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오신 사람들 (요 20:11~29)

  • 잡초 잡초
  • 267
  • 0

첨부 1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오신 사람들 (요 20:11~29)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사람들을 찾아가시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장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가셨고(1절-18절) 그날 저녁에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으며(19절-23절) 마지막으로는 일주일 전에 제자들을 찾아가셨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의심에 빠져 있던 제자, 디두모라 하는 도마를 찾아가셨습니다.(24절-29절)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부활의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가셔서 어떤 놀라운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행하셨는지 살펴보면서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I. 막달라 마리아 (20:1-18): 모든 것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아침의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빠뜨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사도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처음 발견하게 됩니다.(1절) 막달라 마리아는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오게 됩니다. 찾아왔을 때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요한을 찾아가서 이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2절-9절) 

베드로와 요한은 그 소식을 듣고 무덤에 와서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10절) 그런데, 마리아는 사랑했던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어서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11절) 울다가 다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 보았을 때 그 곳에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천사들이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물었고, 이에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그녀의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천사들과 대화를 한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이 예수님인 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14절)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말씀하셨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인 줄 알고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가 이르소서.” 부탁을 하게 됩니다.(15절) 그 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고, 비로소 마리아는 자기 앞에 서 계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깨닫게 되고 히브리 말로 “랍오니(선생님)”, 이전에 예수님을 즐겨 부르던 호칭으로 부르게 됩니다.(16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님을 이토록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예전에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서 비참하고 처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막 16:9, 눅 8:2)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막달라 마리아를 고쳐주셨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다는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까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그 곁을 지켰습니다.(요 19:25)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 그 놀라운 은혜를 받고 나서부터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예수님을 섬겼고 변함없이 어떤 환란과 어려움이 찾아와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주님은 더욱 섬길수록 더욱 귀한 주님’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을 계속 섬기고 섬기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이 더욱 귀한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도님들, 오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였는데, 이 부활의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님께서 그 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셨다는 그 은혜에 감격한 사람들, 그리고 힘을 다해서 전심으로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섬겼던 사람들에게 주님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이제 부활절 아침을 맞이해서 성도님들 한 분도 예외 없이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뜻을 정하여서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일에 헌신해서 그 가운데 섬기고 섬기다가 더욱 귀한 주님을 발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II. 두려움에 빠져 있던 제자들 (20:19-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만 찾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부활을 소식을 들었음에도 확신하지 못하고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찾아가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절) 

이 말씀을 하신 후에, 3일 전에 십자가 위에서 손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셨던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확신시켜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20절)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게 되고 주를 보고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믿고 기뻐하는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께서 한 번 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강을 빌어주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두려움에 빠져 있었고 연약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21절)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을 향해서, 불신의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것 같이, 이제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연약하고 두려움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40일이 지난 후에 성취되어집니다. 이 연약하고 두려움에 빠져있었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을 주셨을 때 그들은 성령을 받게 되고, 그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이 어둠의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롭게 하고 구원하고 정복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23절) 이 구절은 천주교가 소중하게 여기는 구절입니다. 천주교에는 개신교에는 없는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제 앞에 죄를 고백하고, 베드로와 사도들의 역할을 계승한 사제들이 죄사함을 선포하게 되면 그 죄가 용서되어진다고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이 바로 2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뜻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에게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죄이든지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지 않는다면,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죄악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사명이 제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되면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를 받게 되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죄인들은 죄에서 영원히 멸망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제자들은 지금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의 소식을 그렇게 많이 들었음에도 우리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세상의 도전 앞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두려움과 연약함에 빠져 있는 제자들도 사랑하셨습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두려움과 의심에 빠져 있는 성도님들에게 주님의 평강을 빌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여러분의 가슴 속에 이 부활의 진리가 살아있는 주님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확신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성령에 충만하여져서 이 어둠의 세상을 죄악에서 건질 수 있는 일에 헌신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I. 의심에 빠져 있던 도마 (20:24-29) 

마지막으로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나옵니다.(24절) 이 도마는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에 다시 사마리아를 통해 올라가시려고 할 때, 제자들이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예수님은 그냥 그 곳으로 가시려고 하셨습니다. 그 때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요 11장) 이 구절은 한국 교회에 너무나 유명한 구절입니다. 한국 교회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설교로 꼽히는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본문이 되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신사참배와 그 가혹한 환란과 핍박이 기다리는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백을 했던 도마가 예수님께서 자기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을 알았을 때, 도마가 많이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마가 이성의 이름으로 “내가 내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25절) 

일주일이 지난 후 다시 제자들이 집에 있을 때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그 때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고,(26절)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7절) 이 말씀은 바로 도마가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 나는 절대로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의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았지만 그 말씀을 듣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도마에게 도마가 원했던 대로 그대로 행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그 때 도마가 성경에 나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한 가장 놀라운 고백 중에 하나인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28절) 

성도님들, 열정적인 사람이나 머리로 따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깐깐하고 힘든 것 같지만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어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나면 화끈하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여자분들, 남편들이 머리로 따지고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해서 그냥 믿으라고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들을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설득되면 그 분들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나중에 가서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예수님께서는 의심에 빠져있는 한 명의 제자를 위해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회의와 의심을 해결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성도님 가운데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여전히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듣지만 여전히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성의 이름으로 믿기를 거부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주는 도전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같은 분들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고민과 회의를 풀어주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저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않고 믿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에게 찾아와 주십시오.”라고 고백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예배 시간을 통해서 성도님들의 입술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향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고백이 나오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IV. 복된 사람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 (29절) 

도마가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님들 누가 복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못 박힌 손을 만져본 사람이 복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예수님의 부활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믿을만한 분이신 것을 신뢰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기록된 대로 믿는 자들이 복된 자라고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님들 우리들 중에 누구도 도마처럼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못 박힌 손을 만져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체험보다도 더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들이 될 때 주님은 우리 성도님들을 향해서 복이 있다고 선포하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이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우리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면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다시 회복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건져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은혜에 감격하여서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빠져 있는 성도님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분의 성령을 부어주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이 타락한 세상, 어둠의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리실 수 있는 분들이 되십니다. 그리고 성도님들, 혹시 도마와 같은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의 회의와 고민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부활절 아침을 맞이하여서 성도님들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주님으로부터 “너희가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너희들이 복되도다.”라고 칭찬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한 번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함께 말씀을 통해서 확인을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진리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였지만 이 시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부활하신 하나님을 향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보지 못하고 믿는 너희들이 복이 있구나.” 이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이 어둠의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