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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사람 (막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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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이 사람 (막 6:1~6)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1)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2)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4)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5)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6)
<마가복음 6장 1~6절>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요즘 세상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뒤숭숭합니다. 마음에 서글픔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철없는 사람들은 뭘 그렇게 다 밝히라고 하는지 …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인 나라입니다.
남북이 전쟁하다 휴전중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다 밝혀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침몰한 천안함과 비슷한 배가 동해에, 서해에도 많습니다.
다 밝히면 비슷한 배들이 위험에 다 노출되는 것입니다.
밝히기도 해야 되겠지만 어떤 것은 밝힐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모두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가 깨지고, 헬리콥터가 떨어지고, 
군인들이 자살을 했는지 누가 총을 쏜 것인지 …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상은 평안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화산이 터지고, 곳곳에 지진이 일어나고 …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서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겸손하게 경건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평안을 묻고, 평안하다고 답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평안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여러분과 예수님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예수 믿는다고 예배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소개하시겠습니까?
역사가라면 예수님을 어떻게 기록할까요?
일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별 볼일 없는 목수의 집에서 태어나
특별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성장하여 장가 한번 못 가보고,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이집트로 피난 갔던 것 외에는
해외여행도 못해보고, 공명을 떨쳐 보지도 못한 채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처형을 당한 사형수였다고 …. 

여러분은 예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마 16:15)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마 16:14)’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 누가복음 7:39 의 바리새인은 
더러운 여인의 접근을 허락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 마태복음 26:65의 가야바는
종교적인 전통을 파괴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 마태복음 27:24의 빌라도는
정말 모를 사람이기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 마태복음 27:54의 백부장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어느 날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하신 나사렛을 방문하셨습니다.(눅4:16)
그리고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막6:2)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막6:3)
- 아니 이 사람이 누구야? 마리아의 아들 목수잖아…!
- 이 사람이 누구냐?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이잖아 …!
- 이 사람이 누구냐? 그의 여동생들도 여기 살고 있잖아…!
한두 마디씩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회당에 모였으나
그들 앞에 서서 입을 여는 사람은 
이제 서른(30) 갓 넘은 총각 목수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 목수였던 예수,
그 동네에서 자란 예수, 그 가족 배경을 잘 아는 예수 … 일뿐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현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수준에서 판단하는 이기적인 정의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저 젊은이, 저 목수,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지?”(막6:2)
그들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은 
예수님이 전하시는/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막아 버렸습니다. 

젊은 예수 앞에 모인 사람들은 
선입견을 진리로 믿는 독선에 빠져 있었고 교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 너에 대해서 훤하다. 네 애비, 에미가 누군지 잘 알지 … 
네 동생들도 알고 있지.'
예수님의 설교를 중단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누가 제일 은혜 받기 어려운 줄 아십니까?
- 교역자(목사, 전도사), 신학생들이 은혜 받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다 배웠고,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설교를 하러 오라고 하면 비행기 타고라도 가지만 
설교 들으러 오라고 하면 길도 안건너는 사람이 목사라고 말합니다.

몇 년 전에, 목사님들 사오천 명이 모이는 집회에 
설교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다른 목사님이 
‘고목사 배짱도 좋다.’라고 하시더군요. 왜 못합니까? 듣지 않는데 …. 
듣지 않는 목사님들 앞에서 설교하기가 제일 쉽습니다.
- 장로님, 권사님들 은혜 받기 어렵습니다.
오래 믿다 보니 많이 들었고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교만이 있습니다.
- 그리고 설교자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은혜 받기 어렵습니다.
목사의 가족과 친척, 친구 … 들입니다.

예수님의 나사렛 설교/가르침도 
바로 이 “안다”는 교만의 문을 뚫기가 어려웠습니다.
잘 들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대상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으로 … 
선생이 아니라, 주님으로 모실 때 … 비로소 “예배요, 신앙(信仰)”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끼고 다니며 예수 믿는 크리스챤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을 아는 것에 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터무니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는 독선과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막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위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다가 죽었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사탄이 그분을 유혹했으나 굴복시키지 못했고,
헤롯이 그분을 죽이지 못했고, 죽음이 그분을 파멸시키지 못했습니다.
무덤이 그분을 가두지 못했습니다. 
그 분,‘예수님을 누구라 여기는 지’에 관한 문제는 
신앙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고백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은 하나님 형상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 1:15)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 上)

이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며, 인간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형상”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물건의 생긴 모양이나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민중국어사전 참조>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형상(eikon)”이란 단어의 원뜻은 
정교한 조각이나 초상화처럼 
완벽한 모사, 정밀한 복사, 정확한 복제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의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어휘는 제한적입니다.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너무 너무 아프면 말이 안나옵니다. 설명이 안됩니다.

너무 너무 예쁘면 말이 안나옵니다. 
정말 정말 깜짝 놀라면 ‘으악~’이라는 소리밖에 안나옵니다.
인간의 말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도 인간의 언어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잘못 예를 들면 신학적인 논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이해를 돕기 위해 
빛과 태양/태양과 빛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양이 빛을 내지 않는 때가 없듯이, 태양 없이는 빛이 없듯이,
예수님과 하나님은 분리되지 않으며, 
둘 중 어느 한 분만 존재하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 … ”(요 14:9)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창조자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낮추어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는 빌립보서 2장 5~8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아담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에 손을 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의 영광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지위를 상급처럼 단단히 붙잡거나 
이기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요1:12)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내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우리도 하나님을 똑같이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예수님을 ‘큰 형님’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지만,(롬8:1~17)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예수’라는 말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신 분임과 동시에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여러 차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귀신들조차도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마 8:29)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성막 휘장이 찢어진 일을 보고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3) 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다나엘도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보자 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중보자이십니다. 
“중보(仲保)”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의 둘 사이에서 회복을 주선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중보자는 하나님과 죄인된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전성경사전 참조>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죄 값을 치루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롬 6:23)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기 전에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난 우리는 
멸망이 없는 영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요3:16)

성경에서 나오는‘죄’라는 뜻을 가진 여러 단어 중에
‘하마르티아(hamartia)’라는 헬라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사냥꾼이 쏜 화살이 표적을 빗나간 것’을 뜻하는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되는 근본 원인입니다. 
따라서 그 단절관계를 회복하려면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죽게 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 값을 치루심으로(롬6:23)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요 3:16)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원 받은 하늘 백성이기 때문에 멸망이 없습니다.
넘어질 수 있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순종하신 예수님

사실 예수님은 그 어떤 허물도, 죄도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 안에 있더라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해 우리가 반응하는 자세는
우리의 믿음을 가늠하는 테스트를 받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부부 사이에 평안하고 좋을 때는 모르지만
고난이 닥쳤을 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좋을 때는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성도들이 교회를 정말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받더라도 견디고 이겨야 합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믿음을 잡아 흔드는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예수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게 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고전 15:58) 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흔드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드는 일에 흔들리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죄가 예수님을 이긴 것이 되고, 
따라서 우리들도 죄에 대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지 못하셨다면, 그분의 죽음은 쓸모없고, 
그분을 믿는 우리의 믿음도 쓸모없으며, 
우리는 죄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이가 될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사기꾼이 처형당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 …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요11:25)
라고 말씀 하신 예수님이 죽어서 끝났다면 예수님은 훌륭한 사기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 값을 치른 것이며 
그분의 부활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은 죄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켰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은 구원에 필수적입니다. 

만일 부활 신앙이 없으면 믿음 자체가 헛된 것입니다. 
성경에 수도 없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요한계시록을 가르쳐 주셨던 
성기호박사님이 쓰신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아일랜드 사람이 물건을 훔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이 4명이나 있습니다’ 
했더니 그 혐의자가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내가 그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할 사람을 40명은 데려 올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기호,「이야기 신학」서울: 국민일보, 2004. p. 201. 인용]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소수의 증인들보다 
못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심으로 
그의 부활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셨고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하는 대로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한 것이 318회나 됩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을 절수로 따지면 
매 25절마다 한 번꼴로 다시 오시겠다고 기록되어 있는 셈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재림에 관하여 예언한 것은 모두 1,000여 번이나 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재림의 시기는 하나님이 결정하실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 날이 궁금해 예수님께 여쭈었지만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고 약속하셨고, 
천사들도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 ”(행1:11)고 예언했습니다. 

재림은 언젠가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땅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지금 전하는 말씀을 
여러분이 다 기억한다 할지라도 … 
예수님에 대해 잘 안다 할지라도 …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믿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 모두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믿는 구원 받은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닮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면 안됩니다.
예수를 증거 하는/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 향내를 풍기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중에 ‘아유 난 못해요. 난 예수 냄새 못 풍겨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몰라서 그렇지 여러분은 이미 예수 냄새 풍기며 살고 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 메가폰을 잡고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지 않아도, 
전철에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길거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예수 냄새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여러분의 집에 교패가 붙어 있고,
성경찬송가를 들고 다니고, 식당에서 밥 먹기 전에 머리를 숙여 기도하고, 
잠깐 골치 아픈 척 하고 기도해도 사람들은 다 알아봅니다.
그 모든 것이 예수냄새 풍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예수 믿는 게 왜 저래’ 하는 소리를 듣는 이유가 뭡니까.
알게 모르게 예수 믿는 냄새를 풍겼다는 뜻입니다.

혹시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비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하나님 자녀에서 퇴출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잘 하려는 마음과 다시 잘하는 노력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자녀에서 퇴출시킵니까?
몇 대 때리고 야단치겠지만 
그래도 또 잘되기를 바라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우선순위였던 주일 예배참석이 
혹 지금 선택 사항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1년에 주일이 52주나 있는데 한 번쯤은 빠져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미 주일예배가 선택사항이 된 것입니다.

말로는‘예수님을 닮겠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 
실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개인적인 삶에서나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모범을 따라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마다 예수님을 아는데 그치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아는데 그친 나사렛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 사람이 누구야? 이 사람이 누구냐?’

본문에 보면 ‘이 사람’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고, 전하고, 닮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제자들의 믿음을 우리도 본받아 고백하며 증거하며 사는 
예수의 향내를 풍기며 사는 하늘 백성으로 
부끄럽지 않은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음으로 멸망치 않는 하늘 백성, 
구원 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사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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