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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예수를 만나면 (눅 24: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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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예수를 만나면 (눅 24:30-35)

  
지금 우리는 세계 경제 위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감에 눌려 크게 위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 주간에 발생한 서해바다에서 군함이 침몰하여 수십명의 장병이 실종되었는데 아직도 대부분 생사가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몰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조하려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까지 발생하고 있어 국민들의 마음은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이 전쟁은 1964년에 시작되어 무려 10년만인 1975년에 끝난 현대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전쟁의 하나이었습니다. 이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1969년 미국인들은 다른 어떤 해보다도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미국 중서부 인디아나 주에서 빌과 글로리아로 불리우던 두 고등학교 선생님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 다 음악을 사랑하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교회음악 사역에 헌신하고자 학교를 사임하고 미래의 사역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어두웠던 탓인지 작곡도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건강도 여의치 않았고 사역의 길도 열리지 않은 채 1970년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빌과 글로리아가 빌의 아버지를 모시고 자기 사무실 앞에 도착하여 주차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 한 구석 으깨진 아스팔트를 헤치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파란 풀잎들을 보고 아버지가 "저 풀잎들을 보라"고 소리칩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봄이 오는 군요"라고 대답합니다. 

얼마 안 되어 이 가정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어두운 시대를 자기 가족이 어떻게 헤쳐 가며 살 것인가'를 기도하던 글로리아의 마음속에 한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의 임재의 기쁨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그리고 강한 영감에 사로잡혀  오선지에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 하네" 빌과 글로리아 게이터의 "살아계신 주"라는 유명한 찬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중에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채로 살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빌과 글로리아에게 찾아가셨던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절 아침에 부활의 주님께 경배하고자 나아온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셔서 만나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나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누가와 또 한 제자라고 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은혜 충만한 제자들이었지만 실의와 좌절감에 빠져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나사로를 살리시고,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는데...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실 줄이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실 줄 알았어." 무덤까지 다 확인한 후 고향으로 내려가는 두 사람은 근심된 얼굴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셨습니다. "너희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요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을 혼자만 모르시오. 이스라엘을 속량할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말씀을 더디 믿느냐?" 하시며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날이 저물어 어느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눈이 어둡고, 마음이 어둡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두 제자에게 주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 축사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두 제자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증거가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눈이 밝아집니다.(31)
  
본문 31절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떡을 떼어 받는 중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지금 그들 앞에 계신 분이 예수님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눈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과 영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은 사물의 모양과 거리, 광도 및 색상을 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은 안목의 정욕을 좇아 우리로 범죄 하기 쉽게 합니다. 반면 영의 눈은 영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은 아나니아의 기도를 받고 그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진리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 욥은 고난 뒤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뒤 제자들은 눈이 밝아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속에서 급선무 되어져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의 눈이 밝아져 예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일입니다.
스데반처럼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도 영안이 열려 천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였습니다. 눈이 열리니까 돌에 맞아 죽는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천사처럼 얼굴에 빛이 났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돌을 던지는 원수들이 불쌍하게 보이고 용서가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적국의 군사가 몇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엘리사에게 달려가 보고했습니다. "아아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엘리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습니다.  담담하게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훨씬 더 많다."  하고는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이 이 청년의 눈을 여셨습니다. 영적 눈이 열려 바라보니 불 말과 불 병거와 하늘의 군사들이 산에 가득한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으로 나아가는 사울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처럼 우리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이 이 곳에  임재 해 계시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스데반처럼 게하시처럼 영적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영적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큰 역사를 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마음이 뜨거워집니다.(32)

본문 32절에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였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갈 때 두 제자는 근심과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모두 식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말씀을 듣는 중 마음이 다시금 뜨거워졌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였을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영성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 뜨거움의 체험입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계3:15) 하였습니다.  
  
두 제자는 가는 길목에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었습니다. 25절의 말씀을 보면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더디 믿는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줘도 마음 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믿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이젠 눈이 열렸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더디 믿어지는 상태를 벗어나 믿음에 이르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심령이 뜨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오시면,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심령은 뜨거워집니다. 구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 성령 충만함을 받은 하나님 자녀의 가슴은, 영혼은 뜨거워집니다. 그래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은 쾅쾅쾅 뜁니다. 죽은 사람은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저는 임종을 많이 보았고, 시체도 많이 만져 보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서서히 식어가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시신이 싸늘해집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자식이든, 부모든, 남편이든, 아내든 생명이 끊어진 피부는 차가와 닿는 것과 같이 섬뜩합니다. 정이 뚝 떨어집니다. 

내 안에 성령의 임재가 없으면  인생을 차갑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힘 있게, 행복하게, 넘치는 축복 가운데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심장처럼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뜨거워지면 모든 것이 뜨거워지고, 내 영혼이 차가워지면 우리의 삶이 차가워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생명이 끊어진 우리 인간이 지식을 좇아가고, 물질을 좇아가고, 과학을 좇아가다 보니 이 사회에 걷잡을 수 없는 냉해현상이 오는 것입니다. 농사지을 때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냉해입니다. 1년 농사 잘 지었다가도 한 보름만 일찍 찬바람이 불면 그해 농사지은 것은 끝장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 냉랭해졌습니다. 차가워진 이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범죄가 점점 늘어가고, 청소년 탈선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너무 냉랭해졌습니다. 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냉랭한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주의 말씀을 듣고, 성령충만하면 모든 부부간에 부모, 자녀간에 차가운 병이 치료됩니다.  이웃간에  냉랭하여 미워하고 상처받아 깨어진 관계도 회복됩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려면 부활의 주님께서 내 안에 사셔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를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습니다. 교인의 머리는 차가워야 하지만, 가슴은 뜨거워야 합니다. 잘못된 교인은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갑습니다. 가슴이 뜨거운 교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헨델은 56세에 병들어서 모든 영광이 떠나갔습니다. 어느 눈 오는 날 밤, 그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며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이 성령으로 뜨거워졌을 때 만든 작품이 그 유명한 헨델의 '메시아'입니다. 베토벤도 실의에 빠졌을 때 주님을 영접하여 은혜받고 '심포니 9'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베토벤의 '심포니 9'과 헨델의 '메시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면 훌륭한 작품으로 변할 줄 믿습니다.   


3. 증인이 됩니다.(35)
  
두 제자는 이제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도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34절) 이 두 사람도 감격하여 자신들이 길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체험과 주님이 떡을 떼어 주실 때 눈이 밝아져 알아보게 된 것을 확신 가운데 전하였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만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지자 복음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는 베드로의 예수 부활 목격과 그 외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부활 소식을 들었으나 믿지 못하였습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 후 당장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자기들처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가 분명 오후였습니다. 거의 두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면 걷던 그 길을 다시 두시간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다시 밤길을 두 시간이나 걸어서 예루살렘을 향해 간다고 하는 사실은 우선 마음적으로 대단히 먼거리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에 집에서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날이 훤히 밝으면 가고자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진 그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밤길을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외친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의 예수를 전할 때 그 소식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 인생이 변합니다. 삶의 자세가 바뀝니다.  안목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  가운데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 아주 많습니다. 그중에 고 백낙준 박사님의 선친은 머슴이었고, 아무 소망도 없었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교회에 충성을 할 때 선교사의 눈에 그의 아들이 띄었고, 데려다가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백낙준 박사님은 한국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말씀을 통해서 만나기 바랍니다.  주님과의 가까운 교제를 통해서 만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예수님이 계시는 교회에 주일마다 참석하여 마음을 열고 예배드리므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부활의 예수님과 동행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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