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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무엇이 그녀를 달려가게 하였나? (마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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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녀를 달려가게 하였나? (마 28:1~10)


오늘은 2010년 부활절입니다. 
저는 오늘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간절히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부활절이 단순한 기념일로 지나지 않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부활절 예배를 기념식을 치르듯이 드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가장 놀라운 은혜가 있는 예배인데 영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예배입니다. 왜 그럴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절기예배에 어떤 형식적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기예배가 겉으로는 거창한 예배가 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늘도 부활절 예배를 드리시는데 부활절 참 거창한 예배를 드리는구나. 잘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구나. 이런 정도에서 여러분이 그치게 될까봐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마리아와 같은 기쁜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려고 막 달음박질하게 되는 것 같은 그런 놀라운 감동, 설명할 수 없는 내속에서부터 일어나는 힘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 저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지’

지난 주간에는 우리 교회에서 정말 특별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고난주간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 부흥회는 처음하는 부흥회였습니다. 그 부흥회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집회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계획한 것도 아니고 또 계획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계룡시에 있는 어느 한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그 교회 여건으로는 예배당을 건축할 형편이 못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부흥회 모든 헌금을 교회로 흘려보내게 마음을 주셨습니다. 여덟 분의 강사님이 오셨습니다. 한분도 사례를 받지 않으시고 다 그 교회 건축헌금으로 흘려보내셨습니다. 저는 교우들이 이 일을 얼마나 하나님의 역사라고 받아들이고 헌금을 하실까? 광고는 하면서도 얼마나 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 끝나고 헌금 계수 보고를 받았습니다. 헌금이 5,800여 만원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반 정도쯤 되면 많이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주님이 하셨다고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은혜와 사랑의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을 시간 시간 드렸습니다. 부흥회 끝나고 저에게 부리나케 오시더니 시간이 늦어서 미처 헌금을 못했다고 하시면서 어느 남자 집사님이 부흥회 헌금 봉투를 하나 주고 가셨습니다. 재정부에 넘기려고 보니 1,000만 원이었습니다. 부활절 헌금을 착각하셨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하게 하는가? 하나님이 그 일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혹시 우리가 그 일로 인해서 재정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하더라고 하나님은 그 일을 기뻐하고 칭찬하신 것 만으로도 충분한 복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뜨거운 감격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내적인 열정을 부활절 예배를 드릴 때마다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타깝게 봅니다. 왜 그럴까요?
부활의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달려가던 마리아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려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 마리아는 너무너무 답답하고 슬펐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 때문에 절망했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소망이 다 끊어진 것과도 같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때문에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아간 것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달려 갈 때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들려주었을 때, 마리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무섭기도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 왔습니다. 마리아의 얼굴은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는데 자기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다리 아픈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역사입니다. 

저는 처음에 성도들이 부활절 예배를 뜨거운 감동 속에서 드리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에 부활절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활절 설교를 통하여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설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설교의 많은 부분을 그것에 할애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만나보니 예수님의 부활은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데도, 마리아와 같은 특별한 감동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정말 믿는 이들도 부활의 감격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많음을 알고 당황했습니다. 부활절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충분하지, 무엇이 빠진 것입니까?

여러분, 진정한 부활 신앙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 뿐만이 아니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 까지 믿어져야 비로서 마리아와 같은 놀라운 감격의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마리아로 하여금 뛰어가게 만들었을까? 부활을 경험한 마리아가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달려자는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열정이 일어났던 것인가? 예수님의 부활 때문인데, 묵상하는 중에 마리아에게 임하였던 놀라운 일이 두 가지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리아로 하여금 가슴이 터지도록 감격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거의 같은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구나. 그것에 대한 마리아의 감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를 흥분하게 한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는 것만 아닙니다. 그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을 때 마리아처럼 되는 것입니다. 

만약 부활절을 맞이하면서도 마리아의 마음 같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마음이 마리아처럼 뜨겁고 간절해지고 열심히 생기는 감동은 솔직히 없습니다.” 하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절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감동이 없이 기념식 지키듯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을 흥분하게 만든 것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산 것을 여러 번 체험하였습니다. 나사로도 그랬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도 그랬습니다. 야이로의 딸도 그랬습니다. 제자들을 정말 흥분시킨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 그 분이 지금 자신들 눈 앞에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예수님을 만나기 까지 한 동안 부활의 감격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 신앙의 핵심은 죽었던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아무리 분명히 믿어도 성질 하나 기분 하나 안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듣고 자랐습니다.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혹 학교에서 친구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좀 빈정 거리거나 전혀 믿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때에도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믿음은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제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믿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면 얼마나 놀라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마리아 처럼 달려가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나 만 아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단순히 모범생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지식을 가졌을 뿐이지,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다시 당황하고 두려워 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그들은 계속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는데, 제자들은 왜 그렇게 허탈해 하고 두려웠습니까?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추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천국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면 자기들만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들끼리 어떻게 해.’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 신앙을 분명하게 가지시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데 까지 가야 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대학 4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저와 동생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랐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어머니를 뵈었을 때 산소 호흡기를 쓰신 어머니께서 손을 꽉 잡으셨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나와 내 동생들 위하여 기도해 줄 어머니가 없어졌구나! 그것이 제일 슬펐습니다. 용인 공원묘지에서 하관식을 마치고 오는 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묻고 온 그 자리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는 하나님 곁에서 나를 내려다 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어머니를 저 땅 속에 묻어버리고 오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는 저 하늘 위에 계시다.’그것이 마음에 갑자기 믿어졌습니다.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오히려 살아 계실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깨닫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부활은 그것과 다릅니다. 저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 보시면서 응원하시고 격려하시는 것과 다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그렇게 믿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분으로 여기는 분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능력으로 도우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예수님을 알아야 비로서 부활 신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성경의 내용을 알고 들은 것으로 그쳐서는 진정한 부활 신앙은 가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것 뿐만 아니고 그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우리로 믿게 하고 알게 하고 경험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임하실 때 마리아와 같은 이런 역사가 또 일어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경험했던 가슴이 뜨거워진 역사가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 다시 일어났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느낀 바람은 하나님의 호흡이었습니다. 누가 옆에서 숨을 내쉬면 그 숨결을 느낄 수 있듯이, 마가 다락방에 있었던 제자 120명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이처럼 경험하고 나서 제자들은 달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귀에 속삭일 때 자녀들은 부모가 함께 있는 것을 호흡으로 느낍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도 꼭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와 너무나 가까이 계신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체험의 본질입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제자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막 달려갈 때처럼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이라고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사람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왜? 성령님은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의 핵심입니다. 성령님은 왜 우리에게 오셨고 무엇을 하시는 분인가?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우리로 깨닫게 하고 경험하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한 부활 신앙을 가지려면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을 받을 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역사 진정한 부활 신앙을 갖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 2:41-47  ...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 이후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감리교회를 세우신 웨슬리목사님은 목사님이 되고 난 후에도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성경도 많이 보고 기도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돕고 금식도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종교 생활만 열심히 한 것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영국 런던의 올드스게이트 조그만 기도 모임에서 설교자가 마르틴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어나가는 것을 듣는 중에 중생born again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이구나!’이것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이 뜨겁게 마음에 성령의 확신으로 자기에게 임한 것입니다.‘예수 믿기만 하면.. 속죄함 받고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구나!’‘내가 이제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구나. 나는 이제 속죄함 받았구나!’그 확신을 얻었다. 그는 그날,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술회했습니다. 

이렇게 웨슬리목사님은 뜨겁게‘중생의 체험’을 했지만, 그렇다고 설교에 당장 불이 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도를 할 때, 놀라운 회심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웨슬리목사님은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아~ 아직까지 뭔가 부족한 것이 있구나!’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하나님, 저는 마음이 뜨겁고, 구원의 확신을 가졌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게 능력을 부어주소서!’이렇게 약 6개월 동안을 계속 기도로 간구했다고 합니다. 

1739년 1월 1일, (약 6개월이 지난 날) 성령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날 요한 웨슬리의 일기를 살펴보면 

1739년 1월 1일 홀, 허친, 임그림, 휫필드, 내 동생 찰스 등 약 60명의 형제들과 함께 피터레인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3시쯤, 우리가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위에 강하게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격렬한 기쁨으로 인하여 부르짖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땅에 엎드러졌다.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벌벌 떨다가 약간 회복되었을 때, 우리는 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주님이심을 압니다.’ 

새해 아침에, 온 나라가 진(술)에 취하고 있을 때, 이 60명의 형제들은, 런던의 좁은 골목인 피터레인에 모여 천국의 문을 두드렸다. 새벽 3시가 되기까지 그들은 깊이 기도하면서 천국 문을 두드렸고 응답이 왔다. 성령이 오신 것이다. 마치 초대교회와 같이! 
이 피터레인의 성령체험은 감리교 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근대 성령운동의 시작인 것입니다. 영국이 산업혁명 이후 극도의 혼란에서 피흘리지 아니하고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진정한 부활 신앙을 가지려면 성령의 역사를 갈망하셔야 합니다. “성령님, 제게 더 깊이 역사해 주옵소서.”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의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 자신과 가정, 교회, 나라와 민족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역사는 우리 자신과 가정 뿐만이 아니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역사하시면 그 다음에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계속해서 보여주십니다.  

화순에 계신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의사이십니다.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부인 권사님이 어느 집회에 갔다가 성령체험을 하고 오더니 변화되셨답니다. 이 분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저런 은혜의 세계가 있다면 왜 나는 그것을 모르는가?’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갈망이 생겨 부흥회, 기도원에도 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은혜의 체험이 없었습니다. 마음만 간절하지. 

그러다가 어느 집회에 참석했는데 특별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나오다가 도무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갔답니다. 이미 집회는 끝나 사람들은 없는 텅 빈 예배당에 앉아서 ‘하나님, 저 이렇게 갈 수 없습니다!’하며 기도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그 분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여러분, 정말 원하시면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여러분이 오늘 여기 오시기까지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이끌지 않으면 이렇게 오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역사가 더 필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에 그치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믿어지는 믿음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그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자리까지 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갈망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일부러 제외시키실 이유가 없습니다.   

목사인 제게 설교 준비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좋은 설교를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 때 제가 하였던 일은 책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책에서 좋은 설교가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제 안에 계셔서, 설교할 때마다 제게 전할 말씀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사실상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설교 준비를 열심히 할수록 더 피곤하고, 전하고 난 뒤에도 감격이 없고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설교가 나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설교란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아닌가?’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강하게 느꼈습니다.“내 안에 주님께서 계셔서, 나에게 전할 말씀을 주실 것이라!”그때부터 제게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는 놀라운 눈이 뜨였습니다. 그 이후 제 자신이 제 설교에서 가장 놀라운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요 14:18-19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아프리카의 한 의료 선교사님이 병원 앞마당에 파인애플을 많이 심었는데, 원주민들이 자꾸 그것을 도둑질해 갔답니다. 선교사님이 파인애플을 지키느라 온갖 방법을 써 보았고, 원주민들을 책망하고 협박까지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저 파인애플이 누구 것이냐? 네 것이냐?’생각해 보니 아니었습니다.‘하나님 것입니다.’‘그런데 왜 네가 그렇게 속상해 하느냐?’그 후 파인애플 밭에 팻말을 세웠습니다.ꡐ이 파인애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ꡑ마음대로 따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그들이 파인애플을 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것은 따 먹어도 괜찮은데, 하나님의 것이라니, 그들이 조금만 아파도 하나님의 것을 훔쳐 가서 아픈 것은 아닌가 하고 겁이 나서 가져가지 않은 것이랍니다. 선교사님이 파인애플을 딱 놓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 원하실까? 그 파인애플을 원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답니다. 시험거리였던 파인애플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고난 주간은 긴데 비하여 부활절은 너무 순간에 지난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고난 주간을 지내고 난 다음 부활절은 하루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부활절을 단순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로 여기니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매 주일이 부활절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부활절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가지면 놀라운 인생역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실패자를 택하여 쓰셨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버리고 부인하였던 제자들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서 배신했던 제자들을 용서하신 것까지는 좋으나, 그 제자들을 복음의 사도로 쓰시겠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께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계획은 요한복음 20장 22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계획은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제자들은 너무나 준비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철저히 실패했고 좌절한 것이 준비였습니다. 제자들은 ‘내 의지로는 안된다! 내 결심으로도 안된다!’ 확실히 깨달아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오직 성령님만 의지할 마음으로 가득찬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한 사람에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만 복종할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부산의 어느 장로님 간증입니다. 결혼 후 아내의 전도로 교회에 나갔고 집사가 되었으나 담배를 못 끊어 1주일 금식기도를 하다가 성령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분이 확 달라진 것입니다. 온통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집에 왔더니 고향 교회 목사님께서 연락을 하셨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10만원만 헌금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이 분이 수입이 없던 너무 어려울 때라 아내에게 말했더니, 10만원을 어떻게 하느냐, 1,000만원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는데 너무 감사하더랍니다. 전세금을 빼서 본 교회에 500만원, 고향 교회에 500만원 헌금을 했답니다. 그렇게 헌금한 것이 너무 감사해서 3개월 동안 감사가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하여 고향에서는 예수 믿고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소문이 나서, 자녀들에게도 너도 나도 예수 믿어라! 했고 마을 교회는 부흥되었습니다. 일가친척이 다 예수 믿고 형제들이 다 장로가 되었답니다. 그 때부터 사업이 일어나더니 부산에서 가장 큰 소매 귀금속 가게를 하게 되었답니다. 주위에서 신기해 하였답니다. 성령의 역사가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따뜻한 바람이 불면 봄이 오듯이, 성령의 바람을 느끼면 사람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찬양하고 싶어집니다. 전도하고 싶어집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집니다. 모든 것이 저절로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우리 주님이 부활하심을 통하여 완전히 바꾸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정말 주님을 사모하시면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활의 증인이 되어 살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로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성찬을 합니다. 성령님은 성찬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만이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성찬을 받으실 때 성령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제가 오늘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기대하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여러분이 오직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기대하시고 성찬을 받으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주님을 만나는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연한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호흡이 느껴지도록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바로 그 분이십니다. 

이제 성찬을 받으시게 되실 터인데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십시오. 오늘 성찬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기를, 여러분 인생 전체를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유가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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