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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영광(3) (요 17: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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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광(3) (요 17:21~23)


인간들의 삶을 가리켜 발자취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발은 각자의 삶의 처지, 삶의 흔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말을 'if you are in my shoes' 즉, 네가 내 신발 안에 들어와 보라는 뜻입니다. 우리 가운데 속용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동일한 뜻입니다. 

운동화나 구두를 파는 상점에 진열해 놓은 새 신발들은 표준 사이즈(size)에 맞춰서 만들어 놓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처음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함께 일정합니다. 그러나 음식점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벗어 놓은 신발은 그 신발 임자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신발보다 헌 신발이 훨씬 편한 것은 이미 자신에게 익숙하게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나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맨발입니다. 발뒤꿈치가 딱딱하게 굳은살이 되어서 갈라지고 그 사이로 피가 흐르는 늙으신 부모님의 발은 불효한 자식들의 뇌리에 오래토록 간직되고 있습니다. 

힘들고 고된 삶의 무게에 눌려서 굳어버린 발뒤꿈치를 무딘 칼로 긁어내는 부모님의 발은 영광의 발입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상처로 얼룩진 피곤한 발은 영광의 발입니다. 맨체스터에서 활약하는 박지성의 이상하게 변해버린 발은 영광의 발입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울퉁불퉁한 발은 영광의 발입니다. 착한 마라톤 선수 이봉주의 갈라진 발은 영광의 발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뱀을 보고 『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고 한 말씀이 성취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린 예수님의 발은 영광의 발입니다. 이 발은 인간들의 발과는 구별되는 발입니다. 이 발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으신 발입니다. 이 발은 인류를 구원할 발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생각건대 너도 나처럼 영광의 발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라는 마음으로 유다의 발을 씻어 주셨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4절에 『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는 예수님의 말씀을 감안하면 예수님에게서 유다의 발은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결국 예수를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 『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 『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Ⅰ.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17장 5절에 『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1) 만물창조의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 할 때 여기 하나님은 엘로힘( )으로 나타납니다. 힘( )은 복수입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절에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함께 했다는 것은 그의 선재성(先在性)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충만한 신성 위에 육신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렌스키(Lenski)는 본문에 '함께'라는 말은 첫 번째 성육신 이전 상태로서 하늘 영광의 회복을 바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함께'는 십자가의 승리로 인해 얻게 될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에 계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아들로서의 신성 위에 육신을 입은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58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8절에 『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2) 인간창조의 영광입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에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고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 2:7).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21-23절에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Ⅱ.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영광입니다(Incarnation).

요한복음 1장 14절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에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낮아지심의 절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지상사역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요한일서 4장 2-3절에 『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0절에 『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창 3:15). 아브라함의 씨라고 했습니다(창 22:15-18).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삼하 7:12, 13).
때가 차매 그리스도는 한 여자에게서 탄생했습니다(갈 4:4).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마 1:1).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했습니다(마 1:18; 요 6:42; 눅 4:22).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여타 아이들과 똑같이 성장했습니다(눅 2:40, 52). 그는 신(神)이면서도 육체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시장하셨습니다(마 4:2; 19:28). 그는 피곤했습니다(요 4:6). 목말라 하셨습니다(요 4:7; 19:28). 주무셨습니다(마 8:24). 그는 시험도 받았습니다(히 2:18; 4:15). 결국 죽으시기까지 했습니다(마 27:50; 막 15:37; 눅 23:46; 요 19:30).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무죄한 인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이시면서도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광은 곧 성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Ⅲ. 그리스도의 고난의 영광입니다(Suffering).

마태복음 16장 21절에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었다는 그 자체가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이 고난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영과 육이 함께 받는 전인적인 고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겟세마네에서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마 26:38).
육체의 고통과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고난의 절정이었습니다(막 15:1-25; 눅 23:1-33; 요 19:1-18).

마태복음 27장 28-31절에 『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말하기를 "그가 지상에서 사신 전 기간 동안 특히 생애 말년에 그가 몸과 영혼으로 온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다"고 했습니다.

Ⅳ.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의 영광입니다 (Death of crucifixion and Burial). 

마태복음 27장 46절에 『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에 『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라고 했습니다.
구세주의 고난은 마침내 죽음으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고난의 최절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일반적인 인간의 죽음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죽음이 범죄의 결과로 주어진 것인데 반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범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온 인류를 대표하여 죄의 삯인 사망을 지불하도록 사법적인 형벌을 부과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적이거나 우발적인 죽음을 맞지 않고, 자객의 손에 살해당하지도 않고, 병으로 죽지도 아니하시고 법정의 판결에 의해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24-26절에 『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극단적인 형벌인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21장 22-23절에 『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시체가 되어 매장된 것은 수치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로 인한 형벌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아담을 향하여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9절에 『 네가…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7절에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4-35절에 『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시편 16편 10절에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해 바다에 침몰한 천안함에 탔던 실종된 병사들을 구하려다가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는 원본 군인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부는 그에게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고 그의 장례를 해군장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전·현직 U.D.T.동지들의 조문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정부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싣도록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국민들은 그의 죽음에 대에 한결같이 참으로 영광스러운 죽음이라고 그의 군인정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참으로 저도 오랜만에 보는 가슴 뭉클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데 끝나거나 물에 빠진 얼마간의 사람들을 구조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신비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자기 자신이나 자신 외에 제 3자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구원 역사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타율주의 종교, 혹은 계시종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무슨 아쉬운 것이 있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오직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인간에게 창세기 3장 15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사실을 확인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 의지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의 죄를 그가 친히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의 죄 값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신 것에 있는 것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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