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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예수 다시 사셨네 (마 2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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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네 (마 28:1~11)


오늘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포학한 로마병정, 위선자 대제사장, 가증스러운 바리새인, 스승을 노예의 몸값으로 팔아넘긴 몹쓸 제자 가룟 유다 등 이들의 합작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셨습니다. 큰 돌로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았습니다. 무덤은 총독 빌라도의 직인으로 인봉했고, 무장한 로마 군인들이 무덤을 철통같이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는 가로막은 바위도, 무장한 군사도,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운동경기 가운데 가장 통쾌할 때가 언제입니까? 역전할 때이지요. 예수님의 부활이 곧 역전의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여 무덤에 장사지낸 후 돌로 막아 인봉하고, 무장한 병력으로 지켰습니다. 그들은 승리를 자축했을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예수님은 실패자요, 그들은 승리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부활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단번에 승리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이분이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할렐루야!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일 아침 인사를 나눌 때마다 하는 말은“예수 다시 사셨네!”였습니다. 그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로 지키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이 곧 오늘날 우리들이 매주 마다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신자나 불신자나 다 예수님께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준으로 쉬기도 하고, 일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 지금 이 지구상에 20억이 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아 누리는 선진국입니다.

인류가 남겨놓은 역사가운데에는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유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렇고, 바늘 끝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석축을 쌓은 마야문명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에밀레종을 밭쳐주는 고리가 그렇고, 석굴암도 그렇고, 백제 무령왕릉을 축조한 벽돌이 그렇습니다. 이 모두는 현대과학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그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역사를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역사입니다. 부활하신 빈 무덤이 지금도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인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1.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입니다. “참호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되는 때는 죽음 직전이라고 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참호 속에서는 누구든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그 순간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어찌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일까요? 이는 사람의 마음이 그만큼 순수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에 때가 많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8절에 말씀하시기를“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어디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경 첫 장 첫 절인 창세기 1장 1절에“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장엄하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부인하는 사람에게는“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편 14:1)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가장 명확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땅위의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교리 가운데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윤리를 강조하는 것, 선한 일에는 상이 있고, 악한 일에는 벌이 임한다는 것, 내세를 말하는 것, 정성을 다할 때 바라는 소망이 성취된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만일 무덤에서 다시 나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윤리도덕을 말한다면 유교로 족합니다. 병 낫는 것을 기독교의 특색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공을 드려 병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물로서 병을 고칩니다. 무당도 주술로 병 고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술로도 병을 고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유가 기독교만의 특징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가운데 물질의 부요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는 아닙니다.

타종교는 그들 교주의 웅장한 무덤을 자랑하지만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석가모니의 무덤은 인도의 실수에 있고, 공자의 무덤은 중국 창평창에 있으며, 모하멧의 무덤은 아라비아 메카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자랑은 예루살렘에 있는 빈 무덤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죽음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죽음은 모두가 무서워하며 싫어합니다. 인간 최대의 난제가 죽음입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므로 유일한 구주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내세(來世)가 있다는 증거입니다.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시는 모습을 500여 무리들이 지켜보았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사도행전 1장 9절~11절에 기록하기를“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3절~8절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기록하시기를“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므로 믿는 경우도 있지만 믿을 만한 사람의 말을 듣고 믿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늘나라는 사람의 육신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육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오셨고,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신실한 일반 사람의 말이라 할지라도 믿는데, 세계인 모두가 우러러 보는 성자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믿을 만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앙인이 20억이 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1절~2절에 말씀하시기를“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복중(腹中)에서 10개월을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열 달을 살았습니까? 사지백체(四肢百體)를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의 삶은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53절 말씀에“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결코 땅의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족 모두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친지와 친구들이 모두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전해야 듣게 되고, 들어야 믿게 되고, 믿어야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고 못받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하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죽은 후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는 우리들은 복음 증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 고난을 이기신 증거입니다.인간의 최대 난제가 무엇입니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위협할 땐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이토록 무서운 사망권세를 제압하신 증거가 주님의 부활입니다. 이 예수님이 주를 믿는 저와 여러분의 구세주, 목자가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죽음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말씀하시기를“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 공급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 같으나 실패하지 않습니다. 망할 것 같으나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나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됩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후서 4장 8절~9절에 기록하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절대 절망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절대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1940년대 뉴질랜드 출신의 한 젊은이가 에베레스트 산을 산을 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할 야망을 갖고 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거의 꼭대기까지 이르렀다가 갑자기 몰아닥친 악천후로 인해 등정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 정복을 실패하고 힘없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갑자기 그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산의 높은 곳을 향해 쏘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명한말을 남겼습니다.“산이여!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나의 기술도, 경험도, 의지도 자랄 것이다. 산이여,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네 위에 반드시 올라설 것이다.”정확히 10년 후,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설 에드먼트 힐던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의지와 결단이 그로 하여금 가장 높은 곳에 서게 할 수 있었다면, 사망권세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전능하신 주님께서 나를 도우실 때 우리가 감당 못할 높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덤에서 부활하신 전능하신 주님께서 나를 도우실 때 내가 감당 못할 역경이 어디 있겠습니까? 낙심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또 다른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8~9)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절대 절망의 상황이라도 절대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입니다.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명합니다.예수님의 부활은 내세(來世)가 있음의 확증입니다.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증거입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전능자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이라 할지라도 능히 해쳐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이 험한 세상을 이기는 승리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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