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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는 예수님 (마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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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는 예수님 (마 3:1-12)


세례요한은 자신의 영광보다는 주님의 영광에 집중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세례요한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그의 사역은 전적으로 주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본문 5절에도 보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라고 말씀합니다. 보통 인기가 높아지면 사람들은 자기 본분을 망각하거나 교만함에 빠지게 되는데 세례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1절에 보면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해바라기라는 꽃이 있습니다. 이 꽃의 특징은 꽃이나 씨가 아닙니다. 씨에서 나오는 기름도 아닙니다. 이 꽃은 신기하게도 태양을 향해서 돕니다. 이 꽃이 향하는 방향에는 늘 태양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해바라기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해바라기의 삶으로 만족했습니다. 결코 그 자신이 태양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끝은 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요한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데, 예수님과 마주쳤던 모양입니다. 요한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분을 보라. 저 분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내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저 분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요 1:29-31) 그 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저 분을 보라. 저 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요 1:36) 그가 하도 그러니까 그의 말을 듣고 제자 두 사람이 예수님께로 가 버렸습니다. 그 때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흥하셔야 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요 3:30) 

오늘 설교는 세례요한의 사역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예수님과 관련된 진리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어디서나 전파 되어야 합니다(1, 3절).

세례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주님을 전파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를 말합니다. 광야는 버려진 땅입니다. 세례요한은 황무지가 되어 버려진 땅인 광야에서도 주님을 전파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디서나 전파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도 전파되어야 하고, 시장에서도 전파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전파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전파되는 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본문을 보면 세례요한이 광야서 외쳤는데 사람들이 그곳으로 찾아왔습니다. 세례요한 앞에 나아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생명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찾아온 이유는 요한이 소개하는 주님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전도를 하면서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생각보다 열매가 없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낙심합니다. 낙심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절망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외침의 중심에 생명의 주가 되시는 주님이 계시다면 생명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나오게 될 것이고 세례요한의 사역의 현장에 변화의 역사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하는 전도의 현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본문에서도 세례요한이 전파하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변했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신 것처럼 우리에게 복음을 들은 사람들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용재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분은 목사로서 초대총장을 지내신 분이시고 연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 오신 분이십니다. 원래 이분의 아버지가 무당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자가 이 집 앞을 지나다가 박수무당인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답니다. “당신 무당 짓 하다가 나중에 지옥가면 어떻게 하겠소? 자식들 망할 짓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백무당은 “백당인지 천당인지 당신이나 가라. 아이, 재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역사가 시작됐답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만 하면 ‘자식들 망할 짓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라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옵니다. 천당! 천당! 천당! 이 소리 때문에 결국 예수 믿게 됐고 아들 가운데 훌륭한 목사요 선각자가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누가 무당이 전도 받고 예수님을 믿을 줄 알았겠습니까? 복음에 능력이 있고, 복음에 생명이 있기에 그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딤후 4:2).


2.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합니다(3절).  

3절에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해서 세례요한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그가 외칠 내용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입니다. 세례요한은 백성들에게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고 외치는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을 만난 사람들마다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이는 비전을 받았고, 어떤 이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주님과 만나는 순간 치료가 일어났고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늘에 신령한 복과 땅에 기름진 것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주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아무런 준비 없이 만나도 복이 되지만 준비된 만남이라면 더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시간되면 대통령 앞에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대통령을 만날 것입니다. 최소한 이발은 할 것입니다. 목욕도 할지 모릅니다. 옷은 어떤 옷을 입을까요? 평상시에 시장가거나 산책할 때 입는 옷을 입지는 않을 것입니다. 좋은 옷을 새로 구입을 하든지 아니면 있는 옷 중에서 좋은 것을 세탁을 해 입을 것입니다. 신발도 새로 사든지 있는 신발 중에 제일 좋은 신발을 깨끗하게 닦아서 신을 것입니다. 또 대통령과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할 것인지 대화의 내용도 많이 생각해 놓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대통령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절대 권력자이십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것은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한 주일에 몇 번씩 예배를 드리지만 주님은 그 때마다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고 만나야 할 존귀하신 분입니다. 


3.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만남을 누리기 위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2절에 보니 세례요한의 첫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1) 생각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타노에오’입니다. 이 단어는 ‘마음을 바꾸다. 생각을 바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개란 지금까지는 악한 생각을 했는데 선한 생각으로 바꾸고, 더러운 생각을 했었는데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고, 불신앙적인 생각을 했는데 믿음의 생각으로 바꾸고, 육신 중심의 생각을 했는데 영중심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생각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잠 23:7에 보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말을 만들고, 행동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미래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생각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복과 재앙이 생각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렘 6:19에 보면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 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재앙을 만난 것이 그 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생각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도 생각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율법을 거절한 이유도 생각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 13:2,27을 보면 사단이 역사하는 순서가 나옵니다. 먼저 악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그 생각을 받아드리면 그 때 사단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단은 가룟유다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가룟유다는 그 생각을 물리쳤어야 하는데 받아드립니다. 마귀가 준 그 생각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가룟유다는 사단이 틈 탈 수 있는 틈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그 틈으로 들어가서 가룟유다를 지배하여 예수님을 팔게 했던 것입니다.

오물은 파리를 부르고 꿀은 벌과 나비를 부르듯이 악한 생각, 불신앙적인 생각은 마귀를 부르고 믿음의 생각, 선한 생각은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이 나면 바로 3단계의 과정을 거치십시오. 

첫째, 물리치십시오. 
둘째, 하나님 앞에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셋째, 좋은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예를 들어 남을 미워하는 생각이 든다면 1단계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미워하는 생각은 떠나라”라고 명하십시오. 2단계로 “하나님 내가 000를 미워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용서해주세”라고 기도하십시오. 3단계로 그를 축복하는 생각, 사랑하는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생각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2) 죄를 자복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6절에 보면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왔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자복’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엑소몰로게오’라는 말인데 ‘고백하다. 시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입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범했든지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요일 1:9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법에는 죄를 자백한다고 죄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그 피의 공로를 믿고 죄를 자백하기만 해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그 죄를 바로 고백하여 처리해야 할 이유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나 사이에 벽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 벽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기도에 응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 59:1,2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그 죄를 바로 고백하여 처리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처리되지 않은 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시 32:3,4입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여러분!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박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생선 가시를 가만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선 가시가 목을 찔러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하고 고백하지 않았더니 괴로워서 뼈가 쇠할 정도로 종일 신음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양심을 눌러서 그가 마치 여름 가뭄에 논바닥이 마른 것처럼 영적으로 피폐해졌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회개입니다.

8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회개 했으면 회개에 합당한 행동을 하고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담배 피우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양심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 앞에 담배를 피운 것이 잘못 되었음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를 용서해주십니다. 하지만 그가 용서를 빈 후에 다시 또 담배를 피우면 그것은 온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잘못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복한 후에 다시는 그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얘기입니다. 한 50년 전쯤 됩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영국 런던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얼마나 은혜스러웠던지 연일 만 명 이상 모였고, 집회 마지막 저녁에는 큰 스타디움에 10만 명 이상이 운집했답니다. 어느 목사님 사모님도 그 마지막 집회에 참석해서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어떤 남자가 그 사모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힐긋 쳐다보니 도무지 믿는 냄새가 나지 않더랍니다. 조금 있으니까 또 한 사람이 그 남자 옆에 앉는데 약간 술 냄새도 났습니다. 두 남자는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것 같은데 금방 친해져 가지고 설교 시간에 잡담을 합니다. “저 목사 얘긴 전부 거짓말이야”. “그럼, 그럼, 헌금 뜯어내려고 저래”. 목사님 사모님은 대단히 언짢았습니다. 믿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비방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날 설교가 한 두 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설교시간 내내 불평하고 쑥덕거리던 두 사람의 말이 없어졌습니다. 잠들었나 하고 쳐다봤더니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듣고 있습니다. 빌리그레함 목사가 설교를 마치면서 “누구든지 이제부터 예수를 믿을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사모님 옆에 앉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면서 옆 사람에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저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당신은 마음에 없소?” 부인 바로 옆에 앉은 다른 남자가 좀 우물 주물 하더니 “예! 나도 나가지요” 하면서 일어나 자기 양복 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 목사 부인에게 주면서 “부인, 이 지갑을 받으시죠”. “웬 지갑이죠?”, “부인 돈지갑을 방금 훔쳤는데 이제 저 강단 앞으로 나가면서 돈 지갑을 주인인 부인에게 도로 돌려드립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11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불세례를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불 같이 임하시니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능했던 제자들에게 능력이 임했고, 두려움에 떨던 자들에게 담대함이 임했고, 미련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임했습니다. 

불의 특징은 태우고, 빛나고, 뜨겁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성령의 불을 받으면 죄가 태워져서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영광스럽게 됩니다. 마음은 따뜻해지고 신앙은 뜨거워집니다. 

어느 날, 한 예쁜 집사님이 누군가를 전도했습니다. 그때 전도 받던 여자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예뻐요?” 그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예뻐져요. 저도 원래는 얼굴이 기미로 뒤덮였는데 예수 믿고 기미가 다 빠졌어요.” 그 말에 이 여자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왜냐하면 수시로 외박을 하는 바람난 남편 때문에 자신의 얼굴에 기미가 그칠 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예수 믿으면 예뻐진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처음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면서 자기 생애 처음으로 마음껏 울었습니다. 늘 남편을 증오하며 살다가 얼굴까지 망가진 자신의 비참한 삶을 회개하고 그날 그녀는 다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지금처럼 살지 않겠다. 남편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예수 믿고 살겠다.” 그때부터 그녀는 예배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얼굴의 기미가 벗겨졌습니다.

그 후 한 달 만에 바람난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즉시 욕설이 나갔습니다. “당신 왜 들어왔어! 여기가 세탁소야!” 그런데 그날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그동안 잘 있었어요? 어서 오세요.” 남편은 10년 만에 들어본 아내의 친절한 말에 너무 압도될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런데 말뿐만 아니라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음식을 얼마나 정중하게 주는지 정말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밤 남편은 자면서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저렇게 침착해지는 경우가 있다는데 오늘 저녁 자살하려고 하나? 오늘 자살하면 내가 덤터기를 다 쓸 텐데 큰일 났네.” 남편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처럼 걱정하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다행히 그날 저녁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가 집을 나서는데 또 아내가 밝고 편한 얼굴로 90도 각도로 인사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어디에 있든지 편하게 있다가 오세요.” 그 인사를 듣고 집에서 나왔는데 “편하게 있다가 오라!”고 하니까 더 편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 가서도 걱정이 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제 자살하려고 마지막 인사를 한 건가?” 그리고 12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어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까 미움은 다 사라지고 미안함만 생겼습니다. 겁도 나고 일손도 잡히지 않아서 오후에 집에 와 봤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맞았습니다. “여보! 왜 지금 이 시간에 오세요.” 그런 아내의 모습이 너무 이상해서 남편이 둘러대며 말했습니다. “뭐 좀 찾으러 왔소. 그런데 당신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소?”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예, 한 가지 아주 좋은 일이 생겼어요. 제가 요새 좋은 분을 만나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남편의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남자들은 자기는 바람내도 아내가 바람내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이 정색을 하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떳떳해요. 혹시 시간이 있으면 오늘 저녁 그분 만나는데 함께 갈래요?” 그래서 그날 저녁 10년 만에 함께 외출해서 수요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당신도 예수 믿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그때 아내의 모습을 보니까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내가 그렇게 교양적이고 착한 부인을 놔두고 어디로 가나?” 그때부터 그 남편은 더 이상 외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에 직장에서 가정문제로 고민하는 한 부하 직원을 보고 말했습니다. “자네 부인 교회 다니나?” “안 다니는데요.” “빨리 교회로 보내!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 주님을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5. 예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십니다. 

세례요한은 12절에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십니다. 여기서 곳간은 천국을 말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은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것은 여기서 주님이 분리시키겠다고 하신 것이 가라지와 알곡이 아닙니다. 쭉정이와 알곡입니다. 가라지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불신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쭉정이는 교회는 나오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가짜 신앙을 가진 교인들을 말합니다. 쭉정이와 알곡은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쭉정이는 모양은 알곡과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 열매가 없습니다. 그 속에 생명의 씨가 없습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 보니 신랑을 기다렸던 열 처녀가 다 혼인잔치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은 들어갔고 기름 준비가 안 된 미련한 다섯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 보면 양들은 천국으로 염소는 지옥으로 들어갔습니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쭉정이입니다. 만약 이 시간 예배의 자리에는 와 있지만 자신이 내면에 주님이 없다면 진지하게 주님을 모시어드려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다는 이유로만 구원을 얻고 천국 곳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생명이 되시는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재림 이후에 우주적인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심판 날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천둥이 울리고 하늘로부터 불비가 내리고 땅에 지진이 일어나 갈라지고 만물을 삼켜버릴거예요.” 그러자 한 꼬마 소녀가 일어나서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그 날은 학교도 쉬나요?” 여러분, 학교만 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 땅에서 자랑 했던 모든 것도 다 끝납니다. 그 날에 심판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뿐입니다. 쭉정이는 지옥으로 알곡은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부디 우리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천국 곳간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혹시 여러분만 준비 되어 있고 여러분의 자녀들이나 사랑하는 남편, 친구들은 들어갈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나만 준비 되었다고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알곡과 가라지, 알곡과 쭉정이를 분명히 분리시키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심판을 알기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누군가가 받아드린다면 우리는 어청난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헬렌 켈러를 잘 압니다. 그녀는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고의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설리반이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녀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2개나 얻고, 4개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는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그 누군가가 복음을 받아드린다면 우리는 설리반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준 것보다 더 복 된 것을 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심판을 외치고 복음을 외쳐도 사람들은 잘 받아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이고 또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 자신이 세속화 되지 않고 거룩한 알곡으로 천국 곳간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황불에 멸망한 소돔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돔성에 유황불이 떨어져 멸망하는 그 날 아침까지 성문에 서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어떤 노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있는 그 노인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는데, 왜 쓸데없이 날마다 외치고 있습니까?” 그 말을 들은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도록 계속 외치고 있소.” 소돔과 고모라는 굉장히 악한 도성입니다. 아무리 의로운 롯과 같은 사람이라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소돔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자기도 가만히 있다가는 나중에 소돔 사람처럼 되어 버릴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외치고 있는 이상, 나는 소돔 사람이 되지 않는다. 내가 외치고 있는 이상, 소돔 사람은 변화를 받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절대로 소돔 사람을 닮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외치고 있는 이상 나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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