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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권위의 계시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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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계시 (막 2:1-12)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진실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유명한 설교, 훌륭한 가르침, 그리고 우리의 병을 고치시는 이의 이야기. 그는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오셔서 그의 시대에서 훌륭한 설교자이자 우리의 선생님이시고 또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가 설교하실 때 그 설교에서는 권위가 담겨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병을 영적으로도  육신에 대하여서도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즉 어디를 가시든 사람들이 그의 오심을 알고는 큰 기대와 함께 그에게 모여 들었답니다.  그들은 그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웃한 다른 사람들도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카퍼나움에서 악마를 몰아내고 사이몬의 장모의 병을 고치고 문둥병 환자와 다른 병자들를 고치고 나서 두 번째로 카퍼나움에 오셔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을 알게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방이 모자랐고 심지어 문바같에서도 그러하였음으로 미루어 당시 예수님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또 사람들을 끄는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카퍼나움에 오심을 증명하는 것이고 마가복음 7장 24절에서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음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몇 몇 사람들은 중풍환자를 네 사람이 든 채로 데리고 왔습니다. 무엇이 분명한 원인인지 명확하지도 않고, 또 그 중풍환자가 걷지 못한다는 사실이면에 격심한 고통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네사람은 필사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였는지 그들과 예수님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그들이 주 예수님께서 바라는 사람들이고 이웃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환자를 사랑하였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여기 3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1. 그들은 그 중풍환자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2. 그들은 그 중풍환자의 치료가 절실함을 알았고

3. 그들의 사랑이 그 중풍환자를 예수님께 데리고간 것입니다.

그들의 지순함이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다가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열정으로 예수님께 다가갈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자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예수님께 다가갈 수만 있다면 나을수 있다는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위에 구멍을 뚫고 환자를 누인 매트를 내려 놓았던 것입니다.  Life Application Bible commentary(1994)에 따르면 그 당시 집들은 돌로 건축되어 있었고 외부에 지붕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붕은 들보형태였는데 그것은 몰타르와 모래배합타르로 만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최소한 2가지 측면에서 다른 성경과는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그 환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발견하셨고 두 번째로 “아들아 너희의 죄가 용서되었다”라고 말씀하셨음입니다.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죄에 속박되어 있었고 죄로부터 벗어날 힘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예수님앞에 다가설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병상에 있는 환자와 같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예수님께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으로 보여준 믿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  (Life Application Bible commentary(1994) p48)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받지 못한 형제 자매를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실 것이고 그들의 아픔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이웃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보아왔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는 중간에서 역할 한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환자의 병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회중에게 무엇이 우리의 문제인가를 물었습니다. 회중은 정확한 답을 못하였고 눈에 보이는 것(경제적인 것 집에 관한 것, 사업에 관한 것)들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바로 말씀하시기를 이런것들에 우선하여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죄라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문제가 풀리면 다른 것들은 저절로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짓기전 에덴의 아담과 이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든 아픔과 고통은 죄로 인하여 오는 것입니다. 죄를 진사람은 스스로를 환자가 되게 하고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인 병에 우선하여 죄의 사함이 필요함을 아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적인 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보다 유체적인 병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더 관심을 갖는 우를 범하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에수님께서는  사람의 육체적인 병에 우선하여 영적으로 강건해야 함을 알고 계십니다. 영적인 강건함은 예수님의 영적인 손길이 닿아야 할 것입니다. 

그 회당에는 위 4사람이 보여준 믿음(중풍한자를 데려와서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 놓았던 믿음)에서 나온 행동과는 대별되는 또 다른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잘못을 찾아 예수님을 모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에수님께서는 그들의 의도를 알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왜 이땅에 오시게 되었는지 알게하기 위하여 “아들아 너의 죄가 사하여 졌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진실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레위기 34:6-7, 시편103:3, 이사야43:25). 그들이 알고 있는 성경에 따르면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누군가가 하나님과 같다고 주장한다면 명백히 신성모독이며 그 죄는 죽음으로 다스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이십니다.그러나 그들의 맹목적임과 교만함, 질투, 아집 때문에 가까이 계신 선지자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증오와 적대감을 바로 아셨습니다.  누가 마음속의 생각을 읽어 내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심에 찬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죄사함도 병고침도 쉽지 않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양쪽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고 하나님에게는 가능한 것들입니다. 예수님께는 죄사함도 병고침도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를 사하고자 이땅에 오신것입니다.:육체적인 병을 치유하심은 죄사함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문제는 육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처한 문제의 뿌리를 없애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같이 이 땅에서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고 특히 율법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답니다.그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권위에 혼란하였고 의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아닌 누가 죄를 사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권위가 담긴 어조로 ” 내가 말하노니 일어나서 너의 매트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하였습니다.그리고 순식간에 환자는 나았고 일어나서 그의 매트를 들고 걸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마가복음의 마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마음속 불신을 완전히 씻어내면서 예수님의 권위 즉 죄사함과 병고치심에 대한 권위를 입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까?

중풍환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첫번째 그룹인가요? 아니면 에수님의 이적과 말씀을 평가하고 비판하기 위해 온 두번째 그룹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마음을 읽고 계십니다. 그는 바로 인간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는 바리세인, 유혹하는자, 율법을 가르키는 목회자와 선생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모두에게는 불가능하여도 예수님께는 가능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추호의 의심없이 예수님을 믿게하는 예수님이 이적은 하나님의 하심과 같고 이 땅에서의 죄사하심과 병고치심에 대한 권위도 하나님의 그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설교와 가르침 그리고 이적을 보이시고 비교할 수 없는 열정을 보임으로써 늘 사람들을 놀라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데려오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첫번째 그룹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고난을 보시면서 우리 형제 자매들의 죄를 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죄를 벗어날 힘을 잃은 병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압니다.  그들은 또 스스로 예수님께 다가갈 수도 없어 예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여러분들은 위 첫번째 그룹의 사람들처럼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시고자 하십니까?  제가 진정으로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인터넷을 통해 이 메시지를 들으시는 분들께 원합니다. 제발 방글라데시 국민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여 주십시요 그리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저들의 죄사함을 받게 하여 주십시요.

하나님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주시고 주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주시오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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