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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립무원(孤立無援) (대하 28: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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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孤立無援) (대하 28:16~25)
  

인간은 의존적(依存的)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계신 자존적(自存的) 존재입니다. 한자로 사람 ‘인’(人)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형상이죠. 그러므로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장 확실한 도움은 무엇이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자(全知全能者)로서 우리 인생에 모든 면에서 완전한 도움이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주권자(絶代主權者)로서 인생의 생사화복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인간의 도움이나 세상의 그 어떤 도움도 불완전하고 제한적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엉뚱하게 세상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세상 것들이 자기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 보면 그런 것들이 인생을 완전히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가서 실망하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하나님을 제쳐놓고 세상만 의지하다 실패한 인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구의 이야기인가요? 아하스입니다. 그는 남 유다 왕국의 제12대 왕(B.C. 731~716)으로 유다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으로,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 비교되는 인물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분열왕국시대가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남북분단시대입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을 이룩했는데, 솔로몬이 그 뒤를 이었고, 그 후에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그런데 실정을 거듭하는 가운데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결국 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눠집니다. 남쪽은 유다 왕국,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그 때가 BC 930년이었습니다. 남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한 BC 586년까지, 북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게 멸망한 BC 722년까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두 가지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언급할 때도 있고, 반쪽인 북 이스라엘을 언급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한국이란 말을 남북한 전체를 언급할 때도 사용하고, 남쪽만 언급할 때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하스는 남 유다 왕국의 12대 왕으로 제 딴에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했지만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인생도 망치고 나라도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짝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제 편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까 모두가 등을 돌려버립니다. 한 마디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혼자서 애를 태우다 마침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좋을 때 좋은 겁니다. 내가 형통할 때는 사람들도 주위에 밀물처럼 모여듭니다. 반대로 내가 고난을 당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마치 썰물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번 관계를 맺으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함께 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한 마디로, 신실하신 분입니다. 흔한 표현으로 말하면, 의리가 있는 분입니다. 인간이 배신하는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일까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고 고백한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줄기차게 무엇을 증거합니까? 하나님을 멀리 하면 고립무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바로 이겁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멀리하는 고립무원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아하스의 불신앙 vs. 다윗의 신앙

먼저 아하스 왕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나 있었는지 살펴보죠.본문 앞에 대하28:1~2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죠. “1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2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북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작정하고 우상숭배를 자행했습니다. 반면 남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을 갖고 있고, 다윗 왕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다의 왕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를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고질적인 왕이 바로 아하스였습니다. 

구약 성경 가운데 역사서(열왕기 上下, 역대기 上下)를 보면, 이스라엘 역대 왕들의 신앙을 언급할 때 항상 함께 언급되는 왕이 바로 다윗입니다. 각각의 왕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상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남북이 분열되면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건국 왕인 여로보암은 그 반대의 길을 만든 사람입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백성들을 우상 숭배로 이끌어갔습니다. 그 후 북 이스라엘 왕들도 계속 그 길로 갔습니다. 그래서 역사서를 보면역대 왕들이 다윗의 길로 혹은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고 묘사되어 나타납니다. 다윗을 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신앙의 길이고, 여로보암의 길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하는 불신앙의 길을 가리킵니다. 다윗을 길을 갔던 왕은 모두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길을 갔던 왕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하스도 그랬습니다. 

[2] 아하스의 고난 vs. 다윗의 고난 

아하스가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자 참고 참으시던 하나님께서 결국 진노하십니다. 그에게, 그리고 남 유다 왕국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고난의 연속입니다. 

① 아하스의 고난 : 

하나님의 징계는 여러 모양으로 닥치는데, 본문에 보면 전쟁으로 닥쳤습니다. 아하스 왕 당시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마치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주변의 열강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과 북이 열강들과 동맹을 맺고,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먼저 ‘아람’과 ‘北 이스라엘’이 함께 남 유다를 침공합니다. 그 내용이 대하28:5~6에 기록되어 있죠. “5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6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그러므로’ 이 말은 “아하스의 불신앙 우상숭배로 인해” 그런 뜻입니다. 북 이스라엘의왕 베가의 군대가 무려 12만 명을 살육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대하28:8절 보면, 20만 명의 포로를 끌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오뎃 선지자의 만류로 풀어주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는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계속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이번에는 에돔과 블레셋이 침공해 옵니다. 본문 17절~18절을 보시죠. “17 이는 에돔 사람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의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18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 점령하고 거기에 살았으니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에돔이 와서 공격하고 포로들을 끌고 갑니다. 블레셋은 침노하여 아예 유다의 여러 마을에 진치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말씀합니까? 아하스가 망령되이 행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 가까이 오라는 신호입니다. 물론 의로운 고난도 있습니다만, 그때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오면 승리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징계를 당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속히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매의 강도가 점점 강해집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어떻게 했나요? 계속 하나님에게서 엇나갑니다. 아예 어깃장을 놓는 모습입니다. 16절 보세요!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엎드려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에게서 멀리멀리 떠나갑니다. 외세의 도움을 구합니다. 당시 신흥 강국인 앗수르에게 원병을 요청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나요? 앗수르가 순순히 도와줘서 위기를 모면했나요? 승리했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20절~21절을 보십시오. 20절~21절. “20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21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앗수르 왕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했더니 와서는 오히려 공격합니다. 심지어 앗수라 왕에게 아하스가 뇌물을 바쳐요. 

하나님의 성전에서, 왕궁에서, 방백 관리들의 집에서 공출해서 몽땅 바칩니다. 그러고도 당한 겁니다. 혼자서 고집 부리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면 고립무원이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데, 누가 도와줍니까? 착각이죠! 계속 헛발질이요,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나라도 어려워지고, 돈도 빼앗기고, 스타일도 구기고 ... 얻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아하스의 꼬락서니를 보세요. 22절입니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고난 가운데 더욱 범죄합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오라고 말씀하시는데, 아하스는 더욱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심지어 다메섹 신(아람의 우상 신)에게 제사합니다. 백성들이 신앙 생활을 방해합니다. 각 성읍에 우상을 세웁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촉발했습니다. 25절(하). “ ...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정말 너무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영적으로 무지몽매하고 고집불통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살다가 하나님 앞에 잘못 할 수 있습니다. 무지해서 연약해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욜2:12~13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Even now)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return to me)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제라도! 그러면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는 겁니다.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제가 자주 강조해서 드리는 말씀이 있죠. 하나님은 오해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기다려주시지 않습니다. 물리학에서 탄성한계라는 게 있죠. 금속 같은 게 힘을 주면 늘어납니다. 힘을 빼면 다시 복원됩니다. 그런데 힘을 너무 많이 주면 복원되지 않습니다. 복원될 수 있는 범위를 가리켜 탄성 한계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 한계치를 넘어가면 보원되지 않고 늘어난 채로 남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영구 변형(永久變形)이라 부릅니다. 용수철을 예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용수철을 힘을 주어 당기면 늘어나죠. 다시 놓으면 복원됩니다. 그런데 탄성 한계를 벗어날 만큼 힘을 너무 세게 주면 늘어난 것이 복원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실수 할 수 있고 . 잘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얼마든지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게다가 축복까지 해 주십니다. 그런데 계속 고집을 부리고 회개치 않은 채 고질화되면 곤란합니다. 때는 늦으리! 죄 가운데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이해하고 들어 주세요! 어느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의학을 공부하니까 힘들고 바쁩니다. 그 전에는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힘들다며 교회 생활을 

소홀히 하기 시작합니다. 개업을 하면서 더 바빠졌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기까이 해야 영적으로 새 힘을 얻고 승리할 수 있는데, 계속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교회 빼먹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형이 염려하며 권면합니다. “너 그러면 안 돼.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의 은혜 잊으면 안 된다.” 그럴 때면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형, 나 박사학위 받으면 다시 교회 나갈게. 그때까지만 봐주라.” 박사 학위 받은 후 또다시 권면하니까 이번에는 병원 빌딩 세우고 안정되면 나가겠다며 핑계를 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을 보니까 안색이 영 말이 아닙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간암 말기라는 겁니다. 결국 얼나 못가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례식장에 의사면허증, 박사학위기, 표창장 등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얼마 전 말씀드렸지만,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단 한 가지입니다. 한 사람은 회개하고 다른 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영영 멀어지고 ... 가룟 유다는 영적인 탄성 한계를 넘어선 사람입니다. 아하스가 그랬습니다. 영적으로 탄성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반면에 다윗을 보십시오! 그도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애를 쓴 사람입니다. 혹시 멀어졌다가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영적인 탄성 한계 내에서 살았습니다. 다윗이 고난 가운데 어떻게 처신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② 다윗의 고난 : 

그가 사울에게 쫓겨다니다 하도 힘드니까 블레셋 국경을 넘어 블레셋 왕에게 투항합니다. 안 될 말이죠. 시글락을 얻어 더부살이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이스라엘과 전쟁에 억지로 끌려 나갑니다. 다행히 블레셋의 신하들이 반대해서 그 대열에서 빠졌기에 망정이지, 만일 출전해서 싸웠으면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사흘 동안 잠시 시글락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이 와서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을 다 잡아갔습니다. 기가 막힌 상황이죠. 

부하들까지 이성을 잃고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하죠? 삼상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위기 가운데 하나님에게 돌아오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고 도움을 구하니까 살았어요. 아말렉을 쳐부수고 부녀자들 다 찾아오고, 많은 전리품도 얻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후에는 어떻게 했나요? 태연하게 있는데, 나단 선지자가 와서 책망합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하죠?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는 절대 군주로 나단 선지자를 제거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합니다. 그러자 죄 사함을 받고 오히려 축복을 받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새로 태어난 아들이 솔로몬 아닙니까?

또 압살롬 반역 때 왕궁에서 쫓겨나간 다윗이 어떻게 하죠? 삼하16:11~12 “11 ...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 ” 시므이가 저주하지만 하나님께 맡깁니다. 정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시고 승리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아들도 신하들도 모두 배반했어도 하나님은 다윗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결국은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시편에 나타난 그의 신앙 고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18:1~2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는 재력이나 권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이나 세상 것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시고 승리의 인생으로 축복하신 겁니다. 

또 시34:6~7 보세요.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을 배반하면 고립무원이지만 하나님을 의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천군만마입니다. 천군천사를 동원해서라도 도와주십니다.

[3] 아하스의 치욕 vs. 다윗의 영광 

이렇게 해서 아하스는 인생을 치욕적으로 마감했습니다. 대하28: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 ” 얼마나 백성들의 원성이 컸던지 죽어서 왕의 묘역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라 말아먹은 인간이 어떻게 왕이 대우를 받겠습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영광 가운데 인생을 마치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성군 다윗’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왕상2:45 “ ...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 ” 그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갔는데, 궁극적으로는 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권에 세워졌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인생을 살고 싶으십니까? 아하스처럼 하나님을 멀리한 채 인간적으로기를 쓰고, 세상만의지하다가 실패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다윗처럼 승리하시겠습니까? 때때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의지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오히려 고립무원이 됩니다. 조심히야 됩니다. 요즘처럼 사방이 뒤숭숭할 때는 세상이 더욱 두려워지고 세상 염려가 밀려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해야 됩니다. 

그게 진정 승리의 길입니다. 마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무쪼록 이 말씀 굳게 붙들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풍성한 승리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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