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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복음 (요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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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복음 (요 11:25~26) 
 
 
삼라만상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생명의 계절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의 부활절을 축하면서 생명의 주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무덤에서 살아나신 부활의 진리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 저자들은 하나같이 무덤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을 상세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을 현장에서 목격한 제자들을 비롯하여 사도들과 교부들은 그리스도 부활의 진리를 온 세계에 전파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최대의 복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뜻 깊은 부활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본문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부활 신앙의 중요성

고린도전서 15:20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부활과 직결된다는 뜻입니다.

1) 죽음 아래 있는 인간

인간의 시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부터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겪게 되는 숙명적인 과제입니다. 로마서 5:12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질병과 재난과 죽음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옛날부터 인간의 실존을 논할 때 “사람은 출생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죽음 아래 종노릇 한다고 하였습니다(롬 5:14). 죽음은 인간을 슬프게 하고 불행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세상 어느 사람도 죽음에서 벗어나거나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히 9:27).

2) 가장 큰 기쁨의 소식

죽음 아래 지배당하는 인간에게는 죽음에서 해방된다는 부활의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복음(Good news)’입니다. 성탄절 새벽에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군의 무리들은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눅 2:10). 그 예수님이 곧 생명이요, 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죽음 아래 얽매여서 절망하는 인생들이 생명의 주님 예수를 영접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부활의 소망을 가지는 것이 최대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붙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요 3:16). 사도 베드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행 2:21).

3) 부활의 실제(實際)

부활의 실제는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이 펴는 논리나 학설은 대부분이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고 실상은 허무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실제요, 내용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자입니다. 요한복음 1:4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요 1:3). 모든 인류가 죽음에 얽매여 있지만 오직 예수님은 죽음을 지배하십니다. 그가 세상에 계실 때 죽은 사람을 살려내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잠든 아이 깨우듯이 살려내셨고(마 9:24-25),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과(눅 7:14-16) 무덤속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요 11:44).

2. 부활 신앙의 근거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부활을 신학적으로 논증하면서 그 내용이 성경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3-4에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였습니다.

1) 선지자들이 예언하였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계시의 문서입니다(요 5:39).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통하여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에 관한 도리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전 시대에 기록된 구약은 선지자들이 여러 시대와 다양한 사건을 통하여 장차 오실 메시야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눅 1:1-2). 그 중에도 죽음에서 살아나는 부활을 상징적으로 계시해 주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나가 밤낮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도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豫表)한 것입니다(마 12:40). 회막 안에 둔 열두 개의 지팡이 가운데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이나(민 17:8),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생기로 인하여 살아난 에스겔의 계시도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한 것입니다(겔 37:7).

2) 사도들이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예수님의 증인으로 내보냈습니다(행1:8). 사도들은 예수님과 생활을 같이 하면서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증거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무덤에서 살아나신 부활의 사실입니다. 오순절에 성령 받은 베드로는 유대인을 향하여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으니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행 5:30-31). 바울도 총독 베스도의 재판정에서 아그립바 왕을 향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라 함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행 26:23).

3) 성도의 부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진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사실과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로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7:52-53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실 때,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신 말씀은 성도의 부활과 영생의 도리를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다 변화되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51-52).

3. 부활신앙의 열매

예수님께서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안다”고 하였습니다(마 7:18).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갈 6:7). 부활의 신앙이 뿌리가 되는 곳에는 어디에서든지 생명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1)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그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로마서 1:16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의 능력’은 기독교의 부활 신앙이 지니는 생명력을 뜻합니다.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생명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부활의 복음이 어디든지 전파되고 또 그 전파되는 곳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하였는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을 초월하여 세상을 석권하는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마 28:19).

2) 교회가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교회의 설립을 선언하신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8). 지상 교회는 언제나 어디서나 음부의 권세에 시달리게 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무신론적인 독재권력에 의해서 박해를 받아 왔고, 여러 가지 이교 사상과 거짓종교의 세력에 의해서 훼방을 받아 왔지만 그래도 주님의 교회는 건재합니다. 오히려 교회를 잔해하고 성도를 핍박했던 그 세력들은 사멸되고 없어졌지만 주님의 교회는 변함없이 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생명운동의 산실이 되어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생명력을 불어넣곤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승리적인 삶입니다.

똑같은 세상에서도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삶의 자세나 방법이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임하는 죽음이지만(왕상 2:2), 그것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향하여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며 도리어 큰소리를 칩니다(고전 15:55). 옛날 욥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며 부활의 신앙을 피력하였습니다(욥 19:25-26). 이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고전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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