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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라! (계 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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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라!  (계 5:11~14)

 
저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듣는 것도 좋아했지만 특히 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때 방송국에 뭔가 녹음하러 갔다가 제 성대가 녹음하는 데 별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 그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후에 가수가 되겠다고 날뛰지도 않았고 음악 선생님이 그렇게 강권하셨지만 음대에 진학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노래는 많이 불렀지만 전문적으로 노래 부르는 것과는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왜냐 하면 괜히 노래를 부르다가 제 스스로 상처를 받기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예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은총에 감격하여 그 주님의 이름을 높여 찬송하는 것은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제 목소리의 결함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목이 꽉 잠긴 상태로 찬송해도 그 찬송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다만 찬송을 기쁘게 받으셨을 뿐 아니라 찬송하는 제 마음속에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화를 선물로 안겨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릴 때 설교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봉헌하는 순서가 빠져서는 결코 아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그것은 모두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배에서 설교도 중요하고 봉헌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찬송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형편이 여의치 못해서 예배 순서를 일부 빼야 한다면 다른 것은 얼마든지 빼도 좋습니다. 그러나 찬송을 빼고서는 결코 예배를 드린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에서 설교가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의 찬송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6절, 12절, 14절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괜히 찬송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그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에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고서도 찬송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님도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며 찬송하는 무리들이 시끄러우니 잠잠케 해 달라고 요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0절 말씀입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놀랍지 않습니까? 만일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만일 우리가 찬송하지 않을 것 같으면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이 우리 대신 소리 높여 주님을 찬송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일찍이 시편 기자도 시편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시편 150편 말씀을 통해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지시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매우 감동적인 찬양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환난과 핍박 가운데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이 요한에게 보여 주신 그 광경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광경입니까?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천사들이 큰 소리로 어린 양을 찬송하고 있는 광경입니다. 천사들뿐 아니라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바다 위와 또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도 어린 양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도 아멘으로 화답하고 엎드려 경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황홀한 광경입니까?

그런데 그 찬송의 대상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린 양이십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찬송의 대상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 어린 양을 찬송하고 있습니까? 그 까닭도 천사들의 찬송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에 찬송을 받으셔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임을 당하셨으면, 특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면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 아닙니까?
가장 비참하고 또 저주스럽게 죽으셨는데 왜 찬송합니까? 일찍이 세례 요한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로 양을 희생 제물로 사용했습니다. 양은 백성들의 죄 때문에 대신 죽임을 당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구약 시대의 희생 제물은 다만 상징에 불과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희생 제물로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의 죄를 단번에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추하고 더러운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고 또한 찬송해야 마땅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입에 어떤 노래가 있는지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무엇을 말하는지 유심히 들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입으로 세상의 즐거움이나 노래하고 돈타령이나 부르고 걸핏하면 미움을 노래할 것 같으면 주님은 매우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주님을 찬미하고 그 주님의 은혜를 늘 감사한다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저는 목회하는 동안에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자가 진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지금 자신의 영적 상태을 알고 싶으면 요즘 입에 자주 맴도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아보면 됩니다. 현재의 삶이 고달플 것 같으면 아마도 외로움에 관한 노래가 흐를 것이고 특별히 절망하고 있다면 아주 슬픈 노래가 입에서 흐를 것입니다. 영적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찬양이 무엇인지 알아보면 지금의 영적 상태를 잘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와 같은 찬양을 자주 하고 있다면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우리의 입은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노래를 바꾸면 상태도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바꾸기 원할 것 같으면 입술의 찬양을 바꾸면 됩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그의 궁정에 들어가", "기뻐하며 왕께 노래 부르리" 등 감사와 기쁨과 평안의 내용을 찬양하며 선포할 것 같으면 주님은 우리 찬양을 들으시고 그대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신 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도 크게 찬송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오늘 우리도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그 주님이 지신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주님을 소리 높여 찬송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피조물과 함께 뜨겁게 찬송해야 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다만 주님을 찬송할 뿐 아니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더욱 어려운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 서서 수많은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구원의 주님을 세세토록 찬송하고 경배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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