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들을 빼앗을 자 없느니라! (요 10:22-28)

  • 잡초 잡초
  • 244
  • 0

첨부 1


그들을 빼앗을 자 없느니라! (요 10:22-28)

 
그 동안 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천안함 함수를 인양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어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저질렀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아주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고 그 결과 꽃다운 젊은이들이 참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좀 심한 표현 같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는 언제나 빼앗는 자들과 빼앗기는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방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라는 것도 알고 보면 경쟁을 통해서 가진 자들이 다수의 못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가는 악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식 시장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반면에 손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결코 다 함께 손해를 보거나 모두 함께 이익을 보는 경우는 없다는 말입니다.

재작년 여름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녀가 뭐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동이 틀 무렵 남들보다 좀 일찍 일어나서 혼자 해변을 거닌 것이 총에 맞아 죽을 정도로 큰 잘못이었습니까? 아마 그녀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모든 것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금강산 관광을 허락한 남북 당국자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말을 믿었을 것입니다. 또한 금강산 관광을 시행하는 현대 아산 측의 말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고 또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우리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초라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청년 예수를 진짜 그리스도로 믿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생과 사를 갈라놓을 수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만남과 사귐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만남과 사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의 정체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 바로 알지 못할 것 같으면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바로 알아야 제대로 사귈 수 있습니다. 또 바로 알아야 그 사귐이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아니 친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은 영원한 사귐을 위하여 아주 중요합니다.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바로 알아야 비로소 우리의 사귐이, 즉 우리의 믿음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따졌습니까?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요 10:24)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너무 혼란하다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도 분명히 들었고 또한 하시는 일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언제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을 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때문에 문제는 믿음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듣고 보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에 의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그토록 분명한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대답을 통하여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5~27)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뿐만 아니라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니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따로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으면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기적을 보여 주시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문제였습니다.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주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참 주인, 즉 생명을 주시는 선한 목자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혹시라도 나 자신이 나의 삶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황금 우상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결코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주인으로 삼을 것 같으면 결국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나름대로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선입견을 가지고 믿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이런 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저런 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믿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우리를 사랑하셔야 하고 또 우리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지켜 주셔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그릇된 믿음에 불과합니다. 

그 옛날 예수님이 경건한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거부하셨던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순종하신 아들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의 믿음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르게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외에 다른 그 어떤 것도 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또한 따르지 않았습니다.
믿음이란 듣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듣지 않았고 그 결과 믿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그렇습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라갈 때 비로소 참 믿음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그 주님의 뒤를 따르는 오고 오는 세대 속의 모든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이어지는 말씀으로 또한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생명을 창조하신 주님이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세상은 저마다 빼앗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재물도 빼앗으려고 합니다. 목숨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영생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생명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래 세상은 그런 것입니다. 끊임없이 빼앗고 죽이는 것이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믿으면 아니 됩니다. 오직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님을 끝까지 따름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마음껏 받아 누리고 장차 그 보좌 앞에 섰을 때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친구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