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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면 보인다(렘 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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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면 보인다(렘 33:1-9)

말씀과 기도의 두 기둥

솔로몬 성전에는 2개의 기둥, 보아스와 아긴이 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도 두 개의 기둥이 있다.  말씀과 기도이다.  사도행전 6:4을 보면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이 두 기둥,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썼다고 했다.  

또한 디모데 전서 4:4-5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한데, 그 선함이 선함되는 것은 말씀과 기도라고 했다. 

지난 주일 하나님 말씀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말씀”이다.  나라가 망하기 위기 앞에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서도 받은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부도날 회사를 인수하듯 손해나도 하나님 말씀대로 땅을 삼으로 백성들에게 포로로 끌려가지만 다시 돌아와 이처럼 땅을 사고 팔 것이라고 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기도”이다. 2 주간에 걸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기둥을 세워주시고 계신다. 

1. 기도는 항복이다. 

기도가 항복이라는 말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말씀 앞에 항복하라는 뜻이다.  우리들이 기도를 하면서 우리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은 나의 바람-원함만을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서 인간적인 생각을 붙잡고 기도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이다.  외우기도 좋게 ‘333’이고,  내용도 기분을 ‘33’하게 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단지 기분을 ‘33’하게만 하는 것으로 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 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기도에 대한 잘못된 신화들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붙잡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거기에서 오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기도를 새마을 운동처럼 한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잘못된 신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회사마다, 산업 현장마다 [하면 된다]라는 액자를 걸어 놓고, 우리 민족 특유의 근성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새마을 운동은 세계에 귀감이 되도록 전쟁과 가난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도록 만들어 주었다. 새마을 운동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기도를 무슨 안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기도를 복받는 악세사리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기도는 하나님 말씀 앞에 두 손 들고 항복하는 것이다. 기도는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 항복하지 않는 기도는 우상과 다를 바가 없다. 

입시철이 되면, 기도 도량마다 초만원이다.  마태복음 20:20이하에 보면, (예수님을 3년 정도 따라 다녀 졸업할 때가 되었다. 졸업과 입시철이 된 것으로 생각해도 된다.) 제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 온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구한다. 어머니가 무슨 기도-간구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구하고 있었다.  주님은 그 간구를 듣고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냐, 매뉴가 그것이 아닌데 여전히 김치국을 계속 먹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말씀 앞에 두 손 들기 전까지는 참 만족과 참 평안이 없다.  기도해도 여전히 목마르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 말씀은 합격-승리가 아니고, 불합격이고 패배였다.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것은 망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5절,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떠난 악행을 행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 말씀에 먼저 무릎 꿇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함이 없이 기도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2줄기로 계속 나가고 있다. “말씀에 순종하면, 다시 회복시켜 주겠다.  말씀에 불순종하면 계속 화가 임한다.  하나님을 떠난 악행의 심판으로 바벨론을 불러왔다.  포로로 잡혀 가서 거기서 회개하며 다시 말씀을 붙잡아라. 그러면 70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면 낮아져야 한다. 우리를 다루시면 버티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자기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이 기도이다.  새마을 운동하듯, [하면 된다]고 계속 우기면서 나가면 더 고생만 할 뿐이다. 

(렘 34:4-5, 개정) 『[4]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5]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데, 시드기야 왕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계속 동원한다. 바벨론에 맞서기 위해 애굽을 찾아가고 도움을 청하고 애굽을 의지한다. 그래서 다시 바벨론 이 침입하여 아들과 모든 고관들을 죽이고 바벨론 감옥에 죽는 날까지 가두어 놓는다(렘 52:7-11). 평안히 죽지 못하게 된 것이다. 

두 아들 손 잡고 와서 김치국 기도(말씀 앞에 항복하지 않던 기도)하던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들 야고보를 최초의 순교자로 하나님께 드린다.  영의정 시켜달라던 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하나님께 항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아들 요한은 다른 모든 제자보다 가장 오래 살면서  요한복음, 요한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까지 쓰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한다. 

처음부터 모세가 인간적인 힘으로 민족을 구원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광야로 보냄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사울 왕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 말씀에 꺼구려져 항복하고 순종했다면 그 왕위는 온전했을 것이다.  

(렘 29:11-13, 개정)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 말씀 앞에 항복하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얻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와 희망을 얻게 된다.  12절에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 말씀 앞에 항복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온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새로운 역사를 일으켜 주시겠다는 것이다. 


2. 항복하고 기도하면 그 때 보이기 시작한다.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을 한 번 보자. 여호야김 왕이 바벨론을 배반하자, 바벨론이 침입을 한다(바벨론 포로 1차). 이 때 다니엘이 사로잡혀 왔다.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벌을 다 받기까지 바벨론에 살면서 농사 짖고 자녀를 낳고 살라고 하면서 거기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라고 하셨다.  이것이 돌보는 것이라고 했다.  낮추면 낮아지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들을 다루시는 대로 새롭게 만들어져 가야 한다. 이것이 기도이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갔지만, 그렇게 했다. 8절을 보면,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뜻을 정하고 기도하는 3친구들에게 이렇게 해 주셨다. 17절. (단 1:17, 개정)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열려져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는데, 그 꿈으로 인하여 번민하여 잠도 자지 못한다(2,1). 왕은 바벨론의 술사와 박사들을 다 부른다. 그러면서 꿈을 해석하라고 한다. 그런데  왕은 그 꿈의 내용을 말해 주지도 않고 그 꿈의 내용과 해석을 다 요구한다. 술사들은 꿈을 말해 주면 해석하겠다고 계속 말하는데(4절, 7절). 왕은 너희들이 해석은 하지 못하고 시간만 벌고 있다고 말한다(8절).  사실 진짜 영이 열린 박사는  꿈의 내용을 말해 주지 않아도 무슨 꿈을 꾸었는지,  또, 그 뜻이 무엇인지 다 알아야 하지 않는가! 

왕의 명령이 너무 준엄하여 술사와 박사들이 다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 찾았다(12-13절).  이제, 다 죽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때 어떻게 하면 되는가?  세상 앞에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 항복하고 기도하면 된다.  

다니엘은 3 친구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같이 기도하기를 부탁한다(17-18절). 이렇게 기도하는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은밀한 일을 보여주신다(19절).  오늘 본문,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이 말씀 그대로 다니엘에게도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다니엘은 왕 앞에 선다. 그리고 알려주지도 않은 왕이 꾼 꿈을 정확하게 말한다(28절).  왕은 큰 신상을  보았다.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다. 신상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보여주는데,  머리는 바벨론이요, 가슴과 두 팔은 메데와 파사요, 배와 넓적다리는 그리스요, 종아리는 로마제국이요, 발은 로마제국 후에 분열된 여러 나라들이다.

그리고 후에 하나님이 세우신 한 나라가 일어날 것인데, ‘손대지 아니한 돌- 뜨인 돌, 건축자들이 별로 쓸모가 없어서 다듬지 않고 버린 돌, 곧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서 세상의 열방을 부서뜨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이다(44-45절).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 앞에 항복하며 기도했던 다니엘은 지금 이 시대와 예수님의 재림까지도 하늘이 다 열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다.  하나님께 항복하고 기도하면 보인다! 
이 때가 바로 진정한 승리가 되는 것이다.  인간적인 의지와 결단도 좋지만,  영원하지 않다.  해결되는 것 같지만, 다른 문제를 또 양산해 낸다.  새마을 운동 기도는 사람이 영광 받기 쉽다.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항복한 기도가 세상을 진정 이긴다.   46절.  당시에 가장 높은 왕 느부갓네살은 포로로 잡혀 온 청년에게 엎드려 절을 한다. 그리고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준다.  다니엘은 70년 동안 세상 제국이 바뀌어도 그 지혜가 다하지 않고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는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남은 자”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다.  노아는 모든 사람이 항상 악할 때 당대의 의인이 되어 남은 자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끝까지 지켜  남은 자로 복의 근원이 되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아 광야 여정의 남은 자가 되었다.  다니엘,  에스겔,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지만, 신앙을 지켜 남은 자가 되어  귀환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예레미야는 감옥을 집처럼 드나드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남은 자다. 부도날 회사를 주식을 사듯, 망할 나라의 땅을 하나님께서 값진 은을 주고 사라하셨으니 손해 나도 그 말씀대로 행하는 남은 자다. 그 남은 자 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셨다. 
예루살렘 성은 불 탈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치료하며 고쳐 줄 것이다(렘33,6).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회복, 곧 하나님께서 다른 것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대업을 성취할 날(렘33,14)을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셨다. 

그 날, 그 때는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약속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날이다.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될 것이고(15절), 유다, 곧 믿는 이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16절),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설 것이다(17절).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하나님 말씀 앞에 항복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은밀한 일- 하나님의 계획은 보여지고,  하나님과 그 살아 계신 말씀 앞에 항복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쓰여져 나갈 것이다.  


지난 주에 이은  9.11 테러 속에서 살아난 이야기 2탄  

미국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충돌하고 건물에 불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은 알지만, 당시에 건물 전체가 무너질 줄 몰랐다. 부지런히 대피하는데, 유일한 대피 통로는 계단. 지난 주 말씀처럼 100층에서 그 3시간 걸려 대피한 계단으로 뛰어 내려오는데 불과 연기가 앞을 가로막혀 있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불과 연기를 향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니 불 속에서 길이 열리고, 연기가 겉히고 길이 보였다. 뒤를 보니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어 , 그들에게도 같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계속 외쳤다.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함께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으면서 내려왔는데, 그때 그때마다 화염이 비키고 길이 보이더라. 그렇게 50분간을 뛰어 내려 왔고, 그 사람과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마자 그 거대한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한 사람의 믿음이 다른 사람까지 살려 낸 것이다.   복음들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들고 기도하면 길이 보이고 구원받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서연교회 이명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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