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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의 청지기 (고전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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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청지기 (고전 6:19) 
 
 
얼마 전 온라인 상에서 강남의 초등학생들 사이에 ‘명품지우개’가 유행한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그 명품지우개의 사진과 함께 홍보하는 내용이 떴습니다. 갑자기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우개 가격이 무려 14만원이나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들이 기 죽지 않게 하려고 앞을 다투어 사주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댓글이 수 없이 달렸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14만원 짜리 지우개를 사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 한 달 생활비가 14만원 밖에 안 되는 어려운 이웃들도 많이 있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눈에 띠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 돈 주고 내가 사 준다는데 당신들이 뭐 길래 떠들어!”

그렇습니다. 자기 돈 주고 자기가 자기 자식에게 14만 원짜리 지우개를 사주든, 100만 원짜리 지우개를 사주든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뜻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다 내 것일까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재물과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전 5:19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솔로몬은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누리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요, 그래서 그것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욥 1:21을 보면 욥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큰 부자였던 욥이 하루아침에 가진 재산 모두를 다 잃어버리고 난 후 고백한 말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누리던 것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시 가져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찬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내 것인 줄 착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게 되면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욥처럼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 모두 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만 이 모든 것들의 청지기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더 깊어지면 더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도 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청지기임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전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 믿고 난 뒤 새롭게 깨닫게 된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청지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래 전에 유행하던 대중가요 가운데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랫말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이 노래는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청소년들의 속마음을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부모님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청소년기의 반항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무엇인가 해 보고 싶은 열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청소년기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당장 부모님이 돌봐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학비며 용돈이며 모두 다 부모님께 의존해 있습니다. 그리고 진로 문제도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올바로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보면 자기 인생은 자기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자기 인생이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셨고 또한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걷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인생살이가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무엇인가 바라고 추구하던 것을 이루는 것보다 접고 포기하고 실패하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 한 복판에서 고통과 좌절을 겪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결코 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고전 7: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그리고 갈 2: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고 나서 자기 인생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던 자신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셔서 자신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인생은 은혜로 새롭게 시작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미국 라이트주립대 차인홍 교수는 한국 장애인으로는 처음 미국의 음대에서 교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분이 작년 여름 귀국 연주회에서 감동적인 간증을 이야기했습니다. 간증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빚진 자의 마음으로 갚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차교수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 장애인이 됐습니다. 6남매를 둔 부모가 고령인데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그는 9살 때 부모의 곁을 떠나 재활원에 맡겨졌습니다. 어느 날 바이올리니스터 강민자씨기 인근을 지나다가 재활원 아이들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사비를 털고 바이올린을 사서 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차교수는 그 때 빼어난 실력을 과시하게 됐고 콩클에 나가 1위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이상 학교에 다니지를 못하고 늘 바이올린만을 켜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현재의 부인을 만나 사랑을 키웠고, 24세에 검정고시로 대학 입학자격을 겨우 받게 됐습니다. 이 때 서울음대 신동욱 교수의 도움으로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집안의 반대를 아내와 결혼하게 됐고,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박사학위도 받게 됐고, 이어 미국 라이트 주립대학 교수로 임용이 되었습니다.

차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처럼 적절한 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의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난과 장애 속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자기를 미국 대학의 교수가 되게 하시고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됨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빚진 자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나의 나 됨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잘나서 된 것 아닙니다. 내가 노력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때마다 일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역사해 주셔서 오늘 여기 이렇게 살게 됐습니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면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나를 위해서만 살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청지기일뿐이다.”

자신의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카알 힐티(Carl Hilty)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발견하는 날이다.󰡓인생에서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22 살에 쓴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온 세계가 무너진다 해도, 내가 꽉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이념,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명을 나는 찾아야 한다.” 마치 사명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사명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명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선각자들이 사명을 찾고자 했을까요? 사명이란 영어로 “mission”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라틴어 "missio"에서 왔습니다. 이 “missio”라는 말은 원 뜻은 보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뜻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인생을 허락하신 목적을 말합니다. 우리를 우리 자신의 청지기로 세우시고 청지기로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명은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맛보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청지기로서 살아가야 할 목적입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금세기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원래 그녀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고, 9살 때 성폭행을 당했으며, 14살에 아이까지 낳았다. 20대에는 마약에 손을 댔고, 비만으로 100kg의 몸무게를 못 이겨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그 자리에 이르게 됐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자서전 격인 책 [이것이 사명이다]를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자신이 발견한 사명, 그리고 자기가 인생을 다 쏟아부으며 추구했던 사명 네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무엇이든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다면, 그것을 축복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남보다 아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인생 가운데 남보다 큰 아픔을 겪었다면, 그것을 고통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섬길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남보다 가슴 설레이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이 없는 가슴 설레는 그 어떤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을 하나의 망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4, 남보다 부담이 되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마음 속에 어떤 일에 남이 느끼지 못하는 부담이 느껴지면, 그것을 강요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자신의 청지기로 깨닫는 사람들은 남다른 사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청지기들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한 인생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자신의 청지기들은 이제 그 사명을 충실하게 완수하며 살아야 합니다.

삼상 6장을 보면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10-1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더 이상 자기들이 보관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때 두 마리 소가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마리 소가 자기들끼리 무사히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이 두 마리 소가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바로 행했습니다. 

두 마리 소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목적지인 벧세메스까지 곧바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한 눈 팔지 말고 사명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둘째, 아픔을 견뎠습니다.

두 마리 소는 새끼를 두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갔습니다. 아픔을 잘 견딘 것입니다. 사명자는 아픔이 있어도 잘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셋째,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두 마리 소는 법궤 운반을 끝내고 하나님 앞에 번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것입니다. 사명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깨달았으면 끝까지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청지기임을 깨달았으면 청지기로서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눈 팔면 안됩니다. 도중에 포기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청지기임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는 점, 내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청지기답게 살아야 합니다. 청지기로서 인생의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적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청지기로서 깨닫게 된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견디고 참으며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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