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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새로 태어났습니다 (갈 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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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났습니다 (갈 2:19~21) 
 
 
❚Born Again

‘Born Again,’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시 태어남’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독교 용어로 바꾸면 ‘거듭남’ 즉 ‘중생’(重生)입니다. 이 ‘Born Again’은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이라는 사람이 쓴 책 제목입니다. 찰스 콜슨은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사람으로 비상한 머리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닉슨 정권의 최고 브레인 역할을 하며 권력의 중심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누리고 살던 그가 하루아침에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 것이죠.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 중에 현직 공화당 출신 닉슨 대통령 측근들이 개입해 야당인 민주당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퇴하게 되고 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도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헤트필더, 휴스, 퀴에라는 상원의원 세 사람이 이때부터 찰스 콜슨을 위해 날마다 시간을 정해 함께 기도하면서 수시로 그를 찾아가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전에도 콜슨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는데 아무리 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던 찰스 콜슨이 형 집행기간이 7개월가량 남았을 때 뒤집어지고 맙니다. 세 상원의원 중 하나인 퀴에가 평상시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콜슨을 대신해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생겼습니다. 

변호사였던 퀴에는 특수 법조문 안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있음을 알아내고 법원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계기가 되어 콜슨은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드디어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지금까지 엘리트로 제일 잘 나가던 인생을 살았기에 교만하기 짝이 없던 콜슨의 자아가 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전의 교만하고 죄악된 삶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고꾸라지게 됩니다. 

그야말로 찰스 콜슨 이 사람은 중생, 거듭남을 체험한 것입니다. 잘 나갈 때는 신앙도 필요 없고 예수도 필요 없고 오직 나 잘 난 맛에 살았는데 한 순간 인생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그 마음이 열리고 자아가 깨지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나게 된 것이지요. 이 중생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고 인생의 가치관도, 목적도 송두리째 뒤집어지고 맙니다. 

여러분은 이런 체험이 있습니까? 이 정도로 극적이고 드라마틱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모두가 이 중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니, 경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내 삶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해야만 진정 중생하고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중생의 체험 없이 단순히 예수 믿으니 좋더라 하는 정도로는 우리가 진정 구원 받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중생, 나의 중생

성경에는 이 찰스 콜슨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 같은 중생을 체험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울이 바울 된 사건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유대 율법과 헬라 철학에 모두 정통하고, 로마 시민권도 가진 사울은 인간적으로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고 율법을 위한 열심으로 기독교를 핍박하는 데 앞장 선 인물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목숨 걸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데 돌로 치는 사람들의 옷을 맡아 증인까지 섰습니다. 이 말은 만일 이 처형이 잘못되었다면 내가 책임지고 죽겠다는 뜻입니다. 그 정도로 율법을 위해 목숨 건 사람이 사울입니다. 이 사울이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다메섹을 향해 가다가 그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강한 빛이 비추자 사울은 땅에 고꾸라집니다. 그 때 예수님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물으십니다. 바로 이 다메섹 도상의 사건으로 사울의 인생이 바뀝니다. 찰스 콜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고꾸라진 것처럼, 또 여러분이 각자 인생의 실패나 고통이나 곤고함 때문에 고꾸라진 것처럼 강한 빛 때문에 놀라 땅에 고꾸라지는 순간 사울의 인생도 고꾸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인생의 고꾸라짐 때문에 사울은 중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Born Again, 즉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내 확신과 고집을 위해 살고, 이전에 나 잘 난 맛에 살고, 율법을 위해 목숨 걸던 사울이가 완전히 고꾸라지고 죽었다가 Born Again,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위한 사람으로, 율법이 아닌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이 바울 된 그 유명한 다메섹 도상 중생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중생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연관 지어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 20절은 너무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함께 읽읍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내가 죽은 것입니까? 과거의 나 말입니다. 과거에 나를 위해 살던 나, 나밖에 모르던 나, 오직 내 인생의 목적과 꿈만 좇으며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던 내가 죽은 것입니다. 과거의 내가 고꾸라져 죽고 죄에 눌려 세상의 것만 추구하며 살던 내가 그때 십자가에 죽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됩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내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사흘 만에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옛날의 나는 나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아니란 말입니다. 이제 다시 살아난 나는 나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나로 바뀐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도 바울이 체험한 중생입니다. 이 중생의 체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 다시 살아난 중생의 체험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주님을 위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중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반드시 이 중생의 체험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중생이 뭐라고요?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죽었다가 어떻게 다시 삽니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어떤 내가 죽는 것입니까? 죄인인 나,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던 나,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살던 내가 죽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새로 태어나고 거듭 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으로요? 나밖에 모르고 나만을 위해 살던 내가 이제는 예수님을 위해 사는 나로 바뀌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생의 목적이 바뀌고, 인생의 가치관이 바뀜으로 내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중생입니다. 수십 년 교회 다니고 평생 예수 믿어도 이 중생을 체험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됩니다. “너는 누구를 위해 사냐?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냐?” 만약 “누구를 위해 살긴? 나를 위해 살지.” 혹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지” 하는 대답이 나온다면 여러분은 안타깝게도 아직 중생을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조금도 주저함 없이 “예수님을 위해 삽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인 나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위해 삽니다” 하고 대답이 나온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중생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오늘이 부활절 아닙니까? 성경은 누누이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없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기꺼이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 오르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도 주님과 함께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부활절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과연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졌던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정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의 옛 사람, 옛 자아, 나를 위해 살던 내가 정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느냐는 말입니다. 이 십자가 죽음의 경험이 없으면 나에게는 부활의 기쁨과 영광도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특징

그렇다면 이렇게 중생한 사람, 새로 태어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이 분명히 나타나야 저와 여러분은 진정 중생한 사람인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첫째 특징은 무엇보다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기 전에 나는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살고 내 성공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던 사람이지만 주님과 함께 부활해서 중생을 체험한 사람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삶으로, 복음을 위한 인생으로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중생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둘째 특징은 삶의 태도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기간에 나눈 말씀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불평 없이 살아보기” 말입니다. 제일 먼저 언어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표현방식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불평 안하고 말을 바꾸고 표현방식을 바꾸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내 말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면 내 자세가 바뀌고 태도가 바뀐다고 했어요. 전에는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지요. 그게 불평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환경 탓으로 돌리고 남들 탓으로 돌렸지요. 그런데 중생을 경험하게 되면 문제의 원인이 나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언어가 잘못 되었고 내 태도가 잘못 된 것 때문에 그토록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문제의 주범이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닫고 나 자신이 바뀌어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언어가 바뀌고 그 다음에 내 자세와 태도가 바뀌면 내 주변이 바뀌게 된다고 했습니다. 나 하나가 변하니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직장이 바뀌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오늘 예배 마치고 돌아가실 때 교회 문 앞에서 부활절 계란을 나누어 드립니다. 늘 나누어 드리던 부활절 선물이지요. 이 계란 받으면 반드시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하고 인사하세요. 삶은 계란 하나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것을 삶고 포장해서 나누어 드리려고 정말 여러 사람이 수고했거든요. 물론 “또 계란이야” “이왕이면 두 개 주지 왜 달랑 하나야” 하고 불평하는 분은 물론 없겠지만 우리 언어가 불평이 아닌 감사로 바뀌어야 진짜 부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특별히 이 부활절 계란과 더불어 선물을 하나 더 드릴 것입니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나온 분들은 뭔지 아시지요? 이 보라색 고무밴드입니다. 남녀 별로 사이즈가 다른 이 고무밴드는 우리 교회 온 성도가 오늘부터 팔에 끼고 지내야 합니다. 이 밴드를 한쪽 손목에 착용하고 지내다가 내 입에서 불평이나 불만, 험담, 남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이 나올 때 다른 쪽 손목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혹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불평스러운 생각이 들 때는 경고의 의미로 가볍게 한번 튕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일 동안만 불평 안하고 지낸다면 내가 정말 변하고 나 하나로 말미암아 내 주변이 변하고 가정과 교회와 가정과 주변 사람들이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유치한 일을 하나 싶은 분들, 이런 쓸데없는 일을 왜 하나 싶은 분들은 불평하지 마시고 처음부터 받지 마세요. 하지만 다른 때는 몰라도 이 부활절에 주님과 함께 중생한 사람으로서 내 삶을 새롭게 바꾸기 원하는 분들은 모두 동참하기 바랍니다. 어려울 거예요. 한 주간 제가 먼저 밴드를 차고 체험해보니 매일 불평이 조금씩 줄기는 해도 불평이 하나도 없는 날은 아직 단 하루도 갖지 못했습니다. 

실패해서 또 다시 21일을 시작하고, 또 실패하고 또 다시 시작하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평 없이 살면서, 언어를 바꾸면서, 생각을 바꾸면서, 삶의 자세를 바꾸면서 다시 태어나보고 싶습니다. 불평 원망 안 하는 나로, 비판 비난 안 하는 나로, 감사하고 찬양 하는 나로, 칭찬하고 인정하고 포용하는 나로 말입니다. 그래서 내 가정, 교회, 직장, 주변 바꾸어보고 싶습니다. 이 영광된 부활절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하던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죽고 새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설교 첫머리에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누구보다 잘 나가며 권력의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누리다 한 순간에 고꾸라져서 주님을 영접한 사람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중생한 후에 이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전에는 감옥 안에서 왜 나한테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냐고 불평만 늘어놓고 나를 이렇게 만든 남을 원망만 하며 지냈는데 이제 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희생하고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저 세 상원의원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섬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릴레이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입니다. 내 주변에 참으로 중생한 사람 하나만 있으면 이렇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영향력이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끼치게 되어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변화시키고, 저 변화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변화의 릴레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감옥에 갇힌 죄수의 처지인 찰스 콜슨이 남을 위해 베풀고 섬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는 남아 있는 형기 동안 함께 갇힌 동료 죄수들에게 사랑을 베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 죄수들은 그의 행동을 믿지 못하고 “저 친구가 워낙 머리가 잘 돌아가서 아마 다른 속셈이 있어 저럴 거야” 하고 의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내가 변화되려고 언어를 바꾸고 불평을 없애고 남들을 사랑하고 품고 섬기기로 작정하면 주변 사람들이 아주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저 사람 왜 저래? 뭘 잘못 먹었나? 뭔가 다른 의도 있는 거 아냐?”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절대 주눅 들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처음에는 의심하던 죄수들은 한 결 같이 봉사하는 콜슨의 모습에 감동을 받게 되어 함께 기도모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찰스 콜슨은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동안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는 저들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고백하며 일평생 죄수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이 ‘Born Again,’ 거듭남, 중생이라는 책 한 권을 발행했는데, 이 책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미국 사회의 커다란 화젯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결심한대로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다가 나중에 기독교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 영광된 부활절에 내 인생이 새로 태어난 것을 믿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결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언어를 바꾸려고 태도를 바꾸려고 애쓰고 기도하고 눈물 흘리면 좌절도 있고 실패도 있고 조롱도 있겠지만 언젠가 때가 이르면 반드시 아름다운 변화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노벨상, 템플턴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하나가 돌아가 각자 속한 교회의 부서와 가정과 직장과 주변에서 끼칠 선하고 놀라운 영향력을 이 복된 부활절에 가슴 벅차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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