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이 적은 자여! (마 14:22-33)

  • 잡초 잡초
  • 643
  • 0

첨부 1


믿음이 적은 자여! (마 14:22~33)
  

성경을 읽다 보면 종종 이상한 점들이 발견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성경 인물을 묘사할 때 좀 심할 정도로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베드로의 실패담이 그런 예입니다. 명색이 수제자에다 어부 출신인데 물에 풍덩 빠졌으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이런 건 방송으로 비유하면 완전히 NG(No Good) 아닙니까? 빼버리면 좋을 텐데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성경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마태입니다. 베드로의 동료 사도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 수석이니까 체면을 세워줘야 되는 게 아닌가요? 적당히 PR을 해줘야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PR이 뭐예요?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말이 있어요. “PR이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베드로의 수치스런 추억을 굳이 밝히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4복음서 중에 다른 책들은 모두 생략하고 있는데 마태만 굳이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망신주려고요? 아닙니다. 의도가 있었다는 겁니다. 누구의 의도입니까? 인간 마태의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성경은 인간 기록자가 썼지만,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의 진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성경은 진실을 보여주는 책이지, 적당하게 미화시켜 보여주는 책이 아닙니다. 

그 진실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별수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믿음이 있노라 해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실수하고 실패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조차 그랬다는 걸 보여주면서, 성경 독자인 우리도 그것을 거울삼고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은 인생 가운데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1] 인생의 모습 : 고난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 

먼저 오늘 본문에 베드로와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생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우리 인생은 고난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죠. 바로 앞에 마14:13~21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五餠二魚)이 나옵니다.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말씀을 듣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기도하신 후 나눠주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5천명이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놀라운 기적이죠? 그러니까 난리가 났어요. 제자들도 흥분하고, 무리들도 흥분하고 ... 왜 그랬을까요? 본문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다른 복음서 기록과 대조해 봄으로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무리들이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아로 본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고 로마제국에 항거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제자들도 덩달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만일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면 예수님으로선 낭패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인류를 죄와 사명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지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늘나라를 세우러 오신 겁니다. 이 사명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무리를 급히 해산시켰고 제자들도 따로 보내셨습니다. 

그 당시 어두운 밤 시간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것이 위험한 일입니다. 지형의 특성 상 특히 밤중에는 돌풍이 불어와 위험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미리 보내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도하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자신이 어떤 분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왕 정도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생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인식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데 풍랑을 만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어부 출신이 여럿 있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24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아마 육지를 떠난 지 여러 시간 지나 바다 한 가운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풍랑을 만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게다가 그 시각이 언제였나요? 25절 보면, ‘밤 4경’(更)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시각은 낮과 밤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밤 시간을 4개로 즉 4경으로 나눕니다. 오후6~9시, 9~12시, 새로 1시~3시, 3시~6시 등입니다. 그러니까 밤 4경은 새벽 3시~6시입니다.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목숨의 위협까지 느꼈을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인생이 경험이 많다고,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풍랑이 없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바다를 항해할 때 풍랑은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닥쳐옵니다. 

그러므로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다를 항해하면서 풍랑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풍랑이 있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풍랑이 없는 게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랑이 없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풍랑을 이기고 승리하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배를 타는 법만 알아도 곤란합니다. 풍랑이 커지면 배를 타고 있어도 속수무책으로 난파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는 늘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난에 관한 한 마치 무균실에 있는 것처럼 예외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생이라면 고난이 없어지기를 바라기보다 고난이 있어도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 인생의 바다 항해법 : 믿음으로 풍랑 위를 걸으라 

그러면 인생의 바다, 고난의 바다를 어떻게 항해하면 좋겠습니까? 베드로의 실패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풍랑 위를 걸으라”는 겁니다. 

그 시간에 제자들에게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노력도 기술도 경험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항상 이렇습니다. 평소에는 큰 소리를 땅땅 치지만, 고난이 닥치면 오그라듭니다. 무서워서 쩔쩔 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오직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뿐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멀리 계신 것 같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멀리서도 다 보고 계십니다. 알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들과 함께 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믿지 못해서 두려워하고 쩔쩔 매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문제는 ‘믿음 없음’ 그 한 가지였습니다. 25절.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어둠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인 줄 미처 생각도 못하고 유령이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을 안심시키며 말씀하십니다. 27절.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의인법이죠. 부모가 자녀를 항상 보살피는 것처럼 하나님이 눈으로 주시하고, 귀를 기울이며 보호하신다는 겁니다. 마28:20 보면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면서 남기신 말씀도 있죠.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약속의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오늘도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인생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이런 말이 있어요. 영어 두 문장을 보세요. “He is nowhere.” “He is now here.” 스펠링이 같아요. 띄어쓰기 차이에 불과한데 그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믿음의 유무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아무데도 안 계신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반대로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신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안심이 되고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정체를 밝혀주시자 가장 적극적인 베드로가 어떻게 합니까? 28절~29절을 보세요.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예수님을 바라본 베드로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긴 겁니다. 여기서 믿음은 ‘신뢰’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여러 차원이 있는데, 우리 삶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신뢰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바다 위를 저벅저벅 걸어가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승리의 공식(기적의 공식)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믿음(신뢰) + 순종 = 승리(기적)” 믿음을 갖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때 승리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기적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겁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따금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차별 안 하지만 믿음 차별 하신다!” 무슨 말인가요? 인간 세상에서는 조건 갖고 엄청 따지잖아요. 사람 평가하고 무시하고 ... 하나님은 그런 짓은 안 하신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예요. 높은 자가 낮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죠? 인간은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인간적인 조건의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닌 겁니다. 인생 살다 고난을 만나면 평소 자랑하던 간 인 조건도 별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니까 베테랑 어부 베드로나 세리 일을 하며 펜대를 굴리던 마태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입니다. 인생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은 믿음입니다! 재산, 능력, 조건, 지위, 지식 등 인생의 배가 아무리 커도 거센 풍랑이 닥쳐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3] 믿음의 증진법 : 예수님께 시선을 집중하라 

그러므로 무엇보다 믿음의 크기를 키우시기 바랍니다. 이게 가장 지혜로운 신앙생활이요 인생의 지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믿음의 증진법을 배우시면 됩니다. 성령님께서 마태에게 감동을 주셔서 굳이 본문을 기록하게 하신 의도가 바로 이겁니다. “믿음의 증진법은 바로 이런 거다! 베드로의 실패담을 통해 배워라!” 

30절(상) 보십시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 ”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잠시 후 어떻게 됩니까? 한눈을 팔고 바람을 보는 순간(파도를 보았을 것)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소멸된 겁니다. 그러니까 즉시 풍덩 빠져버립니다. 

다행히 그 순간도 실오라기만한 믿음도 있었기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외칩니다. 30절(하)~31절. “30 ...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베드로의 부르짖는 기도에 즉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구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여기서 우리는 믿음을 떨어뜨리는 것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입니다. 두려움은 인생 최대의 적입니다. 두려움이 닥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당황하게 되고 판단력도 흐려집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빨리 신고를 해야 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급히 말합니다. “여보! 119가 몇 번이야?” 아내가 당황하며 대답합니다. “글쎄요!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여보,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죠. 빨리 114에 물어보세요!”

홍명보 올림픽축구 대표팀 감독의 경험담이 신문에 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국제 경기를 치룬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축구는 항상 강한 팀이 승리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 경기장에서 그런 점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마음속의 공포가 가장 큰 적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렵고, 두려움이 몰려오면 믿음이 쪼그라듭니다. 

잠29:25 보면 두려움이 얼마나 나쁜지 설명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믿음이 쪼그라듭니다. 의심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둘로 갈라진다(divide)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두 마음이라는 것이죠. 이런 상태로 무엇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두려움과 의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두려움의 치료제는 오직 믿음이다.”(노만 V. 필)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믿음을 키우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겁니다. 계속해서! 그러나 그냥 바라보면 안 되죠.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바라봐야 합니다. 본문의 사건이 정리되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하죠? 33절.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이런 체험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실감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미리 감지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두려움도 의심도 없이 쉽게 승리했을 겁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이란 게 아주 맹랑합니다. 금세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믿음이 삭 사라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NIV) 그는 ...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승리자 예수, 사망 권세 이기신 예수, 나와 함께 해 주시는 예수를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믿음이 솟아나고,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의 현장에 흘러들어와 놀라운 승리의 역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 ” 하나님의 눈과 나의 눈, 예수님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등학생 시절의 일입니다. 그때는 놀 게 딱히 없었죠. 하절기에는 대개 산으로 들로 나가 놀았습니다. 어느 날 중학생 형들과 나가 놀다가 철길을 따라갔습니다. 한참 가다보니까 낭떠러지 사이로 철길이 나 있습니다. 형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쉽게 건너갔습니다. 저는 몇 발자국 가다 그만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꼭 떨어져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냥 오면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못 고고 있으니까 한 형이 다시 돌아와 부축해 줘서 겨우 건넜습니다. 형들이 요령을 가르쳐 줬습니다. “아래 내려다 보지 말고 그냥 철길만 똑바로 봐!” 정말 그렇게 해보니까 무섭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숙달된 후에는 아예 뛰어 다녔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보면 두렵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두렵지 않습니다. 담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사40:30~31 보십시오.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계속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리고 새 힘이 넘쳐 날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풍랑이 닥쳐도 당당하게 건널 수 있습니다. 

어느 사업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믿음이 좋은데, 남편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겨우 교회 나오던 분입니다. 그것도 항상 늦게, 슬리퍼 질질 끌면서. 사업이 자기 마음먹는 대로 잘 됐기에 아쉬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습니다. 잘 가나던 사업이 부도 위기를 맞이한 겁니다.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부도 날짜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낙심 가운데 집에 틀어박혀 있는 남편을 보고 속이 터지던 부인이 눈물로 호소합니다. “무엇이든 해 봐야 될 게 아녜요? 사방팔방 막혀 있어도 하늘은 열려 있어요.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평소에 영적 체험이 없었던 남편은 이상하게 부인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부부는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의 도움을 부도를 막은 겁니다. 그 후 그 사업가의 믿음이 상승하고 사업도 번창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정말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다른 것은 그때뿐입니다. 인생의 바다를 항해할 때 결국은 풍랑 위를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 삶 가운데 함께 해 주십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상만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믿음 없음’ ‘적은 믿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죠!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 믿음이 문제이다!” 

요즘 잘 듣는 찬양 중에 「You Raise Me UP」(주님 당신이 나를 일으켜주시니)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여러 찬양 가수들이 부른 것을 들어봤는데, 그 중에 가장 감동적인 것은 9살짜리 꼬마 가수 ‘코니 탤벗’(Connie Talbot)이 부르는 영어 찬양입니다. 몇 소절을 소개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내 영혼이 지치고, 나약해질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나는 여기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 나는 강해집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나보다 더 큰 내가 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믿음이 적은 자여!”가 아니라 “믿음이 큰 자여!” 이렇게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며 어떤 풍랑을 만날지라도 그 풍랑 위로 당당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