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가 복음을 전함은 (고전 9:16~19)

  • 잡초 잡초
  • 351
  • 0

첨부 1


내가 복음을 전함은 (고전 9:16~19)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저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God came near)'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중년 남자의 집에 갑자기 전깃불이 나갔습니다. 그는 촛불을 켜기 위해 양초를 모아둔 창고에서 양초를 찾았습니다. 양초 한 자루를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양초가 말을 합니다. "주인님, 나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빛을 밝힐 수 있는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저를 사용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옆에 있던 다른 양초에 손을 뻗치자 그 양초도 말을 합니다. "주인님,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묵상하는 중입니다. 아직 묵상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묵상에서 깨어날 때까지 내 몸에 불을 밝히는 것을 연기하면 안되겠습니까?" 문득 옆에 나란히 서있는 네 개의 양초를 발견했습니다. 그들 중에 하나의 양초를 가지고 나가려 하니 네 개의 양초가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다른 초들이 훨훨 탈 때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이 작은 나의 빛 비취게 할 테야' 라는 노래 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어떤 양초로도 불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중년 남자는 불을 밝힐 양초 한 자루가 없다고 투덜거리며 나왔습니다. 아내가 왜 양초를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 물었습니다. 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가 화를 내면서 "무슨 그런 양초들이 다 있어요. 도대체 그 양초를 어디서 사왔어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양초들은 건너편 마을에 문을 닫은 교회에서 사왔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제야 부부는 그 양초들이 왜 그러는지 알았습니다. 

불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교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명을 포기하고 불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인생은 결국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 복음의 증인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더 큰 증인을 세우기 원하십니다. 더 큰 증인을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더 큰 증인을 쓰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는 당시 경제적으로 부유하였고 교통의 중심지로서 신흥 대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돈에 집착하여 부유하고 풍족하였으나 모두 타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에 의해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지만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교인들은 신앙을 지키기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복음 전파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절망하고,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지고,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흔들린다며 적극적으로 복음 전할 것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비장한 고백을 남깁니다. "내가 만약 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바울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의무이기에

'일곱 집사 전도행전'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중 음악 작곡가 조운파 집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칠갑산, 옥경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를 작사 작곡한 조운파 집사는 예수 믿고 난 후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권리를 포기했다고 간증합니다. 캐딜락을 처음 사서 시속 180km를 달려도 컵의 물이 그대로 있는 승차감이 그렇게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찔림이 오면서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너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겠다고 큰소리치면서 고급 차만 타고 다니면 전도할 사람은 언제 만날 수 있겠느냐?" 

그는 그때부터 캐딜락을 하나님께 반납하고 버스 카드와 전철표를 사서 전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종이 되고자 하는 희생 없이, 섬김 없이 전도할 수가 없습니다. 전도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가지고 있는 권리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소중한 시간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바울은 전도를 부득불 할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의 '부득불 할 일' 을 NIV 영어성경은 'I am compelled' 즉 어떤 감동이 와서 그것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거룩한 부담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전도를 피해갈 수 없는 거룩한 의무로 인식한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받은 구원은 결코 나 한 사람에게서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만 구원받아 혼자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통해 이웃에게 복음이 흘러 들어가기 위한 통로로 나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향한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웃과 열방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도는 거룩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특권이기에

어느 장로님이 운영하시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꾸준하게 환자를 돌보는 자원봉사자가 있었는데 원장 장로와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권사였습니다. 원장이신 장로가 너무도 고마워 봉투에 돈을 넣어 감사표시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권사가 원장실로 달려와 봉투를 내어놓으며 정색을 합니다. "장로님, 어째서 제 상급을 빼앗아 가려고 하십니까? 

제게 이런 것을 주시면 물질의 보상을 바라고 봉사한 꼴밖에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받으면 더 이상 이곳에서 기쁨으로 일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이것을 돌려 받으십시오." 권사 앞에서 원장 장로는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수치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전도는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특권인 것을 바울은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특권으로 받아들이는 바울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바울은 전도를 단순한 의무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 기뻐서 행한다면 상이 따라오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거룩한 의무만이 아니라 즐거운 특권인 것입니다. 가장 귀한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도의 상급을 천국에서 받아쓰게 될 면류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는 상급은 그런 상급이 아닙니다. 18절에 보니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즉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전도하는 것 그 자체가 상급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로서 쓸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 권리를 포기하고 사는 것이 상급이라는 역설적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전도하는 것 자체가 상급이라고 강조합니다. 전도가 힘이 들어도, 아픔을 당한 다 해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즐거운 특권이었습니다. 이는 전도를 해 본 사람만이 아는 기쁨입니다. 힘들게 전도한 사람의 눈이 열려져 예수를 바라보며 인생이 바뀌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이미 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즐거운 특권입니다. 
  
셋째로 사명이기에

찬송가 작시자였던 엘라이져 테일러 카셀(E. T. Cassel)은 본래 의사였습니다. 미국 네브라스카 교회에서 모범적인 집사로 봉사하던 그는 전도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환자를 정성으로 돌본 다음에는 복음 전하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돈 버는 것보다 전도하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십니까?" 그러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렇고 말고요. 우리는 다 나그네가 아닙니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전도는 천사도 흠모하는 일이거든요." '전도는 천사도 흠모하는 일' 이라는 말에 옆에 있던 부인이 감동을 받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합니다. 

그 말을 시로 쓰면 작곡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부인은 음악 전공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의 고백으로 찬송가 270장이 탄생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나이 60을 넘기면서 파트타임이 아닌 풀타임으로 전 시간을 드려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카셀에게 생겼습니다. 전도에 대한 불타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던 그는 결국 의사를 그만두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됩니다. 더 이상 돈은 벌지 못합니다. 의사로서 대접도 받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풀타임으로 전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부임지인 콜로라도 덴버 교회에 목사로 부임하면서 취임설교 대신 이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본문 17절 후반절입니다. "내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받았노라." 바울은 자의로 전도를 하지만 즐거운 마음이 동반되지 않는다 해도 전도는 포기할 수 없는 직분 곧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직분은 희랍어 '오이코노미안' 으로 청지기적 사명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집안 일을 믿을 만한 청지기에게 맡겼을 때에 쓰여지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믿어 주셔서, 신임하셔서 전도할 수 있는 거룩한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업은 자신의 사명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전도의 사명은 하나님이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았던 사명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잠잠한 성도는 세상에 물들기 쉽습니다. 잠잠한 교회는 영권을 상실하여 세속화되기 쉽습니다. 영혼 구원이 일어나지 않는 교회는 생명력이 없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아웃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하십니다. 우리 지역에 소금과 빛이 되기 원하십니다. 부디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두루 다니며 전도해야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지 마시고 한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6.6 해피데이 전도를 선포합니다. 남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사시겠습니까? 누구를 위해 사시겠습니까? 사명자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방황자로 사시겠습니까?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전도하면 어둠의 세력들이 물러갑니다.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전도하면 신앙이 든든히 세워집니다. 부디 영적 사명인 전도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의무이자 특권인 복음 전도, 무엇보다 귀한 사명으로 여기시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오로지 힘을 다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