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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을 믿는 자에게 임하는 복 (마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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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부활을 믿는 자에게 임하는 복 (마 28:1~10) 

 
인간 최대의 절망이 무엇일까요? 가난일까요? 질병일까요? 인간 최대의 원수가 무엇일까요? 공해일까요? 핵무기일까요? 인간 최대의 슬픔은 무엇일까요? 사업의 실패일까요? 사랑의 실패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최대의 기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오늘은 우리 예수님이 사망권세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어느 날 3대 독자를 잃은 한 어머니가 석가모니에게 찾아와서 죽은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석가모니는 하도 기가 차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런 조건을 걸었습니다. '부인 내가 당신의 아들을 살려드리겠소.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부인이 저 동네에 들어가서 아무도 죽음의 고통을 당해 보지 아니한 집에서 겨자씨 하나를 구해 오시오' 그 부인은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이 집 저 집 모든 집을 다 찾아다니면서 죽음을 맞보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 하나를 구해 오려 했으나 모든 노력이 헛수고였습니다. 다시 돌아와 '그런 겨자씨는 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자 그 때 석가모니가 '그렇지요! 죽음의 비애란 모든 집, 모든 인생에게 다 임하는 것인데 그대의 아들이라고 왜 당하지 않겠습니까?' 
  
석가모니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도 무덤에 묻혀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힙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능수 해안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멧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천안문 광장 한 쪽에 모택동 미이라를 안치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구 소련은 붉은 광장 한 쪽에서 레닌의 미이라 시신을 보여주면서 국부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목소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금요일 늦은 오후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바로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도 멀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꼼짝하지 않고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만 하였습니다. 
  
토요일 저들의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이미 밤이 되어 주일 새벽이 되었습니다. 몇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자들은 걱정하면서 향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어떻게 치울 수 있을 지 걱정하고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의 당시 장례는 굴속에 시체를 넣고 돌로 막는 문화였습니다. 여인들이 막상 도착해 보니 돌이 옆으로 굴러져 있었습니다. 
  
이상히 여기고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여자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댔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장사된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여섯 번이나 예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부활소식은 절대 기쁜 소식이요 굿 뉴스입니다. 
 
오래 전에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와 싸우기 위해 전선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 당시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자식을 전쟁터로 보낸 사람들 뿐 아니라 런던과 모든 영국 국민들은 전쟁터에서 승전보가 날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워털루에서 서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 내 아들 내 남편은 무사할 수 있을까?' 답답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전선에서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영국군이 나폴레옹 군대에 참패를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식입니다. 이 슬픔의 소식은 온 런던시민들을 탄식의 도가니로 만들어 모두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주식 값은 뚝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절망의 깊은 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새벽 전선에서 다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웰링턴 장군의 군대가 참패를 한 것이고 아니고 나폴레옹 군대가 참패를 당했다'는 낭보입니다. 어제 전해 진 소식은 잘못 전달된 것입니다. 짙은 안개만큼이나 침울했던 런던은 갑자기 기쁨과 환희의 도시로 바뀌게 되었고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며 함께 얼싸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절망의 소식이지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희망과 기쁨에 소식인줄 믿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그분의 부활소식은 영생의 메시지입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램브란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는 먼저 예수님을 그린 다음 그 주변에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치며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동조하는 군중들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군중들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얼굴로 그렸습니다. '이 군중 가운데 내가 있다. 내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장본인이다.'라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습니다. 내가 예수를 못 박는 이 무리들과 한패가 되었습니다.'하고 고백하고는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대성통곡을 했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오래 믿었든 늦게 믿었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한두 번쯤은 깊이 인식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며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그것 때문에 십자가를 부둥켜안는 근본적인 변화가 우리 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믿/
  
이런 변화를 전혀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면 그 신앙은 힘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 모두의 마음을 움직여져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이 아닌가? 죄인 중에 내가 괴수가 아닌가?' 하는 깊은 통찰력을 가질 때 신앙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멘!/ 


1. 부활 후 주님의 40일의 행적을 알아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11번 제자들에게 오셨고 후에 스데반 집사와 핍박자 사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①무덤 가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오셨습니다(막16:9/요20:14-18). 

예수님은 부활 후 무덤 가에서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②무덤에 갔던 또 다른 여인들에게 오셨습니다(마28:8-10). 

주일 새벽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 사건은 주일 새벽 일찍이 일어난 사건입니다. 
  
③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눅24:13-35/막16:12-13). 

제자 중 두 명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되는 엠마오로 가면서 일어난 체험인데 '이 일을 이야기하고 문의할 때' 예수님이 동행하며 자신에 대한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④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눅24:34/고전15:5). 

주님은 당신을 부인한 제자에게도 나타나셔서 그 좌절과 절망과 낙심과 후회 속에 있는 그를 다시 격려하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⑤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막16:14/눅24:36-44). 

주일저녁 방에 숨어있던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제자들 앞에 예수의 영(靈)이 나타난 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살과 뼈가 있다'고 하시고 제자들이 먹다 남은 생선을 받아서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만 부활한 것이 아니라 육신과 함께 온전히 부활하신 것입니다. 
  
⑥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에게 오셨습니다(요20:26-29). 

한 주일 후에 도마와 함께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한 주일 전에 도마는 예수님이 나타날 때 없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나타났다니까 비웃었습니다. 
  
'참 정신 없는 소리하지 말라. 나는 예수님의 손에 내 손가락 넣어보고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고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한 주일이 지나서 도마가 열 제자와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야 이리 오너라 네 손을 내어서 내 못 자국에 넣어 보아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도마는 너무나 놀라고 감탄하고 탄복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그렇게 고백할 때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⑦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일곱 제자에게도 오셨습니다(요21:1-14). 

갈릴리 호수에 이른 아침 나타나셨습니다. 요21:4-6절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이시고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세 번 부인했기 때문에 세 번 예수님이 회복을 시켰습니다.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또 잠시 후에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마지막으로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부인한 만큼 세 번 그의 입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서 상처 입은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켜 수석제자로 복귀시켰습니다. 
  
⑧갈릴리 산에서 열 한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마28:16-20/막16:15-18).

갈릴리 한 산 위에서 지상명령을 내리시면서 나타나셨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⑨500명의 성도들 알에 오셨습니다(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한 두 사람이 주님을 본 것이 아니라 500명이 동시에 보았으니 500명이 동시에 다 최면술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⑩야고보(알패오의 아들)에게도 오셨습니다(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⑪부활 후 40일 째 되는 날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셨습니다(막16:19-20/ 눅24:44-53/행1:1-11). 

40일 후 감람산 베다니 근처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축복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셨습니다. 
  
눅24:50-51절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친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들 옆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이 왜 하늘을 처다 보느냐? 하늘로 들리운 이 예수님 네가 본대로 오시리라'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⑫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나님 우편에 주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끌려나가서 돌로 얻어맞고 죽을 때 예수님을 보셨습니다.  행7:55-56절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은 죽기 전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이 서서 친히 스데반의 영혼을 받아 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⑬교회를 열렬히 대적하던 사울에게도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났습니다(행9).     

사울은 열렬한 바리새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열렬히 핍박을 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으로 지휘를 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이웃나라 수리아의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와서 투옥하고 죽이려고 살기 등등하여 가는데 다메섹이 눈앞에 보이는 그 근처에 왔을 때 대낮에 갑자기 하늘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면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거꾸러졌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놀라운 체험을 하고 그는 예수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리에서 예수를 증거하는 사명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실질적인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 성림의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들의 신앙적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부활의 이 아침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28:1절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안식 후 첫 날'이란 곧 주일인 오늘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오늘 새벽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우리가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특별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우리가 죄의 세력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날 부활의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날 아침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라고 하는 두 여인이었습니다. 그중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은 여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모한 두 여인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했던가를 보여줍니다. 
  
부활절을 맞는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이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남자도 아닌 여자가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갈 때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무덤을 지키고 있던 로마 군병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맞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성도들이 사모해야 될 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⑴주님을 사모해야 됩니다. 시143:6절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⑵주의 말씀을 사모해야 됩니다. 시119:40절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⑶주의 구원을 사모해야 됩니다. 시70:4절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⑷주의 전을 사모해야 됩니다. 시84:2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⑸신령한 것을 사모해야 됩니다. 벧전2:2절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⑹하늘의 본향을 사모해야 됩니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⑺선한 일을 사모해야 됩니다. 딤전3:1절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⑻지혜를 사모해야 됩니다. 잠21:3절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⑼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됩니다. 고전12: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대해서 사모하거나 또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주님께 대한 모든 것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할 무렵 놀라운 기적이 그 무덤에서 일어났습니다. 
  
2-3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변화 산에서 변화하신 주님의 모습과 같고, 계시록에 묘사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누우셨던 무덤의 돌을 굴려 버렸습니다. 그 무덤은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인봉된 무덤으로, 어느 누구든지 허락 없이 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시는데 어느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4절에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짐승들이 천둥번개나 대포 소리에 놀라듯이 싸움터에서는 용감했던 군인들이 너무 무섭고 놀라워서 죽은 사람들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②부활의 이 아침에 우리가 새롭게 주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5-6).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천사가 일러주었습니다. 
  
무덤 속에 누워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주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들은 너무 놀랍고, 너무 좋아서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예수의 빈 무덤을 보이며 예수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믿으라고 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부활을 사실로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사장되고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을 뿐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다시 살 것도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믿습니까?/ 어떻게 부활하는가?
  
요6: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기독교는 영생 부활을 빼놓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⑴죽어서 장사되었던 몸이 그대로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령한 몸으로, 영광의 몸으로 부활'합니다. 콩이나 옥수수 알갱이를 심으면 그것은 썩어 없어지고 그와 꼭 닮은 다른 알갱이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죽으면 요 모습, 요 나이 그대로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빌3:21절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몸이 그대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장례식으로 매장을 해도 좋고 화장을 해도 좋습니다. 
  
⑵썩지 않는 불후불멸(不朽不滅)의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전15:42절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부활의 몸은 늙지도 썩지도 않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 몸입니다. /할/ 
  
⑶태양과 같이 빛을 발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마13:43절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단12: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⑷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활의 몸은 그 영광이 각각 다릅니다. 고전15:41-42절 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즉 해와 달과 별들의 영광이 각각 다 다른 것같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갔지만 순교한 바울이나 베드로가 누리는 영광과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간신히 구원받은 강도의 영광이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냥 대충 대충 신앙생활 하는 자들과 열심을 품고 헌신하는 자들의 상급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상급도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적용됩니다. /믿/  

 
③부활의 이 아침에 우리도 무덤을 떠나야 됩니다(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주의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목격한 이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무덤을 빨리 떠났습니다. 우리도 떠나야 할 무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악의 무덤, 두려움의 무덤, 근심의 무덤, 사탄의 무덤, 우상의 무덤'을 빨리 떠나야 됩니다. 무덤은 '썩은 것, 생명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무덤은 부패하고 악취가 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불행과 슬픔과 통곡만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꾀를 좇는 자리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리에서 속히 떠나야 됩니다. 그리고 좋은 것, 복된 것, 은혜로운 것, 신령한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 아까운 것 같지만 버릴 때 주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4:16절에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빛을 보는 순간에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부활절에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의 부활의 약속을 받은 자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바꾸어지는 아름다운 순간이요, 복된 순간입니다. 

 ④부활의 이 아침에 우리도 빨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8).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리려고 달음질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리고, 증거하기 위해서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을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헬라어에 보면 '알게 한다, 선포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알게 해주어야 되고, 만백성 앞에 이 소식을 선포해야 됩니다. 
  
막16:15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⑤부활의 이 아침에 우리 모두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자!(9)
  
부활하신 주님의 복된 소식의 일성이 '평안하뇨?'입니다. 요20:21-22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굴속에 있는 개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와 있는 개미는 두렵습니다. 잘못하면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 20절을 보세요!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빠가 세상을 떠나 어린 아들 둘이 엄마랑 외롭게 사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그립고 남편이 그리워 식탁 위에 아빠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아빠와 같이 식사하는 마음으로 식사시간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밥을 먹었습니다. 엄마도 식사할 때마다 그 사진을 바라보고 남모르게 눈물지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하려던 아들이 말하기를 '엄마! 아빠가 저 사진틀에만 있지 말고 여기 나와서 우리랑 같이 살면 좋겠어' 그 때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하기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팔소리가 울리고 그 때 아빠가 사진틀에서 부활하여 나올 거야' 그리고 온 가족이 다시 울었습니다. 다시 꼭 볼 수 있다는 소망의 평강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평안하뇨'는 인사말인데 그 본래의 뜻은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두려움과 염려와 고민 속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소망 가운데 기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면 기쁨이 일어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께 와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의 임재의 기쁨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망 중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옥중에서 밤중에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옥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영국의 리더퍼드 목사님은 감옥에서 기뻐 찬송하면서 그곳을 그리스도의 왕궁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감옥에서 기뻐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넘치는 기쁨은 언제나 신앙의 참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⑥부활의 이 아침에 우리 모두에게 예배의 갱신이 일어나야 합니다(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한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그의 발을 붙잡고 경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께 경배생활 즉 예배생활을 일생동안 지속해야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배다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곧 예배의 생활입니다. '예배'라는 말은 '자신을 굽힌다,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면서 낮추기까지 우리 주님을 높이기 위해서 낮추어 드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다 드려서 주님께 예배 드려야 합니다. 
  
요4: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드리는 이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3. 부활을 믿는 자는 어떤 복이 임하는가? 

요20:19-29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⑴부활을 믿는 자는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하신 첫마디가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즉 '샬롬'입니다. 비록 저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샬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샬롬'이란 아까는 기뻐하는 것으로 설명했지만 또 그 말은 '평안하다, 풍요롭다, 온전하다. 범사에 잘 된다. 건강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만이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새로운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가 '위험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서 떨고 있을 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고민하며 고통하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오셔서 평강의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자의 첫 번째 축복입니다. 

 ⑵부활을 믿는 자는 '담대한 복'을 받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같이 자기들도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께서 오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워 떨지 말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 나의 부활을 증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비록 죽을지언정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도망쳤던 다른 제자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용기를 주시면서 '나를 증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본문 10절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무서워 말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죽음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에서 이기신 예수께서 '무서워 말라'고 하신 메시지가 무엇인가? 너희도 죽음을 이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두려움이 없는 사람보다 더욱 담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축복입니다. 

⑶부활을 믿는 자는 '확신의 복'을 받습니다.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의심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의 이런 태도는 바로 오늘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현대인들은 보고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말에도 정말이냐고 묻고, 선생님의 가르침에도 진실의 여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너는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면서 '너는 나를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하셨습니다. 

⑷부활을 믿는 자는 '승리의 복'을 받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승리하셨기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16:33절에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일5:4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으나 낙방했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역시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몇 번 낙방을 거듭하자 링컨은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링컨을 보면서 염려하기를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냐?'며 친구들은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말끔히 깎고 목욕도 하고 고급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기가 자기에게 외치기를 '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링컨은 그 당시 자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재기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절망하던 중 성경을 읽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공화당에 입당하고 열심히 뛰어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그의 일대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인도의 유명한 전도자 '선다 싱'에 얽힌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선다 싱이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광경을 보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사람들을 헤집고 들여다보니 수도승 한 사람이 팔을 쳐들고 앉아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지은 죄가 커 스스로 그 손을 벌하는 것이랍니다. 그 모양이 하도 측은해서 선다 싱이 '수십 년을 그렇게 벌서본들 그 손이 깨끗해지겠소?' 그렇습니다. 손뿐 아니라 온몸을 매질한다 해서 새롭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명상이니 수양이니 교양이니 하는 것'들로 옛사람이 새사람 되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극기(克己)나 수도(修道)를 통해서 회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온전히 함께 죽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될 때, 바로 그 죽음에서부터 예수 생명의 부활이 내 안에 옵니다. 즉 내 자신이 '예수 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적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또 다른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은 갈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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