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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의 삶 (막 1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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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의 삶 (막 16:14~18)


<아픔과 슬픔 한 가운데 맞는 2010 부활절>

천안함이 침몰한 후 온 나라가 침통한 분위기입니다. 침몰한지 벌써 10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실종된 병사들의 생사조차 확인을 못하고 있습니다. 사고 원인도 오리무중(五里霧中)입니다. 갖가지 추측과 소문과 가설이 난무한 가운데 국민들의 의혹도 그만큼 짙어가고 있습니다. 실종된 장병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무리한 잠수를 하다가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이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천안함 수색을 돕던 민간인 어선이 캄보디아의 한 상선과 충돌해서 배에 타고 있던 어민들이 실종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해 앞바다에서의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려고 했던 분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게 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런가하면 천안함이 침몰된 이후 지난 주간은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가히 '고난주간'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고난을 당하는 이웃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오늘 부활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고난당하고 슬픔에 휩싸인 이웃들이 많은데 우리는 부활주일을 어떤 자세로 맞아야 할까요? 또한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하고 깊은 슬픔 속에 빠진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아니, 당장 우리 자신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역시 크고 작은 고난을 늘 당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찾아온 부활절은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요?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할 때 복음서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제자들의 불신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한결같이 곧바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의심이 많았던지 자기 눈으로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자기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한 자기 손을 예수님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고 버티었습니다(요 20: 25). 어디 도마만 그렇겠습니까?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제자들은 처음에 거의 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지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부활을 잘 믿지 않습니다. 설령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는 신앙인들조차도 부활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잘 믿지 않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지낼 때 귀가 따갑도록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들었던 제자들까지 부활을 잘 믿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저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기 전까지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몰라 봤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공관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는 마가복음의 맨 마지막 장인 16장에만 보더라도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셨는데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었으나 믿지 않았습니다(막 16: 11). 시골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 두 사람이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으나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막 16: 13). 

<예수님의 부활과 복음 전파의 사명>

이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11명의 제자들이 음식을 나눌 때 또 다시 나타나십니다. 바로 이 식사 자리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14절 후반부를 보세요.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무디어진 것을 책망하십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누가 믿습니까? 믿음이 있는 이들과 마음이 열린 이들이 믿습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열린 마음이 없이는 부활은 믿어질 수가 없습니다. 

2천 년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부활의 주님은 우리가 죽어서 믿게 될 주님이 아닙니다.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믿어야 할 주님이시지요. 그런데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마음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믿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믿음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내 마음대로 내가 갖고 싶을 때 갖게 되는 어떤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값없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마음문을 여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하셔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하는 선물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그런 믿음의 선물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않은 제자들을 꾸짖으신 뒤, 이제 주님은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을 일러주십니다. 15-16절을 보세요.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제자들이 해야 할 최고의 사명은 복음전파의 사명입니다. 땅끝까지 나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이지요. 전쟁에서 이겼다는 승전보가 복음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무찌르고 이기셨다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주었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이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해주었으나 믿지 않는 이들은 정죄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무기력하게 돌아가신 분이 아닙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인류 최후의 적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부활의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더 이상 움츠리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자기 운명을 탓하며 비관적인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낙심했습니다. 낙향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가 그물을 던졌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신명이 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가졌던 추억들이 아스라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축 쳐져서 못 죽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 앞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고 믿은 뒤부터 제자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용기와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이제 주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위하여 살고 무엇을 위하여 죽어야 할지 삶의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의 삶>

이와 같이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데, 17절에 보니까 제일 먼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갖가지 귀신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 온갖 증오와 불신과 분쟁을 일으키는 사탄의 세력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상잡신의 세력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활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와 같은 귀신의 세력들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괴롭히는 일체의 악한 귀신들을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 되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17절 후반부에 보면 새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니까 인류가 교만으로 인해 바벨탑을 쌓아올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때까지 하나였던 인류의 언어를 흩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써서 알아듣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믿지를 못하고 소통이 안 되고 미워하고 싸우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날 성령강림이 일어났을 때 새 방언을 말하면서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알아듣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은 분열시키는 말이 아닌 통일시키는 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민족과 인종과 나라를 나누어서 대결을 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통일시키게 됩니다. 부활신앙이 전파되는 곳마다 국제화가 일어나고 증오와 분쟁이 그치고 사랑과 평화의 나라가 건설됩니다. 

셋째로, 18절 전반부에 보면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 능력의 삶을 삽니다. 이것을 우리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우리를 물어대는 독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독약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해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놋뱀을 장대 위에 매달아 불뱀에 물린 자마다 쳐다보라고 했습니다. 이에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들이 쳐다보았더니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은 단지 쳐다보면 사는 정도가 아니라, 손으로 뱀을 집어 들어도 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부활신앙을 가지게 될 때 세상의 그 어떤 환란도 이겨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은 비록 환난을 당할 때도 있으나 반드시 이긴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넷째로, 18절 후반부에 보면 아픈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부활신앙은 반드시 치유의 역사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육신적으로 병든 이들도 많고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든 이들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면 이와 같이 병든 이들을 고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힘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과 권능으로 고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참으로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은 이와 같이 병든 사회 병든 인간을 치유하는 치유의 사도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어둠과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무디어진 마음의 문을 열고 가려진 눈을 다시 떠서 이 부활의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예전과 달리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변할 것입니다. 침체가 활력으로 바뀔 것입니다. 질병과 상처가 치유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2천 년 전 과거에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을 주셔서 그 부활의 주님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체험하셔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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