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랑합니다. 주여... (요 21:15-18)

  • 잡초 잡초
  • 374
  • 0

첨부 1


사랑합니다. 주여... (요 21:15-18)


(요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어떤 조사에 보니까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가장 많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37.7%가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했으며 오래 살자는 말이 15.8%, 고맙다,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는 말이 6.5% 살림 잘살아 주어서 고맙다는 말이 6.0%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대표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듣고 싶어 하시는 사랑의 고백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미 우리는 베드로의 세 가지 고백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생각 나실지 모르겠지만 주님을 만난 사람이 처음으로 드려야할 고백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죄의 고백이었고 두 번째는 믿음의 고백 즉 “내가 믿나이다” 였습니다.

예수가 나의 주님이시고 그는 나의 그리스도였습니다. 나의 왕이시고 내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선지자였으며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영원한 제사장이였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믿습니다. 주가 그리스도이심을 ...
그 다음이 바로 오늘 말씀드릴 사랑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들에게도 찾아와서 그렇게 묻습니다. 
네가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말입니다. 진실한 믿음이란 바로 주님의 이 질문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고백해야 할 근거는 주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에 나도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가시면류관 쓰시고 나를 위해 피흘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주신 사랑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이 사랑에 근거가 되어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배도 나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의 그 사랑에 감격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든 삶은 전적으로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고백합시다. 
사랑 고백은 말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보다 더 귀한 고백은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는지 나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사랑을 고백하는 글이라고 소개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① 밥은 먹을수록 찌고, 돈은 쓸수록 아깝고, 나이는 먹을수록 슬프지만, 넌 알수록 좋아진다. 
② 내가 어제 한강에 10원을 떨어뜨렸어. 그거 찾을 때까지 널 사랑할게. 
③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100명이 있다면 그 중의 한 명은 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10명 있다면 그 중 한 명도 납니다. 이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저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④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눈이 내린다면, 봄은 아마 오지 않을 거야. 
⑤ 천년에 한 번씩 한 방울의 비가 내리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가 바다가 될 때까지 당신을 하겠습니다. 
⑥ 하늘에게는 별이 소중하고 땅에게는 꽃이 소중하듯이 내게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소중합니다. 

요즘 젊은 연인들 사이에 하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한 30년 살고 50년 함께 산 부부 사이에 이런 알콩 달콩한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아직 가슴에 뜨거운 피가 남아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살다보면 이런 사랑의 고백은 부끄러워 못하고 그저 그렇게 살아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뜨겁게 달아오를 사랑의 노래를 불러봅시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이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고백적인 삶을 삽시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람은 고백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랑의 본질은 희생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희생해 주셨습니다. 마 20:28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희생입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주님을 위한 희생을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 나 자신을 드리겠다는 고백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헌신 즉 희생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바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였기에 독자 이삭을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3: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보고 싶고 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을 고백하십니까? 어떻게 사랑할까요
사랑하면 예수님이 보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을 보려면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일고 교회 자주 나와야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든 주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진 것으로 주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물질은 몸 드려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성자 다미엔 27살에 나병환자들만 모여 사는 ‘모르카’ 라는 섬에 가서 사역을 했습니다. 
어느 부활절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미엔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는 주님께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그 섬에 죽어가는 나병환자들과 함께 잠자고 함께 식사하면서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나중에 그 자신도 나병에 걸려 죽을 때 까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버림받은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그느느 죽기까지 1200구의 문둥병자의 시체를 장사지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명을 감당합니다. 

허름하게 생긴 남자 한분이 예수병원 안과에 와서 내 눈 좀 빼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의사가 왜 눈을 빼달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왜 산 사람이 눈을 뻬려 하십니까?
교회 건축하다 중단 된 것 보고 가슴 아파서 한쪽 눈을 팔아서 연보해야 되겠기에 눈을 팔겠다는 것입니다. 안과 과장이 병원 직원들과 의논하여 그 눈을 사서 문 집사에게 선물하고 그 교회를 건축할 수 있도록 많은 연보를 해줘서 교회를 건축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하리교회 문집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후일에 문집사님은 신학교에가서 목사가 되어 목회하다가 은퇴를 하시고 그 아드님이 또 목사가 되어 우리교회 옆 아름다운 교회를 목회하다가 지금은 경상도 김천으로 가서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헌신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헌신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헌신이 더 큰 사랑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랑합니다. 주님” 을 외치고 나갔습니다. 
갈릴리 바다로 고기 잡으러 왔던 걸음을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죽기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로마에 복음을 전하다가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잡혀서 죽게 되었을 때 성도들이 베드로를 핍박을 피해 로마 성을 빠져 나갈 것을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몇 몇 성도들과 새벽 이른 시간에 로마성을 빠져 나가는데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묻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쿠오바디스 도미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버리고 오는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간다” 베드로는 주님의 발밑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염엾이 울었습니다. 그는 일어나 다시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핍박자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장엄한 순교를 했습니다. 

무엇이 도망 나오던 길에서 다시 로마로 향하게 했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에 답해야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로 끝나는 고백을 고백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고백은 헌신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나를 쓰시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 주님께 사랑합니다. 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헌신을 받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오실 때 까지 사랑고백을 잊지 맙시다. 
성도의 삶은 날을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끊임없는 헌신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