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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영광(2) (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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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광(2)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요 1:14) 말은 성육신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현설(Docetism)에 대해 여기 '육신'이라는 말이 철퇴를 가하고 있습니다. 
성육신 자체가 그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의 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성에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삼하 2:6).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속성을 지상 사역을 통해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 있는 진리와 은혜는 모든 성도들에게 역사(役事)하고 있습니다. 

Ⅰ. 가나 혼인잔치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에 『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고 했습니다. 

1) 아버지의 독생자로서의 그의 신성의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중보적 사역을 담당하시는 분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에 『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8절에 『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그가 가지신 신성으로 말미암아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2) 표적을 통한 진정한 남편의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에 『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사역은 혼인집에서 시작됩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곤경에 빠진 신랑을 위하여 물로 양질의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이 메시야로서의 첫 사역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세계에서는 신랑이 반드시 결혼 잔치를 벌려야 만이 그 결혼이 법적인 효력을 발생합니다. 
요한복음 2장 9-10절에 『 …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감안하면 혼인집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공급해야할 사람은 신랑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잔치집에서 실제로 포도주를 공급한 사람이 예수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예수 자신이 신랑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동일하게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종말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성도들을 신부로 비유하여 혼인하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6-9절에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라고 했습니다. 
이 가나의 첫 이적과 마지막 때의 어린양 혼인 예식 사이에 세례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신랑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8-29절에 『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복음서에서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막 2:19-20; 마 9:15; 눅 5:35). 
바울 서신에서도 예수님과 성도들을 신랑과 신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의 신랑으로 오신 영광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야로서의 표적의 내용입니다. 

Ⅱ. 변화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3절에 『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라고 했습니다. 변형된 모습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이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 변형 』이라는 말은 '본질적인 형체'(Essential Form)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신비롭게 변화된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 부활의 영광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보도록 그들의 눈을 열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여기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다같이 시내산(출 31:18)과 호렙산(왕상 19:8)에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세는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사람이며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의 대표격입니다. 
모세는 땅 위에서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육신을 어디에 두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엘리야는 육신으로 불수레를 타고 회리바람으로 승천했습니다.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난 것은 그들의 부활을 증거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2) 재림의 영광입니다. 

재림의 영광을 보도록 그들의 눈을 열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가리워져 있는 본질적이고 영원한 영광의 광채를 능동적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이교도들의 신화에 나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Metamorphoses)이 아니라 장차 필연적으로 나타날 당신의 신적 본질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고(故) 박윤선 박사는 주석하기를 "이 변화는 장차 천계에서 그의 재림의 영광을 이 세상에서 잠깐 동안 참되이 가지시어 제자들에게 그의 재림의 영광을 미리 보이심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있어서 이 황홀하고 신비한 광경이야말로 기상천외한 것이었습니다. 

3) 영광스러운 아들의 영광입니다. 

마태복음 17장 5절에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마태복음 3장 17절에 『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수난 당하기 바로 직전 요한복음 12장 28절에 『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각각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막 9:7) 『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눅 9:35)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예수는 본래부터 사랑하는 아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 됨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교리적으로 기독론을 변증하는데 중요한 성경입니다. 만약 양자론자들의 주장이 이유가 있다고 하면 여기에 '지금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현재시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데 대해서 시간의 제약을 의미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여기에 관계된 기독론의 여러 이단들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일입니다. 

4) 메시야의 영광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내용에서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에 『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의 최후가 어떠할 것을 예시해 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의 요구와 예언의 성취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한 마리의 속죄양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체이십니다. 그가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천국이 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5) 고난의 영광입니다. 

마태복음 17장 8절에 『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고 했습니다. 
율법의 사람 모세도 가고 예언의 사람 엘리야도 갔습니다. 그들이 말하던 실체가 왔으니 이제는 율법도 예언도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에 따라 죽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율법도 예언도 십자가만 남겨 놓고 갔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에서 죽는 순서만 남았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1절에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5절에 『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5절에 『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6절에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예언했습니다(사 53:1-12).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예수 그리스도)으로 고난을 예언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도 가죽옷(짐승의 가죽)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수치가 가리워진다는 사실이 계시되었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도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수풀에 걸린 수양으로 번제를 드린 것은 신약에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한 것입니다. 

Ⅲ. 예루살렘 입성 중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마가복음 11장 9-10절에 『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준비 내용들은 구약 성경 스가랴서에서 볼 수 있는 위대한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가랴 9장 9절에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다는 사실은 예언적 사실입니다. 
창세기 49장 10-12절에 『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나오는 왕은 나귀 새끼와 관련되었습니다. 

민수기 19장 1-2절에 『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라고 했습니다.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겉옷과 밭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폈습니다. 이 행위는 예후가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사람들로부터 받은 존경과 영광을 연상케 합니다. 
열왕기하 9장 13절에 『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호산나'라는 구호는 본래 하늘에 도움을 구하는 외침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종려나무는 축하 행사 때 사용했습니다. 여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18편 25-26절에 『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메시야는 단순히 세상의 왕이 아니라 우주의 왕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수많은 군중들이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최고의 환영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예수님은 기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거룩한 성을 바라보면서 멸망할 것을 생각하고 우시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1-44절에 『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피 흘리는 고난의 영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로서의 그의 충만한 신성의 영광입니다. 표적을 통한 우리의 진정한 남편의 영광입니다. 
변화산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 계시의 영광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의 영광은 군중들과의 동상이몽의 영광입니다. 예수님 자신만이 아는 눈물의 입성입니다.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한 마리의 어린양이 되어 도수장으로 친히 들어가는 입성입니다. 

얼마 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수백만 유대인들이 살육되고 성전이 무너지는 아픔을 미리 내다보시는 전지(全知)하신 인자의 눈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은 빠른 속도로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유월절 양은 죽음을 준비해야만 하는 순서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우리의 영광은 그의 신부가 된 신부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오늘의 변화산인 교회에서 남이 안 보는 것을 보고 남이 안 듣는 것을 듣고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그 어떠한 환호 가운데서도 내가 받을 고난의 가치를 알고 그 고난을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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