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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좋은 원래적인 것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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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원래적인 것 (행 3:1-10)

 
사도행전은 예수님 부활 이후에 이루어진 행적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행전의 내용들을 보면 부활의 증거들과 부활을 통해서 얻은 능력들의 결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역사의 한 분기점입니다. 인류에 전환점을 제공하였고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에 제자들은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변화 받은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예수 부활이전의 베드로는 용렬하고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부활 후 엄청난 변화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변화를 받은 베드로가 성전에 나아가 전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구걸하는 거지 앉은뱅이를 향하여 “내게 금과 은은 없으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말합니다. 

예전의 베드로 모습이 아닙니다. “내게 금과 은은 없다”, 전도자는 금과 은으로 사역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은과 금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와 하나님 사역은 금과 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늘 선교가 실패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때 그 삶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이름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현장에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은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때 그 삶에 기적이 일어나고 변화가 동반하며 회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복을 빌며 사역하여야 합니다. 어느 군목이 소위로부터 심방을 요청받았습니다. 

이제 갓 결혼하여 부임해 온 소위입니다. 그 군목은 심방을 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복을 빌고 큰 군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잊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목사님은 제대한 후에 어느 부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부대의 부대장은 3성장군인 중장이었습니다. “제가 30년 전에 목사님으로부터 기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기도해 준 것은 잊었으나 그 군인은 이미 큰 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앙의 삶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 가는 삶입니다. 교회부흥도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전도도 내 이름이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때 그 현장에 회심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한 것도 예수의 이름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예수의 이름으로 그는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삶은 참 단순한 삶입니다. “내게 금과 은은 없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여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회심의 역사도 치유의 역사도 동반합니다. 원래 복음은 이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구원의 방법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간단한 구원의 방법들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이론화 하고 제도화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파가 생기고 분열하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원래적인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오늘 찬송도 많아 나왔지만 어렸을 때 부르던 찬송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 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던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이 내용들을 보면 아주 원색적인 복음을 말하고 신앙고백을 말하고 복음을 말하는 내용들입니다. 아주 구원관이 분명하고 확실한 내용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찬송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임하고 변화가 일어나고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찬송들이 다 사라지고 자꾸만 막연한 내용의 찬송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러도 감동이 없고 들어도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또 전도도 “예수 믿으세요,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가 가장 좋은 전도법입니다. 가장 원색적인 전도 방법입니다.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잠을 잘때마다 그 말이 위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그래서 믿어야 합니다” 거기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달리 해석도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믿으세요,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이 보다 더 강력한 전도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이 전도방법에도 미사여구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하여 원대한 계획을 세우 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꾸만 복음이 희미해지고 초점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모든 것이 다 이렇게 의미를 상실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간단화”입니다. 신앙이 너무 간단화 되어버렸습니다. 빨리빨리, 간단 간단히 가 결국 오늘 신앙을 형식화 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옛날에는 부흥회도 한 주간씩 하였습니다. 그때는 성령의 역사도 치유의 역사도 동반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좋은 전통이 너무 간단화 되고 행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회심의 역사도 성령의 동반역사하심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과 신속함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기차가 빠르고 비행기가 더 빨라졌지만 그 빠름 때문에 주위의 분위기를 보고 관찰하는 과정은 생략되어 버렸습니다. 

자전거는 느리지만 주위를 보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습니다. 빠른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성만찬은 가톨릭이 그 고유성을 더 잘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2시간씩 성찬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교회에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이 전통과 과정마저 깨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떡은 받는데 잔은 번거로우니까 사제만 받고 생략되고 있습니다. 그곳에도 이 간단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결국 형식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소중한 의미와 틀과 내용이 살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간단화가 위기입니다. 

또 하나는 “변질”입니다. 의미가 상실되니까 그 내용이 변질되는 것은 순서입니다. 영국이나 스코틀랜드는 기독교 신앙의 발상지입니다. 신앙개혁의 발원지입니다. 존 웨슬레는 그 신앙개혁의 주인공입니다. 18세기 영국을 영적 혁명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한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감리교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는 종교개혁을 이루어 장로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참신한 신앙을 위해서 청교도들이 태동한 개혁신앙의 발원지입니다. 

그때는 그 큰 예배당들이 사람들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곳에 눈물도 회개도 변화도 기적들도 수반되었을 것입니다. 호사다마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싹텄습니다. 다원주의 신앙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오늘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그 큰 예배당들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오늘 영국인들은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6-70%라고 하는데 실제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2-3% 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도심의 그 큰 예배당들이 주일날이면 노인들만 5-60명 나오고 여행객들을 포함해서 100여명이 예배드리는 실정입니다. 그 결과 오늘 교회들이 유지가 어려우니까 매매광고가 신문에 나오고 때로는 카페로 팔리고 회교도들에게 팔려나가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전통이 얼마 있으면 한국에도 그대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신앙의 간단화 때문입니다. 그 간단화는 마침내 신앙의 변질로 나타나고 그 변질은 의미상실로 나타나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복음의 세계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은 모든 부분이 이 시류를 타고 있습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오늘의 음식에는 순수함이 사라지고 조미료들을 넣고 색깔을 요란하게 넣어 만들어 놓습니다. 이제는 음식도 변질되었습니다. 옛날 먹던 음식에는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었고 건강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모든 음식에는 자연스러움이 다 없어졌습니다. 또 사람들이 생수가 제일 좋은 음료인데 생수의 맛이 밋밋하니까 톡 쏘는 가스를 주입시켜서 탄산음료를 만들어서 내 놓았습니다. 

처음 그 음료수를 마실 때는 톡 쏘는 것이 시원하고 맛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오늘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시 원래 마시던 생수를 되찾게 된 것입니다. 생수는 맛이 밋밋한데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생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짜릿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짜릿한 것은 얼마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 짜릿한 것이 오래가면 안 됩니다. 오늘 사람들이 짜릿함을 찾아다니는데 바로 그것이 병입니다. 짜릿함은 생명이 짧습니다. 또 생명이 짧아야 합니다. 

그 짜릿함이 오래 수십 년씩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남녀가 함께 만나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남녀가 처음 만나면 짜릿합니다. 남녀가 서로 손만 닿아도, 앞에 서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한두 해 살면 그저 그렇습니다. 그것이 알고 보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평생 마주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손만 잡아도 짜릿해 보십시오. 날마다 어떻게 살겠습니까. 짜릿한 것은 잠깐이고 밋밋한 것이 오래가며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원래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원래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야 자연의 소중함을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연보호를 말하고 생태계 보전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파헤치고 나무를 베어내고 물을 더럽혔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 지구상에 매년 홍수와 산사태와 가뭄과 지진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아바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인간이 탐욕을 부린 결과 대 재앙을 맞이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입니다. 아바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따라”(avataara)라는 말입니다. 지상에서 내려온 신들의 화신, 분신이라는 뜻입니다. 제작비만도 5억 달러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영화의 스토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인간이 지구자원이 고갈되니까 대체에너지를 찾아 우주로 나서서 판도라라는 행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행성에는 에너지가 많이 매장되어 있어서 인간이 개발하기 위해서 거기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그곳 원주민은 푸른색 피부를 가진 나비 족들이 살고 있는데 키가 3미터나 됩니다. 그곳은 행성 전체에 해로운 가스로 가득 차 있어서 사람은 특수 마스크를 써야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나비족 DNA를 복제한 아바타라는 인간을 복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을 링크시킨 제이크 설리라는 퇴역군인을 투입합니다. 이 설리가 나비족에게로 가서 그곳 정보를 입수하여 그 정보를 토대로 무력으로 나비족을 몰아내고 그 땅을 파멸시키고 그곳에 매장된 에너지 자원을 차지한다는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이 설리가 마침내 판도라 행성을 지구의 지배하에 두고 그 행성을 무력으로 깔아뭉개고 자연을 훼손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인간욕망에 마침내 분노하게 되어 주인공 설리가 태도를 바꿔 나비족과 함께 인간의 무력에 대항해 싸운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인데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인간들이 인간세계를 다 파멸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행성까지 가서 그 땅을 또 파헤치려는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저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이 세상이 다 오염되어 있습니다. 모든 식물에는 농약을 치니까 벌레들이 더 강해지는 이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비극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오늘 사람들이 안 되겠다 싶어 근래에 와서 유기농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땅에 농약을 치지 말고 옛날처럼 퇴비주고 거름을 주어 식물을 재배하여 건강한 야채를 생산하여 인간의 건강을 지키자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기농을 하려고 농약을 안치면 식물이 자리지를 못하고 벌레들이 다 먹어치웁니다. 이것이 오늘 고민입니다. 요즘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일본 아오모리 현 기무라 아키노리 씨의 이야기입니다. 기무라 아키노리씨가 매년 13차례 농약을 치던 과수원에 어느 날부터 농약을 끊었습니다. 그러니까 벌레들에 공격을 받은 과수들이 서서히 시들어 가다가 마침내 사과나무가 꽃이 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8년간 나무가 죽어 가는데도 농약을 치지 않고 무농약을 고집한 결과 마침내 땅에 지렁이가 나타나고 개구리가 모이고 메뚜기가 나타났고 8년째 되던 해부터 죽어가던 사과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다음해 9년째 되던 해 6만평에 심겨진 사과나무에 흰 꽃이 피어 들판을 뒤덮었고 그해 가을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가을 아오모리 현에 큰 태풍이 불어 모든 사과들이 다 떨어져 농가들이 치명타를 입어 모두 8천억 원의 피해를 입혔는데 그런데 그 집만은 사과열매들이 그대로 매달려 있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열린 사과를 일컬어 기적의 사과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 사과를 먹으려면 1년 반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 사과는 반으로 잘라 놓으면 일년가도 시들기는 해도 썩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은 그런 땅이었습니다. 

그 좋은 땅을 인간 스스로가 망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세상이 이런 재앙을 만나게 되었고 그 땅에서 열린 열매를 먹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늘에 와서야 원래의 것이 좋다고 고백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의 것이 최고 좋은 것입니다. 신앙도 원래의 은혜가 최고입니다. 보혈의 복음 죄 사함의 은혜가 최고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복이 무엇입니까. 저는 그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원래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잃으면  곧 재앙이 옵니다. 두 번째는 예수를 알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것이 근본의 복입니다. 어떤 분이 손님을 초대했습니다. 집이 컸습니다. 서재에 신앙서적들이 가득 꽂혔습니다. 그 사람의 장인은 목사였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 -7시까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영적교제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손님을 모셔놓고 어느 날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예수를 모릅니다, 예수를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재물이 있습니다, 학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만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복이 예수를 믿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예수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복은 예수를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안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불행이 어디 있습니까. 세 번째는 예수로부터 주어지는 힘을 입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 살아갈 때 예수의 힘을 입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지만 예수님 부활 이전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였습니다. 말은 수제자였지만 수많은 실수를 연발하였습니다. 그러던 베드로가 진정한 베드로가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나가 그는 새롭게 변신을 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그때 일어났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향하여 “내가 네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당당하고 확신에 찬 고백입니까. 그러니까 그 앉은뱅이가 그 자리에서 힘을 얻고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진정한 신앙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시대를 불문하고 변치 않는 영적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 힘 있는 영적 삶이 주어졌으면 합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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