그들의 가정이 깨져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여덟째, "용돈은 달라고 하는 대로 얼마든지 주어라. 그러면 살아가는 동안 쉽게 부패하고 타락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아홉째, "먹고 싶다는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다는 것도 다 마시게 하라. 그리고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다 해주어라. 그러면 단 한 번만 거절을 당하여도 곧 낙심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열째, "자녀가 교사나 경찰, 성직자의 의견과 대립될 때는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 주어라. 그러면 건전한 사회가 모두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자녀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는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문제아의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떤 초등학교 남자 아이는 하루라도 남을 건드리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꼬집고 물고 뜯고 할퀴고 해서 상대방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곤 했습니다. 워낙 이 아이가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학부형들은 자기 자녀들이 이 아이와 한 반이 되는 것을 꺼려했지요. 하지만 정작 이 남자 아이의 부모는 태연했습니다. 자기 집 아이의 기를 살려야 한다면서 막무가내였습니다. 

옛날과 달리 집집마다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기 때문에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 집 아이는 기죽어서 안 된다고 키우면서 남의 집 아이한테는 함부로 해도 괜찮다며 버릇없이 키우는 부모들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나라의 큰 보물을 훔쳐서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죄수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연민의 정으로 모자의 마지막 상봉을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사형수가 갑자기 어머니의 귀를 깨물며 외쳤습니다. "어머니는 왜 내가 처음 남의 집 아이의 연필을 훔쳤을 때 그냥 놔두셨어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나쁜 버릇을 눈감아 준 것이 결국 사형수가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자녀 교육, 어떻게 할까?>

자녀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나 중요한 물음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자녀 교육의 문제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요즈음 부모님들이 너나없이 바쁘기 때문에 학교교육이나 각종 학원과 같은 사교육에만 의존한 채 가정교육이 부재(不在)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학교교육이 훌륭해도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은 훌륭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학교나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엄마입니다.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고 빈자리가 느껴질 때 아이들의 정서도 메말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최고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좀 잘 살게 되니까 아이들의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가정마다 지출되는 사교육비만 해도 엄청 납니다. 하지만 세상인심은 날로 각박해지고 인간성은 날로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자녀, 도대체 어떻게 교육해야 옳을까요? 

오늘 봉독한 에베소서 6장 4절에 정답이 나와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첫째는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격분시키지 말라는 충고이지요. 둘째는 주님이 주시는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가르치라는 것이지요. 


① 소극적인 충고: "노엽게 하지 말라"

먼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소극적인 충고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노엽게 할 때가 언제입니까? 자녀들을 실망시킬 때이지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너남 없이 가정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록금이나 육성회비를 제 때에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가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친구들은 다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자기만 못 갔을 때 그 상처는 큽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픈 자식의 마음은 "내 몰라"라 하고 매일 술만 퍼마시는 아버지를 볼 때 자식은 노엽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혹시 자녀들을 노엽게 한 적은 없는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혹시 너무 공부만 강요해서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준 것은 아닌지,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존심에 흠집을 낸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지난주에 끝난 드라마 "살 맛 납니다"에 나오는 의사로서 크게 성공한 아버지(임채무 분) 역시 자녀를 노엽게 하는 대표적인 아버지이지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을 출세시키고 성공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식의 생각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강요하는 독재자 아버지입니다. 다행히 아들이나 집안 식구들이 워낙 훌륭한 인격을 가졌기에 그런 폭군적인 아버지를 이해해주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집안 같았으면 십중팔구 삐뚤어질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것 외에도 우리가 자녀들을 노엽게 할 수 있는 길은 수없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면 아이들을 책망하느라고 체벌을 할 때도 있는데 혹시 감정이 섞인 나머지 가혹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녀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잃어버려서 안 될 것입니다. 오른 손으로 벌을 주었으면 반드시 왼손으로 따뜻하게 안아 주어야 합니다. 낮에 아이를 꾸중했으면 밤에 잠을 재울 때에는 반드시 따뜻하게 안아 줍시다. 

우리 자녀, 어떻게 교육할까요? 먼저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대개 착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노여움을 타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개 우리 부모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갖고 분노할 때가 많습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그렇게 될 때가 많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그루 나무와 소년의 이야기인데 나무는 소년에게 나뭇잎 왕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잎을 떨어뜨려 줍니다. 소년이 기어오를 수 있도록 가지를 펴기도 하고 그네도 되어줍니다. 소년이 잠이 들면 그늘이 되어주고 열매를 모두 내어주어 돈도 벌게 해줍니다. 소년의 집을 짓기 위해 가지도 전부 베어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배 한 척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몸통을 내어주고 쓸쓸히 서 있던 나무는 소년이 늙어서 돌아오던 날 다 늙어버린 밑동을 소년이 앉을 수 있도록 그 마저 내어줍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이렇게 끝납니다.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하면 됩니다. 


② 적극적인 충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 성경 말씀은 먼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주문을 한 뒤, 적극적인 주문을 합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신앙 교육을 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대로 훈육하라는 것이지요. 

오늘날 노벨상을 수상한 이들의 25% 정도가 유대인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비결을 신앙교육에서 찾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조기 교육에 그 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또 외우도록 가르칩니다. 나가서나 들어와서나 서서나 앉아서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달고 살도록 가르칩니다. 이런 종교 교육이 천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신구약에 나타난 주의 교훈과 훈계는 딱 두 마디로 요약됩니다. 이른바 사랑의 이중계명,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지요. 신명기 6장 5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레위기 19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우리 자녀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먼저 어려서부터 하나님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과학 교육이 전부라고 믿는 부모들은 하나님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전부라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일절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해서 자연 세계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이 자연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기초가 없는 교육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우리의 자녀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13세 이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자녀들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꼴이 되고 맙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 생활에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일 성수를 실천하고 기도 생활에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모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를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이웃 사랑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핵가족 시대가 되어서 가정마다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문제는 과잉보호를 해서 자녀를 이기적이고 나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식을 너무 귀하게 여기다보니 소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어야만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엄마가 다 도와줘야 하는 마마보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쉽게 좌절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함을 가르치고, 너도 잘되고 나도 잘되어야 한다는 'WIN-WIN' 정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일대학교의 법과 대학 학장인 고홍주 박사를 비롯해서 6남매 모두를 박사 학위 소지자로 키운 전혜성 박사님의 자녀 교육법입니다. 이 집안의 8식구가 취득한 박사 학위 숫자만 11개나 된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전혜성 박사 부부가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강조한 덕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재주가 덕을 앞지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로 자라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너무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로 길러서 안 되겠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헤아리고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자녀의 눈높이로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교육의 효과는 듣는 데서 10%, 보는 데서 50%, 스스로 말해보는 데서 70%, 실제 행동으로 옮겨보는 데서 80%가 획득된다고 합니다. 특히 사랑에 대한 교육이 그러하다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소 체험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장로님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가 하나님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날마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장로인 아버지가 이 아이의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어린아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말을 썼고 성경은 창세기부터 모조리 읽어내려 갔습니다. 찬송가 역시 어른 위주로 불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아이에게 예배 시간은 견딜 수 없는 고역이 되었습니다. 무서운 부모님이기에 찍 소리도 못하고 그냥 억지로 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불만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는 자기가 날마다 이런 고통을 당하는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서는 하나님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교육을 할 때에도 우리 부모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자녀의 눈높이를 고려하는 깊은 이해와 넓은 아량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모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자녀가 병들어 갈 수 있습니다. 노여운 마음을 가득 품고 하나님을 떠나 죄중에 방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자녀들을 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자녀로 길러야만 합니다. 

오늘 이 어린이 주일에 여러분 모두 그런 부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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